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에스라(구속사적해석)

에스라서8장,시작은 금식으로

호리홀리 2016. 1. 12. 10:05

14절까지는 에스라와 함께 귀환한 제2차 귀환의 수효이다. 4-14절에 나오는 가족명들은 '요압 자손'을 제외하고는 2:3-15에 모두 나온다. , 본문의 명단은 두 명의 제사장 명단과 다윗의 후손이름으로 시작하는 특징을 보여준다(2). 반면에 2장에서는 제사장 가계가 나중에 언급된다.

 보계( 히트야흐삼) - '세다' 혹은 '등록하다'의 뜻이 있는 동사 '야하스'의 재귀적 강의형 부정사이다. 따라서 '스스로 등록한 것'이란 의미이다.

) --> 

 비느하스 - 아론의 손자요(대상 6:3, 4) 엘르아살의 아들(대상 6:4)로서, 아론의 대제사장직을 아비 엘르아살을 거쳐서 인계받았던 인물이다(7:5). 따라서 이 사람의 자손은 보다 정통성있는 제사장 가문으로 자처할 수 있었다.

 게르솜 - '피난처'의 뜻이다. 이 사람은 한 제사장 가문의 우두머리였던 것같다.

 이다말 - 아론의 말째 아들이다(대상 6:3). 그의 후손은 정통성에 있어서 '비느하스' 가문보다는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다말'의 후손인 '엘리'는 대제사장 및 사사로서 그 명성을 날렸다(삼상 1:3). 그러나 엘리의 두 아들의 범죄로 말미암아 다윗과 솔로몬 초기의 아비아달을 끝으로 그 가문에서는 더 이상 대제사장이 나오지 못했다(왕상 2:26, 27, 35).

 다니엘 - '하나님의 재판관'의 뜻이다. 다니엘서의 저자와는 상관이 없다.

 다윗 자손 - 유다 왕가를 형성했던 사람들을 가리킨다. 이들 중 제1차로 귀환했던 사람 가운데 대표적 인물로는 스룹바벨이었다(1:8 ; 2:2).

 핫두스 - 이 사람은 대상 3:19-22에 따르면 스룹바벨의 4대 손이다. 만일 스룹바벨이 B.C. 560년 경에 태어났다고 하고 한 세대를 약 25년으로 잡는다면, 핫두스는 스룹바벨로부터 4대째이므로 그가 B.C. 458년에 에스라와 함께 왔다는 사실은 매우 자연스럽다(Fensham).

) --> 

 일백 오십 명 - 바로스 자손 중 바벨론 생활을 청산하고 유다로 귀환하려고 자청한자의 숫자이다.

) --> 

 슬로밋 자손 -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것을 '바니의 자손 슬로밋'으로 본다. 그 근거는 (1) 칠십인역이 이 같은 견해를 지지하며, (2) 최초 귀환자들 중에 '바니 자손'이 있으며(2:10), (3) 4-12절의 귀환자 명단이 모두 조상의 이름, 가족의 대표 이름, 그대표의 아버지 이름 등 세 요소가 함께 나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편 '슬로밋''평화로움'의 뜻이다.

 

나중 된 자(, '아하로님') - 이것은 '오래 머물다'의 뜻을 갖는 동사 '아하르'에서 파생된 단어로서, 뒤에 처져 남아 있었던 사람들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여기의 '나중 된 자'는 아도니감 자손에 속한 가족들 중 마지막으로 에스라와 함께 팔레스틴으로 귀환한 가족의 우두머리를 가리킬 것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아도니감 자손은 한 가족도 빠짐없이 전체가 팔레스틴으로 귀환했던 셈이다(Fensham).

 

아하와로 흐르는 강가 - 이것은 동쪽으로부터 흘러와서 유프라테스 강으로 들어가던 지류(支流)이다. 이 지류가 유프라테스 강과 만나는 곳에 '아하와'란 마을이 있었다. 현재는 그 강이 '이스 강'이란 명칭으로 불리워진다(Rawlinson). 아무튼 이 '강가'는 유대인이 많이 모여살고 있었던 '닙불'과 매우 가까운 곳이었을 것이 분명하다.

