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역대하(구속사)

역대하18장,참영과 거짓영

호리홀리 2015. 12. 3. 12:34

 여호사밧은 다윗의 경건한 통치를 따랐다. 그는 바알에게 구하지 않고 그 부친의 하나님께 구하였으며 여호와의 계명을 지켜 행하였다. 그는 유다를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로 세우는 데 힘을 기울였다(17:7-9). 온 유다 백성이 이러한 통치에 존경과 사랑의 표시로 예물을 여호사밧에게 자발적으로 바쳤다. 주변국인 블레셋와 아라비아도 그에게 예물을 바쳤다. 그 결과 여호사밧은 부귀와 영광을 누림에 있어 절정에 이르렀다.부귀와 영광이 극하였고, 이것은 하나님이 주신 축복의 결과였다. 그러나 이 축복은 아합 왕과 혼인 동맹을 맺는 그릇된 목적에 잘못 사용되었다.

 

 연혼하였더라 - 이것은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과 아합의 딸 아달랴의 혼인(婚姻)을 가리킨다. 이들의 결혼은 약 9년 전인 B.C. 865년 경에 거행된 것으로 추측된다. 이 혼인 동맹은 아합의 제안으로 이루어졌을 것이며, 그것은 두 나라의 존립과 번영을 그들의 힘에 의지하려는 의도를 은연 중 드러내고 있다. 이 혼인 동맹의 목적과 의도가 어디에 있든지 간에 이것은 여호사밧의 큰 실정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그가 이혼인의 씨를 뿌림으로 그 자신과 다윗 왕가와 유다 백성에게 큰 해악을 불러 들였기때문이다. , 여호사밧은 예후의 지적대로 "악한 자를 돕고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를 사랑하는"(19:2) 어리석은 행동을 함으로써 다윗 왕가의 왕손이 전멸할 위경(危境)에처하였으며(22:10, 11) 아합의 딸 아달랴에 의해 우상 숭배가 유다에 유입되어 그 백성이 하나님을 멀리 떠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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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하18:2]

 두어 해 후에 - 히브리어 원문을 직역하면 '해들의 끝에'라는 뜻이다. 대부분의 영역 성경들(KJV, RSV, NIV, JB, NEB)은 이를 '몇 해 후에'로 번역한다. 한편, 한글 개역 성경 처럼 '두어 해 후에'라고 번역할 때 '두어''둘 가량'이라는 뜻이므로 '두해 가량 후에'라는 뜻이 된다. 그러나 원문이 정확히 몇년을 가리키는지 제시하지 않음으로 영역 성경에서처럼 '몇 해 후에'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리고 공동번역처럼 '여러 해 지나서'로 번역하는 것도 적절하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저가...아합에게 나아갔더니 - 여호사밧이 아합을 방문한 것은 아합의 초대로 이루어진 것으로 생각된다. 아합이 그를 초대한 이유는 수리아(아람)에게 빼앗긴 길르앗라못을 되찾기 위해 양국이 연합하여 원정하자는 것이었다.

 

 길르앗 라못 - 이는 요단 동편 갓 지파의 중요한 성읍(20:8;21:38)으로, 아합의 부친 오므리가 벤하닷의 부친에게 빼앗긴 성읍이었다(Barker). 이 성읍은 국경 지대의 고지(高地)에 위치하였다.

