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에스라(구속사적해석)

에스라2장,위대한 귀환자들

호리홀리 2016. 1. 4. 13:03

B.C. 605년과 597년 그리고 586년에 바벨론으로 끌려갔다. 그때 그곳으로 끌려갔던 사람들은 대부분 왕족및 귀족 그리고 제사장 계급 혹은 기술자 등이었다(왕하 24:14; 25:6, 7; 1:3).

 

 자손 중에서 - 이것은 바벨론에 살던 유대인들 모두가 돌아오지는 아니했음을 강력히 시사한다.

 

 놓임을 받고...돌아와 - `놓임을 받고'는 원문에는 직접 나타나 있지 않은 번역자의 의도적 삽입 문구이다. 한편, `돌아와'(,슈브)는 부당하게 빼앗긴 물건을 돌려 받을 때 사용되기도 한 단어이다(20:7; 21:34; 삼상 6:3; 삼하 9:7). 따라서 저자는 이러한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유대인들의 팔레스틴으로의 귀환이 지극히 당연한 일임을 강조하고 있다.

 

 예루살렘과 유다도...각기 본성 - 바벨론에서 귀환한 유대인들의 행선지가 오직 예루살렘만은 아니었음을 잘 보여준다. 그들은 팔레스틴으로 귀환한 후 유다의 여러 지역에 흩어져 살았었다(3:2-19; 7:20-35). 한편 `'(, 메디나)는 당시 유다가 독립 국가가 아닌 페르시아의 일개 피정복지였음을 분명히 보여주는 단어이다(11:3). 아울러 이 단어는 유다가 인접 지역에 소속되었다가 그나마 그 자체의 행정단위로 새롭게 인정받은 상태임을 시사한다(Kidnr). 한편 `각기 본성'은 문자적으로 `각각의 그의 성읍'이란 의미이다. , 원래 자신들의 조상들이 살았던 곳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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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절에 언급되어 있는 인물들은 유대인 공동체에서 지도적 위치에 있었던 자들인 듯하다(Fensham, 7:7).

 스룹바벨 - 이 이름의 의미는 `바벨론의 자손', 혹은 `바벨론에서 태어났다'이다. 이 사람은 `스알디엘'의 아들이며(3:2; 1:1). 여호야긴 왕의 손자(1:12; 3:27)이다. 역대상 3:19에서 그가 `스알디엘'의 형제인 `브다야' 의 아들로 언급되고 있는 까닭은, `스알디엘'이 후사없이 죽은 관계로 그의 동생인 `브다야'가 고대 히브리인들의 법을 좇아서 형의 아내와 결혼하여 `스룹바벨'을 낳은 때문이었을 것이다(25:5-10). 이에 따라 `스룹바벨'은 실제적으로는 역대상 3:19의 언급처럼 `브다야'의 아들이지만, 법적으로는 `스알디엘'의 아들이 되는 셈이다.

 

 예수아 - `여호수아'라는 이름의 보다 후기 형태로서(Schultz), `여호수아' 라는 이름과 마찬가지로 `여호와는 구원이시라'는 의미이다. 이 사람은 스룹바벨과 함께 성전 건축을 완료하는 데 큰 기여를 하였다(5:2). 그의 중조부는 대제사장 스라야로서(대상 6:14). 느부갓네살에 의해서 살해당하였다(왕하 25:18-21). 한편 `예수아'의 부친은 바벨론으로 끌려간 `여호사닥'이다(3:2; 대상 6:15; 1:1).

 

 느헤미야 - `여호와께서 불쌍히 여기심'이란 의미이다. 그러나 이 사람은 약 한 세기 후에 활약했던 `느헤미야'와는 별개의 인물이다(3:16; 7:7)

 스라야 - `여호와께서 주관자가 되셨다' 라는 의미이다. 7:7 에서는 `아사랴'로 나온다.

 르엘라야 - 7:7 에서는 `여호와께서 천둥을 치셨다'라는 의미를 갖는(Rudolph) `라아먀'로 나온다. `르엘라야'라는 이름의 의미는 밝혀져 있지 않다.

