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에스라(구속사적해석)

에스라10장,위대한 개혁자들

호리홀리 2016. 1. 14. 13:11

하나님의 전 앞'성전 마당'을 가리킴이 분명하다(Schultz). 만일 에스라가 '성소' 안에서 기도를 했다면 백성들이 에스라의 기도 모습을 목도하지 못했을 것이다.

 

 엎드려 울며 - '엎드려'(, 미트나펠)'쓰러지다' 혹은 '넘어지다' 등의 뜻을 지닌 동사 '나팔'의 재귀형으로서 극도의 슬픔 때문에(Davidson) 스스로 자신의 몸을 던지듯 납작하게 엎드리는 행동을 가리킨다(NIV). 또한 '울며'(, 바카)는 어떤 비극적 사실로 인하여 '통곡' 혹은 '애곡'하는 것을 가리킨다(23:2 ; 삼상 1:10 ; 삼하 1:24 ; 22:10). 따라서 '엎드려 울며'는 극도의 슬픈 감정을 표현하기 위한 암시적 행동임이 분명하다. 에스라는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죄악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자신의 죄인 양 하나님께 백성들의 죄를 고백한 바 있거니와(9:6-15) 여기서도 백성들의 죄를 자신의 것인 양 괴로워하며 통회 자복하고 있다.

 

 많은 백성이 심히 통곡하매 - 이것은 일차적으로 (1) 에스라의 죄에 대한 외적 태도(9:3). (2) 에스라의 백성들에 대한 연대 의식 및 그의 간절한 기도 내용 때문이었을 것이다. 바로 이 같은 효과를 극대화시킨 요소 중 하나는, 에스라가 페르시아왕의 정치적 사법권을 소유한(7:25) 신분의 소유자였다는 사실이었을 것이다(Fensham). 한편, '통곡하매'는 본절의 '울며'와 동일한 단어이다. 이같이 에스라에게 적용된 단어가 백성들에게도 적용됐다는 사실은, 여기의 백성들의 통곡이 에스라의 신앙적 태도에 대한 적극적 반응임을 암시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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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라는 문제의 해결책을 주도적으로 제시하기에 앞서, 백성들로부터의 자발적 결단이 나타나도록 기다리는 지혜를 보여 준다.

 

 엘람 자손 중 여히엘의 아들 스가냐 - '스가냐'라는 이름은 본절을 포함해서 본서와 느헤미야서를 통틀어 6회 나오지만(8:3, 5 ; 3:29 ; 6:18 ; 12:3), 그중 어느 하나도 본절의 '스가냐'와 동일시될 만한 증거는 없다. 한편 '엘람 자손'26;2:7 ; 8:7 등에서 언급되고 있다. 한편 혹자는 본문의 '여히엘'을 이방 여인과 결혼한 스가냐의 아버지라고 보는데(26), 비록 스가냐가 이방 여인에게서 난 사람이지만 이방의 악습을 버리고 이스라엘 공동체에 속한 자로서(6:21) 무리를 대표하여 이야기한 것이라 생각한다(Williamson). 그러나 본문의 여히엘이 26절의 여히엘과 동일인이라는 증거는 없다(Fensham).

 

 오히려 소망이 있나니 - '스가냐'가 이 같은 긍정적 언급을 한 까닭은 (1) 에스라의 간절한 자복의 기도와 백성들의 진정한 회개로 인하여 백성들이 죄에서 완전히 돌아서기만 한다면 하나님께서 사죄의 은총을 베푸시리라는 기대(Fensham), (2) 이 같은 범죄 사건을 전화위복(轉禍爲福)의 계기로 삼아서 이스라엘에 대한 대대적 종교 개혁을 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Schultz) 때문이었을 것이다. 한편 '소망'(, 미크웨)'기다리다'라는 뜻을 지닌 동사 '카와'에서 파생된 명사로서, (1) 극한의 상황 중에서도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끈기있게 고대하는 것(49:18 ; 40:31), (2) 그 같은 하나님의 구원 사역의 확실성 등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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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주의 교훈을 좇으며 - 여기의 '내 주'(, 아도나이)'에스라'를 가리킨다. '스가냐', 영적.도덕적인 권세와 정치적 권세를 아울러 지녔던(7:25) '에스라'를 이스라엘 공동체의 지도자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교훈을 좇으며'는 에스라가 팔레스틴으로 귀환한 주요 목적 중의 하나가 백성들에 대한 율법 교육이었음(7:10)을 명심함으로써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의 '교훈'(, 아차트)'조언하다' '훈계하다' 등의 뜻을 지닌 동사 '야아츠'에서 파생된 명사로서, 구체적으로 여기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 여인을 아내로 삼은 문제에 대해 에스라가 제시하는 방침 혹은 해결책을 가리킨다.

