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에스라(구속사적해석)

에스라3장,위대한 역사

호리홀리 2016. 1. 5. 12:14

`7'은 유대력의 `디스리 월'을 말한다. 보통의 달력으로는 9월 혹은 10월에 해당된다. 그리고 이 `7'은 말할 나위도 없이 귀환한 그 해의 `칠월'을 가리킨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모인 까닭은 모세 율법의 규정에 따라(23:41) 초막절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한편, `모인지라'(, 예아스푸)`모이다' 혹은 `모으다'의 의미를 갖는 `아사프'의 수동형으로서, 특별한 일에의 참여를 위하여 한마음이 되어 모여드는 행위를 가리킬 때 사용되는 단어이다(9:4; 20:11; 대하 30:13). `일제히'는 문자적으로 `한사람처럼'의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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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사닥의 아들 예수아는 대제사장 예수아를 말한다(2:2). 한편, `요사닥'`여호와께서는 공의로우시니'의 의미이다. 그는 느부갓네살에 의해서 바벨론에 끌려갔던 제사장이었다(대상 6:14,15).

 그 형제 제사장들은 예수아의 친형제로 보기는 어렵다. 모든 제사장은 레위 지파 중에서도 아론의 후예들이었다는 점에서 `형제'라는 말이 사용됐을 것이다 `스알디엘'`스룹바벨'의 법적인 아비이며, 실제 아비는 `브나야'였다.(2:2 주석 참조).

 그 형제들에 대해서는 (1) 스룹바벨과 갈은 왕족들(Rawlinson), (2) 제사장을 제외한 모든 이스라엘의 평민들(Williamson) 등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본서의 저자가 성전 재건에 범국민적인 참여가 있었음을 본 문맥에서 강조하고 있으며(1), 또한 귀환자들의 대부분이 스룹바벨처럼 야곱의 후손들이라는 점등에서 (2)의 견해가 보다 타당성이 있다.

 

 이스라엘 하나님의 단을 만들고 - `이스라엘 하나님'이라는 말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과 언약 관계를 맺고 있으며(왕상 18:36) 또한 그들 상호간에 단절될 수 없는 유대(紐帶)관계를 맺고 있음을 암시한다. 특히 여기서 이 표현은 하나님의 선하신 보호와 인도를 부각시켜 준다. 한편 `'은 정으로 다듬지 않은 자연석으로 쌓아만든 제단이었을 것이다(20:25; 8:31).

 

 하나님의 사람 - 이러한 명칭은 성경에서 주로 `선지자'들에게 적용되었다(삼상 2:27; 대상 23:14). 이것은 `모세의 율법'이 신적인 기원을 갖는 것임을 강력히 시사한다.

 

 모세의 율법에 기록한대로 - 희생 제사 의식과 관련된 율법 규정, 특히 제사드리는 절차 및 방법에 관한 조항들을 말한다(1:3-13).

 

 번제를...드리려 할새 - `번졔를 드리기 위하여'로 번역하면 보다 자연스럽다. 성전 건축도 결국 희생 제사를 드리기 위한 목적때문에 필요하였다. 이 희생 제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1) 하나님과의 언약적 관계를 갱신하며(9:38), (2)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하여 반드시 필요한 중보적 요소였다. 이스라엘 백성은 성전을 소실 당한채 뿔뿔이 흩어졌던 포로 기간 동안에도 하나님의 율법을 잊지 않고 나름대로 희생 제사를 드렸으리라 추측되며 이제 예루살렘에 제단을 만듦으로써 더옥 신선하고 의미 깊은 헌신을 드리게 되었다(William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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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리가 열국 백성을 두려워하여 - 오히려 `비록 무리가 열국 백성을 두려워하였지만'으로 번역해야 본 문맥의 흐름과 잘 조화된다(NIV). `열국 백성' 은 문자적으로`그 땅 백성들'의 의미이다. , 그들은 그 당시 팔레스틴 땅과 그 주변 지역에 살던 여러 민족들을 가리킨다. 그들 중 대표적인 민족은 사마리아인들이었을 것이다(4:2). 한편, `두려워하여'(, 베에이마)는 급속히 엄습하여 공포속으로 빠져들어갈 때 사용되는 단어 `에이마'`~안에서' 혹은 `~'로 번역될 수 있는 전치사 `'가 합쳐진 말이다(15:12; 15:16; 2:9 20:25).

