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역대하(구속사)

역대하20장,위기앞에서

호리홀리 2015. 12. 7. 11:59

RSV, NIV, JB, 공동번역과 많은 학자들(Keil, Curtis, Payne, Barker)'아람'이 아닌 '에돔'으로 번역한다. 그러나 한글 개역 성경은 흠정역과 같이 '아람'(KJV, 수리아)으로 번역한다 유다 쪽으로 볼 때 '바다 저편'은 사해 바다 남동쪽을 가리키며 그곳에 에돔 땅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람은 사해북쪽으로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람'은 많은 역본들처럼 '에돔'으로 번역되는 것이 좋다. 그러므로 1절에서 언급되지 않은 에돔 사람이 모압과 암몬 자손과 동맹하여 여호사밧을 침략한 셈이 된다. 따라서 1절의 '마온 사람'은 세일 산에 거주하던 비에돔계 사람을 대표하며 세일 산에 거주하여 에돔계 사람과 비에돔계 사람이 모두 이 전쟁에 참여하였음을 알 수 있다.

 

하사손다말 곧 엔게디 - 하사손다말 곧 엔게디(15:62;삼상 23:29;47:10)는 본래 아모리 족속의 땅이었다(14:7). 이는 사해 서부 중앙의 샘이 있는 지역으로서 종려나무와 포도원의 고벧화가 유명한(1:14), 오늘날의 아인 지디(Ain Jidi)에 해당된다. 한편 엔게디의 옛 이름인 하사손다말에서 하사손(Hazazon)이란 이름은 엔게디북서 쪽에 위치한 후사세 와디(Husaseh Wady)라는 지명(地名)에서 그 흔적을 발견할 수 있으며 다말(Tamar)은 종려나무를 뜻한다. 한편 이 동맹군들의 유다 침략경로는 사해 남쪽 근처에서 사해 서부 엔게디를 통과하여 유다의 구릉지로 이어진다(Curt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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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호와께로 낯을 향하여 여호사밧이 마음을 정하여 크게 결심하고 여호와께 도움을 구하기로 하였음을 가리킨다. 일반적으로 얼굴은 중요한 상징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데 예를 들면 '얼굴을 든다'는 존경심을, '...에게서 얼굴을 돌렸다'는 경멸이나 무관심을 나타낸다(왕상 21:4; 7:22). 이런 점에서 여호사밧의 행동을 살펴볼 때 그가 매우 다급하였고 간절하였음을 알 수 있다.

 

 금식하라 공포하매 - 이것은 왕이 공식적으로 공포한 최초의 금식 선포이다(Barker). 물론 그 이전에도 급박한 재난이 있을 때에나 특별한 회개가 요청될 때 백성들을 모으고 금식을 선포한 적이 있었다(20:26; 삼상 7:6). 그러나 왕조 시대에 이르러 왕이 개인적으로 금식한 일은 있어도(삼하 12:16) 온 백성들을 향하여 금식을 선포한 것은 이것이 최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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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 사람이...간구하더라 - 예루살렘 거민 뿐만 아니라 유다 백성 전체가 여호사밧의 명령에 순응하였으며 민족의 재난을 맞아 크게 두려워하고 여호와께 도움을 청했다. 그들은 인간의 지혜와 힘을 의지하지 않고 여호와의 지혜와 능력에 맡겼다. 여호사밧이 다른 나라의 도움을 청하지 않고 백성을 향해 여호와께 도움을 청하라고 명한 것은 신정국가(神政國家)의 왕으로서 바른 조처를 한 것이다. 그는 여호와만이 그의 힘이시요 방패시요 산성이심을 알고 여호와께 의지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4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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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 뜰 앞에서 - 이것은 성전 앞에 있는 솔로몬이 지은 큰 뜰(4:9)을 가리키는데 이 뜰을 '새 뜰'이라고 한 것은 아사 왕이나 혹은 여호사밧 왕이 복원 또는 확장했기 때문일 것이다. (Keil, Curtis). 이 뜰은 회중이 모인 바깥 뜰이며, 여호사밧은 제사장의 뜰로 들어가는 입구에 서서 모인 회중을 바라보았다(Ke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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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하나님 - 이는 여호와의 전능하심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모세는 바란 광야에서 가나안 입성을 목전에 두고 백성들을 향해 이스라엘보다 강대한 열국을 쳐서 이기신 여호와의 능력을 말하면서 이런 표현을 사용했다(4:39). 기생 라합도 홍해사건과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하나님의 능력을 말할 때 이런 표현을 사용했다(2:11). "오직 우리 하나님은 하늘에 계셔서 원하시는 모든 것을 행하셨나이다"(115:3).