 

 아내와 그 소생을...보내기로 - '아내를 보내는 것', 그 결혼이 하나님의 율법과 상치(相馳)되는 원인 무효의 법적 상태였다는 점에서 볼 때 타당한 행동이었다. 한편 '소생', 즉 그 아내에게서 '태어난 자녀들'을 보내는 행동은 현대인의 관점으로는 꽤 잔인하게 보인다. 그렇지만 (1) 자녀들은 어머니의 종교적 영향을 크게 받는 관계로 틀림없이 이방의 풍습이나 종교에 젖어 있었을 것이며, (2) 이스라엘은 주변의 허다한 다신 종교로부터 여호와 신앙의 순수성을 지켜야 한다는 절대 명제를 갖고 있었다는 점 등으로 볼 때, 그것은 반드시 필요한 행동이었다(Fensham, Grosheide). 그리고 여기서 '보내기로'(, 호치)'나가다'라는 뜻을 지닌 동사 '야차'의 사역형으로서 '강제로 나가게 하는 것' 혹은 '원래의 상태로 되돌리는 것'(Gilchrist, 25:28, 30, 31, 33) 등을 가리킨다.

 

 하나님과 언약을 세우고 - 이스라엘 백성들의 범죄로 파기되었던 언약을(31:32) 스룹바벨과 함께 귀환한 사람들이 다시 갱신했듯이(6:16, 17). 최근의 범죄(9:1, 2)로 인하여 또 파기된 언약(9:10, 15)을 다시 갱신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 상황에서 백성들에게서 가장 중요하게 요구되는 것은 자신들에게서 죄를 제거하는 일이었다(Fensham).

 

 율법대로 행할 것이라 - 이것은, 백성들의 이방 여인들과의 결혼이 율법의 기준에 따른다면 원인 무효임을 인식하고, 그 기준에 의거하여 그 결혼을 없었던 것으로 하는일을 가리킨다. 한편 여기의 '율법'(, 토라)은 넓게는 '모세 오경', 좁게는 그중에서도 이방인들과의 통혼 금지 규정을 말한다(7:3, 4). 그리고 신24:1-4에는 특별한 상황에서 이혼을 허용하는 규례가 나온다. 따라서 에스라의 교훈의 영향에 따라 스가냐는 이방 여인과의 결혼 사실을 '수치되는 일'(24:1), 곧 이혼사유에 해당된다고 확신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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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는 당신의 주장할 일이니 - 이는 문자적으로 '그 문제는 당신에게 달려 있다'는 의미이다. 이는 율법에 따라 이방 여인들과 헤어지도록 만드는 일이 에스라의 소관이라는 뜻으로서 에스라가 율법 교육을 위해 팔레스틴에 귀환했다는 사실과 잘 부합된다(7:10).

 일어나소서 - 특별한 일의 실행을 위한 의지적 결단을 가리키는 단어이다(1:5). 다윗이 솔로몬에게 성전 건축을 당부할 때도 '일어나...'라고 한 바 있다(대상 22:16).