 

 단을 그 터에 세우고 - `그 터'는 원래 솔로몬 성전의 제단이 세워져 있던 곳을 가리킨다(2:68).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팔레스틴에 귀환한 직후부터 제단 쌓기를 시작하여 칠월이 되어서야 그 작업을 마칠 수 있었던 것 같다(1).

 

 조석으로...번제를 드리며 - 본문의 `번제'는 매일 드려져야 하는 상번제를 가리킨다(29:38, 39; 28:3,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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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규례대로 초막절을 지켜 - `초막절'`유월절', `칠칠절'과 함께 이스라엘 백성들이 반드시 지켜야 할 3대 절기로서 율법에 규정되어 있다(23:14-16; 34:22; 16:13-17). 특히 이 `초막절'`장막절' 혹은 `수장절'이라고도 불리우며, 땅에서 산출되는 모든 곡식, , 기름을 거둬들일 수 있도록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절기였다. 이 절기는 유대력으로 디스리월, 7(보통 달력으로는 10) 15일에 시작하여(29:12) 8일 동안 지켜졌으며, 첫날과 마지막 날에는 성회(聖會)가 있었다. 이 절기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수송아지, 수양 등을 제물로 바쳤으나, 곡식은 제물이 될 수 없었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가축만을 제물로 삼으신 까닭은, 가나안 족속의 추수제와 초막절을 엄격히 구별시키려는 의도 때문이었다.

 

 정수대로 - 절기가 지켜지는 8일 동안 날마다 동일한 수효의 제물이 드려진 것이 아니었음을 가리킨다. , 수송아지의 경우, 첫날에는 13마리가 둘째날에는 12마리가 바쳐졌다. 이렇게 해서 그 절기 동안 바쳐져야 했던 가축의 수는 모두 215 마리였다(29: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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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후에는 - 귀환 후 최초로 지켜진 초막절 절기가 끝난 다음을 가리킨다.

 

 항상 드리는 번제 - 평상시에도 아침 저녁 하루 두 차례씩 드려지던 상번제를 가리킨다(29:42; 28:3-6). ,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초막절 절기를 계기로 모든 희생 제사를 정상화 시켰음을 시사한다.

 

 초하루 - 이것은 월삭 현상이 일어나는 매월의 첫날에 베풀어지는 종교적 축제를 가리킨다(10:10; 28:11-15; 삼상 20:5; 10:33; 1:13). 바벨론에서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절기도 지켰다.

 

 여호와의...절기의 번제 - `무교절'(23:5-8), `맥추절'(23:15-21),`나팔절'(23:23-25), `초막절'(4; 23:33-36), `속죄일'(23:27-32)등에 드려져야 할 번제를 가리킨다. `여호와'는 하나님의 언약적 측면을 강조하는 칭호이다. 본서의 저자는 이 문맥에서 바로 이와 갈은 칭호를 사용함으로써, 이 절기가 지켜진 것이 언약적 차원에서 였음을 강조하려고 한다. 절기를 지키는 것이 언약 백성들에게 특별히 요구되는 의무라는 사실을 고려한다면(23) 본서 저자의 이러한 의도는 분명히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즐거이 드리는 예물 - 이것은 특정한 절기와 상관없이 그때 그때의 필요에 따라 자발적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것을 가리킨다(Fensham, 22:18,21; 대하 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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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칠 월 초하루부터 - 엄밀히 말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희생 제사를 회복한 것이 초막절 절기 때부터는 아니었음을 말해준다. 즉 초막절은 칠 월 보름부터 시작됐다는 점에서, 적어도 약 보름간은 상번제가 제단에서 드려졌음을 뜻한다. 그렇다면 매년 칠월 열흘에 드려졌던 속죄일은 안지켜졌다는 결론이 나온다(16; 23:26-32; 29:7-11). 그러나 속죄일이 지켜지지 않은 것은 백성들의 신앙적 열심의 부족과는 전혀 무관하다. 왜냐하면 성전이 아직 재건되지 못했던 그 당시의 상황에서, 대제사장이 백성들의 사죄를 위해서 지성소로 들어가야 하는 독특한 의식이 뒤따르는 속죄일 행사가 지켜지는 것은 불가능하였기 때문이다.

 

 여호와의 전 지대는...놓지 못한지라 - 이러한 언급을 통해 저자는, 성전 재건이 착수되는 현장으로 본서의 무대를 옮기려 시도한다.