 모르드개 - 바벨론의 주신(主神) `말둑'에서 기원한 바벨론식 이름이다. 에스더의 삼촌 모르드개(2:5)와는 동명 이인(同名異人)이다.

  삭개 자손 - `삭개'`여호와께서 기억하셨다'는 뜻의 이름으로서 `스가랴'의 축약형인 듯하다. 바로 이 `삭개'는 신약 시대의 `삭개오'라는 이름으로 변천하였다(마카비하 10:19; 19:2). 이 이름은 느 7:14에도 나온다. 특히 외경 에스드라상 5:12에도 나오는데, 거기서는 `코르베'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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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들레헴 사람 - `베들레헴'`떡의 집'이라는 의미이며 이 성읍은 유다 땅에 위치해 있다. 따라서 `베들레헴 사람'은 유다 지파의 후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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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나돗 사람 - `아나돗'은 베냐민 지파의 지경 중에서 레위 사람들을 위하여 할당된 6개 성읍 중의 하나였다(21:18). `아나돗'이라는 지명은 가나안 족속의 여신 `아나드'(Anath)에서 기원한 것으로 추측된다. 따라서 이는 이 성읍에서 `아나드'여신에 대한 숭배가 성했었음을 암시한다. 또한 이 곳은 예레미야 선지자의 고향이기도 하다(1:1). 그 위치는 예루살렘 북쪽 약 4.8Km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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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스마웻 자손 - `아스마웽'`죽음은 강하다'란 뜻이다. 예루살렘 북동쪽 약 2.5Km 지점의 베냐민 직경에 위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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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랴다림과 그비라와 브에롯 자손 - `기랴다림'`여러 성읍 중의 성읍'의 의미로서, 베냐민 지경의 남단에 위치한 `기럇여아림'을 말한다(삼상 6:21; 7:1). `그비라'`마을' 혹은 `작은 촌락'의 의미로서 그 위치는 기브온 서쪽 약 5Km지점이며, 베냐민 지파의 땅이다(9:17). 그리고 `브에롯'`우물들'이라는 뜻으로서, 그 위치는 기브온 남쪽 약 2.5Km 지점이다(Aharo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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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마와 게바 자손 - `라마'`높은 곳'이라는 의미이다. 그 위치는 예루살렘 북쪽 약 8.8Km이며, 베냐민 지파에게 할당된 성읍이었다(18:25). 그리고 이곳은 초기 이스라엘의 선지자 사무엘의 활동 중심지였다(삼상 7:16,17; 19:18-24). 한편 `게바'`반석'이라는 의미이다. 이곳은 베냐민 지파에게 할당된 성읍으로서(18:24,28) 예루살렘 북쪽 약 11 Km 그리고 기브아 북동쪽 약 4.8Km 지점에 위치했다.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분열된 직후 남국의 아사왕은 라마에서 가져온 돌로 이곳에 요새를 건설하기도 하였었다(왕상 15:22; 대하 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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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믹마스 사람 - `믹마스'`감추어진'이란 뜻으로서 그 위치는 벧엘 동남쪽 약 9.6Km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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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벧엘과 아이 사람 - `벧엘'`하나님의 집'이라는 의미이다(28:19,22). 이곳은 예루살렘 북쪽 약 19.2 Km 지점에 위치하였다. 그리고 그곳의 언덕 정상 가까이에는 매우 좋은 샘이 있었기 때문에,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훌륭한 거주지로 각광을 받았다. 한편, `아이'`무더기' 혹은 `폐허'의 의미로서 그 위치는 벧엘 동남쪽 약 3.2 Km 지점이다(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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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보 자손 - `느보'`'의 다른 지명이다. 우리가 이같이 봐야되는 까닭은 본 문단(21-35), 특히 24-35절 베냐민 지경에 속한 성읍들만을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느보'를 베냐민 땅에 있었던 제사장의 성읍 `'으로 본다(삼상 21:1). 이 성읍의 위치는 예루살렘 북쪽 4.2Km 지점이고 그 의미는 `번창해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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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비스 자손 - `막비스'는 그 지명의 뜻이나 그 성읍의 위치가 모두 불분명하다. 다만 베냐민 지파에 속했던 성읍 정도로만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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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엘람 자손 - 이것은 7절의 `엘람 자손'과 동일시 되어 왔다. 그 까닭은 양쪽의 수효가 동일하게 1,254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같이 봐야 될 더 분명한 근거는 없다. 여기서 저자가 `다른'이라는 형용사를 특별히 사용한 까닭은, 7절의 `엘람'이라는 `인명'과 구별하려는 의도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성읍의 정확한 위치는 알려져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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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드와 하딧과 오노 자손 - `로드'는 샤론 평야의 남쪽이며, 욥바 동남쪽 약 18Km지점에 위치해 있다. 한편, `하딧'`로드' 북동쪽 약 6.2Km에 위치해 있고, `오노'`로드'의 북서쪽 약 10.8Km 지점에 위치해 있다. 한편이 세 성읍들의 지명이 갖는 의미들에 대해서는 알려져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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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리고 자손 - `여리고'`향기의 도시', `()의 고을' 그리고 `종려 나무의 성'등의 의미이다. 올브라이트(Albright) 교수는 그중에서 `달의 고을' 을 맞는 것으로 보고 `여리고'라는 지명을 고대 셈족의 월신(月神), 야리(Yarih) 숭배와 관련시킨다. 한편 그 위치는 예루살렘 북동쪽 약 27Km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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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나아 자손 - `스나아'의 의미는 `가시가 많은' 이다. 그 위치는 여리고 근방일 것으로 추측된다. 한편, `스나아 자손'은 후에 예루살렘 성벽의 재건에 조력하였다(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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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사장들 - 비록 이들은 레위 지파에 속하는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이 담당하는 직분상, 그리고 그들의 특별한 신분상 따로 구별되어 언급되고 있다.

