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에스라(구속사적해석)

에스라7장,에스라의 귀환은 헤세드

호리홀리 2016. 1. 11. 13:51

 6장과 7장 사이에는 약 60년의 기간이 흐른 셈이다. 이러한 공백 기간 중에 있었던 사건들 중 본서에 기록된 유일한 것은 아하수에로 재위(B.C. 485-464)때의 훼방 사건이다(4:6).

 바사 왕 아닥사스다는 B.C. 464년부터 424년까지 왕위에 있었던 페르시아 제6대 왕이다. 혹자는 이를 B.C. 404-359년에 재위하였던 아닥사스다 2세와 동일시하나, 전통적인 견해는 아니다.

 에스라는 역대기 상하를 포함한 본서의 저자로서 그 이름의 뜻은 '여호와께서 도우신다'이다.

 스라야의 아들  '스라야''여호와께서 권세를 잡으셨다'의 의미로서 이 사람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던 여호사닥의 아버지였다(대상 6:14, 15). 그는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의해서 함락된 당시의 대제사장이었으며, 바벨론의 군대에 의해서 '리블라'라는 바벨론 땅에 끌려가서 거기서 죽임을 당했다(왕하 25:18 ; 52:24). 따라서 여기의 '아들'(, )은 문자적 의미의 '아들'이 아니다. ''이라는 단어는 반드시 '아들'이라는 의미 이외에 문맥에 따라서 '자손'의 의미도 갖는다. 그런데 에스라가 자신의 아버지가 아니었던 '스라야'부터를 자신의 조상으로 언급한 까닭은 에스라가 여호사닥의 직계로서 대제사장의 혈통임을 강조하기 위함이며 또한 역대기의 족보와 일치시키기 위함이었다(대상 6:3-15).

 

 아사랴의 손자 - '아사랴''여호와께서 도우셨다'의 의미이다. 이 사람도 문자적 의미로서의 에스라의 조부(祖父)가 아니다(대상 6:13, 14).

 

 힐기야의 증손 - 힐기야도 에스라의 증조부가 아니다. 이 사람은 말할 나위도 없이 요시야 왕 시대에 성전에서 율법책을 발견하였던 대제사장이다(왕하 22:4-14 ; 대하34:14-22). 그 이름의 뜻은 '여호와의 분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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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룸의 현손 - 살룸이 '힐기야'의 아버지인 것은 분명하다(대상 6:12, 13). 그러나 이 사람에 대한 구체적 언급은 성경에서 발견되지 않는다. 아마 이 사람은 대상 9:11'므술람'과 동일 인물일 것이다. 그 이름의 의미는 '보상'이다.

 

 사독의 오 대손 - 문자적으로는 '사독의 자손'으로서 여기의 '사독'은 솔로몬 당시에 활동했던 '사독'과는 다른 인물이다(대상 6:12). 그러나 솔로몬 시대의 '사독'의 후손임은 분명하다. 이 인물에 대해서는 알려져 있지 않으며 그 이름의 의미는 '의롭다'이다.

 

 아히둡의 육 대 손 - 이것도 문자적으로는 '아히둡의 자손'의 의미이다. 이 인물에 대해서도 알려져 있는 바가 없다(대상 6:11, 12). 그 이름의 뜻은 '나의 아우는 선량하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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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마랴의 칠 대 손 - '아마랴''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의 뜻이다.

아사랴의 팔 대 손 - 이 사람은 솔로몬 시대에 대제사장으로 활동했던 '사독'4대 손이었다(대상 6:8-10). 따라서 1절의 '아사랴'와는 동명 이인(同名異人)이다. 이처럼 한 족보에 동일한 이름들이 반복되어 나타나는 까닭은, 조상들의 이름이 자손들에 의해서 다시 사용되는 것이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보편적인 관습이었기 때문이다.

 

 므라욧의 구 대 손 - 솔로몬 시대의 대제사장 '사독'의 증조 할아버지였다(대상6:6-8). 따라서 바로 앞에 나왔던 '아사랴'와 여기의 '므라욧'사이에는 7대가 생략되어 있는 셈이 된다. 한편, '므라욧''완고한'이란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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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웃시엘의 십 일 대 손 - '웃시엘''하나님은 힘'이라는 의미이다. 이 사람에 대해서 그 이상 밝혀진 바는 없다. 대상 6:5, 6에서는 다만 ''이라는 의미의 '웃시'로나온다.

