신약/요한계시록강해

19과. 천년왕국 계시록 20장: 1절 ~ 15절

호리홀리 2014. 12. 17. 13:15

  19과. 천년왕국


  성경본문: 계시록 20장: 1절 ~ 15절


계14장           - 재림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처음 나타납니다.

계14장: 14~20절 - 재림과 심판이 대조법을 쓰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계14장~20장     - 거의 동시적으로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계16장           - 일곱 대접심판, 그리고 끝부분에서 천지가 소멸됩니다.

계17장~20장     - 앞의 내용에 대한 계시록의 결론입니다.(음녀, 짐승, 사탄심판)

계21장~22장     - 새 하늘과 새 땅, 그리고 새 예루살렘이 나옵니다.

 


  20장에 이르러서 모든 결론이 마쳐지며, 또 하나의 결론은 21장~22장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은 이중결론을 맺고 있는 것을 볼 수입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의 또 하나의 해석 방법은 모든 숫자는 상징적 숫자로 해석해야 합니다.

  20장은 결론중의 결론이고 20장을 잘 못 해석하면 많은 문제점이 발생합니다. 그래서 20장은 중요하고, 또 난해한 부분도 많이 있습니다.

  먼저 20장 해석에 앞서 계시록 9장 1절을 보면 다섯 번째 천사가 나팔을 불 때 ‘하늘에서 땅에 떨어진 별’은 이사야서 14장 12절에 ‘너 계명성이여 어찌 하늘에서 떨어졌느냐’라는 말씀과 일맥상통(一脈相通)합니다. 여기에서 ‘너 계명성’은 사단인 루시퍼를 묘사하고 있는데, 이 루시퍼가 하늘에서 별로 떨어지는 것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무저갱’은 타락한 사단을 결박해서 잠시 동안 가두어 놓는 감옥입니다. 계시록 9장 2절에서는 무저갱을 열쇠로 여니 거기에서 사단이 나왔습니다. 다시 계시록 20장 1절로 돌아가겠습니다.


  “또 내가 보매 천사가 무저갱 열쇠와 큰 쇠사슬을 그 손에 가지고 하늘로서 내려와서”


  천사가 무저갱의 열쇠와 큰 쇠사슬을 그 손에 가지고 하늘에서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2절 보겠습니다.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단이라 잡아 일천 년 동안 결박하여”


  그리고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단이라 잡아 일천 년 동안 결박하여 3절에 보면 무저갱에 던져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 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다가 그 후에는 반드시 잠간 놓입니다. 본 절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사단은 천 년 동안 무저갱에 갇혀 있었습니다. 이 천 년에 대한 해석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1000이라는 숫자는 10× 10× 10입니다. 10은 하늘의 숫자입니다. 그래서 1000년을 문자적으로 해석할 것이 아니라 하늘의 수가 완전히 차기 까지를 말하는 수로 해석해야 합니다. 5절 보겠습니다.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 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


  역시 1000년은 상징적인 숫자로서, 이것은 하늘의 수가 완전히 차기 까지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하나님의 수가 완전히 차기까지 살지 못했다는 의미입니다. 사단이 타락해서 하늘에서 떨어져 내려와서 하나님과 대적한 교만한 루시퍼 천사가 이 땅에서 계속 사람들을 미혹해서 죄를 짓도록 역사했습니다. 그러면 천 년 동안 무저갱에 사단이 갇혀 있는데 이 천 년은 언제부터 언제까지를 의미하는 것일까요? 이것은 성경전체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첫 번째 목적은 우리를 구속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또 다른 목적도 계셨습니다. 그것은 사단을 박멸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은 사단을 제어하시고, 박멸하시고, 결박하기도 하시고, 내어 쫓기도 하면서 치열한 영적전투의 실체가 드러나게 된 것입니다. 영적전투는 점점 더 치열해지면서 사단과 예수님과의 마지막 영적전투의 현장이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이 죽으심으로 사단이 자기가 이긴 줄로 알았지만 삼일천하였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부활하심으로 사단은 완전히 패했습니다. 그리고 신약의 예수님을 믿는 성도는 예수님이 이미 승리하셨기 때문에 그 예수님을 믿고 좇아가기만 하면 우리는 영적전투에서 승리하게 됩니다. 이것이 신약성경 전체의 해석입니다.