 

 예수아의 집 여다야 자손 - 이것은 스룹바벨과 함께 바벨론에서 돌아온 대제사장 예수아가 속했던 일족이었다. 여기의 `예수아의 집'`여다야 자손' 이 대제사장의 가문임을 밝히기 위한 특별한 언급이다. 아울러 `예수아의 집' `여다야 자손'이라는 복합적 명칭은, 포로로 끌려가기 전의 바로 그 대제사장 가문이 포로 후의 대제사장 예수아의 혈통적 뿌리였음을 강력히 시사한다(Fensham). 한편, `여다야'`하나님이 아셨다'의 의미로서 그는 다윗에 의해서 두번째로 제사장에 임명된 사람이다(대상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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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멜 자손 - `임멜'`어린 양'의 의미이다. 그는 다윗에 의하여 당시 24반차로 편성된 제사장 직책 중 16번째의 반차에 배정되었다. 그 이래로 그는 그 반차에 속하는 제사장들의 선조가 되었다. 포로 귀환 후 그의 후손인 `임멜자손' `하나니' `스바댜'는 이방 여인을 아내로 취했다가 에스라의 개혁 조처에 따라 그녀들을 다시 내쫓기도 하였다(10:19,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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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스훌 자손 - `바스훌' 은 분명치는 않으나, 애굽어에서 파생된 이름으로서 `호루스(Horus) 신의 몫'이라는 의미이다. 여기의 이 `바스훌'은 제사장 `임멜'의 아들로만 명시되어 있고, 역대상의 제사장들 명단에는 언급되지 않는다. 따라서 `바스훌 자손'은 독립된 가문은 아니었으나, 포로 귀환 후 그 당시의 형편상 별도의 반차에 배정되었으리라 추측된다(Keil). 여기의 이 `바스훌 자손' 중의 일부도 다른 자손들 처럼 이방 여인을 취하는 죄를 범하기도 하였다. 한편, 이들의 조상인 `바스훌'은 예레미야의 예언을 듣고 그를 때리며 심지어 가두기까지 하였던 인물이었다. 예레미야는, 그가 바벨론에 끌려가서 거기서 죽게 될 것이라고 예언한 바있다(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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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림 자손 - `하림'`바친' 혹은 `봉헌된'의 의미가 있다. `하림'은 다윗에 의하여 세 번째의 반차에 배정된 제사장이었다(대상 24:8). 이 사람의 후손도 에스라 시절에 이방 여인을 아내로 취하는 우()를 범했다(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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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위 사람 - 모세 율법에 따르면 이들은 원래 일정한 기업올 받지 못한 채 다른 지파들중에 흩어져 살아야만 했다(35:2-7). 그러나 이스라엘이 남과 북으로 분열되자, 북쪽 땅에 살던 레위인들이 남쪽 유다로 넘어왔고(대하 11:16), 이에따라 레위 사람들 전체가 바벨론으로 끌려가게 되었다. 만일 북국에 살던 레위인들이 남쪽으로 넘어오지 않았다면, 그들은 북국의 멸망과 함께 앗수르로 끌려가서 다시 본토로 돌아오지도 못했을 것이다(왕하 17:23).