 우리가 도우리니 - 이는 문자적으로 '우리가 당신과 함께하리니'의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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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스라가...맹세하게 하매 - 맹세의 내용은, 율법에 따라 '이방 여인들을 내어 보내는 것'이었다. 이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제사장들...레위 사람들...온 이스라엘 -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을 구성하던 세 계층이었다. 이처럼 세 계층이 모두 나열된 것은 에스라가 각계 각층으로부터 고른 지지를 받았음을 암시한다. 또한 본문은 일반 백성들 뿐만 아니라 종교 지도자들까지 통혼(通婚)의 악습에 빠져있었음을 시사한다. 예컨대 느헤미야 당시에 대제사장의 손자가 호론 사람 산발랏의 사위가 된 경우가 그러하다(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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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엘리아십의 아들 여호하난 - 여기의 '여호하난'은 분명히 '엘리아십'의 손자로서(12:22) 당시의 대제사장이었던 것 같다(Rawlinson, 3:1 ; 12:10).

 - 이것은 성전의 양쪽에 있던 '방들' 중의 하나이다. ''은 제사장 혹은 레위인들이 봉사를 준비하던 공간이었을 것이다(8:29).

 들어가니라...들어가서 -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 동일한 두 동사 중 나중 것을 사본상의 오류로 본다. , 나중 것(, 와옐레크)을 칠십인역(LXX)이나 에스드라상 92절과 같이 '밤을 지새웠다'라는 뜻을 지닌 '와옐렌'으로고쳐야 한다고 주장한다(Brockington, Myers, Grosheide, Williamson, Fensham, RSV).

 

 떡도...물도 마시지 아니하더니 - 이 같은 모양의 금식은, 백성들의 죄에 대한 중보를 위하여 모세에 의해서도 행해졌다(34:28 ; 9:18). 이런 금식은 먹는 것만을 금하는 금식보다는 훨씬 강도 높은 의미를 나타낸다(삼상 1:7 ; 20:34 ; 삼하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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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포하기를 - 이것은 '건너다' 혹은 '지나다'라는 뜻을 지닌 '야아비루''음성', '풍문'을 뜻하는 ''이 합쳐져 이루어진 말이다. 따라서 이 말은 문자적으로 '음성을 지나가게 하다'라는 뜻으로서, 사자(使者)를 통해서 에스라의 전언(傳言)을 전국에 전달시키는 것을 가리킨다. 이와 같은 전언은 필경 거리에서 큰소리로 외쳐져서 전달되었을 것이 분명하다(Fensham).

 

 예루살렘으로 모이라 -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 자신들의 언약 신앙을 고백하기 위해 1년에 세 차례씩 '예루살렘'에 모이는 일이 중요했듯이(23:17), 하나님의 징벌을 받지 않기 위해서 언약을 갱신하는 일은 더욱 중요하였다. 그런 의미에서, 백성들을 예루살렘으로 불러모은 명령은 결코 무리이거나 잘못된 것이 아니다(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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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백들과 장로들의 훈시(訓示) - 여기의 '방백들과 장로들'이 에스라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역할을 담당했었던 것 같다(Fensham). 그리고 이들은 에스라에게 도움을 다짐했던 사람들(4)과 거의 같은 인물들임이 분명하다. 어쨌든 표면상으로 이들의 훈시 형태로 시달된 것은, 외면상으로 나서서 권위를 행사하기 보다는 가급적 이스라엘 공동체 자체의 자발적인 참여와 결단을 유도하고자 하는 에스라의 의도를 엿보게 해준다(Williamson).

 

 삼 일 내에 오지 아니하면 - 포로에서 돌아온 이후의 이스라엘의 영토는 남쪽의 브엘세바에서부터 북쪽의 벧엘까지여서, 멀다고 해도 예루살렘에서는 불과 약 60km밖에 되지 않았다. 따라서 심히 중대한 위기에 처해 있던 백성들이(7) 그 거리를 '삼 일이내'에 가는 것은 결코 무리가 아니었다(Rawlinson, Williamson).

