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요한계시록강해

8과. 그러므로 깨어있으라 계시록 6장: 1절~17절, 마태복음 24장: 4절

호리홀리 2014. 12. 16. 17:00

8과. 그러므로 깨어있으라


  성경본문: 계시록 6장: 1절~17절, 마태복음 24장: 4절


  일곱 번째 인이 떼어지는 순간 첫 번째 나팔이 불립니다. 계속 연속적으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일곱 번째 나팔이 끝나자마자 동시에 첫 번째 대접부터 일곱 번째 대접이 계속 이어집니다.

  다시 설명하면 일곱 번째 인이 떼어지는 순간 나팔이 불립니다. 첫 번째부터 일곱 번째까지, 그리고 일곱 번째 나팔이 불리는 순간 첫 번째 대접부터 일곱 번째 대접까지 쏟아집니다. 이것은 연속성이 이어져 가는 심판과 종말에 대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 순서는 마태복음 24장의 순서를 따르고 있습니다. 종말에 대한 미래적인 것들은 요한계시록에만 기록이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구약 에스겔서와 다니엘서와 스가랴서에도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본문은 스가랴 1장 8절과 스가랴 6장의 말들에 대한 전령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태복음 24장의 순서를 따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24장 42절은 예수님께서 종말에 대한 징조들을 다 말씀하시면서 결론으로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말씀의 제목을 ‘그러므로 깨어있으라’로 잡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시대를 마감할 때 심판하십니다. 예를 들면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끌어내실 때 10가지 재앙의 사건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10가지의 재앙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어떻게 구원하시는가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시대가 끝나면 심판하시지만 심판만 하는 것이 아니라 구속하시고 구원도 하십니다. 우리도 요한계시록을 볼 때 어떤 재앙이나 심판보다 당신의 백성들을 어떻게 구속하시고 구원하시는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그리고 반드시 한 시대가 끝날 때 심판도 있지만 구원도 동시에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아야합니다. 또 노아의 홍수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죄악 된 인간을 심판하시는 것 뿐 아니라 노아와 그의 가족들을 어떻게 구원하시는가에 초점을 맞추어서 보아야합니다. 또 있습니다.

  유다나라가 망할 때 하나님께서 유다나라 전체를 망하게 하셨지만, 그리고 심판과 종말을 그들에게 주셨지만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을 어떻게 끄집어 내셔서 남은 자들을 어떻게 구원하시고 회복시키시는 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이러한 것들은 하나의 예표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24장에 노아의 홍수의 예를 드셨습니다. 소돔과 고모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불과 유황의 심판이 있었습니다. 자기 백성 롯이 엉터리같이 신앙생활 했지만 그래도 그 롯을 심판에서 끌어내시는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보아야합니다.

  10가지 재앙과 비교하면서 보겠습니다.

  10가지 재앙 중에 첫 번째 재앙은 ‘피’입니다. 이 ‘피’와 열 번째 재앙에서의 어린양의 피는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피, 개구리, 이, 파리의 네 가지 재앙은 땅의 것에 대한 심판입니다.  곤충들과 파충류를 통한 심판입니다. 여기 본문에 네 재앙의 공통점은 말 탄 자의 재앙, 네 전령의 재앙이 나옵니다.

  요한계시록에는 보이는 숫자는 7이지만 보이지 않는 숫자도 있다고 했습니다. 여기 네 개의 인을 뗄 때의 ‘4’라는 숫자는 땅의 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땅의 것을 심판하는 네 개의 전령이 모두 말 탄 자로 나옵니다. 그래서 네 개를 묶어야 합니다. 먼저 땅에 대한 심판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산을 볼 때 가까이 있는 산은 뚜렷하게 보이지만 먼 산은 희미하게 보이고 산이 겹쳐서 오버랩(overlap) 되는 것처럼, 예수님께서 종말을 심판하시고 종말을 예언하실 때에도 앞에 나타날 사건과 뒤에 나타날 사건을 오버랩하면서 예언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4장에 종말의 예언 성취는 얼마 후에 일어날 이스라엘의 멸망 사건입니다. 어떤 사건입니까? A.D. 70년에 로마군에 의해서 이스라엘이 멸망하고 100만 명 이상이 죽고 100만 명 이상이 포로로 끌려가는 사건입니다. 이것이 앞에 있는 산이라면, 뒤에 있는 산은 세상에 대한 종말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마태복음 24장에 말씀하신 예언의 내용입니다.

  구약성경의 모든 예언도 그렇게 겹쳐 있습니다. 앞에 있는 것들은 다 그림자이고, 요한계시록은 마지막 종말의 실체입니다. 1절 보겠습니다.


  “내가 보매 어린 양이 일곱 인 중에 하나를 떼시는 그 때에 내가 들으니 네 생물 중에 하나가 우뢰 소리같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

  첫 번째 인을 뗄 때 우렛소리가 말하였습니다. 마치 종말을 예고하는 팡파레 같은 큰 소리가 났습니다. 그리고 2절 보겠습니다.


