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에스라(구속사적해석)

에스라4장,온갖 방해에도 불구하고

호리홀리 2016. 1. 6. 10:00

앞 장에서는 성전 재건 작업이 시작되는 장면이 나온다. 하지만 성전은 약20년 후다리오왕 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완공된다 (6:15). 이제 본장은 성전 공사가 지연될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보여준다.

우리가 주의 일을 할 때 방해와 대적들을 생각해보라

 

 유다와 베냐민의 대적 - `유다와 베냐민'은 분명히 바벨론에서 귀환한 이스라엘 사람 전체를 가리킨다. 그런데도 저자가 굳이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유다와 베냐민'이라고 지칭한 까닭은, (1) 그 지파 사람들이 귀환자의 주종을 이뤘으며, (2) 레위 지파 사람들은 보통 인구 계산할 때도 제외되는 등 특례적으로 다뤄지는 것이 상례였으며, (3) 귀환민들이 주로 거했던 곳이 원래 `유다와 베냐민' 사람들에게 기업으로주어졌던 땅이었기 때문이었다. 한편 `대적'(, 차레이)`고민하게 하다' 혹은 `포위 공격하다'의 의미를 갖는 동사 `차라르'에서 파생된 명사로서, 해를 끼칠 목적으로 접근해오는 `원수'를 가리킨다(33:55; 129:1; 11:13;63:18; 30:16; 1:2). 이들은 구체적으로 사마리아 사람들을 가리킨다. 원래 팔레스틴 땅에는 이런 민족이 살고 있지 않았다. 이들은 앗수르 왕 에살핫돈이 북국 이스라엘을 멸망시키면서(B.C. 722) 그 백성들을 앗수르 땅으로 끌고 가는 대신 `바벨론', `구다', `아와', 그리고 `하맛' `스발와임'에서 사람들을 옮겨옴으로써 생겨난 민족이었다(왕하 17:23, 24). , 사마리아 사람은 타지역에서 옮겨 온 사람과 북국 열 지파 사람들 중 끌려가지 아니한 사람 사이의 혼혈족이었다. 이들은 이방의 제신(諸神)을 섬겼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여호와를 `땅의 신'으로서 섬겼다(왕하 17:29-33).

 

 나아와(, 나가쉬) - 원래(적으로서) `공격하다', (종교적으로) `경배하다'또는 (어떤 목적으로) `가까이 오다'라는 의미로서 특별한 목적 달성을 위하여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행동을 가리킨다(18:23; 32:16; 삼상 9:18; 왕상 20:28).

 

 우리로...함께 건축하게 하라 - 표면적으로는 이러한 요구가 마치 그들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진실한 예배를 드리기 위함이었던 것처럼 보인다. 물론 그 당시 하나님께 대한 경배를 위한 제단도 사마리아의 그리심 산에있었다(4:20). 그러나 이들은 진정한 예배를 위해서라기 보다는 새로운 세력에 대한 경계심의 발로에서 접근해왔다고 이해된다. 사마리아가 함락된 이후 사마리아에는 앗수르의 식민 정책에 따라 이주해 온 이방인들로 말미암아 혈통과 신앙의 순수성이 상실되고 말았다(왕하 17:24-33). 따라서 종교적 혼합주의에 빠졌던 그들에게 있어 여호와란 유일신이 아니라 여러 신들 중 하나에 불과했다(Edwin Yamauchi).

 

 우리도...너희 하나님을 구하노라 - 여기서 `너희' 라는 말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다신교적 혼합주의 신앙을 갖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한편 `구하노라'(, 다라쉬)`찾다', `물다'등의 의미로서, 종교 혹은 섬김의 대상으로 삼기 위하여 어떤 초월적 존재를 신뢰하는 것을 가리킨다(대상 16:11; 대하 30:19).

 

 앗수르 왕 에살핫돈 - 북국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장본인으로서(왕하 17:24), B.C.681-669년간 재위(在位)했다.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노라 - 여기의 `하나님께'(,) 는 문자적으로 `그분께'의 의미이며, `제사를 드리노라'(, 자바흐)`희생 제사를 드리다'의 의미로서, 모든 방식과 형태를 망라한 제사 행위를 가리키는 보편적 용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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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희는...상관이 없느니라 - 이것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성전 재건을 하는 데 있어서 신앙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과 동역(同役)할 하등의 이유가 없음을 강조하는 말이다. 사실 사마리아 사람들은 (1) 참된 여호와 신앙과 무관한 혼합주의적 종교를 신봉했다는 점에서 이스라엘과 종교적 연관성이 있을 수 없었으며, (2) 고레스로부터 성전 재건 사업에 동참하라는 조서를 받지 못했다는 점에서 정치적 연관성이 없었으며, (3) 이방인 내지는 혼혈족이었다는 점에서 혈통적 연관성도 없었다.

