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요한계시록강해

10과. 두려워말라 계시록 8장: 1절 ~ 9장: 21절

호리홀리 2014. 12. 16. 17:05

  10과. 두려워말라


  성경본문: 계시록 8장: 1절 ~ 9장: 21절


  1절에 보면, ‘일곱 번째 인을 뗄 때 하늘이 반시 동안 고요하다’고 했는데, 이것은 마지막 일곱 번째 인을 뗄 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7은 완전수라고 했습니다. 여리고 성을 돌때 7일은 완전수 이고, 마지막 날 7바퀴를 돌때 성이 무너지는 것은 완전한 종결을 의미합니다. 나아만이 요단강에 7번째 들어갔다 나올 때 문둥병이 치료되는 것은 종결의 의미입니다. 오늘 마지막 일곱 번째 인을 뗄 때의 모습을 보겠습니다. 1절 보겠습니다.


  “일곱째 인을 떼실 때에 하늘이 반시 동안쯤 고요하더니”


  ‘하늘에 반시 동안 고요하다’는 말씀은 마치 폭풍전야같이 거대한 심판이 오기 바로 전의 전조현상(前兆現象)입니다. 잠시 동안의 침묵의 시간입니다. 전장에 보면 계속해서 하늘에서 찬송소리가 들렸습니다. 땅에서는 계속해서 성도들의 기도소리가 들렸습니다. 지금은 찬송소리도 기도소리도 잠시 멈추고 고요한 상태입니다. ‘반시’라는 말은 잠시 동안이란 말입니다. 그 시간이 얼마인지는 모르지만 짧은 시간이란 말입니다. 침묵이 있은 직후에 2절 보겠습니다.


  “내가 보매 하나님 앞에 시위한 일곱 천사가 있어 일곱 나팔을 받았더라”


  일곱 천사가 일곱 나팔을 받았습니다. 마지막 일곱 번째 인을 뗄 때에 첫 번째 나팔부터 시작됩니다. 그리고 마지막 나팔이 불려 질 때 첫 번째 대접부터 쏟아집니다. 이 긴 과정이 처음부터 끝까지의 환란과 재앙의 과정입니다. 일곱 번째 인, 그리고 계속되는 일곱 번째 나팔이 불려 질 때 일곱 대접까지가 처음부터 끝까지 재앙이 쏟아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3절 보겠습니다.

  “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들과 합하여 보좌 앞 금단에 드리고자 함이라”


  ‘금향로’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금향로’는 모든 성도들의 기도입니다. 우리 기도의 모든 것은 다 담아서 하나님께 가지고 갑니다. 하나라도 떨어지지 않습니다. 4~5절 보겠습니다.


  “⁴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 ⁵천사가 향로를 가지고 단 위의 불을 담아다가 땅에 쏟으매 뇌성과 음성과 번개와 지진이 나더라”


  성도의 기도를 담아 이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에서 하나님 앞으로 올라갑니다. 그리고 천사가 향로를 가지고 단 위의 불을 담아다가 땅에 쏟으매 뇌성과 음성과 번개와 지진이 일어납니다. 여기에서 ‘뇌성, 음성, 번개, 지진’은 하나님의 진노의 표현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의 기도를 들으심으로 심판이 재촉되고 더 강하게 펼쳐지는 하나님의 진노를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드디어 나팔이 불려 집니다.

  구약시대 때 보통 나팔이 불려 질 때는 전쟁의 소리이고, 승리의 소리입니다. 그런 표현으로 이해하면 좋겠습니다. 승리의 나팔, 전쟁의 나팔이 불러집니다. 7절 보겠습니다.


  “첫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피 섞인 우박과 불이 나서 땅에 쏟아지매 땅의 삼분의 일이 타서 사위고 수목의 삼분의 일도 타서 사위고 각종 푸른 풀도 타서 사위더라”


  첫 번째 나팔이 불려 질 때 무엇이 떨어집니까? 피 섞인 우박과 불이 나서 땅에 쏟아집니다.

  애굽의 열 가지 재앙과 비교해 보겠습니다. 왜냐하면 애굽의 열 가지 재앙은 최초의 심판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이전에 나오는 노아의 홍수도 있습니다만, 애굽의 열 가지 재앙은 요한계시록의 마지막 재앙의 그림자입니다.