 

 시돈 사람과 두로 사람에게...기름 주고 - 이것은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고자 계획했던 상황과 유사하다(Kidner). 농토가 없음으로 해서 식량 사정이 좋지 않았던 시돈과 두로(12:20)에 먹을 것을 주는 대신 성전 건축에 필요했던 건축 재료들을 수입해 왔을 것이다(왕상 5:8-11; 대하 2:10-15). 한편 `시돈'`두로'는 가나안 족속으로서 B.C. 9세기 초엽까지만 해도 각기 독립된 도시 국가들이었다. 그러나 앗수르에 의해 B.C. 9세기에 정복된 후에는 거의 계속적으로 강대국들의 지배하에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지중해를 중심으로 한 해상 무역이 매우 발달했던 나라들로서, 솔로몬 왕 시절만 해도 엄청난 국부(國富)를 자랑했었다. 한편, 바벨론 포로 귀환기에는 그들도 페르시아의 지배하에 있었다. `시돈'은 오늘날의 베이루트 남방 약 48Km지점에 위치해 있고 `두로'는 시돈 남쪽 40Km 지점에 있다.

 

 바사 왕 고레스의 조서대로 - 고레스의 조서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 재건하는 것을 도우라는 명령 조항이, 구체적으로 두로와 시돈 사람을 겨냥하여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조서'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본토에 돌아가서 성전을 재건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내용과 남아있는 백성들은 그들을 도우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1:3, 4).그러나 오늘날 건축을 하기 위해서 당국의 허가가 필요하듯이 그 당시에도 성전 건축과 갈은 큰 공사를 위해서는 바사 정부의 허가가 요구되었을 것이며, 이 허가 속에는많은 양의 건축 자재를 조달하는 사업까지 포함되어 있었으리라 본다. 본 구절도 바로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Batten).

 

 백향목 - `굳건히 뿌리 박힌 강한 나무'라는 뜻을 갖고 있으며, 학명(學名)`세드루스 리바니'(Cedrus Libani)이다. 이 나무는 최고 36m까지 자라며, 나무의 둘레도 최고 12m까지 된다. 또한 이 나무는 크기(2:9) 뿐만 아니라 모양과 향기에 있어서도 특출하다. 이 나무가 건축 재료로 적당한 까닭은, 나무 자체에서 풍기는 향기가 좋다는 점 외에도 옹이가 없으며 아울러 내구력도 뛰어나다는 장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레바논에서 욥바 해변까지 수운 - `레바논'은 팔레스틴의 북서쪽에 위치한 험준한 레바논 산맥을 가리킬 것이다. 이 산맥은 폭이 약 1.6Km 이내인 해안 평야에 의해서 지중해 해안과 분리되어 있다. 한편 `욥바'`아름답다'는 의미를 갖는 항구 도시(1:3)로서 높이가 해발 약 43m인 바위로 이루어진 갑()이 바다로 돌출해 있는 등의 자연적 조건을 갖추고 있다. 예루살렘으로 부터는 서북 쪽으로 약 56Km 떨어져 있다. 한편 `수운'은 백향목 뗏목으로 엮어서 해안을 따라 옮기는 것을 가리킨다. 이러한 운송 방식은 최초의 성전을 건축했던 솔로몬에 의해서도 이용되었다(왕상 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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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루살렘 하나님의 전에 이른지 - 이스라엘 사람들의 포로 귀환 사건을 가리킨다. 그런데 본서의 저자가 이 같은 방식으로 포로 귀환 사건을 묘사한 것은, 포로 귀환의 주목적이 성건 재건이었기 때문이다.

 이 년 이 월에 - 바벨론에서 귀환한 그 해의 이듬해(Williamson), B.C. 536년의 둘째 달인 `시브월'로서, 솔로몬도 이 때에 성전의 기초를 놓았다(왕상 6:1).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 재건의 본격적인 준비를 시작한 지 육개월이 지나서야, 그 작업에 착수한 셈이 된다.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들이 굳이 이 시기를 택하여 성건 재건 작업에 착수한 까닭은, 일반 달력으로 4, 5 월인 이때는 건조기가 시작되는 시기였기 때문이다(Grosheide).

 

 이십 세 이상의 레위 사람들을 세워...감독하게 - 원래 레위인이 성전 봉사에 참여할 수 있기 위해서는 최소한 25세 이상이 되어야 했다(8:24). 그러나 후대에 들어와서는 레위인의 인구가 감소함으로 하한 연령이 20세로 낮춰졌다(대상 23:24, 27; 대하 3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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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아와 그 아들들 - 여기의 `예수아'는 대제사장 예수아가 아닌 `호다위야 자손'(2:40)의 한 대표인 레위인 예수아를 가리킨다.