 

 재산을 적몰(籍沒)하고 - 이것은 에스라가 아닥사스다 왕으로부터 부여받은 사법권의 하나였다(7:26).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여기의 '적몰하고'가 형벌의 외형상으로는 7:26의 것과 유사하지만 그 내용에 있어서는 사뭇 다르다는 사실이다. , 여기의 '적몰하고'(, 하람)7:26'적몰하다'(, 아나쉬)와는 원어상으로 전혀 다르다. '아나쉬'는 일반적 의미의 재산 압수를 가리키지만, '하람'은 철저하게 종교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여기의 '하람'은 하나님께 대한 신앙적 죄를 범한 사람의 재산을 빼앗아 불태워 없애버리며, 동물은 죽이고 심지어는 범행한 당사자를 포함한 모든 가족들에게까지 그렇게하는 것을 가리킨다(6:21). 결국 우리는 여기서 에스라가 아닥사스다 왕으로부터 부여받은 세속적 의미의 사법권을 이처럼 종교적 차원으로 승화시켜서 활용했다고 볼 수있다.

 

 사로잡혔던 자의 회()에서 쫓아내리라 - 이것도 외형적으로는 7:26'정배(定配)하거나'와 동일하지만 원어상으로는 분명히 구분된다. 즉 여기의 '쫓아내리라'(, 이바델)'나누다' 혹은 '구별하다'란 의미를 지닌 동사 '바달'의 수동형으로서, 본질상 서로 섞일 수 없는 것으로 간주되어 철저히 분리되어진다는 종교적 의미가 담긴 단어인 것이다(9:1 ; 16:21 ; 대상 23:13 ; 9:2). 따라서 이것도 앞의 '재산 적몰'처럼, 에스라가 페르시아 왕으로부터 부여받은 세속적 사법권을 종교적으로 적용시켰음을 나타낸다. 한편 여기의 ''(, 카할)는 하나님으로부터 구원받은 자들의 무리, 곧 구약 성도들에게 주로 적용되는 단어이다(12:6 ; 16:3 ; 16:3 ; 23:1 ; 20:2 ; 대상 28:8 ; 5:13). 그렇다면 본절은 곧 하나님의 구원에서 제외되는 일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구체적으로 볼때 이는 성전 예배에 참석하지 못하게 되는 것, 이스라엘 공동체의 일원으로서의 시민권을 상실하게 되는 것, 그리고 종교적, 사회적으로 공동체로부터 철저히 소외당함으로써 어려움과 위기의 때에 전혀 도움을 얻지 못하게 되는 것 등을 포함한다. 그런 점에서, 이것은 대단히 두려운 형벌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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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다와 베냐민 모든 사람 - 포로 귀환 후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성했던 중요한 두지파이다. 이스라엘 백성에는 물론 제사장을 비롯한 레위 지파와 기타의 다른 지파들도 포함된다. 그러나 레위 지파는 특별히 구별된 부류라는 점에서 또한 다른 지파들은 극소수였다는 점에서 언급되지 아니했다. 따라서 여기의 '유다와 베냐민'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틀어 가리킨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삼 일 내에 예루살렘에 모이니 - 에스라의 명령에 대해(7, 8) 백성들이 그대로 순응했음을 시사해 준다.

 

 때는 구월 이십일 - 여기의 '구월''기슬르 월'(1:1)이라고도 불리우며, 양력으로는 12월로서 한 겨울이자 또한 우기(雨期)에 해당된다. 에스라가 바로 이 같은 날짜를 여기서 언급한 까닭은, 백성들이 예루살렘에 집결하는 데 적지 않은 희생이 뒤따랐을 것임을 암시하기 위함이었다.

 