 

 바사 왕 고레스가...명하신 대로 - `고레스'의 조서는 (1) 이스라엘 백성들은 본토로 자유롭게 돌아가서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며(1:2, 3). (2) 바벨론 백성들은 성전재건 사업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돌아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재물을 지원하라는(1:4) 두 가지 내용으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홀로 건축하리라 - 여러 가지 정황에서 볼 때 이 같은 응대(應待)는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다. 이것은 결코 국수주의(國粹主義) 혹은 분리주의적 사상에 기초한 결론이 아니라 다만 신앙적 순수성을 유지하려는 여호와를 향한 열심(25:11; 왕하 19:10, 14)에 근거한 태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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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다 백성의 손을 약하게 하여 - `유다 백성'은 귀환한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을 의미한다. 본서의 저자는 유다 자손이 귀환자 중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또한 그들이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는 점으로 인하여, 이스라엘 자손을`유다 백성'으로 표현했음이 분명하다. 한편 `'은 여기서 `능력' `일을 추진하려는 `의욕'등으로 이해 되어야 한다(6:22; 왕상 18:46; 대상 18:3; 29:12; 38:4).그리고 `약하게 하여'(,메라핌)는 원래 `감하다', `나태하다'의 의미를 갖는 동사 `라파'의 강의형이다. 따라서 이 단어는 의욕을 상실토록 하며 무기력 상태에 빠지도록 하기 위해서 교활한 방법을 동원하여 온갖 방해 행위를 하는 것을 가리킨다(6:9; 49:24; 50:43; 3;16).

 

 방해하되(, 메바라힘) - 이것은 `놀라다', `두려워하다'의 의미를 갖는 동사 `바할'의 강의형이다. 따라서 이는 여러 가지 방법의 훼방을 통하여 상대를 심리적으로 공포 혹은 불안 가운데로 떨어뜨리는 것을 가리킨다(45:3; 대하32:18; 83:15;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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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레스의 시대부터 바사 왕 다리오가 즉위할 때까지 - 이는 성전 재건 사업이 중단됐던 기간이다. 성전 재건이 중단된 시점은 정확히 즉위 제 4(B.C. 536) 이었을것이다. 본서에 그런 기록이 없음에도 이같이 추정할 수 있는 것은, 다니엘서의 기록을 통해서이다. , 다니엘은 예루살렘의 어떤 소식으로 인하여 매우 슬퍼했었는데(10:2). 그것은 틀림없이 예루살렘 성전 재건 사업이 중단됐다는 소식이었을 것이며, 그때가 바로 고레스 왕 3년이었다(10:1). 한편 `다리오가 즉위할 때' B.C.522 년이다(본장 4-16절 강해, `페르시아의 왕들' 참조). 따라서 성전 재건 사업이 중단된 기간은 약 16년 간인 셈이다. 그런데 여기의 `다리오'`고레스'(B.C. 539-529), `캄비세스'(B.C. 523-522)의 뒤를 이어 페르시아의 왕이 된 인물이다. 그는 캄비세스를 죽이고 페르시아 왕위를 찬탈한 `수메르디스' 와 싸워 이김으로써 왕에 오를수 있었다. 그가 왕위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수메르디스'에 의해 살해 당했던 캄비세스의 휘하 장수이면서도, 아울러 고레스 왕(이스라엘 백성들을 포로 생활에서 해방시켜준)의 부친 고레스 1세의 형제인 `아리야'의 증손이기 때문이었다. 본문의 다리오 1세는 즉위하자 조서를 내려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성전 재건을 재개할수 있도록 하였다(6:1-12)

 

 의사들에게 뇌물을 주어 - `의사'(, 요아침) `조언하다' `상담하다'의 의미를 갖는 동사 `야아츠'에서 파생된 단어이며 여기서는 페르시아 정부의 고위 공직자를 가리킨다. 한편 `뇌물'을 주는 행동은 공의(公義)를 어그러지게 하는 등 매우 부정적 결과를 초래한다는 점에서 성경에서는 엄격히 금지되고 있다(23:8; 삼상 12:3; 17:23). 그리고 `뇌물을 주어'(, 소크림)`삯주고 빌다' 혹은 `고용하다'의 의미인 `사카르'에서 파생된 분사형 단어(Davidson)로서, 부정한 목적의 달성을 위하여 특정 인물에게 돈을 주어 자신의 편으로 삼는 것을 가리킨다(30:16; 23:4; 9:4; 6:12).

 

