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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과. 마지막 재앙 계시록 15장: 1절 ~ 16장: 21절

호리홀리 2014. 12. 17. 13:06

16과. 마지막 재앙


  성경본문: 계시록 15장: 1절 ~ 16장: 21절


구원과 심판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입니다. 15장은 승리자로서 14만4천의 하늘에 있는 자이며 16장은 이 땅에 남은 자로서 짐승의 표 666을  받은 자입니다.

  15장 1절에 보면, “또 하늘에 크고 이상한 다른 이적을 보매 일곱 천사가 일곱 재앙을 가졌으니 곧 마지막 재앙이라 하나님의 진노가 이것으로 마치리로다”


   일곱 천사가 가지고 있는 일곱 재앙, 곧 마지막 재앙인 일곱 대접의 심판입니다. 일곱 인을 떼시고 일곱 나팔을 불고, 그리고 일곱 대접의 심판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이것으로 마지막입니다.

  계시록 21장 1절을 보시면 새 하늘과 새 땅이 나옵니다.

  전에 본 14장~20장까지는 한 사건입니다. 시차를 두고 봐야 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일어나는 사건입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추수가 있는데, 하나는 구원추수이고, 또 다른 하나는 심판추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추수가 되어서 어린 양의 피로 인(印) 맞은 우리144,000은 하늘나라에 있는 존재입니다. 계시록 14장~20장 사이에 이미 휴거도 있었습니다. 우리는 미래의 일을 보고 있지만 우리의 신분은 하늘나라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미 천상에 있기 때문에 일곱 대접 심판은 우리에게 해당되지 않습니다.

  ‘마지막 재앙’이라는 말은 이것이 ‘마지막이다’라는 말입니다.  일곱 대접 심판이 끝이라는 것입니다. 2절 보겠습니다.


  “또 내가 보니 불이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이 있고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유리 바다 가에 서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짐승과 그의 우상’은 ‘사단’입니다. 그리고 ‘그의 이름의 수’는 666입니다. 또 ‘이기고 벗어난 자들’은 ‘승리한 자들’을 말합니다.

  그래서 사단과 그의 이름의 수인 666을 이기고 승리한 어린 양의 피로 인친 144,000의 구원받은 백성들이 유리 바다 가에 서서 전과 같이 재림 예수님과 함께 새 노래로 찬양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찬양을 모세의 노래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출애굽에서 좇아오던 애굽의 모든 군대가 사장되어 구원함을 얻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미리암을 따라 불렀던 모세의 노래는 예표이고 본 장의 찬양은 실제입니다. 그래서 모세의 노래와 비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심판을 받지 않고 안전한 곳에 머물러 있고 좇아오던 애굽의 모든 군대는 심판을 받았던 이 장면과 말세의 성도의 장면을 비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심판받지 않는 다는 것을 비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3절~4절에 찬양하고 기뻐하는 모습이 나와 있습니다. 5절 보겠습니다.


  “또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증거 장막의 성전이 열리며”


  “증거 장막”은 광야의 장막을 비유로 표현한 것입니다. 6절 보겠습니다.


  “일곱 재앙을 가진 일곱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맑고 빛난 세마포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일곱 재앙을 가진 일곱 천사는 일곱 대접의 심판을 예고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천사들이 계속 성전에서부터 나온다는 말은 하나님으로부터 명령을 받아 구원계획을 수행하기 위해 나오는 심판의 대리자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7절 보겠습니다.


  “네 생물 중에 하나가 세세에 계신 하나님의 진노를 가득히 담은 금대접 일곱을 그 일곱 천사에게 주니”


  하나님의 진노를 가득히 담은 금 대접을 일곱 천사에게 줍니다. 이제 일곱 대접의 심판이 시작됩니다. 8절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을 인하여 성전에 연기가 차게 되매 일곱 천사의 일곱 재앙이 마치기까지는 성전에 능히 들어갈 자가 없더라”


  성전에 연기가 차 일곱 천사의 일곱 재앙이 마치기까지는 성전에 능히 들어갈 자가 없습니다. 16장 1절 보겠습니다.


  “또 내가 들으니 성전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일곱 천사에게 말하되 너희는 가서 하나님의 진노의 일곱 대접을 땅에 쏟으라 하더라”


  성전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일곱 천사에게 말하되 가서 하나님의 진노의 일곱 대접을 땅에 쏟으라고 명령하십니다. 2절 보겠습니다.