  애굽에 우박재앙이 있었습니다. 우박재앙은 일곱 번째 재앙입니다. 비교해 보면, 본문에도 우박재앙이 떨어지는데 조금 다릅니다. 본문의 우박재앙은 피가 섞인 우박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불’입니다. 애굽의 우박재앙과의 차이가 나는데, 그것은 ‘불’입니다. 그래서 계시록에서는 항상 심판에 불이 따라 붙습니다. 마지막 때는 불로 심판합니다. 그러나 본문 7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다 심판하는 것이 아니라 1/3만 심판합니다. 왜 1/3만 심판하는 것일까요? 아직 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이유는 회개할 기회를 계속주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심판에도 하나님의 긍휼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1/3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아직 다가오지 않았다는 것도 보여줍니다. 계속 처음부터 끝까지 1/3입니다. 8절 보겠습니다.


  “둘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불붙는 큰 산과 같은 것이 바다에 던지우매 바다의 삼분의 일이 피가 되고”


  둘째 천사가 나팔을 불 때 불붙는 큰 산과 같은 것이 바다에 던지우매 바다의 1/3이 피가 됩니다. 여기에서 ‘불붙는 큰 산’은 무엇일까요? 핵폭탄 같은 것으로 이해할 수 있겠지요.

  칼빈은 성경 전체를 주석했지만, 그리고 칼빈의 주석은 지금도 권위 있는 주석으로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시만, 요한계시록은 3장까지 밖에 주석하지 못했습니다. 칼빈은 말하기를, 우리 시대에서는 도저히 4장부터는 해석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운 우리 시대에는 이 현상들을 조금씩, 조금씩 이해해 나갈 수 있습니다.    9절 보겠습니다.

 

  “바다 가운데 생명 가진 피조물들의 삼분의 일이 죽고 배들의 삼분의 일이 깨어지더라”


  배들의 삼분의 일이 깨어집니다. 계속해서 10절 보겠습니다.


  “셋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횃불같이 타는 큰 별이 하늘에서 떨어져 강들의 삼분의 일과 여러 물샘에 떨어지니”

  세 번째 천사가 나팔 불 때 횃불같이 타는 큰 별이 하늘에서 떨어집니다. 역시 핵폭탄의 일종인 것으로 우리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세 번째 천사가 나팔 불 때 횃불같이 타는 큰 별이 하늘에서 떨어져 강들의 1/3과 여러 물샘에 떨어지니 이 별 이름은 쑥이라 물들의 1/3이 쑥이 되매 그 물들이 쓰게 됨을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습니다. 12절 보겠습니다.


  “넷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해 삼분의 일과 달 삼분의 일과 별들의 삼분의 일이 침을 받아 그 삼분의 일이 어두워지니 낮 삼분의 일은 비췸이 없고 밤도 그러하더라”


  넷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해 삼분의 일과 달 삼분의 일과 별들의 삼분의 일이 침을 받아 그 삼분의 일이 어두워지니 낮 삼분의 일은 비췸이 없고 밤도 그러합니다.

  심판은 점점 국지적에서 우주적으로 펼쳐져 나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치 애굽의 아홉 번째 재앙과 같습니다.

  네 번째 인을 뗄 때, 4는 인간의 숫자입니다. 네 번째 인까지는 말 탄자가 등장합니다. 그래서 같이 묶었습니다. 여기도 마찬가지입니다. 네 번째 나팔까지는 땅에 대한 심판입니다. 4는 땅의 숫자입니다. 12절까지는 네 번째 나팔까지 떨어집니다. 그래서 하나로 묶었습니다. 13절 보겠습니다.


  “내가 또 보고 들으니 공중에 날아가는 독수리가 큰 소리로 이르되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화, 화, 화가 있으리로다 이 외에도 세 천사의 불 나팔 소리를 인함이로다 하더라”


  큰소리가 납니다. 그 소리는 화(禍), 화(禍), 화(禍)입니다. 역시 3번 하나님의 숫자입니다. ‘불 나팔’은 앞으로 불어질 ‘나팔’을 ‘불 나팔’이라고 합니다. 다섯 번째, 여섯 번째, 일곱 번째 불어질 나팔을 의미합니다.

  숫자‘7’완전수 중의 세 번 남았습니다. 지금까지는 일반적인 심판이고 재앙이지만, 9장부터는 사단의 공격이 계시됩니다. 그래서 또 다른 양상의 불 심판이 전개됩니다. 9장 1절 보겠습니다.


  “다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내가 보니 하늘에서 땅에 떨어진 별 하나가 있는데 저가 무저갱의 열쇠를 받았더라”


  다섯 번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하늘에서 땅에 떨어진 별 하나가 무저갱(아뷔소스)의 열쇠를 받았습니다. 8장 10절~11절의 별하고는 다릅니다. 8장의 별은 무생물체이지만, 9장 1절에 나오는 것은 인격체입니다. 왜냐하면 땅에 떨어진 별 하나가 있는데 저가 무저갱의 열쇠를 받았더라고 했습니다. 열쇠를 받은 별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사단을 의미합니다. 2절 보겠습니다.