 

 권하더라 - 이는 '설득하다', '유혹하다'라는 뜻의 히브리어 동사 '쓰트'의 히필형(Hiphil;사역형 능동)으로서, 아합이 여호사밧으로 하여금 그 전쟁에 동참토록하기 위해 온갖 설득을 다하였음을 나타내는 단어이다. 사실 아합은 여호사밧을 설득하기 위해 그와 그 수행원에게 우양을 많이 잡은 연회까지 배설하였다. 아합은 수리아가 카르카르(Qarqar)에서 패배하여 국력이 약화된 틈을 노려 그런 계획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Pay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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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하18:3]

 나는 당신과 일반이요...싸우리이다 - 여호사밧은 아합의 제의에 적극 찬동했다. 그가 이와 같이 찬동한 이유는 결혼으로 맺어진 동맹을 견고히 하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유다에 큰 유익이 된다고 생각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여호사밧의 그런 찬동의 표현은 비신앙적이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두 나라가 본질적인 차원에서 하나가 되어 연합 전선을 펼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 유다는 여호와의 신앙을 회복하는 상태였고, 이스라엘은 우상을 숭배하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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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지자 사백 인을 모으고 - 여기에 나타난 선지자 400인의 정체에 대해서 혹자는 엘리야에 의해 죽임을 당한 바알 선지자 450명 외에 400명의 아세라 선지자일 것으로 생각한다(왕상 18:19). 그러나 본문의 맥락 속에서 그러한 암시는 전혀 발견할 수 없다. 오히려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요구한 점(4), 그리고 그 선지자들이 여호와께 물으며 예언했다는 점(10), 그 선지자들 중 한 선지자인 시드기야의 이름의 뜻이 '여호와는 공평하시다'인 점등을 볼 때 그들은 참선지자로 자처한 무리인 것같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여호와의 선지자'는 이세벨이 멸한 '여호와의 선지자'(4)와는다른 종류의 선지자로서 아합의 곁에서 국가 종교를 관장하고 이방 종교에 대해서도 타협적인, 금송아지를 숭배하는 선지자들, 즉 궁전 선지자들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13:8). 미가야는 여호와께서 이들 400인 선지자들의 입에 거짓말하는 영을 보내셨다고 주장하고 있다(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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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외에 우리가 물을 만한 여호와의 선지자 - 이는 여호사밧이 보기에 400인의 선지자들이 한결같이 왕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거짓으로 말하고 있었음을 나타낸다. 그래서 여호사밧은 진정한 선지자를 찾았는데, 이로 미루어 보아 그는 거짓 선지자들의 예언에 대해 의심을 품었거나 미심쩍어 했던 듯하다. 한편, 그가 이렇게 한 것은 자신의 행위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그랬을 것이라는 추측도 할 수 있는 바 어느 견해만이 옳다고 하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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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하18:7]

 이믈라의 아들 미가야 - 선지자 미가야에 대해서는 본사건과 관련된 것 이외에 알려진 바가 전혀 없다. 그리고 진실한 여호와의 선지자는 모두 멸하고 박해하던 시대에 미가야와 같이 아합의 죄를 지적하여 흉한 일만 예언하던 선지자가 어떻게 아합 곁에 생존해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전혀 알 길이 없다. 단지 다른 이스라엘의 참 선지자들처럼 여호와의 말씀을 왜곡됨이 없이 담대하게 외쳤던 선지자인 것으로 추측된다(23:22;3:8).

 

 항상 흉한 일만 예언하기로 - 여기서 진리에 일관된 미가야의 태도와 항상 왜곡되이 범죄하며 사는 아합의 태도를 엿볼 수 있다.

 

   [대하18:9]

 사마리아 성문 어귀 광장 - 전통적으로 서문 앞 광장은 특별한 장소로서 이곳에서 공적인 판결을 내리곤 하였다(23:10;4:1). 그런데 여호사밧이 이곳에서 선지자들의 예언을 들은 것은 당시의 관습을 따른 것이기도 하겠으나 아합이 추진하고 있는 아람과의 전쟁에 대한 백성들의 반응과 선지자들의 반응을 살펴보기 위한 목적 때문이기도 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아람과의 전쟁에 유다 백성들이 참여하는 이유와 그 정당성을 선지자들의 예언을 통하여 부각시킴으로써 백성들의 사기를 진작시키려는 목적도 함께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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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하18:10]

 철로 뿔들을 만들어 - 여기서 ''은 공격력의 상징인데 아합의 승리를 암시하고자 거짓 선지자 시드기야가 철로 뿔을 만들었다(33:17;48:25;8:3;6:13). 