 

 막을 사람이 없나이다 - 전능하신 여호와와 무기력하고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을 대비시킨 구절이다(14:11 주석 참조, 대상 29:12; 9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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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이 땅 거민을...쫓아내시고 - 이는 가나안 정복 사건을 가리킨다(23:9;24:12).

 

주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 -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과 여호와 간의 친밀성을 보여 주는 표현이다(41:8; 2:23).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을 벗이라 부르심은 지극히 그를 가까이 하셨다는 뜻이다. 아브라함은 주의 벗으로서 그분의 뜻을 깨닫고 언약의 나라를 이루는 초석을 놓았다. 그는 믿음의 조상이 되었다.여호사밧은 언약기도를 드리고있다. 언약적자비를 호소하는 기도이며 9절은 7:14절을 근거로한다. 성경전체의 요절이다.) --> 

 세일산 사람 - 이는 직접적으로는 에돔 사람을 가리키며 본장에서는 비에돔계인 마온 사람도 포함된다.

 

 이에 치우쳐 저희를 떠나고 멸하지 아니하였거늘 - 20:14-21과 신 2:5-9을 통해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행로를 열어주지 않는 에돔과 모압 그리고 세일산 백성들을 공격하지 못하게 하셨기 때문에 이스라엘 자손들이 그 땅을 비켜서 간 사실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본절은 여호와의 은혜로 멸망을 면하게 된 암몬과 모압과 세일산 사람들의 배은망덕(背恩忘德)을 고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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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의 기업에서 우리를 쫓아내고자 하나이다 - 세일 땅은 여호와께서 에서의 후손들에게 주신 땅이었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치지 못하게 하셨다. 이에 반하여 세일땅의 사람들은 여호와께서 유다 백성에게 주신 땅을 침공하여 쫓아내려 한다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의 기업으로 주시고 그 땅에서 여호와를 예배하고 섬기며 살도록 하셨기 때문에 그들의 침략 행위는 하나님의 뜻에 대한 도전이므로 부당하다. 여호사밧은 그의 기도에서 이런 사실을 여호와께 아뢰어 도움을 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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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내와 자녀와 어린 자로 더불어 - 기도하기 위해 모인 구성원들을 살펴 볼때 그들의 기도는 출전(出戰)을 앞두고 하는 일반적인 그런 기도가 아니라 모든 것을 온전히 여호와께만 맡기고 온 백성들이 합심하여 힘쓰는 기도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특이한 사실은 여호와께 기도할 때 성인만 모인 것이 아니라 어린 아이까지도 여호와앞에 나왔다는 점이다. 그래서 당시 절박한 상황에 대해 온 백성이 신앙적으로 대처했었음을 본서 저자는 나타내려 했던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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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위 사람 야하시엘 - 한 레위 사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받아 백성에게 전하는 선지자로 등장하고 있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Curtis). , 야하시엘은 단지 성전 일에 종사하는 레위인으로서 이 거국적인 기도회에서 여호와의 신에 감동되어 특별한 예언의 말씀을 전하게 된 것이다.

 

 아삽 자손 - 대상 16:5에 따르면, 아삽은 이스라엘 여호와 하나님을 찬송하는 직무를 맡은 자들의 책임자, 곧 그 대표자로서 제금을 다루는 유명한 음악인이었다.

 이 전쟁이...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 - 야하시엘의 이 말은 다윗이 골리앗을 대항하여 싸울 때 한 말과 동일한 것으로 전적으로 여호와 만을 의지하도록 촉구한 말이다(삼상 17:47). 일반적으로 전쟁은 훌륭한 작전 계획과 우수한 군사력에 비례하여 승리를 거두게 된다. 그러나 야하시엘은 이런 일반 원리에 입각하여 승리를 거둘 수 없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 여호와 하나님은 합리성에 근거하여 역사하시기도 하지만 그것을 초월한 믿음의 원리에 근거하여 역사하시기도 한다. 야하시엘은 이 시점에서 백성들에게 이런 믿음을 요청하고 있다. 다윗의 정신이 이런 믿음의 정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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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스 고개 - 이 지명(地名)은 다른 곳에서 한 번도 언급된 적이 없는, 지역 주민에게만 알려진 별칭이었다. 이 고개는 엔게디(2)근처 사해 서부 해안의 한 지점으로부터 유다광야로 올라가는 고개로 추정된다. 이 고개길을 따라 발견된 몇 개의 성채는이 침략 이후에 재침의 가능성을 없애기 위해 세워졌던 것으로 보인다. 이 고개는 하사사 와디 근처에 위치한다(Williamson, Curtis).

