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요한계시록강해

12과. 두 번째 사명(증인 사명) 계시록 11장: 1절~14절

호리홀리 2014. 12. 16. 20:00

  12과. 두 번째 사명(증인 사명)


  성경본문: 계시록 11장: 1절~14절

 

  11장 1절 보겠습니다.


  “또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말하기를 일어나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척량하되”


  ‘지팡이 같은 갈대’는 잴 수 있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과 2절 ‘성전 밖’을 대조적으로 분류하면서 나누고 있습니다. 이 성전은 이스라엘 성전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전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 다시 말해서 신실한 믿음을 가진 성도들입니다.

  교회 안에서 신실한 믿음을 가진 성도들을 성전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로 묘사합니다. 그들을 척량하라고 이야기합니다. 심판이 아니라 상급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믿음을 달아 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구약성경에 보면 성전 밖은 이방인의 뜰입니다. 이방인의 뜰은 누구나 장사꾼도 들어올 수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형식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성전 마당만 밟는, 성전 뜰만 밟는, 교회 뜰만 밟는 형식적이고, 가식적이고, 껍데기의 신앙을 갖은 엉터리 성도들입니다. 2절 보겠습니다.


  “성전 밖 마당은 척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을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저희가 거룩한 성을 마흔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


  성전 마당만 밟는 성도들은 척량하지 말고 그냥 두어라 이것을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저희가(사단의 무리가, 악한 세력에게) 거룩한 성을 마흔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고 말씀합니다. 다시 말해서 엉터리 성도는 징계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얼마동안 인가요? 마흔두 달 동안입니다. 년 수로 환산하면 3년 6개월입니다. 날 수로는 1260일입니다. 이는 단12:7절의 한 때 두 때 반 때와 같은 표현으로서 초림과 재림사이의 기간을 의미합니다.

  7년 대환란 중에 앞의 3년 반 동안의 환란입니다. 7년 대환란에서 7이라는 숫자는 상징적인 숫자입니다. 문자적인 7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3년 반도 문자적인 년 수가 아니라 상징적인 년 수입니다. 그 기간 동안 그들이 환란을 받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3절 보겠습니다.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저희가 굵은 베옷을 입고 일천이백육십 일을 예언하리라”


  3년 반 동안 환란 받는 동안 하나님은 두 증인을 세웁니다. 선지자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위대한 종을 세웁니다. 두 증인을 보면 굵은 베옷을 입고 있습니다. ‘굵은 베옷’이 상징하는 것은 구약에 보면 회개입니다. 이 두 증인의 사명은 사람들을 회개케 하는 사명입니다. 9장 끝부분에서 끝까지 회개치 아니하는 그들을 회개시키는 사명입니다. 여기에서 ‘일천이백육십일’은 년 수로 3년 6개월입니다. 두 증인은 엉터리 성도들에게 3년 6개월 동안 회개하고 돌아오라고 촉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엉터리 성도들과 불신자들도 포함됩니다. 두 증인의 사명은 예수님이 재림하시기 전까지 계속됩니다. 4절 보겠습니다.


  “이는 이 땅의 주 앞에 섰는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니”


  스가랴서를 끌어 들여서 비유합니다. 두 증인에게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 같은 사명이 있습니다. 7절 보겠습니다.


  “저희가 그 증거를 마칠 때에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저희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저희를 이기고 저희를 죽일 터인즉”


  ‘저희가 그 증거를 마칠 때’는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입니다. 두 증인의 사명은 예수님 재림하실 때까지 계속 이어집니다. 이 사명이 우리의 사명이라는 것을 비유를 통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악한 영을, 사단을 가두어 두는 무저갱에서부터 짐승이 올라옵니다. 이것은 정말로 짐승이 무저갱에서 올라오는 것이 아니라 상징적인 표현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악한 영이 올라와서 저희로 더불어 영적전쟁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두 증인이 죽습니다. 두 증인이 순교를 당합니다. 마치 사단의 세력이 승리한 것처럼 보입니다. 8절 보겠습니다.