  “첫째가 가서 그 대접을 땅에 쏟으며 악하고 독한 헌데가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에게 나더라”


  첫 번째 천사가 대접을 땅에 쏟습니다. 그러니까 ‘독한 헌데’, 즉 종기를 앓게 됩니다. 출애굽의 열 가지 재앙 중에 여섯 번째 재앙입니다. 그러므로 출애굽의 재앙과 비슷하게 나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네 번째 인을 떼기까지 땅에 대한 것, 또 네 번째 나팔을 불기까지 땅에 대한 것입니다. 그리고 대접에 나타나는 심판의 내용도 네 번째까지는 땅에 대한 우주적인 심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2절을 다시 보면 대접을 땅에 쏟으매 독한 헌데가 짐승의 표 666을 받은 사람들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에게 납니다. 그러므로 이 심판이 우리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3절 보겠습니다.


  “둘째가 그 대접을 바다에 쏟으매 바다가 곧 죽은 자의 피같이 되니 바다 가운데 모든 생물이 죽더라”


  두 번째 천사가 대접을 바다에 쏟습니다. 그러니까 바다가 곧 죽은 자의 피같이 되어 바다 가운데 모든 생물이 죽습니다. 4절 보겠습니다.


  “셋째가 그 대접을 강과 물 근원에 쏟으매 피가 되더라”

세 번째 천사가 대접을 쏟으니 강과 물 근원이 피가 됩니다. 식수를 먹을 수가 없습니다. 5절 보겠습니다.


  “내가 들으니 물을 차지한 천사가 가로되 전에도 계셨고 시방도 계신 거룩하신 이여 이렇게 심판하시니 의로우시도다”


  천사가 가로되 ‘하나님이 심판하시니 의로우시도다’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심판이 공의롭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6절 보겠습니다.


  “저희가 성도들과 선지자들의 피를 흘렸으므로 저희로 피를 마시게 하신 것이 합당하니이다 하더라”


  사단이 성도들과 선지자들의 피를 흘렸으므로 사단에게 피를 마시게 하신 것이 합당하다는 말씀입니다. 다시 한 번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7절 보겠습니다.


  “또 내가 들으니 제단이 말하기를 그러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심판하시는 것이 참되시고 의로우시도다 하더라”


  전 장에서는 하나님의 성전에서 나왔는데, 이제는 하나님의 보좌에서 말합니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심판하시는 것이 참되시고 의로우시도다’라고 말합니다. 8절 보겠습니다.


  “넷째가 그 대접을 해에 쏟으매 해가 권세를 받아 불로 사람들을 태우니”


  네 번째 천사가 대접을 해에 쏟으니 해가 권세를 받아 불로 사람들을 태웁니다. 9절 보겠습니다.


  “사람들이 크게 태움에 태워진지라 이 재앙들을 행하는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의 이름을 훼방하며 또 회개하여 영광을 주께 돌리지 아니하더라”


  사람들이 태워지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며 회개하지 않습니다. 이 심판은 회개의 심판이 아닙니다. 이제는 회개 할 수조차 없습니다. 어린 양의 피로 인친 성도들은 죄를 범하면 성령님이 내주하고 있기 때문에 양심에 가책을 받아 회개하고 다시 돌아옵니다. 그러나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은 회개하지도 않고 회개할 수도 없고 회개해도 이미 늦었습니다. 애굽왕 바로가 재앙이 점점 더 강해질 때 회개하지 않고 그 마음이 더 강퍅해진 것과 똑같은 표현입니다.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은 심판이 점점 더 강력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10절 보겠습니다.


  “또 다섯째가 그 대접을 짐승의 보좌에 쏟으니 그 나라가 곧 어두워지며 사람들이 아파서 자기 혀를 깨물고”


  땅에 대한 심판은 끝났습니다. 다섯 번째 천사의 대접부터는 사단 심판입니다. 다섯 번째 천사가 그 대접을 짐승의 보좌에 쏟으니 그 나라가 곧 어두워지며 사람들이 아파서 자기 혀를 깨물고 고통을 참으려고 하지만 참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심판을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심판 때에 밖에 내어 쫓겨 이를 갊이 있으리라고 했는데, 심판 때에 이를 갈며 하나님을 끝까지 모독하며 회개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1절 보겠습니다.