 

 호다위야 자손 - `호다위야' `여호와는 뛰어나시다' 라는 의미를 갖는`호드야'(7:43) 와 동일 인물이다.

 

 예수아와 갓미엘 자손 - 이들은 `호다위야 자손'에 속하는 두 자손들이다. 여기서 `예수아'는 추측컨대 히스기야 당시에 십일조를 관장했던 사람이었던 것 같다(대하 31:15). 그 이름의 의미는 `여호와는 구원이시다'이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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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래하는...아삽 자손 - 노래하는 것도 레위인의 직무 중의 하나였다(대상 25:1-7). 따라서 `아삽 자손'은 레위인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본서의 저자가 여기서 `아삽 자손'을 별도로 구분시켜 언급한 까닭은 그 직분의 특수성 때문이었다. 한편, `아삽'`모으는 자' 혹은 `수집자'란 뜻이다. 이 사람은 다윗과 솔로몬 시절에 찬양의 제사를 주관하였고(대상 16:4, 5, 7, 37), 많은 시편을 짓는 등 이스라엘의 음악 발전에 현저한 공을 세운 사람이었다. 또한 그는 네 아들과 함께 성전 봉헌식에 관계하기도 하였다(대하 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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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룸 - `보상된' 혹은 `보상'의 의미이다. 이 사람은 렘 35:4에 언급되어 있는 `살룸'과 동일 인물이다. 그는 고레의 아들이었으며, 그의 가족들도 함께 문지기의 일을 하였다

 

 느디님 사람들 - `느디님'`주어진 자들'이란 의미이다. 영어개역 성경(RSV)은 이를 `성전 수종자'(temple servant)로 번역하였다. 이들은 혈통적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니었음이 분명하다. 많은 학자들은, 이들이 전쟁 포로의 후예들이었을 것이라고 판단한다(31:25-47). 한편 여호수아시대에 이스라엘에 의해서 멸망받기를 두려워한 나머지 여호수아를 기만했던 기브온 족속들은 나무 패며 물긷는 자들이 되었다(9:23-27). `주어진 자들'이라는 의미인 `느디님' 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까닭은, 레위인들이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 하나님께 완전히 드려졌듯이 (8:16), 이들도 레위인들을 돕도록 하기 위하여 그 레위인들에게 드려졌기 때문이었을 것이다(8:20).

 

시하 자손 - 이들도 혈통상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다. 우리가 이 같이 볼수 있는 까닭은 이 이름이 이스라엘에서는 발견되지 않으며, 그 주변처, 즉 애굽이나 아람 계통 민족에게서 어느 정도 볼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하수바 자손 - `하수바'`날씬'의 의미를 갖는 아랍어 풍()의 이름이다. 따라서 이 사람도 혈통상으로는 이스라엘 사람이 아닌 듯하다

 악굽 자손 - `악굽'이라는 이름은 레위 사람들 가운데서도 발견된다(42). 이것은 이 `악굽 자손'이 문지기의 직분을 수행하던 `악굽' 가문의 레위인들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었으리라는 추측을 가능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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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므우님 자손 - `므우님'은 에돔의 동쪽 그리고 사해의 동남쪽에 거주하던 소수 민족의 명칭이었다. 따라서 여기의 `므우님'은 그 소수 민족 출신의 이스라엘인임이 분명하다. 그 이름의 의미는 `거주'이다. 추측컨대 이들은 웃시야 왕의 정복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의 포로로 끌려온 자들일 것이다(Schultz, 대하 26:7).