 비느하스의 십 사 대 손 - '비느하스'는 대제사장 아론의 손자(대상 6:3, 4)로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짓 선지자 발람의 꾀로 인하여 이방 사람들과 정()을 통하는 등 결정적인 영적 위기를 맞았던 순간 하나님을 향한 거룩한 열심으로 사태를 진정시켰던 인물이다(25:7-13). 이에 따라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영원한 제사장의 직분을 받게 되었다(106:30, 31). 또한 그는 가나안 정복 전쟁 동안에는 동쪽 지파들이 제단을 쌓은 일에 대한 조사를 담당하기도 하였다(22:9-34).

 

 엘르아살 - 모세 시대의 대제사장 아론의 네 아들 중의 한 사람이다(대상 6:3). '엘르아살'의 두 형 '나답''아비후'는 하나님께 잘못된 제사를 드림으로 진노를 받아 아들도 없이 죽임을 당하였다(10:1, 2). 이에 따라 '엘르아살'은 아론의 뒤를 이어서 대제사장이 되었다(20:25-28).

 

 대제사장 아론 - 여기서 저자 에스라가 특별히 '대제사장'이라는 말을 첨가한 까닭은, 이스라엘 공동체에서의 역할과 관련하여 자신이 어떠한 사람인가를 분명히 밝힐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 에스라는 자신이 대제사장 가문의 정통적 후손임을 보여줌으로써, 자신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할 수 있는 자격자임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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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에스라 - 이것은 에스라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르칠 자격과 권위를 소유한 자임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바벨론에서 올라왔으니 - 여기의 '바벨론'은 구체적으로 유프라테스 강 하류와 티그리스 강 하류의 중간에 위치한 평야지대인 '닙불'을 가리킨다고 보아도 무방하다(Aharoni). 거기에는 B.C. 537년의 귀환에 참여치 않고 잔류하였던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있었다(Fensham). 한편, '올라왔으니'(, 알라)는 팔레스틴이 바벨론에 비하여 지형상으로 훨씬 높은 지역임을 염두에 둔 표현이기도 하지만 또한 팔레스틴을 성지(聖地)로 의식한 에스라의 의도적 표현이기도 하다.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 여기의 '모세의 율법'은 그 앞에 하나님의 언약적 속성을 강조하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라는 호칭이 나왔음을 볼 때, 언약 백성들이 반드시 이행해야할 규범으로서의 율법을 뜻한다(19:5-8). 한편, '익숙한'(, 마히르)'서두르다' 혹은 '빠르다'의 의미를 갖는 동사 '마하르'에서 파생된 형용사로서, 어떤 특정한 사물에 대해서 충분한 준비와 경험이 있는 상태를 가리킨다. 따라서 여기의 '익숙한''능통한'으로 번역해도 괜찮을 것이다.

 

 학사(, 소페르) - 이는 '쓰다', '수를 세다'의 의미가 있는 동사 '사파르'에서 파생된 명사형 분사이다. 따라서 이것은 엄밀히 말해서 '서기관'으로 번역됨이 보다 정확하다 , 페르시아 시대에도 제국의 중앙 정부나 지방 총독의 법정에 소위 서기관 혹은 비서들이 고용되었다고 한다(Herodotus). 페르시아 왕의 '일곱 모사'도 이들과 같은 부류의 출신으로 이해된다(14, 15; 1:13, 14, Joseph Blenkinsopp). 아닥사스다의 조서 내용으로 보아 에스라가 이스라엘의 전통적인 서기관의 직무에 능통했던 것은 분명하지만, 아닥사스다 왕으로부터 직접 파견되었다는 사실, 그리고 왕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는 사실 등으로 미루어보건대 그는 페르시아 왕실에서 주요한 직책을 맡고 있었으리라 짐작된다.

 

 그 하나님 여호와의 도우심을 입으므로 - 문자적으로는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손이 그의 위에 있으므로'의 뜻이다. 이와 같은 사상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섭리로써 적극적으로 돌보신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으로서 본서와 느헤미야서 전체에서 자주 발견된다(9, 28; 8:18 ; 2:8, 18).

 

 왕에게 구하는 것 - 이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는 지는 분명히 언급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를 11-26절에 언급된 내용과 결부시켜 이해한다면 이것은 (1) 에스라가 일부 동족들과 함께 바벨론 땅에서 팔레스틴으로의 귀환을 허락받은 것, (2) 여러모로 필요한 재물을 지원받은 것, (3) 에스라가 팔레스틴 땅에서의 정치적 지도권(指導權)을 부여받은 것 등으로 요약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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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닥사스다 왕 칠 년에 - '아닥사스다'B.C. 464년에 즉위하였으므로 '칠 년'B.C. 458년이 된다.