 경영을 저희(沮戱)하였으며 - 여기의 `경영'(, 아차탐)`모의하다' 혹은 `계획하다'의 뜻을 갖는 동사 `야아츠'에서 파생된 단어로서, 페르시아의 공직(公職) `의사'와 어근이 동일하다. 본서의 저자는 본절에서 이 같은 `말의 유희'(word play)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의 성전 재건 사업이 중단된 것이 페르시아 의사들의 부정적 영향력에 기인한 바 크다는 사실을 암시하려는 듯하다. 한편 `저희하였으며'(, 레하페르)`녹이다', `폐하다'의 의미를 갖는 동사 `파라르'의 사역형으로서 성전 재건 계획이 사마리아 사람들의 집요한 공작에 의하여 수포로 돌아 갔음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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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하수에로가 즉위할 때...고소(告訴) 하니라 - `아하수에로' 는 에스더를 자신의 왕비로 삼았던 그 왕임이 분명하다(1:1). 그런데 그의 재위 기간이 B.C. 485 년부터 464년까지였다는 점에서, B.C. 516년에 끝난 성전 재건과는 전혀 무관하다. 따라서 여기서 사마리아 사람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을 고소했다는 것이, 성전 건축에 대한 훼방을 가리킨다고 보기는 힘들다. 본서의 저자가 이 같은 고소 사실을 성전 건축과 관련된 문맥에서 언급한 까닭은,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한 이방 세력들의 훼방이 얼마나 극심했는지를 보여주려는 의도 때문이었다. 한편, `고소하니라'(, 시트나)`참소', `비방'의 의미로서 `대적하다'의 의미를 갖는 `사탄'이라는 동사로부터 파생되었다. 바로 이 동사에서 `대적하는 자' 혹은 `참소하는 자' 의 뜻이있는 `사단'이 나왔다(1:6). 당시 사마리아 사람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을 고소한 내용이 분명히 밝혀져 있지는 않다. 추측컨대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페르시아 정부에 대해서 반역의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내용의 고소를 하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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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절로 부터 23절까지에는 사마리아인들의 이스라엘 사람들에 대한 또다른 고소 사실이 언급되고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저자는 사마리아인들의 사악성과 나아가 하나님의 사업을 훼방하는 사단의 끈질긴 방해 공작을 의도적으로 폭로하고 있다. 한편 본절부터 618절까지는 히브리어가 아닌 아람어로 기록되어 있다. 이외에도 본서에서 아람어로 기록된 부분은 7:12-26이다.

 

 아닥사스다 때 - `아닥사스다'`아하수에로'의 아들로서 B.C. 464년부터 424년까지 재위 했었다. 따라서 금번의 고소도 B.C. 516년에 바쳐진 성전 건축 사업과는 전혀 무관하며 오혀려 3차 귀환 후 느헤미야에 의해 주도 되었던 성벽 재건에 대한 방해와 연관되는 것이었다(4:1 이하).

 

 비술람...미드르닷...다브엘...동료들 - `비슬람'`평화의 아들' 이라는 의미의 히브리식 이름이다. 이 단어에 대해서는 학자들 간에 논란이 있다. (1)`...에 따라(의거하여)'라는 뜻의 히브리어 `비셀롬'에 해당하는 말이라고 보며, 따라서 다브엘이 미드르닷의 의견과 일치하여 글을 올렸다고 이해한다. (2) 이 말을 `예루살렘의 문제에 관하여'라는 뜻인 `비데바르 예루살라임'의 약자로 이해한다. (3) 개역 성경처럼 하나의 인명(人名)으로 본다. 확실하게 밝힐 수는 없지만 이 중 (3)의 견해를 취함이 무난할 것 같다(Fensham). 한편 `미르닷'`(Mithra, 미드라)의 선물'이라는 뜻이 있는 페르시아식 이름이며 이와 동일한 이름의 또다른 소유자는 세스바살에게 기명을 인계했던 `고지기'였다(1:8). 또한 `다브엘'`하나님은 선하시다'의 의미를 갖는 아람어식 이름이다.

 

 아람 문자와 아람 방언으로 써서 진술하였더라 - `아람어로 기록 되었는데 이는 아람어로 번역되었기 때문이다'로 번역되어야 가장 무난할 것이다. , 아람어로 기록된 이 문서가 처음에는 다른 언어로 쓴 것을 다시 아람어로 번역된 것임을 가리킨다. 이처럼 문서를 아람어로 번역한 까닭은, 비록 정치.군사적으로는 페르시아가 중근동을 제패했으나 국제적 공용어로는 여전히 아람어가 사용됐었기 때문이었다. 이는 마치 비록 로마가 세계를 정복했지만 헬라어가 그 당시의 공용어였던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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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백 르훔과 서기관 심새가...고소한 그 글 - `그 글'에 정관사가 있다는 사실로 볼 때, 이는 7절에 언급된 아람어 문서와 동일함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을 훼방하려던 실질적 주동자들은 7절에 언급된 사마리아 사람들이며, 여기의 페르시아 관리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의 공범자들 혹은 대리자들로 이해될 수 있다. `방백'(, 헤엘 테엠)은 페르시아 정부에 의해서 임명된 지방 장관 혹은 총독을 뜻한다(Davidson). 한편 `르훔'`자비로운 자'의 의미를 가지며, 바벨론 제신(諸神) 중에서 발견되는 이름이기도 하다. 또한 `서기관', 왕이 각 지방의 소식을 직접 보고 받기 위해서 파견한 왕의 직속 부하였다(Herodotus). `심새'`태양의 아들'을 의미한다.