  예수님이 오심으로 사단과의 영적전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요. 사단이 무저갱 속에 갇힌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때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를 구속하셨을 뿐만 아니라 사단의 권세가 꺾이면서 그 때부터 사단은 무저갱 속에 갇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9장 1절의 해석이고 20장의 해석입니다. 사단은 단수입니다. 그래서 사단은 무저갱 속에 갇혀 있지만 사단의 권세가 완전히 소멸된 것이 아니라 그 졸개들이 우리 성도와 대적하면서 계속 싸우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영적전투는 이미 예수님께서 승리하신 싸움입니다.

  그러면 무저갱 속에 갇혔던 사단이 언제 잠시 놓일까요? 예수님의 재림 직전입니다. 사단이 잠시 놓일 때 성도를 미혹하고 광분합니다. 그래서 짐승을 출현시키고 온 세상의 왕들을 미혹해서 이만만의 군대를 모아서 마지막 영적전쟁과 물리적 전쟁을 치루는 아마겟돈 전쟁을 보여줍니다. 그것이 사단의 최후 발악입니다. 사단은 자기의 때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광분하며 최후 발악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그리스도와 마지막 전투를 벌이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전 장에서 예수그리스도가 승리하신 것을 보았습니다. ‘백마 타고 오시는 예수그리스도’에서 ‘백마’는 마귀와 싸워서 박멸하시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또한 백마 타고 오시는 예수님은 심판자로 오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은 재림과 함께 심판하러 오시는 분입니다. 재림 직전까지 사단은 마지막 최후의 발악을 하지만 재림하시면서 심판하시는 예수님에 의해서 음녀 심판, 그리고 짐승 심판,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단이 심판을 받습니다. 20장은 결론중의 결론으로 최후 결론입니다. 모든 것이 다 끝나는 장면을 보게 됩니다. 사단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때 갇혔지만 그의 추종 세력들은 여전히 성도들을 괴롭히며 미혹하고 있습니다.

17장~20장은 결론으로 앞의 내용에 대한 반복입니다. 내용은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반복적으로 나오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다시 2절 보겠습니다.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단이라 잡아 일천 년 동안 결박하여”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에서 용과 옛 뱀을 동격으로 처리하고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를 유혹했던 맨 처음 뱀이 바로 용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이것은 형상입니다. 실체는 마귀요 사단입니다. 역시 마귀와 사단을 동격처리하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2~3절에 보면 ‘잡다, 결박하다, 던지다, 잠그다, 인봉하다’ 등의 동사들이 나옵니다. 그래서 1000년 동안입니다. 그리고 재림 직전에 잠간 놓입니다. 그리고 4절~6절은 삽입 목록이고, 3절 끝에서 7절로 이어집니다. 그러면 7절 보겠습니다.


  “천 년이 차매 사단이 그 옥에서 놓여”


  잠간 놓였다가 천 년이 차매 예수님 재림 직전에 사단이 그 옥에서 놓여서 나와 사방 온 땅의 백성들을 미혹합니다. 우리가 계속 보아 왔는데 여기에 결론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8절에 보면 곡과 마곡을 미혹합니다. 에스겔 38장 2절에 나오는 최후전쟁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 전쟁은 우리가 계속 보아온 마지막 전쟁인 아마겟돈 전쟁입니다. 아마겟돈 전쟁을 다시 다르게 표현 한 것입니다.

  모아서 싸움을 붙이니 그 수가 바다 모래 같이 많습니다. 처음에 보았을 때는 이만만 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음에는 셀 수 없이 많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본 절에서는 그 수가 바다 모래 같이 많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다른 사건이 아니라 같은 사건을 다르게 묘사하고 있는 마지막 전쟁입니다. 우리는 이때 이미 천상에 있는 존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와는 관계가 없다고 했습니다. 9절 보겠습니다.


  “저희가 지면에 널리 퍼져 성도들의 진과 사랑하시는 성을 두르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저희를 소멸하고”


  영적전투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저희를 소멸하고’는 사단이 소멸되는 것을 보여줍니다. 10절 보겠습니다.


  “또 저희를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지우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그래서 저희를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지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영원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습니다. 이제 사단 심판이 끝난 것입니다. 먼저 음녀 심판, 그리고 짐승 심판, 또 적그리스도 심판, 그리고 거짓 선지자 심판이 있었고, 마지막으로 사단 심판입니다. 그래서 이제 모든 것이 끝납니다. 다시 앞으로 돌아와서 삽입목록 4절을 보겠습니다.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순교자들의 영혼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666표를 받지 아니한 어린 양의 피로 이마에 인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합니다.

  그러면 천 년 동안 왕 노릇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며, 또 천 년은 언제부터 언제까지를 가리키는 것일까요?