 

 이스라엘 자손 - 제사장과 레위사람 등 레위 지파를 제외한 모든 지파에 속한 사람들을 말한다. 여기에 B.C. 537년의 1차 귀환때처럼 북쪽 지파 사람들이 포함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분명치 않다.

 

 레위 사람들 - 이들은 희생 제사와 관계된 직무를 수행하던 사람들이다(2:40).

 

 노래하는 자들 - 이들도 레위 지파에 속한 사람들이다(2:41).

 

 문지기들 - 이들 또한 레위 사람들이다(2:42).

 

 느디님 사람들 - 원래는 혈통적으로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었으나 이스라엘 공동체에 가입하여 비천한 일에 종사하던 사람들이었다(2:43).


 
몇 사람 - 81-14절의 기록을 통해 볼 때 에스라와 함께 온 여기의 '몇 사람'은 장정만 1,773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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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에스라가...올라왔으니 - 문자적으로는 다만 '그가 도착했다' 혹은 '그가 왔다'의 의미이다. 왕의 칠 년 오 월이라 - 저자가 7절에 이어 여기서 또다시 '칠 년'을 언급하는 까닭은, 자신이 바벨론에서 출발한 바로 그 해에 예루살렘에 도착했음을 강조하려는 의도 때문이었을 것이다(Fensham). 에스라는 이와 같은 강조를 통하여, 하나님의 보호가 자신들과 함께했음을 뚜렷이 나타내고자 하였던 것 같다(6, 9). 한편 '오 월'이 정확하게는 '오월 초하루'(9)이므로, 에스라 일행이 바벨론에서 출발한 지 만 5개월후에 예루살렘에 도착한 것이다. 그의 여행 거리가 약 800여 킬로미터에 불과함에도 불구하고 5개월씩이나 걸린 것은 (1) 레위인들을 데리고 오기 위해서 중간에서 얼마간을 소비하였으며(8:15, 31), (2) 일행 중 어린이들이 많이 있었고(8:21), (3) 사막 지대를 피하기 위해 북부 시리아 지역을 거쳐 여행했기 때문일 것이다(Fensham). 당시의 여행자들에게는 처처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던 터라, 에스라 일행의 안전한 도착은 하나님의 각별하신 보호로 말미암은 것이라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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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절에서 에스라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찬양할 목적으로 또다시 여행에 소요됐던 시간을 언급한다. 그런데 에스라가 이 시기를 택해서 여행을 한 까닭은, 팔레스틴 땅으로 오는 도중 반드시 거쳐야만 했을 사막 지대의 폭염을 피하기 위해서였다(Fensham). 당시 에스라는 '니산월'(태양력으로 3, 4), 즉 봄에 바벨론을 출발하여 '압월'(태양력으로 7, 8), 즉 여름에 도착함으로써 사막에서의 고생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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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절의 초두에는, 우리말 성경에는 번역되어 있지 않은 ''라는 접속사가 있다. 이것은 '왜냐하면'의 의미로서 에스라가 하나님으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었던 중요한 원인을 말해준다. 그렇다면 본절의 맨 끝부분의 '결심하였더라''결심하였기 때문이다'로 번역함이 보다 적절하다. 그렇지만 본절이 또한 에스라가 팔레스틴으로 귀환했던 중요한 이유 혹은 목적을 말해주는 것도 사실이다.

 

 연구하여(, 리드로쉬) - '조사하다' 혹은 '찾다'의 의미를 갖는 동사 '다라쉬'에서 파생된 단어로서, 어떤 사물에 대한 완전한 지식을 얻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기울이는 행동을 가리킨다(Rawlinson, 벧전 1:10, 11).

 

 준행하며(, 라아소트) - 이것은 '행하다', '만들다' 등의 의미가 있는 동사 '아사'에서 파생된 단어로서, 자신의 사상 및 견해를 실제로 행동에 옮기는 것을 가리킨다(1:31 ; 6:22 ; 5:27 ; 23:23).

 

 율례와 규례 - 여기서 '율례'(, 호크)'새기다' 혹은 '초상화를 그리다' 등의 의미를 갖는(Davidson) 동사 '하카크'에서 파생된 명사로서,'번복될 수 없을 만큼 단단히 규정된 것' 혹은 '명령된 것'을 뜻한다(10:13 ; 23:12 ; 5:22). 한편 '규례'(, 미쉬파트)'재판하다''공의를 실행하다'의 뜻이 있는 동사 '쉬파트'의 파생형이다. 이것은 마땅히 따라야 할 행동의 규범 혹은 선악의 분별을 가능하게 해주는 기준(18:4 ; 103:6)등을 가리킨다. 그런데 위의 두 단어는 외형상으로는 차이가 있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두 단어가 항상 동시에 혹은 교대로 사용된다는 점에서 볼 때, 거의 같은 의미로 봐야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두 단어가 '여호와의 율법'의 보다 본질적 특성들을 두가지로 드러내주는 단어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 '율례'는 율법의 기초적인 규정들에, '규례'는 보다 구체적인 적용례들에 각각 중심을 둔 표현이라 할 수 있다(JosephBlenkinsopp).