 느부심 자손 - `느부심'은 이스마엘 족속의 한 분파였던 `나비스 족'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2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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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로몬의 신복의 자손 - 이들의 일부는 틀림없이 가나안 원주민들의 후예일 것이다. 솔로몬이 그곳 원주민을 자신의 역군으로 삼은 바있기 때문이다(왕상 9:20, 21). 또한 `솔로몬의 신복의 자손'들 중 상당수는, 솔로몬의 군대에 의하여 포로로 잡혀온자들의 후손들이었을 것이다(Fensham, Brockington). 이러한 견해는, 앗수르 왕 산헤립(B.C. 705-681)의 경우에서도 볼 수 있듯이, 강대국의 국왕이 타민족을 포로로 잡아다가 자신 혹은 자국의 신()에게 봉사토록 하는 것은 고대 중근동의 일반적 풍습이었다는 사실(Mendelsohn, Slavery in the Ancient Near East ; Meyer) 에 의해서도 뒷받침된다. 고고학적 발견에 따르면, 산헤립은 타민족과의 전투 중 한꺼번에 41 명을 붙잡아 가서 그들을 자신의 신 `자바바'(Zababa)에게 봉사토록 하였다고 한다.

 

 델멜라와...임멜에서 올라온 자 - 이들도 역시 세스바살의 영도 하에 바벨론에서 함께 귀환한 자들이었다. `델멜라'는 현재의 `프톨레마이스'`텔마'를 말하는 듯하다. 이곳은 페르시아만 근처에 있으며 심각한 염분(鹽分) 피해로 인하여 현재는 폐허로 변해 있다. 그 지명의 뜻은 `소금의 언덕'이다. 한편, `임멜' `어린 양' 이란 의미이다. 그러나 그곳의 정확한 위치에 대해서는 밝혀져 있지 않다.

 

 그 종족과 보계가 이스라엘에 속하였는지 - 순수한 이스라엘 백성인지의 여부를 밝히는것은 매우 중요했다. 만일 이스라엘 혈통이 아닌 무리가 이스라엘 공동체에 들어올 경우,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배교(背敎)의 자리에 들어서도록 만들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었다. 하나님께서 모세 율법을 통하여 이방인들과의 교제를 금하신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었다(34:12-16; 고후 6:14).

 

 증거할 수 없으니 - 여기의 `증거할'(, 하기드)`고하다' 혹은 `보이다'의 의미를 갖는 동사 `나가드'의 사역형으로서, 본질적인 문제를 분명히 풀어서 밝히는 행동을 가리킨다(삼상 8:18; 33:23; 3:8; 6:8). 이때 델멜라 등에서 팔레스틴으로 귀환한 자들이, 자신들이 순수한 이스라엘 백성임을 증명치 못한 까닭은 (1)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살아오긴 했으나 실재로는 혈통상 이방인들이거나,(2) 실제는 이스라엘 백성이지만 자신들의 혈통이 어디에 속하는지를 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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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나와 있는 자손들은 - `이스라엘 백성의 명수(名數)'에 포함되지 않았다(2-58).

 도비야 - `여호와는 선하시다'란 뜻이다. 여기서 `도비야 자손'B.C. 586년의 예루살렘 몰락 이후 암몬으로 도망쳤던 유대인으로 추측되기도 한다(41:15). 그러나 그 사실이 입증되지 못한 까닭에, `이스라엘 백성의 명수'(2)에 포함되지 못한 것이다.

 

 제사장 중에는 - 앞의 언급(59, 60)이 일반 서민들의 경우였던 것과 약간 대조된다. 본절에 언급된 자들은 스스로가 제사장의 후예들임을 주장하였다.

