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예레미야서(구속사)

예레미야서2장,언약파기

호리홀리 2016. 3. 30. 03:50

네 결혼 때의 사랑은 시내산언약을 가리킨다.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언약을 받아들이며 신혼의 기쁨 속에서 충성을 맹세하였던 것이다(24:6-8). 한편 이스라엘에는 유월절, 장막절, 초실절 등 많은 종교 축제가 있었는데, 이는 그들을 위한 하나님의 구속 역사와 언약, 이적 등을 상기시키는 역할도 하였다. 또한 우리는 여기서 호1-3장에 언급되고 있는 호세아와 고멜 사이의 관계를 상기할 수 있다. 그것은 물론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관계를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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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스라엘은...처음 열매가 되었나니 - 여기서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성물(聖物)', '소산', '처음 열매' 등으로 지칭되어 있다. '성물'이란 것은 오직 거룩한 목적으로만 사용하도록 따로 구별된 것을 말한다. 그러나 현재 이스라엘은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신을 섬기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율법에 따르면, 수확의 첫 소산은 하나님의 소유로서 하나님께 할당되어야 했다(23:19). 이는 모든 토지의 소산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깨닫게 하였다. 수확 중 첫 열매가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의 증표인 것처럼 이스라엘 역시 하나님의 몫으로서 하나님께 속한 백성다운 거룩한 자태를 나타냄이 마땅하였다.

 

 그를 삼키는 자면 다 벌을 받아 - 예레미야 당시 북 이스라엘은 이미 앗수르 군대의 침입으로 멸망당했고(B.C. 722), 그 백성의 대부분은 포로로 잡혀갔다. 그러나 히스기야 이후 남유다 역시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있었으며, 특히 기나긴 므낫세 왕 통치 기간에는 엄청난 배도(背道)를 자행했다. 이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예레미야는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소유이고,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을 침략하는 자에게는 여호와의 심판이 있을 것이라는 확신 속에서 그의 사역을 시작하였다. 이는 선민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극진하신 사랑과 섭리를 깨달은 데서 비롯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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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탄한 것을 따라 헛되이 행하였느냐 - '허탄한 것'의 원어는 '헤벧'인데 원래는 '증기', '', ''이란 뜻으로 쓰였다. 21:6에서는 '속이는 말로 제물을 모으는 것'을 이 '헤벨'로 표현하고 있으며 이를 '안개'로 번역하였다. 한편, 본문에서 이 말은 가나안 종교의 주신(主神)이었던 '바알'을 뜻했던 것으로 보인다(Harrison, Thompson). 그리고 그 당시의 국제 조약 문헌을 참고하면, 본문에서 쓰이고 있는 '따라 행하다'란 말은 '어떤 군주를 봉신으로 섬기다'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이는 이스라엘이 언약파기,여호와를 버리고 바알신을 그들의 하나님으로 섬긴 것을 뜻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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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사장들...범 잡은 자들...관리들...선지자들 - 네 종류의 지도자들이 언급되고 있는데, 백성들의 인도자가 되어야 할 이들이 도리어 우상 숭배와 같은 악영향을 미치는 일에 앞장 섰다는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었다. '제사장들'은 제사 직무를 맡았을뿐만 아니라 율법 해석자 역할을 하였고 또 우림과 둠밈을 적절히 사용하여 하나님의 뜻을 알아내는 일을 하였다(28:30; 27:21; 삼상28:6). 그러나 당시의 제사장들은 이러한 직무들에 태만하거나 혹은 자신의 직분을 남용, 오용했던 것 같다. '법 잡은 자들''율법에 능숙한 자'란 뜻으로 레위인들을 가리키는 듯하다. 이들의 직무 중에도 율법 해석의 일이 포함 되는데(2:5-8), 본절에는 그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알다'에 해당하는 원어 '야다'는 단순한 지식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전인적인 체험을 통해 획득하는 보다 깊은 차원의 의미를 내포하는 말이다. '관리들'의 히브리어 '로에''목자'란 뜻으로서 정치적 지도자를 주로 의미한다. '선지자들'은 여호와의 이름으로가 아니라 바알의 이름으로 예언하였다. 그래서 아사 왕이나 히스기야 시대의 종교 개혁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은 가나안 종교의 신과 의식을 뒤따랐다. 예레미야는 그의 전 사역 기간에 이들 바알 선지자들과 싸워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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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신을 신 아닌 것과 바꾼 일이 있느냐 -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법적 절차를 밟고 있다는 점을 선언한 후에(9) 이스라엘 주변 나라 중 그 어떤 나라에도 유례가 없는 이스라엘의 죄악을 지적한다. , 고유의 민족 신으로 섬겨 왔던 신을 바꾼 나라는 없다는 것이다. 이 신들은 참신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처럼 일관되게 섬김을 받아 왔지만, 정반대로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와를 버리고 살아계시며 그들의 영광이신 하나님을 '무익한 것'과 바꾸어 버린 것이다. 한편, '무익한 것'에 해당하는 원어 '벨로 요일'이란 말은 '바알'을 언어 유희로 표현한 것이 분명하다(Thomp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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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사자들이 - 이것을 앗수르 군대로 해석하는 것이 주석가들 사이의 지배적인 견해이다(Thompson, Clarke, Nicholson). 이 구절을 분명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 당시의 역사적 배경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18절에 앗수르가 언급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앗수르는 여전히 세계 최강국의 위치에 있었던 것 같으며, 그렇다면 본절은 앗수르의 붕괴 조짐이 나타나기 전인 예레미야 사역 초기에 쓰여진 것이 분명하다. 앗수르의 붕괴는 B.C.626년 앗술바니팔의 죽음과 더불어 시작되었다.