 

 가르치기로(, 레라메드) - 이것은 '습관들이다'(Davidson) 혹은 '효율적으로 가르치다'(Meyer)는 의미이다. 에스라가 실행하기를 결심한 여러 일 중 가장 중요시되던 것은 바로 여기의 이 '가르침'이었다(Fensh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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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절은 조서의 수취인이 누구인가를 밝히는 일종의 도입 구절이다. 이 조서에는 에스라가 수행해야 할 사명 내지는 그의 공적 역할이 명시되어 있다(12절 이하).

 

 계명의 말씀 - 여기의 '계명'(, 미츠오트)'~의 위에 놓다' 혹은 '임명하다' 등의 의미를 갖는 동사 '차와'에서 파생된 명사로서, 구약성경에서 언약 백성들에게 지키도록 요구 사항들을 가리킨다. 이 단어는 출 24:12에서는 십계명에 대해 사용되었다.

 

 학사겸 제사장 에스라 - 제사장이라는 직함은 1-5절의 계보를 통해 간접적으로 설명되었다. 그리고 '학사'에 관해서는 6절 주석을 참조하라. 아무튼 본절에서 에스라는 페르시아의 공무를 담당하는 관리로서, 또 하나님의 율법을 맡은 유대인의 지도자로서 동시에 소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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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절에서부터 26절까지는 아람어로 기록되고 있다.

 모든 왕의 왕 아닥사스다 - 이같은 자기 소개는 자신이 내리는 조서의 권위를 증대시키기 위한 의도를 보여준다. '모든 왕의 왕'이라는 칭호는 앗수르나 바벨론 왕들에의해서도 사용되었는데 이런 호칭은 원래 왕들에 의해 다스려졌던 기존의 나라들을 정복한 정복국의 왕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하여 사용하였을 것이다.

 율법에 완전한 - 여기의 '율법'(, 다타)은 어떤 판단 기준으로서의 '규례'를 의미한다. 한편 '완전한'은 잘못된 번역임이 분명하다. , 여기의 '완전한'(, 게미르)(1) '율법'이라는 단어와의 사이에 '하늘''하나님' 등의 단어들이 끼어 있는 점, (2) 왕일지라도 우호적으로 인식되는 상대에게는 서신의 인사말을 초두에 놓는 것이 보편적이었다는 점 등으로 볼 때 '율법'을 수식하는 형용사가 아님이 분명하다(Williamson, Schultz, Kidner). 따라서 '완전한'이라는 단어는 본절의 마지막 부분에서, 필사자의 실수로 탈락되었으리라 추측되는 '쉘라마'와 합하여져서 '완전한 평강이 있을지어다'로 번역되어야 한다(5:7, Kidner,William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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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서하노니 - 문자적으로는 '명령을 반포하다'를 의미한다.

 우리 나라 - 이것은 아닥사스다가 통치하던 전 지역을 가리킨다. 아닥사스다 당시에는 이미 이스라엘 백성들이 페르시아 전역에 흩어져서 살고 있었다(Fensham). 심지어 유대인들은, 페르시아의 식민지는 아니었지만 애굽의 남부에서도 상당수 살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스라와 함께 귀환한 이스라엘 사람들은 대부분 바벨론에서 살던 자들이었다.

 

 이스라엘 백성 - 유다 백성이라고 하지 않고 이스라엘 백성이라고 표현한 데에는, 포로 귀환민들을 언약 공동체 전체, 곧 이스라엘 열 두 지파와 연결시키고자 하는 저자의 의도가 담겨있다(Edwin Yamauchi). 본서와 느헤미야서에 나오는 에스라와 관련된기사에는 '이스라엘'이라는 말이 24회 등장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는 표현도 강조된다. 반면에 에스라 자료(Ezra material)에서 '유다'라는 용어는 단지 네 차례만 나오며 그것도 단지 지리적 용어로서 언급되었을 뿐이다(14; 9:9 ; 10:7,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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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손에 있는...율법 - '네 손에 있는''에스라가 손에 들고 있는'의 의미가 아니라 다만 '에스라가 항상 가까이하고 있는'의 의미일 것이다. 양피지 두루마리에 기록되었을 모세 오경은 그 부피가 엄청났을 것이다.