 

 하나님의 전 공장 - 여기의 `공장'(, 멜라카)`' 혹은 `역사'(役事), `사업' 등을 의미한다(35:24; 왕상 9:23; 대상 23:4). 따라서 `하나님의 전공장'은 성전 재건을 위한 공사(工事)를 가리킨다.

 

 건축자가...지대를 놓을 때에 - `건축자'(, 보님)7절에 언급되고 있는`목수' 중의 일부였음이 분명하다. `지대를 놓을'(, 야사드)은 원래 `한 더미로 쌓다' 혹은 `위치를 정하다'(104:8)의 의미이지만, 본절과 같은 문맥에서는 `기초 공사를 하다'의 뜻으로 쓰여진다(대하 31:7; 38:4; 24:2; 54:11).

 

 제사장들은 예복을 입고 - 문자적으로는 `옷이 입혀진 제사장들'이다. 그런데 `예복을 입고'(, 라마쉬)라는 동사는 원래 `옷을 입다'라는 의미지만 항상 제사장의 예복과 관련되어 사용된다는 점에서, 본절의 `예복을 입고' 는 어느 정도 적절한 번역이라 하겠다(6:10; 16:4).

 

 나팔을 들고 - 뒤에 나오는 `여호와를 찬송하되'에 걸린다. , 제사장들이 여호와를 찬양하는 데 나팔을 사용했음을 가리킨다. 그런데 이 `나팔'(,하초츠라)`산산히 부수다'의 의미를 갖는 금속제 관악기였다. 따라서 이는 수양의 뿔로 만들어진 나팔(`요벨'; 19:3)이나 야생 염소의 뿔로 된 나팔(`쇼파르';대상 15:28; 대하 15:14; 5:8)과는 전혀 달랐으며 제사장들에 의해서 의식용(儀式用)으로사용됐다는 점에서 다른 것과는 현저한 차이가 있었다.

 

 제금을 들고 서서 - `제금'(, 메칠타임)은 본 단어의 쌍수형(雙數形)을 통해서 엿볼수 있듯이, 두 개의 금속 원반으로 한 조가 되는 타악기였다. 마치 오늘날의 심벌즈(Cymbals)같이 생겼던 것 같다. 그리고 `서서'(, 아마드)는 단순한 의미의 `기립'(起立) 행위를 의미한다기 보다는 특별한 의식(儀式)의 집행을 위하여 임명되고 그래서 정위치한 것까지를 말한다(11:24; 27:22; 대하 8:14; 11:15;19:5; 20:21).

 

 이스리엘 왕 다윗 규례대로 - `이스라엘 왕'은 다윗이라는 인물의 특출성을 강조하기 위한 수식적 명칭이다. 물론 사울이 실질적으로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기는 했지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중에 선택된 최초의 왕이라는 점에서 (삼상 13:14; 13:22) 다윗은 이스라엘 역사상 큰 비중을 갖는 인물이었다. 한편, `다윗의 규례대로'2절의 `모세의 율법에 기록한 대로'에 상응하는 문구이다(Williamson). , 모세는 성전예배의 기초적 혹은 핵심적 요소인 희생 제사 제도를 확립한 반면(2), 다윗은 부가적 혹은 보완적 요소인 음악을 도입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따라서 `다윗의 규례대로'는 음악사용에 관한 다윗의 명령을 가리킴이 분명하다(대상 15:16-24).

 

 여호와를 찬송하되 - `찬송하되'(, 할랄)는 구약 성경에서 `송축하다'(대상 16:36), `찬양하다'(대상 25:3; 113:1; 146:1), `칭찬하다'(12:15; 삼하 14:25) 등으로 번역되었다. 바로 이 단어에서 `여호와를 찬양하라'는 의미인 `할렐루야'가 파생되었다(113:9; 115:18; 116:19; 13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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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로 찬송가를 화답하며...감사하여 가로되 - 이는 문자적으로 `그들이 찬송하면서 그리고 감사하면서 노래했다'는 의미이며 한 무리는 하나님을 `찬송' 했고 또 한 무리는 `감사'했다는 점에서 우리말 번역처럼 `화답', 즉 서로 주고 받는 식의 찬송이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찬송'`감사'는 거의 동의적(同意的)이다.

 

 주는 지선(至善)하시므로 - 여기의 `'()는 말할 나위없이 여호와를 가리킨다. 그러나 히브리 본문에 `'란 말은 없다. 다만 `그분은'으로 번역할 수 있는 여지가 있을 뿐이다. 한편, `지선하시므로'(, 키 토옵)는 문자적으로 `진실로 선하시므로'의 뜻이다.