 

 [대하18:11]

다른 선지자들도 모두 시드기야의 예언과 동일한 예언을 함께 목청을 돋우어 말했다. 아마 그들은 시드기야를 중심으로 하여 왕의 정책을 옹호하며 왕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철저하게 계획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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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하18:12]

 여출일구(如出一口)하여 왕에게 길하게 하니 - 거짓 선지자들이 이구 동성으로 길르앗 라못 원정에 대해 길하게 예언하였다. 이와같이 불의한 자에게는 그의 불의한 욕심에 찬동하고 그것을 만족시켜 주는 사단의 역사가 있다. 한편, 본절의 '여출일구''이구 동성'(異口同聲)과 같은 의미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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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하18:13]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 이같이 미가야의 단호한 맹세에는 다음과 같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1) 미가야 자신은 다만 하나님의 대언자일 뿐이므로 여호와의 뜻을 임의로 왜곡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2) 여호와께서는 발락과 같은 자의 일을 그의 나귀를 통해서라도 막으시는 분이므로 (22:27-31) 그의 말씀을 왜곡시키는 자에게는 반드시 심판이 있으리라는 것을 암시한다.

 

 내 하나님의 말씀하시는 것 - 이는 여호와의 말씀은 주관적인 사고나 욕망으로부터 발생하는 것과는 다른 객관적인 계시(啓示)임을 나타낸다(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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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하18:14]

 올라가서 승리를 얻으소서 - 미가야는 여호와의 메시지를 요구하지 않고 다만 미가야 자신의 개인적인 소견을 묻는 왕에게 '올라가서 승리를 얻으소서'라고 대답했다. 그의 대답 속에는 좋은 대답만을 요구하는 아합에 대한 빈정거림과 가시돋힌 책망이 내포되어 있다. 따라서 본절을 미가야의 거짓말로 해석하거나 아이러니 한 것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의 첫번째 대답은 여호와에게서 받은 메시지가 아니라 아합의 본심이 무엇인지를 드러내기 위한 미가야 자신의 빈정거림의 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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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하18:15]

 내가 몇번이나 너로 맹세케 하여야 하겠느냐 - 미가야의 빈정거림을 아합도 금방 깨달았다. 아합은 보다 진지한 미가야의 태도에서 우러나오는 동일한 답을 듣기를 원했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왕에게 찬성하는 말과 함께 진정한 존경의 태도까지도 원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아합은 그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여호와의 메시지, 곧 그에 대한 심판의 메시지를 미가야에게 들어야 했다(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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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하18:16]

 온 이스라엘이 목자없는 양같이 - '목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지도자를 가리킨다(27:17). 아합은 이스라엘의 목자였지만 이스라엘로 하여금 우상의 길을 걷게 하고 그들을 포학(暴虐)으로 다스리는 지도자였다. 이러한 아합이 이끄는 군대가 출정하여 진을 치겠지만 그 처지는 목자 없는 양과 같은 것이 될 것이다. 아합은 이스라엘의 참목자가 아니라 삯꾼 목자이기 때문이다.

 

 이 무리가...각각 평안히 그 집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 선지자 미가야는 출정한 이스라엘 군대가 전쟁에서 패하여 무사히 귀환할 것을 예언하고 있다. 그런데 이 같은 표현은 앞의 말과 대단히 모순된 것처럼 '이스라엘이 목자 없는 양같이 된다'라고 하는것은 전혀 반대의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쟁을 중단하고 귀향하게 되는 상황을 백성들 편에서 볼 때는 충분히 이해가 된다. 이유인즉, 전쟁에서의 죽음보다 살아서의 귀향이 훨씬 더 평안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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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하18:17]