 

 고소한(, ) - 이것은 `~을 대항하여'(against)의 의미를 갖는 전치사이다. 따라서 6절의 `고소하니라' 와는 전혀 다른 단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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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동료 디나 사람 - 여기의 `동료'(쉐아르 케나와트혼)는 문자적으로 `친구들의 나머지' 뜻을 갖는다. 한편 `디나 사람'(, 디나에이)은 사람이나 지역 이름이 아니라 `사사' 혹은 `재판관'의 뜻을 갖는 관직이다(NIV, Williamson, Fensham).`디나 사람'이 복수라는 점에서 볼 때, 이들은 방백이나 서기관 밑에서 일하던 하위직이었던 것 같다. 몇몇 학자들은 이들이 국방(國防)업무에 종사했을 것 이라고 추정한다(Fensham, Frye).

 

 아바삿 사람(, 아파르사트카예) - 이것는 일반적 범주의 `관리'를 뜻하는 페르시아 계통의 단어이다. 따라서 이것도 위의 `디나 사람'처럼 인명이나 지명이 아니다.

 

 다블래 사람 - 이들에 대해서는 (1) `트리폴리(리비아의 수도)에서 온사람들'의 의미라는 설()(Galling), (2) `영사'(領使), `집정관' 혹은 `감독'을 뜻한다는 설(Bowman) 등이 있다. 그러나 고대 앗수르는 포로를 끌어올 만큼 북부 아프리카를 정복한 일이 없으며 또한 트리폴리는 헬라식 지명이라는 사실을 통해서 볼 때, 위의 두 견해중 나중 것이 보다 타당성이 있다.

 

 아바새 사람 - 이들에 대해서도 (1) `신복'(chief officers)이라는 주장(NEB), (2)`페르시아 사람'이라는 주장(RSV, Schaltz, Rawlinson), (3) `유프라테스 강 동쪽지역으로부터 옮겨진 사람들'이라는 주장(IDB)등으로 구분된다. 그러나 (1)의 견해는 그근거가 희박하며, (2)의 견해는 본 단어의 첫 글자 `알렙'을 탈락시키는 것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무리가 있고, (3)의 견해가 가장 타당한 듯하다.

 

 아렉 사람 - 이들은 분명히 메소포타미아 지방의 `에렉'에서 옮겨온 자들이다.

 

 바벨론 사람 - 앗수르는 한 때 중근동 전역(全域)을 정복 했었다. 바벨론이 나중에는 강국으로 변하여 오히려 앗수르를 정복했지만, 그들도 한 때는 앗수르의 지배하에 있었다. 바로 이때 그 백성들의 일부도 팔레스틴으로 강제로 이주 되어 왔다.

 

 수산 사람과 데해 사람과 엘람 사람 - 여기서 `데해 사람'(, 데하웨)은 인명이나 지명이 아니며 다만 히브리어의 `아쉐르'에 해당되는 관계대명사일 뿐이다. 그렇다면 여기의 이 문구 `수산 사람 곧 엘람 사람'으로 번역됨이 무난하다(LXX, NIV, Williamson, Meyer). 이러한 견해는 `수산' (1:2) 이 엘람 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였다는 사실로써도 명백하게 입증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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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귀한 오스납발 - `존귀한'은 원어상 `위대하며 혁혁한 무공(無功)이 있는'의 의미이다. 한편, `오스납발' `앗수르가 추적하다'의 의미이다(Rawlinson). 이 이름은 `에살핫돈'(2)의 별칭이 아니라 앗수르의 후기를 화려하게 장식했던 `앗수르바니팔'(B.C. 669-626)이었다. 그에게 `존귀한'이라는 형용사가 붙여진 까닭은 그의 탁월한 군사.정치력 때문이었을 것이다. 본절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페르시아 왕에게 고소하는 데 동조한 마지막 부류들은 바로 바로 이 왕에 의해서 옮겨진 자들이었다. 그렇다고 한다면 여기서 우리는 (1) 타민족들의 사바리아 지역으로의 강제 이주는 여러 차례에 걸쳐서 이뤄졌으며, (2) 피정복민들의 강제 이주는 앗수르 왕들에 의해서시행되어졌던 일관된 통치 정책이었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Fensham).

 

 사마리아 성과 강 서편 다른 땅 - 여기서 `'은 문자적으로 `그 강'이다. 따라서 이것은 강이 아닌 `유프라테스 강'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서편'(,아바르)`건너편'으로 봄이 정확하다. 그 당시의 `페르시아 및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은 `강 건너편'을 팔레스틴 및 페니키아, 곧 두로와 시돈 지방에 대한 총칭으로 이해하였다(왕상 4:24). 특히 페르시아 사람들은 그 지역을 `아두라'(Athura)라고 불렀다고 한다. 한편 `사마리아 성'은 팔레스틴의 북부에 있던 한 중심 도시만을 가리킨다. 이 도시는 예루살렘 북쪽 약 64Km, 지중해 연안에서 약 40Km 떨어진 높은 구릉 지대에 위치했었다. 또한 `다른 땅'은 팔레스틴 북부, 즉 옛 북국 이스라엘이 위치했었던 지역 중 사마리아 성읍을 제외한 전체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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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본(, 파르시겐) - `사본'(寫本)의 의미를 갖는 단어로서 아람어에 기원을 둔 페르시아어이다. 12절의 고소문(告訴文)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아닥사스다 왕에게 보낸 고소 내용의 전체는 아니었을 것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콰르쉐겐'이라는 단어가 여기서 `초본'(抄本)으로 번역됨이 타당한 것이다.