 

 바르실래 자손 - `바르실래'`강철'이란 뜻이다. `바르실래'라는 인물은 압살롬의 반역을 피하여 도피하던 다윗을 정성스럽게 도와준 사례가 있다 (삼하 17:27-29). 그러나 본절의 `바르실래'는 그 사람의 사위이다. 그의 본래 이름은 알길이 없으나 그는 길르앗 출신의 `바르실래'의 딸과 결혼하면서, 장인의 이름을 자신의 이름으로 삼았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는 바르실래의 유산을 물려 받았을 것이다(27:4;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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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사람들이 - 61절에 나오는 `하바야 자손', `학고스 자손' 그리고 `바르실래 자손'들을 가리킨다.

 

 보계 중에서...이름을 찾아도 얻지 못한 고로 - 세 자손들이 제사장의 직분을 행치 못하게 되었던 결정적 원인이다. 비록 그들은, 제사장들의 후손임을 주장했으나 그것을 문서상으로 증명하지 못함으로써, 자신의 성직을 박탈 당하고 말았다. 한편, `보계'(, 함미트야하심)는 문서화된 족보를 가리킨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있어서 족보 기록은 한 인간의 혈통적 뿌리를 밝혀 준다는 점에서, 매우 귀중히 여겨졌었다(대상 5:17). 한편 `이름'(, 케타밤)`자신들에 대한 기록'의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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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백이 저희에게 명하여 - 혹자는 `방백'에 해당하는 `티르솨타'가 세스바살의 페르시아식 이름이라고 생각한다(Rawlinson). 그러나 이는 무리한 추측이다. 왜냐하면 (1) `티르솨타'라는 단어 앞에는 정관사 `'가 붙어 있으며,(2) 또한 이 단어는 느혜미야에게도 적응되었기 때문이다(8:9; 10:1). 그러므로 이 `티르솨타'는 페르시아 정부에 의해 임명된 고위 직책의 소유자를 뜻한다고 봐야할 것이다(Fensham). 그렇다면 결국 이 사람은 목백 세스바살, 곧 스룹바벨을 가리킨다.

 

 우림과 둠밈을 가진 제사장이 일어나기 - 그 당시에도 `예수아'라는 대제사장이 있었다(2). 다만 여기서는 그 당시에 우림과 둠밈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물어볼 수있는 여건이 조성되어 있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추측컨대 `우림과 둠밈'의 판결 수단이 부착된 에봇(삼상 23:6, 9, 10)은 바벨론에 의하여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고, 또한 제사장들이 포로로 잡혀가는 과정에서 없어져 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이에 따라 `세스바살'은 어떻게 해서든지 `우림과 둠밈'의 판결 수단을 다시 찾으려고 노력한 듯하다. 그런 후에 `세스바살'`바르실래 자손' 등의 혈퉁적 정통성을 하나님께 물어보고자 했을 것이다. 그러나 연대기적으로 본서 이후의 역사를 다루고 있는 성경 어디에서도 `우림과 둠밈'을 언급지 않는다는 점에서, 세스바살의 시도는 무위(無爲)로 끝났으리라 본다.

 

