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예레미야서(구속사)

예레미야서1장,소명

호리홀리 2016. 3. 30. 03:32

'아나돗'은 예레미야의 고향으로서 예루살렘 북동쪽 약 4마일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으며, 오늘날은 '아나타'란 지명으로 불려지고 있다. 이곳은 베냐민 지파에 소속되어 있었으나, 기업이 없는 레위 지파 아론 자손 제사장에게 할당되었다(21:13-19). 한편 제사장 엘리 가문의 마지막 대제사장이었던 아비아달은 다윗을 이을 후계자로 아도니야를 왕으로 옹립하려는 음모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솔로몬에 의해 이곳 아나돗으로 추방된 바 있다(왕상2:26). 한편 에레미야는 제사장 사역을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아나돗의 제사장'이란 말은 그의 부친 힐기야를 수식하는 말인 것으로 보이며, 만약 예레미야가 제사장이었다면 그의 메시지와 예언에는 어느 정도 그의 제사장 직분의 배경이 반영되었을 것이나 그렇지 않다(Nichol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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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기야의 제 십 일 년 말까지 , 예루살렘 함락 때인 B.C. 586년까지를 말한다. 그러나 40-44장에 지적되고 있는 바와 같이 예루살렘 함락 이후 몇 년 동안에도 예레미야가 사역 활동을 계속했다는 점에서, 이는 본서의 표제어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구절로 이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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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너를 복중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 이는 예레미야가 이스라엘에게 보내어질 하나님의 사자로 선택받은 것이 결코 우연하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원하신 계획 속에 포함되어 있었음을 나타낸다(8:29,30참조).

'구별하였고'의 원어 '카다쉬'는 특별한 용도로 사용하기 위해 다른 것들과 구분해서 따로 두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인간, 장소, 시간 등이 하나님을 위해 따로 구별되면 오직 하나님만을 위해서 사용되어야 하며, 하나님의 뜻과 반대로 마음대로 그것을 처분하는 것은 참람한 행위이다.

 

 나는 아이라 - '아이'( 나아르)는 문자 그대로 어린아이를 가리킨다기보다는 경험이 없고 무지한 젊은이라는 정도의 의미로 이해된다. 바벨론, 애굽 등과 같은 대제국들을 상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한다는 것은 예레미야에게 대단히 두렵고 떨리는 임무였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모압이나 에돔, 다메섹, 블레셋, 암몬과 같은 약소국이라 하더라도 이스라엘과 오랫동안 투쟁해 온 긴 역사를 가진 나라들이었기 때문에, 예레미야에게는 역시 힘겨운 상대로 느껴졌을 것이다.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 그의 이런 주저하는 행동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모세의 반응과 유사하다. 모세 역시 처음에는 자신의 무능을 고백하며 고사(苦辭)하는반 응을 보였던 것이다(3:11;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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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너와 함께하여 너를 구원하리라 - 여호와께서 함께하시며 보호하시는 이상 두려워 할게 없다는 뜻이다. 예레미야는 출애굽 이야기를 알고 있었을 것이며,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들을 어떻게 애굽에서 구해내셨는지 또한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본문에서 '구원하리라'에 해당하는 원어는 '나찰' 동사의 히필형 부정법인데,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셨다는 말도 이 동사로 기록되었다(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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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 - 이 말씀은 신 18:18의 내용을 상기시킨다. 이것을 통해 예레미야는 자신이 모세의 후계자로 약속된 바 있는 선지자임을 자각했을 것이며, 더욱 확고한 믿음을 얻게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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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절에서는 예레미야의 특수 임무가 언급되고 있다. 그가 전달할 선포의 내용은 크게 파멸과 회복으로 나누어지고 있다. 그는 사역 초기에는 주로 유다와 예루살렘에 임할 심판을 강도 높게 설교하였고, 후기에 가서는 회복에 대해 말하였다. 또한 본절은46-51장에 언급된 이방 민족에게 고하는 심판의 예언을 반영하고 있다. 한편 본절에는 모두 여섯 개의 동사가 사용되고 있는데 네 개는 파괴적인 측면을, 두 개는 건설적인 측면을 가진 동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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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가 무엇을 보느냐 - 본절과 13절에는 두 가지 환상이 기록되고 있는데, 이 사건에 대한 시기가 밝혀져 있지 않지만 소명을 받은 직후인 것 같다.