 

 강 서편에 있는 신복 - `강 서편'에 대해서는 10절 주석을 참조하라. 한편 `신복', 아브다이크)은 문자적으로 `당신의 종'이란 뜻이다. `'이라는 표현은 왕과 신하의 관계에서, 신하가 왕에 대해 자신을 낮춰 부를 때 일반적으로 사용된 단어이다(삼하 14:22; 19:14; 왕상 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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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에게서 올라온 유다 사람 - 여기서 `왕에게서 올라온'(1) 다만 지리적 이동을 주안점으로 보고 고레스가 B.C. 537년에 유다 백성을 해방시켜 팔레스틴으로 돌려보냈던 사실을 가리킨다는 견해(Keil, Rudolph), (2) 시대적 언급을 강조한 것으로 보고 아닥사스다 왕 시절에 일단의 유다 사람들이 팔레스틴으로 귀환했던 것이라는 견해(W-illiamson, Kidner, Fensham, Bright)등으로 해석이 구분된다. 그러나 본절에서 아닥사스다가 유다 사람들의 귀환 사실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듯이 보인다는 점에서, 나중의 해석이 보다 타당성이 있는 듯하다. 한편 `올라온'(, 셀라크)`나오다' 혹은 `나아가다'의 의미를 갖는 아람어 단어 (2:29; 7:3, 8, 20)이다. 그리고 `유다 사람'은 반드시 유다 지파의 사람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님이 분명하다(4).

 

 우리의 곳 예루살렘 - 이것을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루살렘'을 자신들의 영토로 생각 했었음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아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여기의 `우리의 곳'(, 알레이나)은 다만 `우리에게'(to us)의 의미를 갖고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여기서 사마리아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을 고소할 재료로 삼고있는 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팔레스틴 땅으로 이주해 온 사실 자체 때문이라기 보다는 그들이 성벽을 재건하려는 사실 때문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이 같은 오해를 없애기 위해서는, `우리의 곳'을 원문대로 `우리에게'로 고쳐서 `왕에게서'`올라온' 사이에 놓아야한다. 그리고 `우리에게'`팔레스틴 지역으로'의 의미로 이해하면 적당할 것이다.

 

 이 패역하고 악한 성읍 -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루살렘을 이렇게 표현한 까닭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바벨론이나 앗수르와 같은 강대국에 일단 정복됐었지만 번번히 그들에 대해서 반란을 일으켰었던 역사적 사실이 있었기 때문이다(왕하 18:7; 24:1,10,20;대하 33:111). `패역하고'(, 마라드타)`반란을 일으키다'의 의미를 갖는 동사 `마라드'에서 파생된 형용사이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예루살렘에 대해서 이 같은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그 당시 각지의 반란으로 엄청나게 골머리를 앓고 있었던 페르시아 정부를 자극시키려고 한 것이다(Fensham).

 

 건축하는데...지대를 수축하고 - 여기의 `건축하는데'(,바나인)`건축하다' 혹은 `수리하다'의 의미를 갖는 아람어 동사 `베나'의 분사형이므로 현재 시제로 번역하여 `건축을 시작하고 있는 중인데'로 함이 더 좋을 것이다(Williams-on, NIV). 그리고 `지대를 수축하고' `지대'(, 에솨야)는 아카디아어의 `우쑤'와 동족어로서 `낮은 부분' 혹은 `기초'의 뜻을 갖는다. 그리고 `수축하고'(, 야히투)는 미완료형 동사이다. 그러나 이 단어의 어근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1) `파다'의 뜻이 있는 `헤타트'라는 견해(Fensham). (2) `수리하다'의 뜻이 있는 `후트'라는 견해(Davidson, Schults)등 두 가지 해석이 있다. 그러나 예루살렘 재건 작업이 바벨론 땅에서 귀환한지 최소한 80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착수되지 못했음을 주목해 본다면, 바벨론에 의한 예루살렘 파괴가 극심했음을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이것은 예루살렘 재건을 위해서도 기초를 수리하는 정도가 아닌 새로 기초를 놓아야 하는 작업이 필요했을 것임을 시사한다. 그렇다면 위의 두 견해 중 전자가 보다 타당성이 있는 견해일 것이다. 따라서 본절의 `지대를 수축하고'`기초를 파고 있는 중이었다'로 번역될 수 있다.

 

 성곽을 건축하오니 - 여기의 `성곽'도 바벨론 군대에 의해서 B.C 586년에 파괴되었었다(왕하 25:10). 이 성은 예루살렘 거민들의 보호를 위해서 매우 필요불가결한 것이었다. 이제 예루살렘에 거민들이 다시 살게된 이상, 그곳에는 성곽의 재건이 반드시 필요하였다. 한편 `건축 하오니'(, 오사크릴루)`완성하다' 혹은 `마치다'의 의미를 갖는 `켈랄'의 미완료형이다. 따라서 본문구는 `성곽을 완성하고 있는 중이다'로 번역해야한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벽 건축을 완성해 가고 있다는 사마리아 사람들의 고소(告訴)는 사실과는 전혀 달랐다. 왜냐하면 훨씬 나중인 느헤미야 당시에도 성곽은 여전히 재건되지 못했기 때문이다(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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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공,( 민다) - 이것은 바빌로니아어 `만다투'에서 파생된 단어로서 고정적로 매년 제국의 국고에 들어갔던, 돈으로 내는 일반적 세금을 가리킨다(Fensham).