 무리가...이 일과 큰 비를 인하여 떨더니 - 백성들이 내적인 원인과 외적인 원인 두 가지로 인하여 두려움을 느꼈음을 말해 준다. , 백성들은 추운 겨울에 억수같이 퍼붓는 비로 인해 흠뻑 젖었을 뿐만 아니라 더구나 그 비가 하나님의 진노의 표현으로 여겨졌던 까닭에(삼상 12:17, 18 ; 13:11, 13) 떨었던 것이다. 여기서 '이 일'(1) 백성 자신들이 율법을 어기고 이방 여인을 취하는 죄를 범한 것과, (2) 그에 따라 하나님의 징벌을 받게 된 사실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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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사장 에스라가 일어서서 - 여기서 '제사장'이라는 단어가 특별히 덧붙여진 까닭은, 에스라가 어떤 자격을 갖고 백성들을 소집하였고 신앙적 명령을 하는지를 밝히려는 저자의 의도 때문이다. 또한 이것은, 본서 저자인 에스라가 페르시아 왕으로부터 부여받은 사법적 권한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음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다(Rawlinson). 그러나 추측해 볼 수 있는 것은, 백성들이 기후상의 악조건 아래서도 그같이 모이게 된 동기(動機) 중의 하나는 에스라가 페르시아 왕으로부터 위임받은 사법적 권한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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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죄를 자복하고(, 타누 토다) - 이것은 문자적으로 '감사하다' 혹은 '찬양하다'란 의미로서, 하나님께서 공의로운 심판을 베푸시는 분이라는 사실 자체와, 자신들의 죄로 인한 그러한 공의로운 심판을 그대로 받아들이겠다는 결심을 공개적으로 밝히는 것을 가리킨다(Williamson). 바로 이런 점에서, 여기의 '죄를 자복하고'에는 개역 성경의 번역처럼 죄에 대한 회개의 개념도 담겨 있음이 분명하다.

 

 그 뜻대로 행하여 - 원어상으로 이는 '그분을 기쁘시게 하라'의 뜻으로도 번역될 수 있다(Fensham).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은 항상 그분의 율법을 지키는 일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따라서 결국 이것은 이방 백성, 즉 이방 여인들과의 완전한 분리를 뜻한다.

 

 끊어버리라 - 이는 원어상 8절의 '쫓아내리라'와 동일한 동사(8절 주석 참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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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 소리로 대답하여 - 주께서 백성들로 하여금 에스라의 해결안에 적극 동조하도록 역사하셨음을 뚜렷이 보여 준다(대하 15:14 ; 9:4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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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절에서 회중들은, (1) 많은 사람들을 어떤 조직 체계없이 조사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2) 백성들로 하여금 기후적 악조건을 무릅쓰고 계속 노천(露天)에 있게 할 수는 없으며, (3) 범죄자들이 너무 많아서 시간이 많이 걸릴것이라는 등의 세 가지 이유를 제시하면서, 성전 광장에서의 모임을 일단 해산시켜야 할 것을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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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방백들을 세우고 - 에스라를 도와서 최종적 판단을 할 지도자를 임명하여 예루살렘에 남도록 하는 일을 가리킨다. '세우고''임명하다'란 의미.

 

 이방 여자에게 장가든 자는...오게 하여 - 이렇게 한 까닭은, 그들이 에스라와 방백 앞에서 이방 여자를 내보내기로 서약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본성 장로들과 재판장과 함께 - '본성'은 범죄한 자들이 살고 있던 마을을 가리킨다. 전통적으로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각 마을마다 나이 많고 인품과 덕망이 높은 이들, '장로들'로서 구성된 자치 단체가 있어 치리적 역할을 수행했다(19:32 ; 삼상 30:26-31). 숙곳 같은 곳에는 무려 77인의 장로들이 있었다(8:14). '재판장'7:25'유사'와 동일하다. 본절의 '장로''재판장'은 자신과 함께 예루살렘에 올라간 범법자들이 에스라 혹은 방백 앞에서 진술하는 내용의 사실 여부와, 그들의 서약 내용의 이행 여부를 감시해야 할 책임을 갖는 자들이었다. 이 같은 역할 수행은,이들이 범법자들과 같은 고장에 살던 사람들이어서 범법자들의 차후 동향을 잘 파악할수 있었던 관계로 충분히 가능했다.