 지성물을 먹지 말라 - `지성물'(, 미코데쉬 하코다쉼)`가장 거룩한 중에서도 가장 거룩한 것'의 의미이다. 이것은 희생 제사후에 제사장들에게 돌아가는 몫을 가리킨다(2:3, 10; 7:33, 34). 이는 특별히 구별된 거룩한 것이기 때문에 거룩히 구별된 제사장들만이 먹을 수 있었다. 따라서 본문은 단순히 제물의 분배에서 제외되는 것만을 의미치 않으며 제사장 역할 전체를 수행하지 말라는 의미로 받아 들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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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중의 합계...사만 이천 삼백 육십명 - 본절의 숫자는 3-60 절에 언급된 모든 숫자의 합인 29,818 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이 같은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 많은 견해들이 제시되어 왔다. (1) 3-60 절에서는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 사람만을 다루었으나 합계를 낼 때는 그들과 함께 귀환한 북쪽의 열 지파에 속하는 자손들의 숫자까지 포함시켰다는 견해(Seder, Olam, Raschi, Ushei), (2) 3-60 절에서는 20세 이상의 성년 남자만을 나열하였으나 합계에서는 12세 이상의 모든 남자를 집계하였다는 견해(Mich). (3) 3-60 절에서는 20세 이상의 성년 남자만을 나열하였으나 합계에서는 어린이 및 부녀자들까지 집계했다는 견해(Williamson), (4) 합계 숫자는 느헤미야서의 그것(7:66)과 동일하다는 점에서 정확한 것으로 보고 다만 3-60 절에 나열된 숫자 중에서 필사자의 오류가 있었을 것으로 보는 견해(Keil, Schultz) 등이 있다. 그러나 이 어느것 중에서도 만족할 만한 것은 발견되지 않는다(Fensham).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회중'(, 카할)이라는 단어가 성년 남자는 물론 여자까지 포함할 수 있다는 점에서 (3)의 견해가 가장 무난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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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외에 노비가 칠천 삼백 삼십 칠 명 - `노비'(, 아브데이헴)는 문자적으로는 `그들의 노예들'이다. 이들은 가축 등과 같은 재산과 함께 언급된다는 점에서, 위의 42,360명에 안들어감이 분명하다(Williamson). 한편 `칠천 삼백 삼십 칠명'은 이스라엘 백성의 총수 42,360명에 비하여 대단한 숫자이다. 전체 인구의 약1/6 에 달하는 노비들이 함께 귀환했다는 사실은, 유대인들이 노비들에 대해 비교적 관대 하였으리라는 추측을 가능케 한다(24:14, 15 참조).

 

 노래하는 남녀 - 이들에 대해서는 (1) 노래하는 레위인들의 부족을 메꾸기 위해 고용되어 성전에서 레위인과 함께 여호와께 찬양했던 성가대라고 하는 해석(Rawlinson),(2) 성전 예배와 관계된 노래를 하는 자라기 보다는 부유한 자들이 흥을 돋우기 위하여 고용한 자들이라는 해석(Williamson, Schultz, Keil) 등이 제시되었다. 그러나 첫째, 이들은 제의적(祭儀的) 공동체의 수효에 포함되지 않았으며(64) 둘째, 부자들이 오락을 즐기기 위해서 노래하는 남,녀를 고용하는 것이 고대 중근동의 관습(2:8)이었다는 점에서 둘째 견해가 보다 타당성이 있다. 만일 그렇다면 포로 귀환 직후의 이스라엘 공동체의 경제적 형편은 꽤 괜찮았음이 분명하다. 이 같은 상황은 약19년 후에 학개 선지자가 활동하던 시기의 그것과는 매우 대조적이다(1:6). 이 같은 상황악화는 끊임없이 계속되어진 극심한 천재(天災)때문이었을 것이다(1:10,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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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팔레스틴으로의 귀향 길은 말이 다니기에 적절한 평원 지대였으므로 많은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주로 산악 지대로 이루어진 팔레스틴에서 사용 되기에는 적절치 못했다(6:12).

 노새 - 번식력은 전혀 없으나 강한 적응성 때문에 팔레스틴과 같은 산악 지대에서도 짐 운반용으로 매우 적절한 가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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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대 - 팔레스틴 땅 안에서는 잘 사용되지 않은 짐승이나 팔레스틴으로 돌아오는 귀로에 짐 운반용으로 유용하게 사용되었을 것이다.

 나귀 - 귀인(貴人)들에 의해서 애용되었다(삼상 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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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루살렘 여호와의 전 터에 이르러 - `여호와의 전'B.C 586년 바벨론 시위대 장관 느부사라단에 의해 파괴되었다(왕하 25:10; 대하 36:19). 그러나 이것은 건축 때에 사용된 재료가 특별한 관계로(왕상 5:17), 비록 파괴된지 약 50 년이 지났지만 그 흔적이 역력했을 것이다. 그때 몇몇 족장들은 많은 다른 무리들보다 앞서서 성전 터에 도착한 듯하다.

 

 하나님의 전을 그곳에 다시 건축하려고 - 이는 유대인들이 본토로 돌아온 가장 중요한 목적과 합치된다(1:2, 3). 한편 `그곳'(1) 아브라함이 자신의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번제로 드리려 했던 모리아 땅(22:2; 대하 3:1)이었으며, (2) 다윗이 `인구 조사'라는 결정적 실수(대상 21:1)로 인한 하나님의 진노를 면하기 위해서 하나님께 제사 드렸던 오르난의 타작 마당(대상 21:18-22)과 동일 장소로서, 하나님에 의해 성전의 건축지로 지정된 곳이었다(대상 21:18, 19; 22:1).