 삼 일 동안 장막에 유()하며 - 이같은 모습은 팔레스틴으로 귀환하려던 사람들이 광야 여행길에 충분히 대비하고 있었음을 잘 보여준다. 한편, 느헤미야도 예루살렘에 도착한 지 '사흘'이 지난 후에 성벽 시찰에 나섰다(2:11).

 레위 자손이...없는지라 - 레위 자손들의 업무가 너무도 고통스러우리만큼 과중했기 때문에 그들은 고국행을 포기했을 것이다(Edwin Yamauchi). 1차 귀환 때의 귀환자 명단에는 상당수의 레위인들이 포함되어 있었다(2:40-42). 그렇다면 여기서 에스라가 레위인들을 급히 데려오도록 한 것은 효율적인 성전 봉사에 대한 고려와 아울러 귀환 대열에 레위인들을 소수이나마 참여시킴으로써 어떤 상징적 의의를 부여하고자 함이었다고도 추측할 수 있다(Williamson).

) --> 

 모든 족장 - 원문에는 '모든'이라는 말이 없다. 한편, 본절의 '족장'은 적절치 못한 번역인 듯하다. 물론 문자적으로만 본다면 그런 번역이 가능하기는 하다. 그렇지만 이 '족장'들의 명단을 보면 이들이 결코 가족들의 대표가 아님을 분명히 알 수 있다(2-14). 따라서 여기의 '족장'은 다만 레위인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 만큼 영향력 있는 인물들, '지도자'로 보아야 한다(Fensham). 물론 이들 중에 한 가족의 우두머리가 포함되어 있었을 가능성은 배제될 수 없다(13). 

 

 가시뱌 지방 - 여기의 '가시뱌'는 혹자에 의해서 티그리스 강 유역의 '크테시폰'(Ktesiphon)으로 주장된다(Brockington). 그런데 이 '가시뱌''은장색'(銀匠色)의 뜻을 갖는 어근에서 파생된 단어이다(Kraeling). 그렇다면 이 고장은 원래 은세공(銀細工)이 발달했던 곳으로 추측될 만하다. 한편, '지방'(, 하마콤)은 문자적으로 '그 장소'의 뜻이다. 이것은 (1) 단어 앞에 ''의 뜻을 갖는 정관사 ''가 붙어있다는 사실, (2) '마콤'이란 단어가 구약 성경에서는 하나님께 예배드려지던 '성소'를 가리킬 때 사용되는 단어(12:5, 11 ; 14:23 ; 왕상 8:29 ; 7:3, 6, 7)라는 사실 등 때문에 특별한 의미를 갖는 말로서 받아들여지고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1) 마치 애굽 땅 엘레판틴(Elephantine)에 있었던 것과 같이 바벨론에 끌려갔던 일단의 유대인들이 세웠을 가상의 '성소'(Michaeli, Williamson), (2) 다만 유대인들의 상당수가 주거하던 곳(Pelaia) 등이라고 하는 두 견해가 있다. 그러나 우리는 첫째, 바벨론에서는 애굽의 엘레판틴과는 달리 유대인들이 별도의 성전을 지녔다는 하등의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으며 둘째, 에스라의 명령을 받은 자들이 거기서 많은 사람을 데리고 왔다는 사실(18-20) 등으로 볼 때 두 견해 중 후자의 것이 보다 타당성이 있어 보인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간과치 말아야 할 것은, '마콤'이란 단어가 유대 문헌에서는 율법을 가르치는 곳으로서의 회당을 가리킬 때 사용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본문의 '가시뱌'에는 유대인들에게 율법을 지도하며 간단한 예배 의식이 거행되던 기관이 있었다는 추측도 가능하다(본단락 주제 강해, '회당의 기원' 참조).

 

 그곳 족장 잇도 - 여기의 '잇도'는 학개의 조상 '잇도'와는 뜻이 전혀 다른 이름이다. 그 의미는 '고상한' 혹은 '강력한'이다. 이 사람은 '가시뱌'에서는 상당한 영향력을 가졌던 인물이었음이 분명하다.