 잡세(, 벨로) - 임대 소득세를 가리키나(Driver) 인두세(人頭稅)로 보는 견해도 있다(Brockington).

 부세(, 할라크) - 토지 소유자에에게 부과됐던 조세의 의무 전반을 가리킨다.

 바치지 아니하리니 - 국가 재정이 세금 징수를 통해서 확보됐다는 점에서 볼 때, 세금 납부의 거부는 당연히 페르시아 정부에 의해서 반역 행위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바로 이점을 노려서, 페르시아 정부로 하여금 예루살렘의 성벽 재건을 중지케 하려고 하였다. 왕들에게 손해가 되리이다. 이것은 `왕들의 창고가 고통을 당할 것이다'라는 문자적 의미가 있다. 이 같은 사마리아 사람들의 경고는 페르시아 정부에게 대단한 자극이 되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페르시아는 다리오와 아하수에로 시절 헬라와의 거듭된 전쟁의 결과 엄청난 재정적 곤란을 겪고 있었기 때문이었다(Fensham). 한편 `왕들'(, 말레킴)은 복수형르로서 (1) 아닥사스다의 후손들 혹은 (2) 아닥사스다의 존귀함을 강조하는 복수형으로 이해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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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궁의 소금을 먹는 고로 - 사마리아의 관원들이 페르시아 왕과 밀접한 관계에 있었음을 시사하는 말이다. , 이것은 사마리아 관원들이 페르시아 왕으로부터 은택을 입고 있으며, 따라서 그들은 페르시아 왕을 기쁘게 할 의무가 있음을 뜻하는 비유인 것이다(Rawlinson). 한편 `소금'은 고대의 의약품 및 식료품으로 매우 중요하였기 때문에, 경제적 교환 가치가 대단히 컸었다. 그래서 `소금 생산권'의 장악은 곧 권력의 장악과 진배없었다.

 

 왕의 수치 - `수치'(, 아르와트)`옷을 벗기다' 의 의미를 갖는 동사`에라'에서 파생된 단어이다. 그러나 본 절에서는 `수치' , `불명예'의 의미보다는 `손해'로 이해해야 한다(Davidson). 왜냐하면 (1) `아르와트'`손해'의 뜻도 있으며, (2) 본절에서의 `수치'는 결국 재정적 곤란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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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조의 사기(史記)를 살피시면 - 페르시아는 스스로를 바벨론의 합법적인 계승국으로 자처했었다(Williamson). 따라서 열조의 사기(史記)에는 바벨론 제국 시절 부터의 역사 기록이 포함될 것이 분명하다. 심지어는 앗수르 제국의 것도 포함되었을 수 있다(Fensham). 한편 `사기'(다크라나야)는 문자적으로 문서 보관소를 의미한다.

 

 이 성읍은 패역한 성읍이라 - 본 구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과 앗수르 등의 강대국에 대해서 강력한 저항을 했던 역사적 사실들과 관련된다(4:12 주석 참조). 그런데 모르겐스턴(Morgenstern)은 이 구절이 485년에 있었던 아하수에로 왕에 대한 반란을 가리킨다고 말한다. 그가 이러한 주장을 하는 것은 페르시아왕이 아주 오래된 바벨론 왕들 시절의 기록을 소유치는 못했으리라는 추정에 근거한다. 그러나 이러한 추정은 심지어는 사마리아 사람들까지도 앗수르왕 `오스납발'에 대해서 분명히 알고 있었다는 사실로써 반박된다(10). 한편 여기의 `반역하는'12,15절의 `패역한'과 동일한 단어이다.

 

 열왕과 각 도에 손해가 된 것 - `손해된 것'(, 메한제카트)`상처를 주다' 혹은 `손상을 주다' 그리고 `고통을 주다'의 의미를 갖는 동사 `네자크'에서 파생된 단어이다. 그리고 `각 도'는 페르시아 제국 이전의 바벨론 및 앗수르를 가리키거나 아니면 페르시아제국 내의 영지들(provinces)을 뜻한다.