 좇아(, ) - '기초하여'의 의미이다(Williamson).

 

 유다와 예루살렘의 정형을 살피기 위하여 - 추측컨대 에스라는 본토로부터 어떤 심상치 않은 소식을 들었던것 같다. 이에 따라 그는 아닥사스다에게 귀환을 허락해주기를 요청했을 것이다. , 에스라는 유다와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의 율법이 여전히 지켜지고 있는 지를 살필 필요성을 느꼈음이 분명하다(Fensham). 페르시아 정부의 입장에서도 팔레스틴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잘 지켜서 안정된 삶을 유지하는 것이 매우 바람직하였을 것이다. 그 당시 페르시아는 피정복민들의 반란이 잦았던 관계로 골머리를 앓았었기 때문이다.

 

 일곱 모사 - 이들은 페르시아 왕들에게 조언을 하던 고위 관리들이었던 것 같다. 이들에 대해서 에 1:14'왕에게 가까이 하여 왕의 기색을 살피며 나라 첫 자리에 앉은 자'로 묘사하고 있다. 헤로도투스와 크세노폰과 같은 헬라의 고대 저술가들도 이 같은 직분자들에 대해 언급을 하고 있다.

 

 보냄을 받았으니 - 이것은 에스라의 팔레스틴으로의 귀환이 표면적으로는 페르시아 정부의 이익을 위하여 이루어졌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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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과 모사들이...드리는 은금 - '왕과 모사들이'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에게 선심을 쓰는 것은 (1) 피정복민들을 선무(宣撫)하여 정치적 소요의 근본 원인을 제거하며,(2) 피정복민의 신으로부터의 진노를 피하기 위한(23; 6:10) 목적 때문이었다.

 

 예루살렘에 거하신 이스라엘 하나님 - 이 같은 언급은 물론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1:5 5:14, 16 그리고 6:12 등의 '예루살렘 하나님'과 본질적으로 동일한 의미일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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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절에서는 에스라가 예루살렘 성전에서 사용할 재물을 충당할 수 있는 두 가지 출처를 말하고 있다.

 

 바벨론 온 도()에서 얻을...은금 - 에스라가 바벨론 백성들로부터 얻을 변상 예물을 가리킨다(1:4).

 백성과 제사장들이...드릴 예물 - 여기의 '백성과 제사장들'은 에스라와 함께 팔레스틴으로 귀환하려고 했던 무리들을 가리킨다(7, 13). 1차 귀환 때에도 바벨론 땅에서 귀환한 모든 백성들은 예루살렘 성전을 위하여 많은 현물들을 하나님께 바쳤었다(2:68, 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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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라가 바벨론에서 가져간 재물의 제1차적 용도가 하나님께 대한 제사와 관련있음을 말하고 있다. 한편 본절에 나오는 제사의 종류 및 제물에 대한 정보는 (1) 에스라가 아닥사스다 왕에게 필요한 것을 요청하는 과정에서 얻어졌거나(6), (2) 페르시아 왕의 궁전에서 일하고 있었을 것으로 추측되는 익명의 이스라엘 사람으로부터 제공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Kidner). 

 

 나머지 은,- 성전의 보수 및 장식을 위해 예비비로 남겨진 돈을 말한다(Rawlinson, Schultz).

 너의 형제 - 에스라와 같은 '제사장들'을 가리킨다(3:2).

 하나님의 뜻을 좇아 쓸지며 - 이것은 결국 '나머지 은 금'을 오직 제의용(祭儀用)으로만 사용하도록 제한하는 명령으로 이해된다(William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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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섬기는 일(, 팔한) - '예배하다'' 의미를 갖는 동사 '펠라흐'에서 파생된 단어이다.

 

 네게 준 - 여기서 ''(, 미트야하빈)'짐지우다' 혹은 '맡기다' 등의 의미를 갖는 동사 '예하브'에서 파생된 단어로서, 아닥사스다의 에스라에 대한 신임을 엿보게 해준다.

 

 네게 준 기명 - 이것은 느부갓네살이 바벨론으로 가져갔던 그 기명이 아니다. 그 기명은 이미 오래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반환되었다(1:7-[1). 따라서 이것은 페르시아 정부와 바벨론에 잔류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련해서 준 것으로 이해된다(8:2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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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절에서도 아닥사스다는 오직 제의용으로만 돈을 지원하겠음을 말하고 있다(17).