  “저가 무저갱을 여니 그 구멍에서 큰 풀무의 연기 같은 연기가 올라오매 해와 공기가 그 구멍의 연기로 인하여 어두워지며”


  ‘무저갱’은 악한 영들을 가두어 두는 곳입니다. 사단이 악한 영들을 가두어 두는 곳에 열쇠를 가지고 여니 악한 영들이 뛰쳐나옵니다. 이것을 묘사한 것입니다. 3절 보겠습니다.


  “또 황충이 연기 가운데로부터 땅 위에 나오매 저희가 땅에 있는 전갈의 권세와 같은 권세를 받았더라”


  메뚜기 같은 황충이 땅에 있는 전갈의 권세와 같은 권세를 받았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입니다. 4절 보겠습니다.


  “저희에게 이르시되 땅의 풀이나 푸른 것이나 각종 수목은 해하지 말고 오직 이마에 하나님의 인 맞지 아니한 사람들만 해하라 하시더라”


  아무것도 해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인 맞지 아니한 사람들만 해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니까 인친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보호하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마치 애굽의 열 번째 재앙과 같습니다. 문설주에 어린양의 피를 바른 집은 해하지 못하였던 것처럼, 하나님의 인 맞은 자 144,000의 상징적인 숫자는 해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해야 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나 문설주에 어린양의 피가 없는 집에는 죽음이 임했습니다. 계속해서 5절 보겠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죽이지는 못하게 하시고 다섯 달 동안 괴롭게만 하게 하시는데 그 괴롭게 함은 전갈이 사람을 쏠 때에 괴롭게 함과 같더라”


  그러나 인 맞지 않은 사람들을 죽이지는 못하게 하시고 다섯 달 동안 고통스럽게 하셨다고 말씀합니다. 여기에서 ‘다섯 달’은 짧은 기간을 말합니다. 그리고 ‘괴롭게’라는 단어가 세 번 반복됩니다. 6절 보겠습니다.


  “그 날에는 사람들이 죽기를 구하여도 얻지 못하고 죽고 싶으나 죽음이 저희를 피하리로다”


  너무 괴로워서 죽으려고 하지만 죽을 수가 없습니다. 인 맞지 않은 자들이 죽으려고 하지만 죽을 수 없는 끊임없는 고통이 계속 이어집니다. 9절 보겠습니다.


  “또 철흉갑 같은 흉갑이 있고 그 날개들의 소리는 병거와 많은 말들이 전장으로 달려 들어가는 소리 같으며”


  황충의 모양은 철흉갑 같은 흉갑이라고 말씀합니다. ‘철흉갑 같은 흉갑’을 요한은 무엇인지 알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 시대에는 보지 못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시대에는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철흉갑 같은 흉갑’은 전투기 같은 비행기를 의미합니다. 날개들은 많은 말들이 전장으로 달려 들어가는 소리 같은 굉음을 내는 비행기 같은 물체를 의미합니다. 10절 보겠습니다.


  “또 전갈과 같은 꼬리와 쏘는 살이 있어 그 꼬리에는 다섯 달 동안 사람들을 해하는 권세가 있더라”

‘전갈과 같은 꼬리와 쏘는 살’은 전투기 꼬리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 같은 것을 의미합니다. 요한은 그 시대에 이런 물체들을 본 적이 없어서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미사일을 표현하기도 한다 합니다. 11절 보겠습니다.


  “저희에게 임금이 있으니 무저갱의 사자라 히브리 음으로 이름은 아바돈이요 헬라 음으로 이름은 아볼루온이더라”


  사단의 왕의 이름은 히브리 음으로 아바돈이고, 헬라 음으로는 아볼루온입니다. ‘아바돈’이나 ‘아볼루온’은 ‘파괴자’라는 같은 뜻입니다. 1차 해석은 도미시안 황제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사단은 건설자가 아닙니다. 사단은 성도들을 파괴하고, 나라와 민족과 열방을 파괴하고, 가정을 파괴하고, 교회를 파괴하는 자입니다. 12절 보겠습니다.


   “첫째 화는 지나갔으나 보라 아직도 이 후에 화 둘이 이르리로다”


  죽고 싶으나 죽을 수 없는 고통,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뱀에 물려 죽고 싶으나 죽을 수 없는 그 고통, 그러나 장막에서 나와서 놋뱀을 쳐다 본 자는 살았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13절 보겠습니다.


  “여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내가 들으니 하나님 앞 금단 네 뿔에서 한 음성이 나서”


  여섯 번째 천사가 나팔을 불립니다. 14절 보겠습니다.