 

 잇도와 그 형제...느디님 사람 - 여기에 대해서는 (1) '그 형제'(,아히우)라는 단어의 후미에 있는 '와우'가 원문상으로 바로 다음에 나오는 '느디님 사람들'의 초두에 놓여져야 바른 것으로 보고 '나의 형제 잇도와 느디님 사람들'로 해석해야 한다는 견해(Torrey), (2) '느디님 사람'을 또다른 의미인 '임명된 자들'인 것으로 보고 '잇도와 그 형제, 즉 임명된 자들'이라고해석해야 된다는 견해(Williamson), (3) '잇도'는 레위인이었지만 동일하게 성전 봉사를 담당하는 직분자들이라는 점에서 '느디님 사람'들에게 '형제'라는 호칭을 적용했다는 견해(Keil), (4) '잇도'를 본문 그대로 '느디님 사람'으로 보아야 한다는 견해(Rawlinson) 등으로 구분된다. 그렇지만 우리는 첫째, '느디님 사람'은 원래 이방 출신의 성전 봉사자로서 레위인들에 대해서 별다른 영향력을 지닐 수 없었으며 둘째, 18절은 '잇도와 그 형제'들이 막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었음을 강력히 시사하고 있으며 셋째, 에스라가 '잇도'를 신분 및 혈통이 다른 '느디님 사람'들과 '형제'라고 불렀을 가능성이 적은 점 등에서 볼 때, 위의 네 견해 중 두 번째의 것이 가장 무난하리라 본다.

 

 수종들 자(, 메솨르팀) - '섬기다', '봉사하다'의 뜻을 갖는 '솨라트'의 분사로서, 성전 제사와 관련된 직무의 수행자를 가리키는 말이다(대상 16:4 ; 27:1).

) --> 

 이스라엘의 손자, 레위 - 여기서 에스라가 특별히 '야곱''이스라엘'이라고 한 까닭은 (1) 본서와 함께 에스라가 기록한 역대상의 족보와 조화를 이루며(대상 2:1),(2) 그 이름이 갖는 특별한 의미(32:24-29)를 상기케 함으로 본절에서의 성과가 철저하게 하나님의 축복임을 강조하려는 목적 때문이었다.

 

 말리의 자손 중 - '말리'는 레위의 아들 중 셋째(말째)였던 '므라리'의 장자로서 성전의 기구를 책임지던 가족의 조상이 되었다(4:31-33). 다른 곳에서는 '마흘리'라는 이름으로 나온다(6:19 ; 대상 23:21 ; 24:26). 한편, 그 이름의 뜻은 '병든'이다. 아무튼 '말리의 자손 중'이라는 말은 잇도가 데려온 레위인들이 하나님의 전을 섬기는 데 완전한 적격자임을 보여준다.

 

 명철한 사람...세레뱌 '명철한 사람'(, 세켈)은 종교적 의미의 '지혜''분별력' 그리고 그것의 '적응 능력'을 지닌 사람을 뜻한다. NIV'유능한 사람'(capable man)으로 번역했다. 한편, '세레뱌'는 분명치는 않지만 '여호와께서 열()을 보내셨다'의 뜻이다. 그런데 이 사람은 성전의 용기 및 도구를 관리했으며(24,에스드라상 8:47, 54), 에스라의 율법 교육 사업에 적극 참여하였다(8:7 ; 9:4, 5; 10:12). 우리 말 번역은 분명히 밝혀주지 못하고 있지만 이 사람은 '말리'의 자손임이 확실하다.

) --> 

 므라리 자손 - '므라리'의 전체 후손 중 '므라리'의 장자인 '말리'의 후손을 뺀 나머지를 가리킨다. , '말리'의 동생 '무시'의 후손들을 말한다(대상 6:19). 한편, '므라리'는 레위의 셋째 아들이었다(대상 6:16).

) --> 

 다윗과 방백들이 주어...수종들게 한 - 이같은 사실은 성경의 직접적 기록에 의해서는 확인되지 않는다. 추측컨대 다윗은 레위인들의 반차를 정하면서(대상 23-26), 그때 그 레위인들에게 느디님 사람들을 배정해줬던 것 같다(Fensham). 한편, '방백'(, 사림)은 군사 혹은 정치 분야 등에 있어서의 책임자를 가리킬 때 사용되는 단어로서 특별히 여기서는 '군사 지도자'를 가리키는 듯하다. , 이들은 전쟁을 통해 이방인들을 포로로 데려와서 그들을 '느디님 사람'들로 만들었던 것이다.