  “내가 이에 보니 흰 말이 있는데 그 탄자가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고 나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


  첫 번째 전령이 탄 말 색깔이 무엇입니까? ‘흰 말’을 타고 있습니다. 여기서 ‘흰 말 탄자’는 예수그리스도가 아닙니다.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정관사가 붙어 있지 않습니다. ‘그 사람’, 혹은 ‘그 흰말’ 이렇게 나오면 예수그리스도지만 색깔이 희다고 해서 다 예수그리스도라고 이해하면 안 됩니다. 흰 말을 탄자는 전쟁을 일으키는 전령입니다. 종말에 대한 첫 번째 현상은 전쟁입니다. 그래서 면류관을 받고 전쟁을 일으키는 자는 계속 승리합니다. 그리고 전쟁을 이기기위해서 계속해서 전쟁을 일으키는 현상이 종말에 대한 첫 번째 현상입니다. 점점 빨리 진행됩니다. 3절 보겠습니다.


  “둘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들으니 둘째 생물이 말하되 오라 하더니”


  두 번째 인을 뗍니다. 4절 보겠습니다.


  “이에 붉은 다른 말이 나오더라 그 탄 자가 허락을 받아 땅에서 화평을 제하여 버리며 서로 죽이게 하고 또 큰 칼을 받았더라”


  두 번째 인을 뗄 때에 전령의 말의 색깔은 무엇입니까? 붉은 말입니다. 전쟁이 점점 더 강해지고요. ‘붉은 색’은 ‘피’를 나타냅니다. 그래서 화평을 제하여 버립니다.

  마태복음 24장에는 나라와 나라가, 민족과 민족이 서로 전쟁을 일으키고 죽이게 합니다. 그리고 큰 칼을 받았습니다. 첫 번째 인이나 두 번째 인의 공통점은 전쟁인데, 첫 번째 인의 전쟁보다 두 번째 인의 전쟁이 점점 더 확대되어 갑니다. 5절 보겠습니다.


  “셋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들으니 셋째 생물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 내가 보니 검은 말이 나오는데 그 탄 자가 손에 저울을 가졌더라”


  세 번째 인을 뗄 때에 전령이 탄 말은 무슨 색깔입니까? 검은 말을 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손에 저울을 가졌습니다. 계속해서 6절 보겠습니다.


  “내가 네 생물 사이로서 나는 듯하는 음성을 들으니 가로되 한 데나리온에 밀 한 되요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 되로다 또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 말라 하더라”


  “감람유와 포도주”는 무엇을 이야기 합니까? 기근을 이야기합니다. 전쟁으로 인한 기근입니다. 7절 보겠습니다.


  “넷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넷째 생물의 음성을 들으니 가로되 오라 하기로”


  네 번째로 인을 뗍니다. 계속해서 8절을 보겠습니다.


  “내가 보매 청황색 말이 나오는데 그 탄 자의 이름은 사망이니 음부가 그 뒤를 따르더라 저희가 땅 사분 일의 권세를 얻어 검과 흉년과 사망과 땅의 짐승으로써 죽이더라”


  네 번째로 인을 뗄 때에 전령이 탄 말은 무슨 색깔입니까? 청황색 말입니다. 사망과 음부가 그 뒤를 따릅니다. ‘땅의 사분지 일’은 지상의 사분지 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여기 저기 일어나는 사분지 일입니다.

  흉년과 사망과 짐승으로써 죽입니다. 네 번째 인을 뗄 때에 나타나는 현상은 전쟁과 기근인데, 점점 가속도가 붙고 점점 커져 나갑니다.

  다시 첫 번째 인부터 네 번째 인까지 요약하면, 첫 번째 인부터 두 번째 인까지는 전쟁, 세 번째 인은 기근, 네 번째 인은 기근과 전쟁을 포함한 땅에 대한 심판이 계속 이어져 나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의 순서로 시간별로 되는 것이 아니라 총체적으로 되는 동시다발적인 현상이 네 번째 인까지입니다. 그러나 다섯 번째 인부터는 양상이 달라집니다. 땅에 대한 심판이라기보다 영적인 고난과 핍박이 시작됩니다. 9절 보겠습니다.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저희의 가진 증거를 인하여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 있어”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저희의 가진 증거를 인하여 죽임을 당한 영혼들은 순교자들입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한 순교자들입니다. 오늘날의 순교자들은 얼마나 될까요? 일 년에 수만 명에 달합니다. 매 년 평균적으로 2만 명에서 3만 명입니다. 북한, 중국, 아랍,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 등 지구 곳곳에 예수님을 증거하다가 순교하는 영혼들이 많이 있습니다. 10절 보겠습니다.


  “큰 소리로 불러 가로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 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신원하여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나이까 하니”


  순교자들이 기도합니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큰소리로 애통하는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땅에 거하는 자들을 빨리 심판해 주십시오. 우리 기도를 언제까지 들어 주지 않으시렵니까?