 

 하나님의...진노가...떠나게 하소서 -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의 범죄와 관계하여 두려워한 것은, 에스라가 페르시아 왕으로부터 부여받은 사법권보다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진노'때문이었음을 분명히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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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직...그 일을 반대하고 - 여기의 '반대'가 무엇에 대한 '반대'인지는 (1) 회중들이 제시한 방법(13, 14)에 대한 반대라는 해석(Fensham, Williamson, Myers), (2)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 여인을 취한 사실을 조사하고 그녀들을 축출하라는 에스라의 의견 자체에 대한 반대라는 해석(Schultz, Rawlinson) 등의 두 가지 견해가 있다. 그러나 (1) 에스라 및 방백들이 아무런 저항이나 문제 없이 범법 사실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였으며, (2) 여기의 '반대'하는 자들도 에스라의 명령에 순복하여 악천후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으로 모인 자들이었으며, (3) '반대자'들이 이방 여인들을 취한 범죄와 무관하며(18-44), (4) 에스라는 계명을 어기거나 자신의 명령에 불복하는 자에게는 사법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는 점 등으로 미루어 볼 때, 위의 두 견해 중 전자가더 타당한 듯하다.

 

 므술람과...삽브대가...돕더라 - 이에 대해서는 (1) 두 사람이 회중들의 제안을 '도왔다고' 보는 견해(Williamson, Fensham, Myers), (2) 두 사람이 '요나단''야스야'의 의견을 '도왔다고' 보는 견해(Keil, Rawlinson) 등으로 나누어진다. 그러나 첫째, 두 사람 모두 이방 여인과 결혼하지 않았던 인물이며 29절의 '므술람'과는 동명이인(同名異人)으로 본다. 둘째, '므술람'8:16의 족장과 동일인이라고 하면 그는 에스라의 뜻을 좇았을 가능성이 많으며(8:16) '삽브대'는 레위인이라는 특수한 신분의 소유자였다. 셋째, 개역 성경에는 번역되어 있지 않으나 '므술람' 앞의 접속사 ''는 역접(逆接)의 성격으로 이해되어야 한다(Fensham)는 점 등으로 볼 때, 위의 두 견해 중 전자가 보다 타당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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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로잡혔던 자의 자손 - 본 문맥은 그 당시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에서 적극 돌아서려는 등 대단한 영적 각성의 상태에 있었음을 암시한다. 이러한 호칭은, 이스라엘백성들의 범죄로 인한 쓰라린 과거를 생각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제사장 에스라가...위임하고 - 에스라는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푸는 과정에서 줄곧 배후에 있다가, 이제 구체적인 결단이 내려지는 시점에 이르러서는 본격적으로 나서서 일을 처리하고자 했다.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고 최종적 결정이 자발적 절차에 의해 내려지기를 기다렸다는 점에서 에스라는 민주적인 면모를 보여준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한편 '제사장 에스라'는 에스라 자신의 조처가 세속적 권한을 배경으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신앙적.영적 권위를 바탕으로 하여 이루어졌음을 말하고 있다.

 

 종족...지명된 족장 - '종족'(, 바이트)'가문' 혹은 '가족' 등의 의미를 지닌다. 이 여러 '종족'의 명단은 2:3-59에 나와 있다. 한편 '지명된'은 문자적으로 '그들 모두는 이름에 따라 등록되었다'라는 의미(Fensham)이다.

 

 시월 초하루에...조사하여 - '시월 초하루'는 이스라엘 백성이 모두 모였던 날로부터 열흘 후이다(9). 이 열흘동안 심사 조직이 만들어지는 등 조사를 위한 제반 사항이 준비되었을 것이다. 한편 '조사하여', 한 마을의 '장로' '재판장'(14)이 검사처럼 피의자(被疑者)를 데려오면 피의자와 '장로' '재판장' 양측의 말을 듣고 그 피의자의 범법 여부를 판정하는 것을 가리킨다.