 

 느디님 사람 중 이백 이십 명 - 이같이 많은 숫자는 바벨론 땅에 계속 잔류를 고집해왔던 레위인들을 팔레스틴으로 귀환토록 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였을 것이다(Myers). 레위인들이 귀환을 거부한 주된 이유 중의 하나가 과중한 고역(苦役)이었음을 감안한다면, 이 같은 결과는 지극히 자연스럽다.

 

 금식을 선포하고 - 구약 성경은 보통 '금식''기도'와 함께 언급한다(삼상 7:5,6 ; 대하 20:3-13 ; 4:16). 이것은 말할나위도 없이 특별한 문제 혹은 위기의 극복을 위해 시행되곤 하였다.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겸비하여 - 이것은 에스라 일행이 하나님께 기도 및 금식을 하면서 가졌던 영적 태도이다. 한편, '스스로 겸비하여'(, 레히트아노트)'괴로움을 당하다' 혹은 '낮추다' 등의 의미가 있는 동사 '아나'의 재귀적 사역형이다. 따라서 이것은 자신을 학대하듯이 적극적으로 낮추어서 어떤 인물 혹은 절대자에 대해서 지극히 순종적 자세를 견지하는 것을 가리킨다(16:9 ; 왕상 2:26 ; 107:17 ; 10:12).

 

 어린 것(, 타프) - 문자적으로 '조그만 어린이'이다. 그러나 본절에서는보다 광의적으로 해석하여 여자와 노인 그리고 어린이까지로 보아야 할 것이다(Myers).

 

 평탄한 길(, 데레크 예솨라) - 문자적으로 '곧은 길'의 의미이다(40:3, 4). 그러나 이것은 '안전한 길'이라는 의미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NIV, Williamson). 고대에는 길을 지키고 있다가 약탈을 일삼는(31) 무리들이 꽤많았다고 한다(Fensham).

) --> 

 길에서 적군을 막고 우리를 도울 - 많은 은금을 소유했고 또한 유약자들을 동반했던 에스라의 일행에게 있어 매복해 있을 도적 떼는 큰 위협일 수밖에 없었음을 잘 보여준다(21).

 

 보병...구하기를 부끄러워하였음이라 - 에스라는 자신의 귀환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이루어진 것임을 확신하였으므로, 위험한 귀환 여정을 오직 하나님의 도우심만 의지하여 감행하고자 결단했다. 적어도 에스라에게 있어서는, 거룩한 목적을 지니고 귀환하면서 이방의 왕에게 의존한다는 것이 수치스럽게 여겨졌을 것이다. 반면에 느헤미야의 경우는 바사 군대의 호위를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간주하고 기꺼이 수락하였다(2:7-9). 우리는 이 사실만으로써 에스라의 믿음이 느헤미야의 믿음보다 우월하다고 단정지어서는 안 된다. 페르시아 왕의 도움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하는 것은 각자의 관점과 강조점의 차이에서 기인한 것일 뿐이다.

) --> 

24절부터 30절까지는 '아하와 강가'를 떠나기 위한 준비 과정이 그려지고 있다.

 제사장...십 이 인 곧 세레뱌와 하사뱌 - 이것은 '제사장...십 이 인과 세레뱌 및 하사뱌'로 고쳐야 맞다. 만일 한글 개역을 그대로 따른다면, '세레뱌와 하사뱌'는 제사장이 되는 셈이다. 그러나 '세레뱌와 하사뱌'는 레위인임이 분명하다(18).