 

 여루엘 들 - 여루엘은 드고아 들 남동 쪽에 위치해 있을 것으로 추측되며 그 길은 하사사 와디(Hasasa Wady)쪽으로 통해있다(Curtis). 따라서 야하시엘이 유다 백성들로 하여금 위치하게 한 곳은 적들이 올라오는 고개위가 아니라 적들이 그 고개로 올라와 진행하는 들판, 곧 골짜기 어귀 여르엘 들판이다. , 이는 전쟁을 위한 장소가 아니라 그 동맹군들이 서로 다투어 자멸하는 장면을 분명히 목격할 수 있는 장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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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서 너희와 함께한 여호와가 구원하는 것을 보라 - 야하시엘은 우수한 작전과 군사력에 근거하는 합리성의 원리가 아닌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믿음의 원리가 실제로 거둘 결과를 목격하라고 한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구원의 현장을 목격하도록 한 사건은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홍해를 건너게 할 때에도 있었다(14:13). 그때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세등등하여 추격해 오던 애굽 군대가 홍해 바다에 수장(水葬)되는 장면을 목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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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니 - 이는 여호사밧이 여호와의 승리의 약속으로 인하여 감사함을 표현한 모습이다. 일개 레위인의 입술에서 나온 예언을 참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경배를 드린데서 여호사밧의 진실한 신앙과 염손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런 태도는 북왕국 이스라엘이 미가야 선지자의 예언에 대해 보였던 태도와는 크게 차이난다(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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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핫 자손과 고라 자손 - 유다를 구원하시겠다는 구원의 계시가 야하시엘에 의해 전해지자 여호사밧과 그 백성은 하나님께 경배(18)와 찬송을 드렸다. 찬송은 그핫 자손과 고라 자손이 맡았다. 고라 자손은 그핫 자손이라는 더 큰 가문에 속한다(대상6:22, 37, 38). 고라 자손은 시편에서 노래하는 자들로 나타나지만(42-49), 역대기에서는 성막 문지기로 나타나기도 한다(대상 9:19;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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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그 선지자를 신뢰하라 - 여호사밧은 드고아 들로 나아가는 백성을 향해 승리의 확신을 갖도록 권했다. 그는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 선지자(히브리어 원문에는 '그 선지자들')를 신뢰하라'고 말했다. 이것은 신뢰하라는 것에 대한 이중적 강조이지만 그 뜻은 하나이다. , 여호와를 신뢰하는 것과 선지자를 신뢰하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똑같은 의미이다. 왜냐하면 선지자를 신뢰한다는 것은 여호와께서 주신 예언의 말씀 곧, 승리한다는 계시를 믿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여호와께서 쓰시는 종들의 말을 믿는 것은 여호와를 믿는 것이 된다. 여호사밧은 이 사실을 분명히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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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성으로 더불어 의논하고 - 여호사밧은 이 전쟁을 치름에 있어서 특별한 방법을 위했다. , 그는 백성들과 의논하여 찬양대를 그 군대 앞에 세우기로 결정했다. 이로 볼때 유다 백성들은 단순히 소극적으로 왕의 명령에 순종만 하는 자세를 취한 것이 아니라 담대함을 가졌음을 알 수 있다.

 