 왕의 내탕고에서 취하여 - '왕의 내탕고'는 강의 서편에서 징수되는 세금을 보관하는 금고 및 그관리 기관을 가리킨다. 이 같은 명령은 지역에서 이루어지는 공공 사업 비용은 그 지역에서 충당되어야 한다는 제정 원칙(6:8)과 완전히 부합된다(Fensh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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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절에 언급된 아닥사스다의 조처는 (1) 성전 제사가 원활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비용, (2) 귀환하

는 에스라의 일행이 귀환 도중에 필요한 식량 등의 조달을 가능케 하기 위한 것임이 분명하다(Fensham).

 

 강 서편 모든 고직(庫直)- 이들은 바벨론을 출발하여 유다땅으로 가는 에스라가 경유하게 될 지역의 재정관리들을 말한다. '고직이'는 일정 지역에서 거둬들인 세금을 용도에 따라 출납하거나 혹은 페르시아 왕실에 상납하는 역할을 담당했었다.

 은은 일백 달란트 - 한 달란트는 약 34kg에 해당한다.

 밀은 일백 고르 - 1고르 혹은 1호멜은 220리터정도이다.

 포도주는 일백 밧 - 1밧은 22리터 정도 된다.

 소금은 정수 없이 - 강 서편 쪽은 사해 등지에서 소금이 풍부하게 생산되었다. 비록 고대에 소금이 귀한 것

이기는 했으나 다른 것에 비해서는 생산량이 많아서 저렴했던 물품인 관계로 원하는 만큼 제공되었다. 한편, 소금은 하나님께 드리는 소제와 번제의 제물에 뿌려졌다(43:24). 그리고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과의 언약은 순결하게 체결되고 유지되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소금 언약'이라고 불리웠다(18:19 ; 대하 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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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을 위하여 - 이것은 '하나님께 대한 희생 제사가 원활히 드려지기를 위하여'의 뜻으로 보아야 한다.

 하나님의 명하신 것 - 문자적으로 '하나님의 명령으로부터 나온 모든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이면 무엇이든지'라고 한 NIV의 번역은 꽤 적절하다.

 삼가(, 아드라즈다) - 이것은 '어떤 일을 조심스럽고도 성실하게 하다'의 의미를 갖는 페르시아어 '드라즈다'에서 온 아람어로서, 특별한 과업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지녀야 할 주의 깊고 경건한 마음 자세 및 행동거지를 가리킨다(Fensham).

 진노가 왕...나라에 임하게 하랴 - 신의 명령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을 경우에는 그 신으로부터 왕 개인과 가족 및 제국에 '진노'가 내려진다는 생각은 고대 중근동에서는 대단히 보편적이었다(Fensham). 그런데 여기의 '진노'(, 케차프)의 히브리어 형태인 '케체프'는 구약 성경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불경건한 자들에 대한 엄중한 징벌을 묘사할 때 많이 사용된다(1:53 ; 18:5 ; 9:20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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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절에 언급되는 성직자들에 대한 면세 혜택은 이스라엘에게만 주어졌던 특전이 아니었다. 뿐만 아니라 아닥사스다에 의하여 처음 시행된 정책도 아니었다. 다리오 왕의 '가다타스비문'에는 '아폴로 신의 구별된 제사장들에게서 세금을 받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다'라는 엄중한 경고문이 새겨져 있을 정도이다(Williamson, Fensham).

 레위 사람 - 레위 지파 중에서 성전 제사와 관계있는 무리들이다(2:40).

 

 혹 하나님의 전에서 일하는 자들 - 여기의 '''그리고'로 번역해야 한다. 한편, '하나님의 전에서 일하는 자들''느디님 사람'들보다 신분이 더 낮은 자들로서 2:55에서는 '솔로몬의 신복'으로 묘사되고 있다.

 

 아는 자(, 야드예이) - 이것은 체험적이리만큼 확실하게 아는 것을 뜻하는 동사 '예다'에서 파생된 명사형 분사이다. 따라서 여기의 이 '아는 자'는 특정 분야에 대해 질적.양적으로 상당한 지식을 소유한 사람을 가리킨다.

 

 유사와 재판관을 삼아 - '유사'(, 솨프틴)'재판하다' 혹은 '공의를 시행하다'의 의미를 갖는 동사 '쉐파트'에서 파생된 명사이다. 한편, '재판관'(, 다야닌)도 역시 '재판하다'라는 의미를 갖는 어근''에서 온 단어이다. 따라서 의미상으로는 위의 두 직분에 대한 차이점을 발견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고대 페르시아에는 시민들 상호간의 문제 및 갈등을 해결하던 재판소와, 국가 및 정부의 이익과 관련된 판결을 위한 재판소 등 두 가지가 존재했었다는 사실(Fensham)을 통해서 어느 정도 '유사''재판관'의 차이를 규명할 만한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추측컨대, '유사'는 종교.사회문제 등에 관한 관습법(customary law)을 다루는 직분자였고, '재판관'은 왕에 대한 충성심의 여부 등에 관한 정치 문제를 취급하는 직분자였을 것이다. 따라서 '에스라'는 종교 문제 뿐만 아니라 정치 문제에 관한 권한까지도 아닥사스다 왕으로부터 위임받았던 셈이다. 한편, '삼아'(, 메니)'분리하다' 혹은 '임명하다'의 의미를 갖는 동사 '메나'의 파생형으로서 적재 적소에 인재를 세우는 행위를 가리킨다.