 

 따로 세우고(, 아브딜라) - 이것은 '나누다' 혹은 '구별하다'의 뜻을 갖는 동사 '바달'의 사역형으로서, 본질적 차이가 있으나 합해져있는 둘을 완전히 가르는 것을 가리킨다(1:14 ; 10:10 ; 10:8 ; 대상 25:1). 특히 이 단어는 제의적(祭儀的) 맥락에서 주로 사용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에스라가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함께 구별시킨 이유는 제사장들은 거룩한 물건들을 취급하는 책임자라는 점에서, 한편 레위인들은 그것들을 운반하는 등의 부수적 업무를 담당해야하는 책임자라는 점에서 함께 구별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Brockington, Myers). 적어도 에스라는 율법 학자였기 때문에, 이런 규정들을 익히 알고 있었고 또한 그대로 시행하고 있었다(7:10).

) --> 

 그곳에 있는 이스라엘 무리 - 에스라와 함께 팔레스틴으로 돌아오지 아니한 유대인들을 가리킨다. 그때에 상당수의 유대인들이 바벨론 및 페르시아 땅에 남아 있었다(9:30).

 

 드린(, 테루마트) - 이것은 '올리다' 혹은 '높이다'의 뜻이 있는 동사 ''의 사역형 분사로서, 높은 곳에 물건을 올려놓는 것이나 높은 사람에게 예물을 바치는 행위를 표현하는 단어이다(2:9 ; 18:30, 32 ; 대하35:8).

) --> 

여호와께 거룩한 자 - 이것은 제사장 및 레위인들이 특별히 일반 백성들과 구별되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바쳐진 신분임을 가리키는 말이다(29:1 ; 39:30 ; 21:6 ; 3:12, 13). 여기의 '거룩한'(, 코데쉬)'봉헌하다' 혹은 '구별하다' 등의 뜻을 갖는 동사 '카다쉬'에서 온 형용사로서, 하나님께 특별히 바쳐짐으로써 인간들에 의해 함부로 다뤄질 수 없게끔 된 상태를 표현하는 말이다(McComiskey).

 

 은과 금은...드린 예물이니 - 이것도 '은과 금'이 거룩히 구별되었음을 말해주는 한 표현이다. 이런 '거룩성'은 거룩히 구별된 제사장 및 레위인만이 그것들을 다뤄야하는 분명한 이유이다.

) --> 

 여호와의 전 골방 - 이것은 성전의 건물 양편에 위치한 방들로서 한 쪽에는 제사장들이 쓰는 방이, 그 반대 편에는 창고가 있었다(Williamson, Rawlinson, 왕상 6:15 ;13:5).

 

 제사장의 두목 - 여기의 '두목'(, 사르)'책임자'를 의미한다고 봐야한다(1:7). 그렇다면 '제사장의 두목'은 제사장의 업무를 총괄적으로 감독하던 제사장을 가리킬 것이다(33).

 이스라엘 족장 - '우두머리'라는 뜻으로는 '로쉬'가 더 정확하다. 여기서는 앞의 '두목'에 해당하는 원어의 영향으로 '사르'가 그대로 사용되었으리라 짐작된다(Williamson).

 

 삼가 지키라 - 이것은 문자적으로 '깨어라 그리고 지키라'의 의미이다. 이같이 해야 할 이유는 행로 중에 도적을 맞거나 혹은 탐심에 사로잡힌 유대인들이 야심한 틈을 타 훔쳐가는 것을 막아야 할 필요성 때문이었다(Fensham). 이 예물들은 귀환 여행의 마감 시점에 이르러 재차 점검되고 계수되었다(34).

) --> 

 이에...가져 가려 하여 -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하나님께 바쳐진 물건들을 예루살렘으로 옮기는 일에 대한 책임을 떠맡는 등 에스라의 명령에 순종하고 있음을 의도적으로 보여준다. 한편 운반에 관한 총체적 책임은 제사장들에게 있지만, 이 일은 실제적으로 레위인들에 의해 담당되었다(24).

) --> 

 정월 십 이 일에...떠나 - 유대인들은 그때 '아하와 강가'를 집결지로 삼아 정월 초하루에 거기에 모였었다(7:9). 그들은 거기서 삼일간 인원을 파악하던 중 레위인들이 한 사람도 없음이 밝혀지자 그들을 불러오는 등의 일에 9일을 소비하고 12일에 그 강가에서 출발할 수 있었다(Keil, Fensham).