 

 내가 살구나무 가지를 보나이다 - 여기서 '살구나무'에 해당하는 원어는 '솨케드'로서 아몬드나 밤, 호두 등의 견과(堅果)나무를 가리킨다. 야곱이 애굽 총리가 된 요셉에게 선물로 보내는 품목 중에 이것이 포함되어 있는데 '파단행'으로 번역되었다(43:11). 그리고 '가지'에 해당하는 '마켈''막대기', '지팡이'란 뜻으로 주로 쓰인다. 이 아몬드나무는 봄이면 가장 먼저 싹을 내고 봉오리를 맺는데, 오늘날에도 아나돗 지방에는 초봄에 수많은 아몬드나무가 꽃을 피우고 있는 것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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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가 잘 보았도다...이루려 함이니라 - 예레미야가 본 아몬드나무에 꽃이 피어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아몬드나무가 봄을 가장 먼저 알리듯이 하나님의 말씀이 신속하게 성취된다는 내용이다. 한편 칼빈은 '살구나무 가지''파수꾼의 막대기'로 해석하면서 선지자들의 말이 공허하게 되지 않도록 하나님이 파수꾼처럼 지켜볼 것이란 의미로 설명하고 있으며, 아담 클라크(Adam Clarke)는 하나님의 선지자를 통해 전달한 심판의 예언이 이루어지도록 깨어서 지켜볼 것이라고 해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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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끊는 가마를 보나이다 그 면()이 북에서 부터 - 두 번쩨 환상은 첫 번째 환상보다 더 침울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으며, 시간적으로 다소 떨어져 있었던 것 같다(Thompson). '끓는 가마'란 알맞은 바람이 아궁이의 불을 지펴 가열되어지고 있는 큰솥을 말한다. 24:3이하에서 이 끓는 가마는 전쟁과 그 결과 야기되는 황폐를 상징하였다. 어떤 학자는 이 '끓는 가마'가 유다 북방에 있는 갈대아인의 침입으로 동요하는 유다를 가리킨다고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블레이니(Blayney) 박사는 다음 절에서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재앙이 북쪽에서 나오며 그 끓는 물의 흐름이 재앙을 상징하고있기 때문에 이 끓는 가마는 유다 불방의 바벨론 군대를 상징한다고 설명한다(Clar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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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앙이 북방에서 일어나 - 이스라엘 백성이 겪은 환난들은 거의 다 불방 민족인 앗수르, 아람, 블레셋에 의해 일어났었다. 그렇기 때문에 '불방'이란 말은 종종, 그 기원이 불분명한 암흑 세력을 상징하였다. 그러나 예레미야의 사역이 요시야 통치 이후에 시작되었다고 보면 이 북방의 원수는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바벨론이다(Thomp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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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방 모든 나라의 족속을 부를 것인즉 - 이는 유다에 미칠 재앙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것임을 더욱 분명히 나타내는 말이다. 그러나 훗날 예루살렘 사람들은 그들의 성이무너졌는데도 그것이 하나님의 심판이었는지 깨닫지 못하였다(4:12참조).

 

 예루살렘 성문 어귀에...자리를 정하고 - 이는 예루살렘 성문에 왕좌를 세운다는 뜻으로서 그곳에 대한 정복과 그에 따르는 압제를 상징한다. 이런 내용의 예언은 그당시 예루살렘 사람들에게 엄청난 비난과 반감을 샀다. 심지어는 B.C. 597년 두 번째로 예루살렘이 함락된 이후에도 많은 사람들이 바벨론의 통치를 거부하였으며, 그 이후 바벨론의 지배가 확고하게 수립되었을 때에도(B.C. 586) 그들의 멸망을 일시적 패배로 여기는 자들이 많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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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리가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며 - 유다 백성이 앞에서 언급된 엄청난 재앙을 당하게 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지적하고 있다. 즉 그들은 하나님의 언약 백성임에도 불구하고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에게 제사하고 또 자기들 손으로 만든 것에 경배했던 것이다. 언약 파기로 인한 재난은 본서 전체에 걸쳐 등장하는 중심 사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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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려워 말라 - 이는 신 31:6-8과 수1:6-9에서 하나님이 여호수아에게 '강하고 담대하라'고 격려하는 내용을 상기시킨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 모든 것을 다 바쳤던 사도 바울은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고후 4:8)라고 고백하였으며,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라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1:10)고 담대히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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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는...놋 성벽이 되게 하였은즉 - 여기서 하나님은 군사적 상징어를 사용하여 강하고 확실한 약속을 주셨다. 예레미야의 대적들이 왕이나 고관 또는 제사장 등과 같은 기득권층일 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도 그의 주장을 비난할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강력한 지원이 필요했을 것이다. 사실 예레미야의 전사역을 살펴보면 그는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지도층 인사들과 대치해야 했으며 일반 시민들조차 그를 박해했다. 심지어 아나돗 사람들은 그를 죽이려고도 하였다(11: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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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이 너를 치나 이기지 못하니리 - 영적 승리의 비결을 제시하는 구절이다(C.L.Feinberg). 곧 영적 승리는 성도들 스스로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께 달린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분인 주님을 바라봄으로써(12:2) 승리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R.K. Harris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