 

 강 서편...백성을 재판하게 하고 - 여기의 '강 서편...백성'에 대해서는 두 가지 견해로 갈린다. (1) 표현과는 달리 실제에 있어서는 다만 팔레스틴 거주 이스라엘 백성들 만을 가리킨다는 해석(Kidner, Rawlison), (2) 팔레스틴과 바벨론 등지에 흩어져 살던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이라는 해석(Schultz, Fensham) 등이다. 그러나 첫째, 14절은 에스라가 팔레스틴으로 귀환한 목적이 '유다와 예루살렘의 정형을 살피기' 위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으며 둘째, 에스라는 실제로 팔레스틴 밖의 이스라엘 사람들의 문제에 관여한 일이 없었으며 셋째, 에스라가 팔레스틴 밖의 다른 지역에까지 간섭하는 일은 피정복민에 대한 페르시아 정부의 관용적 정책과 상충된다는 점 등에서 (1)의 견해가 보다 타당성이 있다.

 그 알지 못하는 자 - 이것을 반드시 새로이 개종하여 이스라엘 공동체에 가입한 사람들이라고 단정지어서는 안된다. 비록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오랜 이방 땅에서의 생활을 거쳤던 관계로, 혹은 그런 사람의 자손인 관계로 율법을 잘 모르는 경우는 많았을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상당수의 개종자도 포함됐을 것이다.

 너희가 가르치라 - 이 같은 명령은, 에스라가 아닥사스다 왕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르칠 권한을 요청한 결과였을 것이다(6). 사실 이 같은 왕의 직접적인 명령은 에스라가 이스라엘 백성을 가르칠 수 있는 권위를 확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음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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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의 명령 - '율법'을 가리킨다. 이것이 바르게 실행되도록 하며 혹은 실행되고 있는 지의 여부를 감찰하는 책임을 가진 자가 '유사'인 듯하다(25).

 왕의 명령 - 에스라는 페르시아 왕실의 이익도 대변해야 하는 책임을 맡았었다. 바로 이 책임을 감당키 위해 세운 직분이 '재판관'이었다(25).

 준행치(, 아베드) - '섬기다' 혹은 '순종하다'의 의미를 갖는 '에바드'의 파생형으로서 높은 사람의 명령을 적극적으로 수행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죄를 정하여 - 문자적으로 '징계가 이루어지도록 하여'의 의미이다(NIV). 페르시아에서는 심지어 왕들조차도 자신의 명령을 변개하거나 국법을 범치 않았다는 점에서, 왕명(王命) 거역자에 대한 징벌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었다(6:15). 따라서 왕의 조서나 조약 문서의 끝부분에는 명령을 불이행하거나 약속을 파기하는 자에 대한 징벌사항이 명시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정배(定配)하거나(, 리쉐르쉬우) - 이것에 대해서는 (1) '뿌리를 뽑다'를 의미하는 히브리어 '솨라쉬'와 동일한 아람어 어근에서 파생된단어로 보고 '공동체에서 내쫓다'라고 해석하는 견해(Vulgate, 10:8), (2) '체벌'을 의미하는 페르시아어 '스라우쉬아'에서 빌려온 단어로 보고 '채찍질하다'라고 하는 견해(LXX, Fensham) 등으로 그 해석이 구분된다. 그러나 채찍질을 하는 형벌은 고대 페르시아 사회에서 보편적이었으며(Fensham) 또한, 언약 백성 이스라엘에게 있어 공동체로부터의 추방이 생존 자체와 직결되는 엄중한 형벌이었긴 하지만, 본절에서 사형(死刑)까지 언급되는 것으로 볼 때 추방으로 이해해도 별 무리는 없을 것 같다(KJV, RSV,NIV ; banishment).