 

 건지신지라(, 야칠레누) - '구하다' 혹은 '찾다' 등의 뜻을 갖는 동사 '나찰'의 사역형으로서, 악인들의 무리에게 사로잡혀 있는 상태에서 구출하거나 위기일발의 위급한 재앙의 상태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적극적 행위를가리킨다(32:11 ; 삼상 12:10 ; 25:20 ; 22:3).

) -->  

 삼 일을 유하고 - '유하고'(, 네쉐브)'좌정하다' 혹은 '안식하다'의 뜻을 갖는 동사 '야솨브'의 파생형이다. 따라서 이는 에스라 일행이 먼길의 여행 후 몸과 마음의 휴식 기간을 가진 것으로 이해된다(Fensham).

) --> 

 제사장 우리아의 아들 므레못 - 3:4, 21에서는 '학고스의 손자 우리아의 아들 므레못'으로 나온다. 그런데 2:61에 따르면 '학고스 자손'들은 자신들의 혈통을 증명치 못함으로 해서 제사장 직분의 수행이 유보(留保)되었던 사람들이었다. 반면에 여기서는 그 후손들이 제사장의 직분을 수행하고 있음을 볼 때, 그들이 자신들이 제사장의 후예임을 증명하는 데에 마침내 성공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한편, '우리아''여호와는 빛이시다'의 뜻이고 '므레못''거만'이란 뜻이다.

 

 손에 붙이니 - 문자적으로는 다만 '손 안으로'의 의미로서 넘겨주는 행위를 가리킨다.

 

 비느하스의 아들 엘르아살 - 이 문구 바로 앞에는 '그와 함께'의 의미인 '이모'가 있는데, 이는 '엘르아살'도 므레못처럼 제사장이었음을 말해준다(10:18; 12:41, 42).

 

 예수아의 아들 요사밧 - 이 사람은 본서와 느헤미야서에서 (1) 율법책의 뜻을 해석하여 백성을 깨닫게 하는 역할의 담당자(8:7), (2) 이방 여인을 취하여 율법을 범한 자(10:23), (3) 하나님의 전 바깥 일을 받은 자(11:16) 등으로 묘사된다. '요사밧'이라는 이름의 뜻은 '여호와께서 주신다'이다.

 

 빈누이의 아들 노아댜 - '빈누이''헤나닷'의 아들로서 예루살렘의 성벽 한 부분을 중수한 책임자였다(3:24). 그 이름의 뜻은 '세워진'이다. 한편, '노아댜''여호와께서 자신을 계시하셨다'라는 뜻이며 에스드라상 8:63에서 '모엣'으로 나온다는 것이 알려졌을 뿐 다른 사항은 밝혀지지 않았다.

 

 함께 있어 - 물품 인수의 실질 책임자는 '므레못'이었고 다른 사람들은 다만 입회인이었음을 암시해준다(Fensham).

) --> 

34절은 내부 및 외부의 도적을 만나지 않음으로써(29), 일체의 물품 손실이 없었음을 보여준다. 이것은 그야말로 '하나님의 손'이 에스라의 일행에게 함께했다는 사실(31)에 대한 간접적인, 그러나 강력한 시사임이 분명하다(Kidner).

 

 당장에 책에 기록하였느니라 - 이 같은 행위는 성전 재산의 도난 및 횡령 방지를 목적으로 한 것이다(Rawlinson). 에스라는 어쩌면 그 물품 목록을 아닥사스다 왕에게 보내서 모든 물품들이 제대로 인계되었음을 증명하였을 수도 있다.

) --> 

 사로잡혔던 자(, 하골라) - '제거하다' 혹은 '이동하다'를 뜻하는 동사 '갈라'에서 파생된 명사로서 '해외로의 추방' 사실 자체 및 '그렇게 된 자'를 가리킨다. 그런데 이 단어는 구약 성경 중 왕하 24:15에서부터 나오기 시작하여 모두 약 41회 나오는데 거의 대부분이 바벨론에 의해 유대인들이 포로로 끌려간 사건과 직접 관련되어 사용된다. 따라서 이것은 포로가 된 유대인 및 그 사건을 지칭하는 고유 명사로 이해된다.