 

 이 성읍이 훼파됨도 이 까닭이니이다 - 사실 예루살렘의 파멸은 시드기야가 예레미야의 권고를 무시한 채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에게 반역한 결과였다(왕하 25:20,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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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의 강 서편 영지(領地)가 없어지리이다 - `강 서편 영지'는 유프라테스 강 서쪽의 땅을 가리킨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예전에 다욋 왕 및 솔로몬 왕과 므나헴 왕 등의 시대에 이스라엘의 영토가 거의 유프라테스 강에까지 미쳤던 역사적 사실을 염두에 두고서 이 말을 했을지도 모른다(왕상 4:21; 왕하 15:16). 그러나 이러한 언급은 그 당시의 여러 정황으로 봐서는 어불성설(語不成說)의 억지임이 분명하다. 유대인들에 대한 모함은 13절에 이어 그 과장의 정도가 더욱 심해지고 있다(Kid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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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절은 사마찌아 사람들의 고소가 아닥사스다에 의해서 정당한 것으로 받아 들여졌음을 잘 보여준다. 사마리아 사람들의 고소장이 너무나도 과장된 것이어서, 아닥사스다 왕으로 하여금 겁을 먹도록 하기에 충분하였을 것이다.

 방백 르훔...다른 땅 백성 - 9절 주석을 참조하라. 고대에도 서신 양식에 있어 수신자와 발신자의 이름을 밝히는 것은 기본적인 상례였다(Batten).

 

 조서를 내리니 - `답신을 보냈다'가 보다 정확한 번역일 것이다(NIV). 한편 `조서'(, 파트가마)`반드시 ~에게 돌려져야 하는'의 의미를 갖는 페르시아어 `파이티 가마'(Paitigama)에서 온 아람어이다(Fensham).

 

 평안할 지어다(쉘람) - 히브리어의 `솰롬'과 동일한 단어로 고대 중근동에서 이러한 인사법은 매우 보편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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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앞에서 낭독시키고 - `낭독시키고'(, 메파르쉬)(1) 아람어로 된 고소장(7)을 페르시아 왕 아닥사스다가 알아들을 수 있는 페르시아 말로 번역시켰다는 뜻으로 보는 견해(Fensham), (2) 당시 페르시아 왕실의 관습에 따라 신하를 시켜 대신 읽도록 했다는 뜻으로보는 견해(Rawlinson), (3) `낭독시키고'`분명하게 하다'의 의미가 있는 히브리어 `파라쉬'와 동족어로 보고 신하를 시켜서 그 뜻을 명백하게 파악토록 했다는 의미라고 하는 견해(Keil) 등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첫째, 바벨론의 통치가 매우 광범위하게 이루어진 관계로 페르시아의 지도층에 있던 사람들은 세계적 공용어였던 아람어를 충분히 알고 있었을 것이며 둘째, 중요한 문서가 신하에 의하여 왕에게 읽혀지는 것은 당시의 관례였음(6:1)을 볼 때, 위의 세 가지 견해 중 두 번째의 것이 가장 타당성이 있는 듯하다. 그러나 위의 견해 중 첫 번째의것과 세 번째의 것도 전적으로 배제될 수는 없으리라 본다. 왜냐하면 페르시아 사람인 아닥사스다에게는 역시 보다 유창한 아람어 구사능력을 가진 신하의 도움을 받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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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하여 살펴보니 - 아닥사스다는 그때 문서 보관소에서 열조들의 사기를 찾도록 `명령'을 하였을 것이다(15). 한편 여기의 `살펴보니'(, 베카르)15절의 `살피시면'과 동일한 단어로서, 많은 것들 중에서 필요한 것만을 조사하여 찾아내는 행위를 가리킨다(5:17; 6:1).

 

 열왕을 거역하며 - `열왕'은 앗수르 제국에서 부터 시작하여 바벨론 제국을 거쳐서 페르시아 제국까지의 `왕들'을 가리킨다(15). 한편 본문의 고발은 나름대로 역사적 사실과 일치한다. 왜냐하면 강한 민족 의식을 지닌 유대 백성은 앗수르와(왕하 18:7) 바벨론의 지배에(왕하 24:1,20) 강력히 반발한 사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패역하고 모반하는 일을 행하였으며 - `패역하고'(, 메라드)`반역'의 의미를 갖는 명사이며 `모반'(, 에쉐타두르)도 위의 `패역'과 거의 동일한 단어이다. 이와 같은 동의어의 반복적 언급은 아닥사스다 왕이 사마리아 사람들의 기만 전술에 완전히 넘어갔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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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 군왕...강 서편...땅도 주재하매 - 여기의 `큰 군왕'은 문자적으로 `강력한 왕들'의 의미이며, 다윗 및 솔로몬 그리고 북국 이스라엘의 여로보암 2, 남국 유다의 웃시야와 히스기야 등을 가리킨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유프라테스 강의 서쪽 상당 부분을 이스라엘의 땅에 포함시켰을 정도로 강력한 군사력을 소유했던 왕들이었다(왕상4:21, 24). 특히 솔로몬의 경우 시리아 사막 내의 중요한 오아시스 지대인 `다드몰'을 건축한 바 있는데(왕상 9:18) 이곳은 유프라테스 강 서편 일대를 장악하기 위한 거점 역할을 했으리라 본다(Edwin Yamauchi) 다윗과 솔로몬 당시의 이스라엘 영토에 관해서는 아래 지도를 참조하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문의 언급은, 사실 이스라엘의 어떤 왕도 강 서쪽땅 전부를 정복한 일은 없었다는 점에서 과장된 표현임이 분명하다. 조공과 잡세와 부세를 저에게 다 바쳤도다. 모압 및 암몬 족속 그리고 에돔 족속 등이 이스라엘에게 조공을 바쳤던 역사적 사실을 가리킨다(삼하 8:6-12; 왕상 10:14,15). 한편 `조공', `잡세', `부세' 등에 대해서는 13절 주석을 참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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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를 그치게 하여 - 이처럼 아닥사스다 왕이 쉽사리 사마리아 사람들의 소청을 들어준 것은, 그 당시 페르시아 전역에는 반란 사건이 많아서 그와 관련된 문제에 대해서 그가 심히 예민해 있었던 때문이었다.