  “아픈 것과 종기로 인하여 하늘의 하나님을 훼방하고 저희 행위를 회개치 아니하더라”


  끝까지 저희 행위를 회개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훼방합니다. 12절 보겠습니다.


  “또 여섯째가 그 대접을 큰 강 유브라데에 쏟으매 강물이 말라서 동방에서 오는 왕들의 길이 예비되더라”


  여섯 번째 천사가 대접을 큰 강 유브라데에 쏟으매 강물이 말라서 동방에서 오는 왕들의 길이 예비 됩니다. 13절 보겠습니다.


  “또 내가 보매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니”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옵니다. 여기에서 ‘용의 입’은 사단의 상징입니다. 또 ‘짐승의 입’은 적그리스도의 상징입니다. 14절 보겠습니다.


  “저희는 귀신의 영이라 이적을 행하여 온 천하 임금들에게 가서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으더라”


  귀신의 영들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유혹하고 미혹하고 속이며 부추겨서 전쟁을 일으키게 합니다. 15절 보겠습니다.


  “보라 내가 도적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


  우리에게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십니다. 16절 보겠습니다.


  “세 영이 히브리 음으로 아마겟돈이라 하는 곳으로 왕들을 모으더라”


  “아마겟돈”은 헬라어입니다. 히브리어로는 “므깃도”가 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김해평야가 제일 넓은데, 이스라엘에서는 “므깃도”가 가장 넓은 평야입니다. 이 넓은 평야에 전쟁을 위해서 이만만이 내려오고 있는 것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17절 보겠습니다.


  “일곱째가 그 대접을 공기 가운데 쏟으매 큰 음성이 성전에서 보좌로부터 나서 가로되 되었다 하니”


  마지막 일곱 번째 천사가 그 대접을 공기 가운데 쏟으매 큰 음성이 성전에서 보좌로부터 나서 가로되 되었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신 것처럼 ‘되었다’는 말은 ‘이제 끝이다’는 말입니다. 모든 것의 마지막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18절 보겠습니다.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이 있고 또 큰 지진이 있어 어찌 큰지 사람이 땅에 있어 옴으로 이같이 큰 지진이 없었더라”


  순간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이 있고 또 큰 지진이 일어나는데 전무후무(前無後無)한 지진이 일어납니다. 19절 보겠습니다.


  “큰 성이 세 갈래로 갈라지고 만국의 성들도 무너지니 큰 성 바벨론이 하나님 앞에 기억하신 바 되어 그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잔을 받으매”


  큰 성이 세 갈래로 갈라지고 만국의 성들도 무너지니 큰 성 바벨론이 하나님 앞에 기억하신바 되어 그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잔을 받습니다. 여기에서 ‘큰 성 바벨론’은 사단이 통치하는 나라입니다. 20절 보겠습니다.


  “각 섬도 없어지고 산악도 간데없더라”


  각 섬도 없어지고 산악도 없어지는 인류의 마지막 재앙입니다. 21절 보겠습니다.


  “또 중수가 한 달란트나 되는 큰 우박이 하늘로부터 사람들에게 내리매 사람들이 그 박재로 인하여 하나님을 훼방하니 그 재앙이 심히 큼이러라”


  중수가 한 달란트나 되는 큰 우박이 하늘에서 사람들에게 내립니다. 여기에서 ‘한 달란트’의 무게는 70kg입니다. 그러니까 70kg이나 되는 사람의 몸 크기와 같은 우박이 사람들에게 쏟아지매 사람들이 하나님을 훼방합니다. 이렇게 마지막 재앙이 마쳐집니다. 16장은 앞으로 나타날 17장부터 20장까지의 내용을 요약한 것입니다. 이것은 시차적으로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동시적으로 일어나는 사건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계시록의 사건은 16장에서 끝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재앙에 두려워해야 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일곱 대접의 심판을 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취되지 않은 것이 없고 앞으로 미래에도 과거에 하나님의 뜻이 성취된 것처럼 성취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과거와 미래사이의 현재의 한 가운데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을 계시록을 통해 깨닫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적극적이고 역동적인 삶을 사는 성도의 자세를 가지고 늘 깨어서 한 생명이라도 구원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