 

 이방에서 돌아온 자 - 문자적으로 '포로 생활로부터 돌아온 자'이다. 이들은 곧 에스라의 일행들이다.

 

 번제를 드렸는데 - 이같은 제사는 (1) 하나님께서 여행을 안전하게 마칠 수 있도록 해주신 데 대한 감사, (2) 여행 직전에 있었을 수도 있는 서원의 이행(Williamson),(3)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는 헌신 등과 밀접한 관계가 있을 것이다.

 

 이스라엘 전체를 위한 - 에스라와 함께 온 새로운 귀환자들이 금번 제사의 주관자들이 되었음을 말해준다. 최초의 귀환자들도 바벨론에서 귀환한 직후 이 같은 제사를 드렸었다(3:3 ; 6:17).

 

 수송아지가 열 둘 - 여기의 '수송아지'(, 파르)는 차라리 '황소'로 봄이더 타당하다(32:15 ; 50-27). 한편 '열 둘'은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를 상징하는 숫자이다(6:17).

 

 수양이 아흔 여섯 - '아흔 여섯'은 매 지파당 여섯 마리씩에 해당되는 수효이다.

 

 어린 양이 일흔 일곱 - 혹자는 여기의 '일흔 일곱'이 열 둘로 나누어지지 않는다는 점 때문에 '일흔 둘'의 사본상 오류라고 말한다(에스드라상 8:66 ; Josephus, Myers).그러나 여기 맛소라 사본의 '일흔 일곱'(1) 많은 구약 사본들의 지지를 받으며,(2) 고대 중근동의 우가릿 문서등에서는 '일흔 일곱'이라는 수가 수량의 많음을 강조하기 위한 숫자적 표현으로 사용된다는 사실에서 볼 때 이는 그대로 취해져도 무난하리라 본다(Fensham).

 

 속죄제 - 포로지에서의 신실하지 못했던 삶을 회개하며, 또 그 죄악들을 사함받기 위해 드려졌을 것이다.

 

 모두...번제물이라 - 이것은 실제적으로는 '속죄제'의 제물까지를 포함한다. 그런데도 '번제물'이라고 한 까닭은, 하나님께 바친 제물의 대부분이 번제의 제물이기 때문이었다(Fensham).

) --> 

 왕의 조서 - 에스라와 그 일행을 도우라는 명령(7:20-26)을 가리킨다.

 

 왕의 관원 - '관원'(, 아하쉬다르페네이)은 그야말로 '총독'이라고 번역될 수 있는, 상당히 광활한 정복 지역을 왕을 대신하여 다스리는 관리를 가리킨다(본 단락 주제 강해, '페르시아의 지방 조직' 참조). 물론 이 단어는 최고급의 관리를 뜻하는 것도 사실이다(Fensham).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이 말이 히브리 원문상 복수로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유프라테스 강 서편에는 단 한 명의 총독 밖에 없었다는 역사적 사실에서 볼 때 문제시 된다. 이런 문제의 해결책은, 여기의 '총독들'이 유프라테스 강 서편의 총독 한사람과 애굽을 다스리던 총독 등 두 명을 가리킨다고 보는 데서 해결 가능하다(Fensham). 실제적으로도 애굽은 팔레스틴과 지역적으로 매우 가깝다는 점에서 이 가능성은 충분하다. 그런데 여기서 '관원''왕의 관원'이라고 한 것은, 앞의 '왕의 조서'와 조화시키기 위해서, 즉 그 '관원''왕의명령'을 그대로 이행해야 할 신분임을 강조하기 위한 의도 때문이다.

 강 서편 - 이것은 본절의 '관원''총독들'에 아울러 적용된다(NIV).

 총독들(, 파하우오트) - 이들은 적은 지역을 다스리던 지방 관리라고 할 수 있다(6:6).

 

 저희가...도왔느니라 - 왕의 명령(7:20-26)이 그대로 이행되었음을 시사한다. '도왔느니라'(, 니스우)'높이다' 혹온 '주다'의 뜻을 갖는 동사 '나사'의 강조형으로서, 여기서는 어떤 물질 등을 제공함으로써 성전 예배가 권위를 회복하고 원활히 지속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가리킨다(Williams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