 

 네 땅을 황무케 하였으며 - 어린 사자가 앗수르를 상징한 것으로 본다면, 이 구절은 이스라엘의 멸망상을 묘사한 것이며, 디글랏 빌레셀 3세로부터 시작해서 살만에셀5, 사르곤 2, 산헤립, 에살핫돈, 앗술바니팔의 이스라엘 점령을 뜻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멸망은 배도의 길을 걷고 있는 유다에게 충분한 경고가 될 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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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애굽(Lower Egypt)의 고대 수도였던 멤피스를 말하는 것으로서, 오늘날의 카이로에서 남쪽으로 약 13마일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했다.

 

네 정수리를 상하였으니 - 이는 B.C.609 애굽과의 므깃도 전투에서 요시야왕이 죽은 비참한 결과를 당하게 된 사건(왕하23:29,30; 대하35:20-24)을 암시한다. 그런데 본절에는 애굽 대신에 그곳의 두 도시인 놉과 다바네스가 언급되고 있는데, 이는 아마 한때 애굽이 앗수르의 속국으로 있었으며 그중에서도 이곳 두 도시가 에살핫돈과 앗술바니팔이 이끄는 앗수르 원정군에 의해 가장 처참하게 정복되었던 일이 있음을 상기시키려는 의도에서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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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가 나를 떠남으로 - 유다가 여호와의 언약을 파기하고 다른 신들과 야합함으로 고난 받는다는 것이 본서 전체에 흐르는 주제이며, 그렇기 때문에 선지자는 거듭 이 점을 상기시킨다. 물론 이미 멸망한 북이스라엘의 참변도 자기 백성에게 내리는 여호와의 심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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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악...네 패역 - '패역'에 해당하는 '메슈바''돌아가다', '물러서다'의 뜻을 가진 '슈브'에서 파생된 명사로서 '돌아섬', '배도'의 뜻을 가지고 있다. 구약성경에서 본서만큼 '이스라엘의 배도'를 자주 지적하는 책도 없다(2:19; 3:6-8,11,12,14-22;5:6; 8:5; 14:7; 31:22). 앞으로 닥칠 유다의 참변은 궁극적으로 유다가 자초한 것이며 앗수르 등의 열강은 단지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될 뿐이다. 결국 유다는 언약 파기에 대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될 것이고 여호와를 버린 결과가 얼마나 고통스럽고 쓰라린 것인지를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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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순복지 아니하리라 - '순복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바드''노동하다', '타인을 위해 일하다', '하나님을 섬기다' 등의 뜻을 가지고 있다. 삼상11:1에서는 길르앗 야베스 사람이 침입자들을 향해 "우리와 언약하자 그리하면 우리가 너를 섬기리라"는 항복 의지를 밝히는 대목이 나온다. 따라서 이 말속에는 봉신으로서 대군주에게 충성을 다하겠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높은 산 위와...행음하도다 - 유다의 행음은 영적으로 이교의 신에게 제사라는 것을 가리킬 뿐만 아니라 실제적으론 이교의 제사 의식에 포함된 혼음을 의미할 수도 있다. 그리고 이들이 산꼭대기로 올라간 것은 우주의 신으로 여겨지던 바알이나 다른 가나안의 제신(諸神)들에게 더 가까이 가고자 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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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 종자 곧 귀한 포도나무로 심었거늘 - 본절은 사 5장의 소위 '포도원의 노래'를 연상시키는 비유이다. 