 거룩한 예복 - 이는 거룩성을 나타내는 '아름다운 옷'일 것이다(Pulpit Commentary). 그리고 이 예복을 입고 노래하였던 자는 성전에서 봉사하는 레위인들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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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호와께서 복병(伏兵)두어 - 혹자는 여기서 '복병'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천사또는 군대, 특히 은밀히 활동하는 천사(insidiatores)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Ewald). 그러나 여기서 '복병'(,메아레빔)은 잠복하여 기다리는 사람들을 의미하지(9:25) 하늘의 군대를 가리키지는 않는다(Keil). 그리고 또 유다군을 가리킨다고 볼 수도 없다(Curtis). 왜냐하면 유다 군대는 전혀 싸울 채비를 갖추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17). 그렇다면 그 복병은 동맹군의 일부, 즉 세일 산의 거민들일 가능성이 크다(Keil,Zockler). 세일 산 사람들은 매복하는 기술에 능란했다(Zockler). 그들은 암몬과 모압을 치고 전리품을 약탈해 가려고 하였던 것 같다. 그러나 암몬과 모압 자손이 이를 먼저 알아 차리고 세일 거민을 먼저 진멸시킨 것 같다(23). 그리고 암몬과 모압도 동일한 이유로 의심을 갖고 서로 격전을 벌여 피차 멸망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왜 서로 공격했는지는 정확히 알수 없다. 이와 유사한 사건이 사사시 7: 22에도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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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가 피차에 살륙(殺戮)하였더라 - 이에 대해서는 삿 7:22과 삼상 14:20, 그리고 왕하 3:23을 참조하라. 한편 후기 선지서들은 다가올 심판 날에 이스라엘의 원수들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피차 간에 피비린내 나는 싸움으로 파멸하게 될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다(38:21; 2:22; 14:13). 이처럼 하나님 백성의 원수는 자멸하게 되었다. 하나님은 이런 방식으로도 당신 백성의 원수를 막아 이기게 하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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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 망대 - 이 망대는 인위적으로 만든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대하26:10을 보면 인위적으로 만든 망대는 '미게달'이라는 단어를 쓰기 때문이다. '들 망대'는 자연적으로 형성된 높은 지대를 가리킨다. 그곳은 여루엘 광야를 내려다 볼 수있는 장소였다(Keil). 그곳에서 유다 사람들은 침략군들이 모두 자멸하게 된 현장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었으며 하나님의 구원을 똑똑히 목격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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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가운데에 재물과 의복과 보물이 많이 있는 고로 - 여기서 '그 가운데'란 쓰러진 병사들의 시체들 가운데를 가리킨다. 그 가운데서 취한 '재물'(, 레쿠쉬)은 유목민들의 재산으로 취급되는 가축들을 가리키며(Keil, Curtis), '의복'(,페가림)은 사람들의 의복과 군장과 짐승의 가죽으로 만들어진 장식들(8:26)을 가리키고, '보물',켈레 하무도트)은 금,은 장식들, 무기, 값진 그릇들(8:25)을 가리킨다(Keil). 이러한 전리품을 세라의 군대에게서 취한 전리품(14:13-15)과 미디안 족속들에게서 취한 전리품(8:24-26)과 비교 참조해 보라.

 

 능히 가져 갈 수 없을 만큼 많으므로 - 전리품이 이렇게 대단히 많은 것은 이 족속들이 유다 사람들을 쫓아내고(11) 그 땅에 거주할 목적으로 모든 재산을 가지고 왔기 때문일 것이다(Keil). 그러나 이런 목적으로 침략한 그들을 하나님께서는 기이한 방법으로 파멸시키셨다. 왜냐하면 아직 유다 백성이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추방될 상태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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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가 골짜기 - 이는 '축복의 골짜기'라는 뜻이며 현재 드고아의 서쪽에 위치해 있는 '베레이쿠트 와디'(Bereikut Wady)일 것으로 추측된다. 학자들의 발견에 따르면 예루살렘에서 헤브론으로 통하는 길 근처에 있는 이 골짜기에는 어떤 큰 재난에 의해서 파괴된 것으로 보이는 옛 주거지의 흔적들이 있다고 한다(Robinson). 한편 욜 3:2에는 '여호사밧의 계곡'이 나오는데 이것이 '축복의 계곡'과 같은 지는 분명치 않다. 왜냐하면 여호사밧의 계곡은 일반적으로 기드론 계곡의 위쪽 부분을 가리킨다(Zockl-er, Keil)고 보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여호사밧과 유다 백성은 구원의 하나님을 송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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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호와께서...즐거워하게 하셨음이라 - 유다 사람들은 여호사밧을 선두로 하여 기쁘게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는데 역대기 저자는 이같은 즐거움이 여호와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 스 6:22과 느 12:43을 참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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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리가...합주(合奏)하고 - 비파와 수금과 나팔을 연주하는 사람들은 레위인과 제사장들이다(5:12, 13). 그들은 승리를 주신 주님께 감사제를 드리며 찬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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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을 두려워한 고로 - 유다는 이 전쟁의 승리로 말미암아 유다의 경계 지역에 있는 나라들, 즉 북쪽의 이스라엘과 아람, 남쪽의 애굽과 모압 등의 주변 이방 국가들과 군사적인 평화를 구가하게 되었다. 이것은 당시 지리적으로 열강의 전쟁의 회오리 속에 놓여 있던 유다에게 주어진 특별한 축복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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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이 놀라운 행사는 고라 자손의 시 가운데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주제가 되었다. 이는 시편 46,47,48에 나타나며 83편에도 나타난다. 이 시들은 아마 아삽 자손 야하시엘에 의해 쓰여졌을 것이다(Ke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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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에서 이십 오 년을 치리하니라 - 왕상 22:41에는 여호사밧이 아합 왕 제4년에 왕이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역대기 저자는 북왕국의 왕들과 비교하는 연대기를 전혀 사용하고 있지 않다. 그 이유는 역대기 저자가 여호와께 배반한 북왕국을 전혀 염두에 두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대기와 열왕기의 내용은 본질상 일치한다.