 당신에게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 아합은 미가야의 예언을 올바로 이해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그를 자신에 대해서 흉한 것만 예언하는 선지자로 여호사밧에게 재천명함으로서 여호사밧으로 하여금 미가야의 예언을 업수이 여기도록 유도하였다. 아합이 여호사밧에게 한 반문, "당신에게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하는 말은 그의 말이 또다시 입증된 것이 아니냐 하는 뜻이다. 그리하여 그는 여호사밧을 동요치 못하게 하고 참 선지자의 말에 귀기울이지 못하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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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하18:18]

 여호와께서...그 좌우 편에 모시고 섰는데 - 여호와에 대한 이러한 묘사는 주로 후기 유대 묵시 문학에서 많이 나타난다(6:1-5;7:9,10). 이 표현은 하나님의 심판과 많은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왕상 22:19-23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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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18:19]

 아합을 꾀어... 죽게 할꼬 - 미가야는 환상으로 여호와께서 거짓 영을 아합의 400인 선지자들 입에 두어 아합을 멸망으로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설명하고 있다. 한편 본절에는 여호와께서 천상 회의의 주재자로 등장하는 모습과, 악한 자를 처리하시는 방법이 실감있게 잘 나타나 있다. 18:26에서도 "깨끗한 자에게는 주의 깨끗하심을 보이시며 사특한 자에게는 주의 거스리심을 보이시리니"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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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하18:20]

 한 영이 나아와 - 여기서 '한 영'은 특정한 영을 가리키는데, 21절을 보면 '거짓말하는 영'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1:6에는 이가 곧 '사단'인 것으로 묘사되어 있고,예수께서는 이러한 사단을 가리켜 '거짓의 아비'라고 말씀 하셨다(8:44). 여기서 우리는 여호와께서 당신의 섭리 가운데 마귀도 주장하고 계심을 알 수 있다(벧전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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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하18:21]

 나가서 그리하라 - 이 부분에서 우리는 여호와께서 ''을 주관하심을 발견한다. 이외에도 여호와께서는 애굽 왕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시고(4:21;7:3;9:12;10:1,2027;11:10),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 속에 악한 영을 보내시고(9:23), 다윗의 마음을 감동시켜 인구 조사를 실시토록 하시며(삼하 24:1), 동방의 의인 욥을 시험토록 마귀를 보내셨다(1:6). 그러나 이러한 일들은 여호와의 속성에 전적으로 위배되기 때문에 여호와께서 직접 이런 일을 행하신 것으로 해석하는 데 있어서 학자들은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그래서 이런 일들에 대해서 하나님은 '허용'(許容) 또는 '묵허'(黙許)하신다고 설명한다. 이는 여호와의 주권은 인정하되 여호와는 죄와는 상관이 없는분이라는 뜻을 내포하는 신학적 개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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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하18:22]

 여호와께서...화를 말씀하셨나이다 - 이는 거짓 선지자들의 예언이 곧 여호와께서 아합에게 내리신 저주임을 볼 수 있다. 그는 죽음의 위협을 무릅쓰고도 하나님의 대언자로서 여호와의 뜻을 굽히지 않고 전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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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하18:23]

 여호와의 영이...네게 말씀하더냐 - 이 시드기야의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 (1)자신은 분명히 하나님의 영을 받았다는 뜻과, (2) 한 하나님이 서로 다른 두 가지 예언을 주실 수 없다는 뜻이 들어있다. 그러므로 미가야의 예언은 거짓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참 선지자인지 거짓 선지자인지를 분별할 수 있는 자는 선지자 자신이 아니라 여호와이시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영을 더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요일 4:1)고 말했다. 그리고 신 13:1-5에서는 모세 율법에 나타난 종교적, 도덕적 계명과 그들의 예언이 서로 부합되는지를 보면 참 선지자인지 거짓 선지자인지를 분별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므로 시드기야가 미가야의 뺨을 때린 것은 자신이 부도덕하며 자신의 메시지가 거짓임을 입증하는 것이다. 진정 시드기야는 자신의 거짓을 감추기 위해서 이와같이 부도덕한 말과 행위들을 했던 것이다. 이처럼 참 선지자는 그의 의로운 행위 때문에 모욕과 핍박을 받는다. 그러나 하늘의 상이 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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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18:24]