  “나팔 가진 여섯째 천사에게 말하기를 큰 강 유브라데에 결박한 네 천사를 놓아 주라 하매”


  나팔 가진 여섯 번째 천사에게 말하기를 큰 강 유브라데에 결박한 네 천사를 놓아 주라고 말합니다. 여기에서 ‘결박한 네 천사’는 타락한 천사, 불순종한 네 천사를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결박한 천사도 들어서 쓰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유브라데는 바벨론이 있던 지역입니다. 유브라데는 고대로부터 앗수르, 바벨론, 페르시아가 지배했던 장소입니다. 늘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을 괴롭혔던 장소입니다. 15절 보겠습니다.


  “네 천사가 놓였으니 그들은 그 년, 월, 일, 시에 이르러 사람 삼분의 일을 죽이기로 예비한 자들이더라”


  ‘년, 월, 일, 시’는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의 날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24장에서 예수님은 그 날과 그 시는 아무도 모른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아신다고 했습니다. 16절 보겠습니다.


  “마병대의 수는 이만만이니 내가 그들의 수를 들었노라”


  마병대의 수는 이만만이라고 했는데, 이 숫자는 상징적인 숫자가 아닙니다. 실제적 숫자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그들의 수를 들었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유브라데에 집결한 이만만은 이만× 만은 2억이 됩니다. 2억의 군대 숫자입니다. 걸프전이 처음 터졌을 때 많은 사람들은 이 성경구절을 대면서 ‘지금이 인류의 마지막 전쟁이 아닌가?’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니었습니다. 아직 아마겟돈 전쟁은 아닙니다. 그것은 16장에 나옵니다. 아직은 최후의 전쟁이 아니고 그 전쟁의 시작일 뿐입니다. 이만만은 북쪽의 군대입니다. 마지막 전쟁은 중동에서 일어난다는 것을 우리는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이란, 이라크, 러시아 혹은 중국이  전쟁에 동원되면 그 숫자는 2억 이상 될 것입니다. 우리가 정확한 실체는 모르지만, 그러나 에스겔서에도 ‘마곡’은 중국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정확한 것은 모르지만 어쨌든 2억의 군대가 유브라데에 집결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인류의 마지막 전쟁은 서서히 다가오고 있습니다. 인류의 마지막 종말은 재앙도 있지만 전쟁을 통해서 서서히 다가오고 있습니다. 17~18절 보겠습니다.


  “17이같이 이상한 가운데 그 말들과 그 탄 자들을 보니 불빛과 자주빛과 유황빛 흉갑이 있고 또 말들의 머리는 사자 머리 같고 그 입에서는 불과 연기와 유황이 나오더라 18이 세 재앙 곧 저희 입에서 나오는 불과 연기와 유황을 인하여 사람 삼분의 일이 죽임을 당하니라”


  ‘불과 연기와 유황’은 무엇일까요? 핵폭탄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불과 연기와 유황 같은 것들이 나와서 사람 1/3이 죽임을 당합니다. 20절 보겠습니다.


  “이 재앙에 죽지 않고 남은 사람들은 그 손으로 행하는 일을 회개치 아니하고 오히려 여러 귀신과 또는 보거나 듣거나 다니거나 하지 못하는 금, 은, 동과 목석의 우상에게 절하고”


  이 재앙에 죽지 않고 남은 사람들은 그 손으로 행하는 일을 회개치 아니합니다. 하나님의 재앙이 떨어져도 끝까지 회개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애굽의 열 가지 재앙과 비교해 보십시오.

  애굽의 바로와 애굽 사람들은 재앙이 점점 강해지고 마지막 열 번째 재앙까지 떨어졌을 때 그들은 회개한 것이 아니라 마음이 더 강퍅해졌습니다. 이 어마어마한 심판과 재앙을 보면서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끝까지 회개하지 않고 더 강퍅해집니다. 이 사람들은 점점 더 우상숭배 하는데 몰려다닙니다. 21절 보겠습니다.


  “또 그 살인과 복술과 음행과 도적질을 회개치 아니하더라”


  하나님의 인 맞은 자들은 때로는 약하고 넘어지고 범죄 할 수도 있지만 회개하며 하나님 앞에 나와 기도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인 맞지 않은 자, 곧 짐승의 표(인)를 받은 자는 끝까지 회개치 아니하고 그 마음이 더 강퍅해질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은 두 종류의 사람들로 나누어집니다. 하나님의 인 맞은 자와 짐승의 표(인)를 받은 자로 나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인 맞은 자입니다. 이것을 확인 시켜주기 위해서 요한계시록이 기록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모든 재앙이 있다 할지라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합니다. 또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고통과 아픔과 질병이 있다 할지라도 두려워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때일수록 마태복음의 말씀처럼 더 깨어서 기도하는 삶을 사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