여기서 '귀한 포도나무'란 예루살렘과 지중해 사이의 '와디 알-사랄'에서 자라는 극상품의 붉은 포도를 말한다(5:2). 하나님은 좋은 종자를 선택하셨는데, 하나님의 백성은 더러운 냄새가 나는 이상한 야생 포도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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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잿물로...비누를 쓸지라도 - 유다의 범죄에 대한 세번째 비유가 제시되고 있다. 그들의 죄악은 어떠한 세제를 사용하더라도 지워지지 않을 만큼 그 뿌리가 아주 깊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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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알들을 좇지 아니하였다 - '바알들'이라는 복수형 표현은 가나안 요소 요소에서 바알 제사가 수행되었던 것을 짐작하게 한다. 한편, 선지자는 바알을 좇은 일이 없다는 뻔뻔스러운 주장에 반박하여 두 가지 비유를 제시한다.

 

 골짜기 속에 있는 네 길 - 힌놈의 골짜기에 대한 언급으로 보인다. 거기서 사람들은 암몬 족속의 우상인 몰렉에게 자기 자녀들을 제사한 바 있다. 한편 왕하 23장에 따르면, 요시야 당시의 대대적인 종교 개혁이 이루어졌고 그 결과 산당 제사나 몰렉에게 바쳤던 인신 제사 등이 철폐되었다. 그러나 본절의 내용으로 볼 때 그 종교 개혁이 있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또다시 우상 숭배가 고개를 들었던 것 같다(Nicholson).

 

 암약대 - 이는 성욕(性慾)이 발한 암낙타가 수컷을 찾아 이리 저리 날뛰는 것을 가리키며, 유다가 우상 숭배에 집착하여 억제하지 못하는 것을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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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 암나귀가 그 성욕이 동()하므로 - 이는 암나귀가 길에서 수컷의 냄새를 찾아내어 달려가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아랍 속담에는 '암나귀는 수컷의 오줌 냄새에 취한다'는 말이 있다. 이스라엘을 야생 암나귀로 묘사하고 있는 이 내용은 바알을 갈망하는 이스라엘의 음란한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방 신을 사랑하였은즉 그를 따라 가겠노라 - 유다 백성은 예레미야가 지적하는 내용을 이해하고 있었지만 그들은 이미 마약 중독자이나 알코올 중독자처럼 치유가 불가능한 상태에 있었다. 유다는 결국 예레미야의 심판 예언과 같이 신도 신지 못하고 목이 갈한 상태로 바벨론에 끌려가고야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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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날 수는 계수할 수 없거늘 - 여호와의 언약을 잊고 육신의 정욕대로 자행자지(自行自止)했던 기간이 오래 되었음을 말한다. 므낫세는 55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유다를 통치했는데 그 기간 동안 유다는 우상 숭배로 완전히 뒤덮여 있었고 그의 손자인 요시야 왕의 개혁으로도 완전히 정화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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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가 어찌 사랑을 얻으려고 - 여기서는 인칭의 수가 복수에서 2인칭 여성 단수로 바뀌고 있다. 그래서 33-37절의 내용은 예레미야의 다른 독립된 설교인 것으로 설명되기도 한다. 그러나 2인칭 단수가 때로는 보다 보편적인 대중을 지칭할 수 있기 때문에 여기서도 그런 식의 이해가 가능하다.