 가산을 적몰(籍沒)하거나 - 재산을 강제로 빼앗는 일을 가리킨다. 이런 형벌은 고대 중근동 사회에서는 지극히 일반적으로 시행된 듯하다. 반면 에스라는 이것을 담보로 하여 백성들의 회개를 촉구하기는 했어도(10:8) 이런 형벌을 백성들에게 실제로 집행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헤롯 왕은 이 같은 형벌을 자주 사용한 듯하다. 아무튼 이런 형벌은 왕정 국가에서는 보편적이었음이 분명하다(삼상 8:12 ; 왕상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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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절 부터는 다시 히브리어로 기록되기 시작한다.

 열조의 하나님 - 하나님께서 자고 이래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항상 선하게 인도하시며 보호하셨던 사실을 암시하는 말이다(6:3 ; 13:6 ; 18:3 ; 2:12).

 여호와를 송축할지로다 - 이러한 문구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대하여 베푸신 큰 은혜와 그분의 위대하심을 감사하고 찬양하는 시편 등의 여러 문맥에서 흔히 나타난다(대상 29:10, 20 ; 16:7 ; 26:12 ; 34:1 ; 63:4 ; 145:10).

 왕의 마음에...뜻을 두시고 - 여호와께서 온 우주를 통치하시며 섭리하고 계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증거하고 있는 문구이다(1:1 ; 5:5). '아름답게 할'에 해당하는 '레파에르''꾸미다' 혹은 '찬미하다' 등의 뜻이 있는 동사 '파아르'의 강조형으로서 사람이나 인물을 외적으로는 근사하게 꾸미며 내적으로는 명예를 더하게 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이 단어는 시편과 이사야서의 후반부에서도 여러번 나온다(149:4 ; 55:5 ; 60:7, 9, 13). 그런데 특이한 것은 이 동사의 주어는 공히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이다. 더구나 이사야는 종말론적인 문맥에서 '성전'을 본 동사의 목적어로 삼고 있다(60:7, 13). 바로 이러한 사실에 근거하여, 우리는 이사야의 예언을 이미 알고 있었던 에스라가 그 예언이 자신의 시대에 성취되었음을 보여주려는 의도에서 이사야가 종말론적으로 성전에 대해서 사용한 동사를 자신도 사용하였을 것이라는 추측을 할 수 있다(Fensham). 그렇다면 여기의 '아름답게 할'은 구체적으로는 성전 제사가 율법대로 제대로 이루어짐을 가리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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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절에서 에스라는 ''라는 1인칭 대명사를 최초로 사용하고 있다. 이는 소위 '에스라의 회상록'(Ezra Memoirs)이라 불리는 부분(본절-9)의 특징을 보여주는 표현이다.

 왕의 권세 있는...방백 - '방백'(, 사르)은 에 1:3에 따르면 중앙 정부의 관리라기보다는 제국의 각 지역을 관장하는 외직(外職)에 있던 자들이었음이 분명하다.

 

 은혜를 얻게 하셨도다 - 문자적으로는 '은혜를 크게 더하도록 하셨도다'의 뜻이다. 여기서 '은혜'(, 헤세드)는 언약 백성인 이스라엘에게 베풀어지는 하나님의 변치 않으며 풍성한 사랑과 자비를 주로 가리킨다. 그러나 여기서는 신적 섭리에 따라 감동을 받은 자들에 의해서 베풀어지는 호의를 가리킨다. 한편 '얻게 하셨도다'(, 히타)'늘이다' 혹은 '펼치다'의 의미가 있는 동사 '나타'의 사역형이다. 따라서 '은혜를 얻게 하셨도다'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페르시아왕들을 감화하시어 에스라에게 각별한 호의를 베풀도록 강권하셨음을 가리킨다(27).

 하나님 여호와의 손 - 여기의 ''은 구약 성경에서 '권능' 혹은'능력'을 상징하는 단어이다(6:1 ; 9:3 ; 삼하 8:3 ; 59:1).

 내가 힘을 얻어(, 히트하자크티) - 이것은 '굳게 하다' 혹은 '강하다'의 뜻이 있는 동사 '하자크'의 재귀적 사역형이다. 따라서 이 동사는 스스로 마음을 담대하게 하는 것을 뜻한다(13:20 ; 삼상 4:9 ; 왕상 20:22: 7:13).

 이스라엘 중에 두목을 모아 - '이스라엘'은 당시 바벨론에 살던 유대인들을 가리킨다. 그리고 '두목'(, 로쉬)은 한 가문의 '가장' 혹은 '족장'을 가리킬 때주로 사용되는 단어이다(1:5 ; 2:68 ; 대상 8:10 ; 대하 1:2). 그리고 '모아'(, 카바츠)는 군사 혹은 종교 등의 특별한 목적의 수행을 위한 소집 행위를 가리킨다(12:4 ; 삼상 7:5 ; 왕하 6:24 ; 대하 2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