  이 천 년은 사단이 무저갱에 천 년 동안 갇히는 것과 같은 천 년입니다. 그래서 천 년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6절에 보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6절 하반 절은 천 년에 대한 부연설명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단이 무저갱에 천 년 동안 갇힌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부터 예수님의 재림 직전까지라고 했습니다. 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는 것도 바로 같은 기간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부터 예수님 재림 직전까지를 똑같은 천 년으로 예수님의 천 년 왕국을 보고 있습니다. 이 천 년 동안 직접 왕 노릇하는데 왕으로써 직접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제사장 노릇하면서 천 년 동안 왕 노릇하는 것입니다. 신약성경 전체와 합해지는 말씀입니다. 신약성도들은 예수님의 초림부터 예수님의 재림까지 천 년 동안 왕 같은 제사장 노릇을 합니다. 왜 왕 같은 제사장이라는 표현을 썼을까요? 하나님의 왕적 권세를 이어받은 그런 왕 같은 제사장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겨우 기도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왕적 권세를 가지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단의 권세를 물리치고 박멸할 수 있는 왕 같은 제사장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시시하게 살면 안 되고 비굴하게 살면 안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신분을 다시 확립시켜주고 있습니다. 1세기의 성도들이 왕 노릇 하면서 승리하며 살았듯이 오늘 21세기를 사는 성도들도 여전히 어려움 가운데 있지만 왕 노릇 하며 끝까지 승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의무이자 권리인 것을 강력하게 알게 하기 위해서 4절과 6절에서 두 번 강조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천 년 왕국은 실제적인 숫자의 천 년 왕국이 아닙니다. 5절 보겠습니다.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 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


  나머지 죽은 자들은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요? 예수님을 믿지 않고 죽은 자들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고 죽은 자들은 천 년 동안 살지 못하더라는 말은 영적으로 죽은 상태를 말합니다. 영적으로 죽어서 아무런 역사도 아무런 일도 하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하나님의 사람들은 살아서 왕 같은 제사장 노릇을 하지만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아무런 능력도 없다는 것을 대조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구절입니다. 6절 보겠습니다.


  “이 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


  왜 첫째 부활 다음에 둘째 부활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또 왜 첫째 부활 다음에 첫째 사망이란 말은 쓰지 않고 둘째 사망이라는 말을 썼을까요? 이것은 1세기 성도들이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기 때문에 쓰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합니다.

  첫째 사망은 육신이 죽는 것입니다. 그러나 둘째 사망은 영원히 죽는 것입니다. 영원한 심판에 참예하는 것이 둘째 사망입니다. 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자들은 둘째 사망이 없습니다. 영원한 불 못에 참예하는 심판은 우리에게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첫째 부활에 참예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왕 노릇 하는 것입니다. 

  첫째 부활은 영적 부활입니다. 둘째 부활은 우리가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11절 보겠습니다.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자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데없더라”


  16장 끝부분을 다시 결론으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16장에서 천지가 다 없어졌는데 또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16장 끝부분을 다시 결론으로 말씀하는 것입니다. 12절 보겠습니다.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이것이 둘째 부활입니다. 이제 둘째 부활에서 다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그 앞에 두 종류의 책들이 펴있습니다. 한 종류의 책은 ‘책들’로 복수로 되어 있고, 또 다른 한 종류의 책은 ‘책’으로 단수로 되어 있습니다. 단수로 되어 있는 책은 생명책입니다. 녹명(錄名)된 책입니다. 복수로 된 책들은 행위가 기록된 책들입니다.  믿는 사람들은 생명책에 기록이 되어 있기 때문에 심판을 받지 아니하고 예수님을 믿지 않고 죽은 자들은 행위에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모두 다 심판을 받는 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13절 보겠습니다.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 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 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예수님을 믿지 않고 죽은 자들을 내어 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 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사망과 음부도 불 못에 던져지니 이것이 곧 둘째 사망입니다. 영원한 불 못입니다. 영원토록, 세세토록 참예하는 영원한 심판입니다.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 못에 던져집니다. 20장으로서 천지도 소멸되고 사단까지 심판되는 모든 것이 다 종결되는 결론의 맨 마지막 결론부분을 우리는 보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요한은 20장에서 제일 강조하려고 하는 부분은 샌드위치 기법을 통해서 강조하려고 하는 부분인데(4절~6절 사이) 왕 같은 제사장입니다. 이것을 강조하려고 합니다. 천지가 소멸되고 없어지고 사단이 심판받고 하는 것을 보여 주려고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너희의 의무와 책임이 무엇인지를 말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말세를 살아가는 우리 성도들에게 이 땅에서 방관자의 삶을 살아가라는 것이 아니라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살아가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말씀위에 서서 이 땅에서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