 나는 무죄하니 그 진노가...떠났다 - 유다 백성의 죄질의 심각성은 그들의 영적 무감각과 그로 인한 뻔뻔스러움으로 인해 한층 더해졌다. 그들은 34절에 언급된 바와 같은 끔찍스러운 죄를 범하고서도(영역 성경 NIVRSV34절과 본절의 연결을 강조하기 위해 Yet in spite of all this, '이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도리어 무죄를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말하자면 공의의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자들이었다(요일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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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길을 바꾸어 - 이스라엘은 변덕스럽게 아무런 생각도 없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손을 내밀고 추파를 던졌으나 정작 신뢰할 만하고 또 진실된 자는 아무도 없었다는 사실을 선지자는 지적하고 있다.

 

 앗수르로 인하여...애굽으로 인하여 - 이스라엘은 정치적으로 앗수르나 애굽에 의지하려고 하나, 그들은 변덕스럽고 의지할 만한 자들이 못되며, 오히려 유다에 수치와 굴욕 그리고 절망만 안겨다 줄 것이다. 앗수르는 이미 북왕국에 수치를 안겨다 준 바있으며, 당시에는 유다에 엄청난 압력을 가하고 있었다. 한편 본절의 역사적 배경에 대해서는 크게 두가지의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 (1) 앗수르는 더 이상 유다를 후원해줄 처지에 있지 못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본절에서 여호야김 통치 기간 중에 애굽으로부터 당하는 고난(왕하24:4)을 지적한 것이며, 본절의 기록 연대가 요시야 시대의 것이긴 해도 훗날 여호야김 시대에 예레미야가 직접 이 부분을 부가적으로 편집해 놓었을 것이라는 견해. (2) 애굽과 앗수르 사이에서 정치적 중립 상태를 견지했던 요시야시대 초기로 보는 견해. 이중 후자가 더 타당할 듯하나, 어떠한 견해를 취하든 간에이 구절이 말하는 내용은 여호와의 주권을 인정치 않을 때는 침울한 재앙과 저주가 임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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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가 그들을 인하여 형통치 못할 것임이니라 - 여호와께서 역사의 수레바퀴를 지배하시는 이상, 유다가 어떤 나라를 신뢰하든 간에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시기로 작정하시면 그들 나라들은 유다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 나라들은 반역한 이스라엘을 심판하는 하나님의 도구가 될 뿐이다. 반면에 하나님이 한 나라를 선택하여 자기 백성을 돕기로 결정하면 이스라엘은 복을 받을 수 있다(44:28-45:7). 그리고 본장을 마무리 지으면서 전체적으로 이를 정리하자면, 본장의 내용이 기본적으로 예레미야 사역 초기의 설교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볼 때 본자의 메시지가 전파된 때는 대체적으로 요시야의 개혁이 점차 무르익어 갈 때이다. 요시야의 개혁 운동은 B.C.622년 성전에서 율법책이 발견되기 전에 시작되었으며, 최초의 개혁은 예레미야의사역 전인 B.C.629년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대하 34:3-7). 따라서 예레미야는, 그 전총이 모세 시대로 소급되는 언약 사상으로부터 강한 동기를 부여받았다. 이 언약 사상은 예레미야 사역의 핵심 주제가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