 

 앉아(야쉬브) - 직무 수행과 관련하여 자신의 자리에 전 위치하는 것을 가리킬 때 주로 사용되는 단어이다(삼상 1:9 ; 왕상 1:35,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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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월 초하루에...마치니라 - '정월 초하루'는 태양력으로 3월 중순에 해당되므로, 조사를 시작한 '시월 초하루'(16), 12월 초하루로부터는 약 석달 후이다. 그렇다면 에스라 등이 조사 활동을 위해 소요한 시간은 안식일을 제외하고도 약 75일 정도가된다. 그러나 18-44절의 범법자의 수효는 불과 110명밖에 안 된다. 물론 장로 및 재판장들에 의해 고소되었지만, 심사 결과 무죄인 경우도 꽤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무려 75일 동안에 불과 110건을 처리했다는 것은, 결국 조사위원회의 심사가 매우 신중하게 진행되었음을 분명히 보여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기후적 악조건으로 인하여 날짜가 공연히 순연(順延)된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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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아 자손 중 요사닥의 아들과 그 형제 - 3:2 ; 5:2 ; 1:1 등에 의하면 예수아는 요사닥의 아들로서 언급된다. 따라서 본문은 '요사닥의 아들인 예수아의 자손들과 그 형제'로 번역됨이 옳다(RSV ; NIV). 이들은 대제사장 가문의 후예라는 점에서 특별히 영적 모범이 되어야 할 자들이었다. 에스라는 이처럼 대제사장 가문의 범법 사실을 이방 여인을 취한 자들의 명단 초두에 올려 놓음으로써,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 부패상이 보편적이었음을 효과적으로 보여주고 있다(Fensh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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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희가 다 손을 잡아 맹세하여 - 문자적으로 '그들이 자신들의 손을 내뻗었다'의 의미로 이는 맹세할 때 흔히 취해지는 자세이다(왕하 10:15 ; 17:18).

 

 아내를 보내기로 하고...속건제로 드렸으며 - '속건제'는 보통 비고의적인 죄를 속하기 위해 드려졌다(5:14-16).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이 이방인과 통혼하면서, 그죄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한 것이라는 설명이 가능하다(Edwin Yamauchi). 오랜 포로 생활을 통해 혈통상의 순수성에 대한 의식이 다소 둔화되었으리라는 추측은 이러한 설명을 지지하는 근거가 된다. 그러나 또 한 가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그들이 엄연히 통혼의 심각성을 알면서도 환경에 순응하느라고 그 죄악을 스스로 묵인해 버렸으리라는 사실이다. 이 견해를 취할 경우 제사장들이 '속건제'를 드린 것은 '속죄제'와의 분명한 차이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이유가 제시될 수 있다. 이는 에스라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철저한 율법 교육을 다짐한 것에서도 드러나듯이(7:10) 이스라엘 백성들이 율법의 세세한 부분에 대해서는 무지했었음을 반영한다는 것이다(Fensham). 이 두 견해 중 어느 하나만 옳다고 단정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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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바댜 - '여호와께서 심판하셨다'란 뜻이다. 한편, 임멜 자손, 하림 자손(21), 그리고 바스훌 자손(22)은 모두 귀환한 제사장 가문에 속한 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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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아세야...엘리야...스마야...여히엘...웃시야 - '마아세야''여호와의 일'이란 뜻을 가진다. 그런데 이런 이름의 소유자가 본서와 느헤미야서에서만 모두 13명씩이나 나온다는 사실을 통해 볼 때, 이 이름은 그 당시에 매우 흔했었음이 분명하다. 한편 '엘리야''여호와이신 하나님', '스마야''여호와께서 들으셨다', '여히엘''하나님은 살아계심', '웃시야''여호와의 능력'이라는 의미의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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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엘료에네...마아세야...이스마엘...느다넬...요사밧...엘라사 - '엘료에네''여호와를 향하여 나의 눈을 드나이다'라는 뜻이고 '이스마엘''하나님께서 들으실 것이다', '느다넬''하나님에 의해 주어진'이란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요사밧''여호와께서 판결하심', '엘라사''하나님께서 지으셨다'라는 의미의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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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중에 자녀를 낳은 여인도 있었더라 - 이것은 에스라의 개혁 조치에 따른 범법자들의 이혼이 엄청나게 큰 인간적 고통을 수반했었음을 암시해 준다. 사실 자녀까지 낳았던 부부가 헤어지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백성들은 하나님의 명령과 에스라의 지도를 따라서 이 같은 고통을 감내하면서까지 종교적 개혁 운동에 동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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