  순교자의 기도는 심판을 더 가속화 시키고 촉진시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안타까운 영혼들의 기도를 들어 주십니다. 하나님의 답변은 11절에 나옵니다. 보겠습니다.


  “각각 저희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가라사대 아직 잠시 동안 쉬되 저희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받아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


  하나님이 답변하시기 전에 흰 두루마기를 주시는 것은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것이지요. 그래 네가 수고했다고 하시며 위로해 주십니다. 그리고 잠시 동안 쉬게 하십니다. 언제까지요? 저희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받아 그 수가 차기까지입니다. 그 수는 몇 명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때가 차기까지를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심판을 지연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요한 일, 이, 삼서를 보았듯이 더 많은 사람이 구원받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24장 14절에 복음이 천하만국에 전파되어야 그때서야 종말이 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직은 아닙니다. 지금은 북한까지 복음이 들어가 있지만 아직 전 세계 구석구석까지는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중국 소수민족에도 복음이 들어가 있지만 아직은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사이에 살고 재림 쪽에 가까이 살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디쯤 와 있는가? 이것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사입니다. 네 번째 인을 뗄 때는 이미 지났습니다. 다섯 째 인을 뗄 때와 여섯 째 인을 뗄 때 사이에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 시대는 여섯 째 인을 뗄 때에 아주 가까이 와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습니다. 12절 보겠습니다.


  “내가 보니 여섯째 인을 떼실 때에 큰 지진이 나며 해가 총담같이 검어지고 온 달이 피같이 되며”


  여섯 째 인을 뗄 때는 큰 지진이 나며, 해가 총담 같이 검어지고 온 달이 피같이 되고 13절 보겠습니다.


  “하늘의 별들이 무화과나무가 대풍에 흔들려 선 과실이 떨어지는 것같이 땅에 떨어지며”


  하늘의 별들이 대풍에 흔들려 과실이 떨어지는 것 같이 땅에 떨어지며 14절 보겠습니다.


  “하늘은 종이 축이 말리는 것같이 떠나가고 각 산과 섬이 제 자리에서 옮기우매”


  하늘은 종이 축이 말리고 15절 보겠습니다.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각 종과 자주자가 굴과 산 바위 틈에 숨어”

  땅의 모든 자들이 다 두려워 떱니다.

  7장부터는 두 가지 현상이 나타납니다. 하나는, 우주 대변동을 인해서 많은 사람들이 두려워 떨며 하나님 앞에 나와 대 부흥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재림 전에 일어나는 대 부흥의 역사입니다. 또 한 부류의 사람들은 끝까지 회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끝까지 대적하는 적그리스도와 같은 모습입니다. 동시에 사단들이 발악을 하고 있는 장면들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16절 보겠습니다.


  “산과 바위에게 이르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낯에서와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우라”


  계속해서 17절 보겠습니다.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


  진노의 큰 날에는 모두가 심판 앞에 설 수밖에 없음을 가르쳐 줍니다.

  911테러사건은 세계사의 분수령이었습니다. 기독교와 모슬렘이 극도의 대립을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코란경에 보면 기독교인을 죽이라고 하는 표현이 300번 이상 나옵니다. 그러니 급진적 모슬렘 주의자들이 기독교에 대해서 반감을 가지고 어떻게 하면 파괴할까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정서적으로 바로 서 있지 않기 때문에 믿지 않는 사람들 앞에서 핍박과 공격을 받는다고 말하는 것이 맞긴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사단은 그 소리 속에서 성도들을 미혹합니다. 그러나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요한계시록을 볼 때 마지막 때는 예수를 믿는 것 자체가 핍박이고, 예수 믿는 것 때문에 고난과 환란을 당하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마지막 때는 신앙생활이 무디어집니다. 신앙생활을 잘하지 않고 점점 세속주의가 되어갑니다. 세속적인 것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교회의 가장 큰 적은 세속주의입니다.

  요한계시록은 그것을 경고하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점점 모이기를 싫어하고, 예배시간도 짧아지고, 주일 저녁예배도, 새벽기도도 안하고 사람들이 점점 더 영적 생활에 소홀하게 됩니다. 그것이 마지막에 나타나는 종교적, 영적인 현상입니다. 그러나 더 잘 믿는 사람들도 있고,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편승해서 똑같은 말을 하면 안 됩니다. 마지막 때는 믿는 것 자체가 죽임을 당하고 믿는 사람들이 다 고갈 당하고 잡혀 죽고 핍박과 환란의 시대가 도래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영적세계, 영적 사단의 실체를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이제 점점 더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여섯 번째 인을 뗄 때 우주 대 변동이 일어나는 것은 종말의 시작입니다. 이런 일들이 일어날 때 예수님께서는 두려워 말라고 하십니다. 지금은 우리가 잠잘 때가 아니라 영적으로 더 깨어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승리하는 삶을 사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