 

 그 인자하심이...영원하시도다 - 여기의 `인자'(, 헤세드)는 계약적 관계로 인하여 베풀어지는 불변의 사랑을 가리킨다(Fensham). 다시 말하여 백성들의 엄청난 잘못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멸망치 않으시고 길이 참으심을 뜻한다(3:22, 23). 그리고 `영원하시도다'(, 레올람)`세상 끝날까지 계속있을 것이다'의 의미이다.

 

 이스라엘 - 언약 공동체로서의 유대 민족을 가리킨다(1:3).

 

 큰 소리로 즐거이 부르며 - 큰 소리로 함성을 지르는 것이나 노래하는 것은 승리의 상황에서 이루어졌다(삼상 4:5). 하나님의 성전이 다시 재건되어 하나님께 대한 희생제사가 완전히 회복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마귀 세력에 대한 하나님 나라의 승리이자 그 백성의 승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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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 노인은 첫 성전을 보았던 고로 - 솔로몬 성전이 바벨론의 느부사라단에 의해서 파괴된 것(왕하 25:13; 대하 36:19)B.C. 586 년이었다. 따라서 지대가 눠여진 그 해(B.C. 536)로부터 50년 전이었다. 그러므로 귀환자들중에 연로한 사람들은 예루살렘 성전의 웅장함을 본 경험을 갖고 있었을 것이다.

 

 이 전 지대 - 이 스룹바벨 성전의 기초는 거기에 사용된 재료의 질()이나(왕상 5:17; 7:10, 11) 그 규모에 있어서 솔로몬 성전과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보잘것 없었던 것 같다(2:3). 뿐만 아니라 그 공사를 담당했던 석공(石工)의 기술 수준에 있어서도 현저한 차이가 있었다(왕상 5:6).

 

 대성 통곡하며 - 문자적인 의미가 `큰 소리로 울면서'라는 점에서, 개역 성경의 번역은 꽤 적절하다. 그런데 여기서 노인들이 `대성 통곡'을 한 까닭은 (1) 성전의 규모가 과거의 솔로몬 성전에 비해 보잘것 없으리 만큼 작았으며, (2) 범죄로 인하여 이방 민족에게 철저히 멸망되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그들에 의해서 그들의 땅에 포로로 끌려 갔었던 슬픈 과거가 생각났었기 때문이다.

 

 여러 사람 - 솔로몬 성전을 못봤던 대부분의 백성들을 뜻한다.

 

 기뻐하여 즐거이 부르니 - 젊은 사람들은 (1) 자신들의 슬픈 역사에 대해서 체험적이지 못했으며, (2) 2 성전의 규모가 작다는 사실을 잘 알지 못했기 때문에 낙천적 태도를 가질 수 있었던 것 같다. 한편, `부르니'(, 루아)`소리치다'의 의미로서, 일이 잘 진행됨을 인하여 기쁨 중에 함성을 지르는 행동을 가리킨다(6:5; 삼상 4:5; 대하 13:15; 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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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절은 노인들의 통곡하는 소리와 기뻐 외치는 소리가 함께 어울려져서 큰 소음으로 변했음을 말해준다. 노인들의 숫자는 분명히 작았을 것이 틀림 없는데도 불구하고 이런 현상이 나타난 것은, 슬픔에 겨운 탄식 소리가 기뻐 외치는 소리보다 훨씬 컸던 때문이었다(Rawlinson).

 

 백성... 멀리 들리므로 - 개역 성경 본문에 따라 이해하면 이 문구는 마치 이 다음의 문구에 언급된 내용의 원인이 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본절에서 두 번째로 나오는 `백성'은 마치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의 사람인 양 생각되어진다. 그러나 본문구는 오히려 본절의 끝부분으로 옮겨지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 백성들의 탄식과 기쁨의 함성이 섞여져서 멀리까지 들릴 만큼 그 소리가 매우 컸음을 시사하는 데에 본절의 주된 의도가 있는 것이다.

 

 백성들이 분변치 못하였느니라 - 여기의 `백성'은 본절의 초두에 나오는 `백성'(, 하암)과 동일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들은 예루살렘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던 다른 사람들이 아닌 예루살렘에 모여 있던 회중들을 가리킨다. , 탄식 소리와 기쁨의 함성 소리가 혼합된 나머지, 그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 조차도어떤 것이 탄식 소리이며, 또 어떤 것이 기쁨의 함성인지를 분별치 못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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