  “저희 시체가 큰 성 길에 있으리니 그 성은 영적으로 하면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니 곧 저희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니라”


  두 증인의 시체가 큰 성 길에 버려진 채로 있습니다.  마치 전쟁에 패배한 자가 모욕을 당하고 수치를 당하는 것처럼 두 시체를 훼손시킵니다.

  그 성은 영적으로 소돔과 애굽과 같은 세속도시입니다. 사데교회가 죽은 교회이지만 사데교회 보다 더 나쁜 교회가 라오디게아교회라고 했습니다. 사데교회는 그래도 몇 사람은 깨어 있습니다. 그러나 라오디게아교회는 사람들이 다 세속화되었습니다. 한 사람도 깨어있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모두 다 세속적인 생각만하고 있고 다 엉터리 성도들만 있는 교회였습니다. 이것을 ‘소돔 같고 애굽 같다’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힐 때 사단이 이겼다고 하는 것과 같이 두 증인의 시체는 비참하게 훼손당하며 모욕과 멸시를 당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9절 보겠습니다.


  “백성들과 족속과 방언과 나라 중에서 사람들이 그 시체를 사흘 반 동안을 목도하며 무덤에 장사하지 못하게 하리로다”


  백성들과 족속과 방언과 나라 중에서 사람들이 다 그 시체를 사흘 반 동안 보고 있습니다. 무덤에 장사하지도 못하게 합니다. 두 증인이 이런 핍박을 받고 있습니다. 10절 보겠습니다.


  “이 두 선지자가 땅에 거하는 자들을 괴롭게 한 고로 땅에 거하는 자들이 저희의 죽음을 즐거워하고 기뻐하여 서로 예물을 보내리라 하더라”


  이 두 선지자가 땅에 거하는 자들을 괴롭게 한 고로 땅에 거하는 자들이 저희의 죽음을 즐거워하며 기뻐합니다. 사단의 세력이 천지를 진동합니다. 이 두 증인을 죽였다는 것입니다. 악한 세력이 승리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끝까지 갈까요? 11절 보겠습니다.


  “삼 일 반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저희 속에 들어가매 저희가 발로 일어서니 구경하는 자들이 크게 두려워하더라”


  왜 ‘삼 일 반 후에’라는 표현을 썼을까요? 삼년 반이라는 의미를 맞추기 위해서입니다. ‘삼 일 반 후에’는 잠시 잠깐이라는 표현입니다.

  삼 일 반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저희 속에 들어가매 저희가 발로 일어서니 구경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크게 두려워합니다. 마치 사단의 세력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승리한 것처럼 즐거워하고 기뻐했지만 삼일천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의 권세를 깨트리고 부활 승리하셨습니다. 그것을 비유하고 있습니다. 12절 보겠습니다.


  “하늘로부터 큰 음성이 있어 이리로 올라오라 함을 저희가 듣고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니 저희 원수들도 구경하더라”


  하늘로부터 음성이 올라오라 하니 저희가 음성을 듣고 구름타고 하늘로 올라가니 원수들도 구경합니다. 계속해서 13절 보겠습니다.


  “그 시에 큰 지진이 나서 성 십분의 일이 무너지고 지진에 죽은 사람이 칠천이라 그 남은 자들이 두려워하여 영광을 하늘의 하나님께 돌리더라”


  그 시에 지진이 일어납니다. 마치 예수님이 십자가 지실 때 일어나는 현상과 비슷합니다. 그 남은 자들이 두려워하여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남은 자 중에 끝까지 회개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남은 자들 중에서도 회개하고 돌아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두 증인은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두 증인이 순교하고 비참하게 죽었지만 그들을 통해서 남은 자들 중에 돌아온 이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때에 교회와 성도들을 보호하십니다. 그러나 고난은 있습니다. 핍박은 있습니다. 두 개의 사명인 요한의 사명같이 오늘 우리에게도 일곱 번째 나팔이 울리기 전에 우리의 사명을 일러주고 있습니다. 요한의 사명같이 너희도 말씀을 먹고 요한계시록을 증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 두 개의 사명을 붙들고 수많은 영혼들이 예수님 앞에 돌아오는 그날까지 핍박과 고난도 있겠지만 강하고 담대함으로 증거하는 삶을 사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