 

 예물을 즐거이 드리되 -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막의 건축을 위해서 많은 재물을 헌납한 것(35:5, 21-29)과 동일한 모습이다. 뿐만 아니라 `예물을 즐거이 드리되'(, 나다브)는 성막 건축을 위한 헌물을 `자원'하는 마음으로 드렸던 사실을 나타내는 말과(36:21) 동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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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량대로(, 케코함) - `노력하다'의 의미를 갖는 동사 `카하흐'에서 파생된 부사로서 자신이 바칠 수 있는 최대한의 분량 만큼을 가리킨다. 이 같은 자세는, 신약시대에 어려운 형편에 처했던 유대인들을 돕기 위해서 연보를 한 마게도냐 교인들의 헌금 원리와 동일하다(고후 8:3).

 

 역사하는 곳간에 드리니 - `역사'(, 멜라카)`봉사하다' 혹은 `공급하다'의 의미인 `라아크'에서 파생된 명사로서 `', `사업', `수고', `'()등의 여러 가지 뜻이 있다. 한편 `곳간'(, 오차르)`창고지기를 임명하다'의 의미를 갖는 `아차르'에서 파생된 명사로서, 단순히 `재물 창고' 란뜻이 있다. 따라서 `역사하는 곳간'`성전 건축 사업의 수행을 위해 필요한 재화를 모아두는 창고'의 의미로 이해된다.

 

 금이 육만 일천 다릭 - 원래 `다릭'은 고대 페르시아에서 금의 무게를 잴 때 통용된 중량의 단위였으며 훗날에는 화폐의 단위로 쓰였다. 금과 1 다릭이 영화(英貨) 11 파운드 정도였다는 사실에 근거하여, `육만 일천 다릭'은 약 671,000 파운드, 즉 한화(韓貨)로 대략 67천만 원쯤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Pulpit Commentary).

 은이 오천 마네 - `마네' 는 바벨론에서 주조된 은화로, 은화 1 마네는 약 34 달러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오천 마네'는 미화(美貨)로 약 170,000 달러 정도 된다.

 제사장의 옷이 일백 벌 - 이것은 특별히 지어 바쳤을 것이다(삼상 2:19). 한편 `일백 벌'은 느헤미야서의 `육십 칠 벌'(7:72) 과 차이가 있다. 이는 본서의 기록자 에스라가 대략의 숫자만을 기록했기 때문일 것이다.

) -->   제사장들...느디님 사람들이 그 본성들에 거하고 - `제사장...니디님 사람들'은 모두 성전 봉사와 직간접으로 관련되어 있는 자들이었다. 따라서 이들은 `예루살렘'을 본성으로 삼아야 했다. 그렇다면 여기의 `본성'은 예루살렘과 그 주변 마을을 가리킨다.

 백성 몇 - 제사장 및 레위인과 대조되는 서민들로서 예루살렘이 고향인 백성을 뜻한다(Fensham).

 노래하는 자들 - 레위인의 한 부류인 아삽 자손올 가리킨다(41).

 문지기들 - 이들도 레위인의 한 분파 자손들이다(42).  이스라엘 무리 - 이들은 남쪽 지파와 함께 돌아왔을 북쪽 지파만을 의미치 않는다. 이들은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백성들 이외의 나머지 전부를 가리킬 것이다(2; 3:1; 6:16, 17; 7:13; 8:29, 35)

 그 본성 들에 거하였느니라 - 예루살렘이 고향인 자들과 성전 봉사에 관계하는 자들은 예루살렘에, 그 나머지 백성들도 자신들의 고향 땅으로 흩어졌음을 시사한다. 한편 `거하였느니라'(, 야쉬브)`쉬다' 혹은 `거주하다'의 의미로서, 삶의 터전으로서 쉼을 얻으며 정착하는 것을 말한다(20:15; 21:2; 삼하 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