 

 내가 다시 조서 내리기를 기다리라 - 여러 학자들은 본절의 평행 구절인 외경 에스드라상 2:24에는 이러한 문구와 같은 내용이 언급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 근거하여 본 문구를 본서 저자의 의도적 삽입이라고 본다(Galling, Rudolph, Williamson). , 본서의 저자는 (1) 중단됐던 성벽 재건이 나중에 느헤미야의 노력에 따라 아닥사스다왕에 의하여 재개될 수 있도록 승인된 역사적 사실을 알고 있었으며, (2) 페르시아 왕들이 자신의 정책적 결정을 번복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였던 관계로(1:19; 6:15) 홋날 아닥사스다의 또 다른 조서에 의해 정식으로 성전 건축이 허락된 사실을 밝힐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본 문구는 아닥사스다의 성벽 재건 중지 명령이 포기될 것임을 예견케 해주는 의도적 암시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반드시 유념해야 될 것은 본서의 저자가 아닥사스다 왕이 실제로 하지도 않은 말을 자신의 의도에 맞춰 기록했다고 보아서는 안된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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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닥사스다의 조서는 그 명령을 어기는 자에 대한 은근한 위협으로 끝을 맺고 있다(Williamson).

 화를 더하여 - `'(, 하발라)`파괴하다' 혹은 `손실을 끼치다'의 뜻이 있는 동사 `해발'에서 파생된 명사로서, `손해' 혹은 `손실'을 의미한다(Davidson). 그리고 `더하여'(, 이세게)`커지다' 혹은 `증가하다'의 의미를 갖는 동사 `세가'의 수동형으로서, 구체적으로 여기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세력 팽창으로 인한 세수(稅收) 손실의 증가를 가리킨다.

) --> 초본(抄本)...낭독되매 - `초본'에 대해서는 11절 주석을 참조하라. 한편 `낭독되매'NIV처럼 `낭독되자 마자'(as soon as)로 번역 되어야 할 것이다. 그 까닭은 본절의 초두에 개역 성경에서는 제대로 번역되지 못한 `~ 하자 마자' 를 뜻하는 단어 `에다인'이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본 문구는 악한 일을 향한 악인들의 불같은 열심을 잘 보여준다.

 

저희가 예루살렘으로 급히 가서 - 이것 또한 악인들의 사악한 열심을 잘 보여준다. 특히 `급히'(, 비베힐루)`흥분하다' 혹은 `서두르다'의 뜻이 있는 동사 `베할'에서 파생된 단어로서, 악한 일을 위해서는 무척이나 발이 빠른(3:15) 자들의 죄악에 취해버린 마음 상태를 잘 드러내준다(4:16).

 

 권력으로 억제하여 - 여기의 `권력'(, 하일)은 문자적으로 `' 혹은 `군대'를 의미(Davidson) 하나 여기서는 `군대'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억제하여'(, 베에드라)`팔로써'를 의미한다(2:32)). 따라서 본 문구를 원문에 가깝게 번역한다면 `팔과 군대로써'가 될 것이다. 아닥사스다의 조서상으로는 성벽 재건을 중지시키라고 하는 데 그쳤으나, 대적자(對敵者) 들은 그 태도로 미루어 볼때 부분적으로 재건된 성벽조차 아예 부숴버렸을 것으로 짐작된다. 많은 학자들은 이 사건을 느헤미야 1:3에 기록된 내용과 동일한 것으로 이해한다.

 

 그 역사를 그치게 하니 - `역사' 는 성벽 재건 작업을 의미한다. 이 같은 공사의 중단은 B.C. 444년에 이루어졌던 느헤미야의 귀환 때까지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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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에(, 베다인) - 오히려 `이처럼' 혹은 `그와같이'로 번역되는 것이 낫다. `이에'는 본절의 내용이 마치 3절 이전(以前) 사건의 직접적 결과인양 말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6-23 절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의 성벽 재건을 방해하는 사실을 언급하고 있으며 사마리아 사람들의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훼방이 얼마나 극심했는지를 보여주기 위한 하나의 예증으로서 제시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본절은 그 내용상 5절과 곧바로 이어짐이 분명하다.

 

 다리오 제 이 년 - 페르시아의 연대표에 의하면 다리오 왕은 B.C.522년 부터 485년까지 재위하였으므로, `제 이년'B.C. 521(혹은 520)년이 되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