 

 그 모친의 이름은 아수바라 - 이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참고로 유명한 갈렙의 아내 중에 아수바라는 이름을 가진 자가 있었다(대상 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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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당은 폐하지 아니하였으므로 - 17:6에 의하면, 여호사밧이 산당을 유다에게 제거한 것으로 언급된다. 그러므로 피상적으로는 본절과 모순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역대기 저자가 그런 오해를 불러 일으킬 소지를 남겨 두었다고 할 수는 없다. 본절의 의미는 여호사밧이 산당을 없애는 종교 개혁을 폈지만 백성이 계속적으로 그 일에 동참하지 않았거나 여호사밧이 그 개혁을 일관되게 추진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백성이 오히려 마음을 정하여 - 이 표현은 유다 백성의 신앙 상태를 지적하는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께 돌아오기로 마음을 정한 것이 아니라 도리어 그 반대로 정했다. 그러므로 산당은 그대로 존속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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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중에 - 이는 막연한 시간을 나타내지만 여호사밧과 아하시야의 교제가 암몬과 모압 족속에게서 승리한 후에 이루어졌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모압과 암몬과 마온의 동맹군이 여호사밧을 공격한 것은 B.C. 853년이었다(1절 주석참조). 그리고 아하시야의 통치는 B.C.853년에서 852까지 1년 남짓한 기간 동안에 이루어졌다(왕하 1:17 강해 참조). 따라서 여호사밧과 아하시야의 교제는 매우 짧은 기간의 일임을 알 수 있다. 한편 왕상 22:47에 따르면 이때에 에돔에 왕이 없고 섭정왕(攝政王)이 있었다고 하는데 이것은 에돔의 동맹군이 유다 공격에 실패한 후 여전히 유다의 속국으로 남아 있었음을 암시한다. 그래서 아카바 만의 북쪽 끝에 위치한 에시온게벧에서 배를 건조하기가 매우 쉬웠을 것이다(8:17 주석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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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스로 보내고자 - 왕상 22:48에는 '다시스의 선척'이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다시스 지역과 무역하는 데 사용되던 배들을 가리킨다. 그 배의 실제 목적지는 오빌이었다. 그러나 역대기 저자는 배의 목적지를 '다시스'로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기록상의 차이는 9:21과 왕상 10:22에서도 볼 수 있는데 이는 (1)역대기 저자의 기록상의 실수이거나(Keil), (2)다시스가 오빌의 방향에 있어 1차적으로 먼저 다시스로 배들을 보낼 필요가 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Zockler).

 

 에시온게벨 - 솔로몬 때에도 이곳에서 선박을 건조한 적이 있는데(8:17)고고학자들에 의하면 솔로몬 시대 이후 이곳은 곧바로 에돔인의 손에 떨어졌다가 여호사밧 시대때 다시 재탈환한 것이라고 한다(Pay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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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호와께서 왕의 지은 것을 파하시리라 - 왕상 22:48에 따르면 이 배는 에시온게벨에서 파괴되었다. 그리고 계속해서 아하시야는 새로운 배를 건조하여 오빌로의 항해를 시도하도록 여호사밧에게 요청하였으나 여호사밧은 첫번째 파선된 배가 건조에는 동참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에 그 배가 파상(破傷)하여 - 배가 부서진 원인은 폭풍 때문이었을 것으로 추측되는데(Barker) 요나서에 따르면 욥바에서 다시스로 이어지는 항로에는 큰 폭풍이 자주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1:4). 그러나 폭풍을 일으키기도 하시고 잠잠케도 하시는 분은 바로 여호와이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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