 네가 골방에 들어가서 숨는 그날에 보리라 - 미가야는 시드기야의 공격적인 태도에 조금도 움츠러 들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시드기야가 하나님의 징계를 피하여 골방에 숨는 날에 자신의 예언이 거짓임을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시드기야가 골방에 들어가 숨었는지에 대한 여부는 역사적으로 확인할 길이 없다. 추측컨데 이는 아합이 사망한 후 그의 가족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보복할 것을 예언한 것일 것이다(Pay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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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18:25]

 부윤(府尹) 아몬과 왕자 요아스 - 아몬과 왕자 요아스에 대해서는 본절과 병행절인 왕상 22:26이외에 기록된 바가 전혀 없다. 한편 '부윤'이란 직책은 방백과 동일하며 이러한 직책이 두드러진 것은 중앙 정부의 권위가 떨어지고 지방 분권이 강화되었음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Barker). 공동번역은 부윤을 '성주'로 번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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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하18:26]

 고생의 떡과 고생의 물 - 한글 개역은 흠정역과 동일하게 번역하고 있다. 다른 영역본들은 각각 '빵과 물 이외에는 아무 것'(NIV), '소량의 빵과 물'(RSV)로 번역하며, 공동 번역은 '굶어죽지 않을 정도'로 의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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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하18:27]

 너희 백성들아 다 들을지어다 - 여기 '백성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암밈'은 복수로서 보통은 '열국들'을 의미하지만 여기서는 이스라엘의 열 지파를 가리키거나, 이스라엘 백성과 유다 백성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이는 미가야의 예언의 진위 여부에 대해서 백성들이 증인이 되어달라는 뜻이다. 1세기 후에 미가 선지자도 이런 표현을 사용했다(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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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하18:28]

 여호사밧이 길르앗 라못으로 올라가니라 - 여호사밧은 분명 미가야의 예언을 주목하지 않았다. 그가 왜 그런 행동을 취했는지 본문은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있다. 그럴지라도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그가 이미 바른 판단을 할 수 없을 만큼 흑암의 길에 서 있다는 것이다. 그는 신령한 상태에 있지 않아 자신의 판단과 아합의 뜻을 따라 길르앗 라못 정벌에 나서게 된다. 여호사밧은 더욱 흑암과 위험의 길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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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18:29]

 이스라엘 왕이 변장하고 - 왜 이스라엘 왕만 변장하고 여호사밧은 변장하자 않았는지에 대해서는 분명히 알 길이 없다. 아마도 이는 한 군대에 두 나라의 왕이 있음을 감추기 위한 계획 때문이었던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그리고 이와 더불어 아합은 궁수(弓手)들의 집중적인 표적이 되지 않기 위해 변장한 것으로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어찌되었든 분명한 것은 아합이 미가야의 예언에 대해 두려움을 가졌던 것만은 사실인듯하다. 그래서 인간의 눈을 속여 자신의 죽음을 방지하려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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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하18:30]

 아람왕이...오직 이스라엘 왕과 싸우라 한지라 - 흔히 전쟁에서 왕을 죽이는 것은 승리의 관건이 된다(삼하 21:17). 그러나 본절은 벤하닷이 이전에 아합에게 무릎 꿇었던 굴욕적인 사건(왕상 20:31-34)으로 인하여 크게 분노하고 있었음을 나타낸다. 아합이 길르앗 라못을 치게 된 동기와 벤하닷과 아합의 이전의 적대적인 관계에 대해서는 왕상 22:1,3의 주석을 참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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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18:31]

여호사밧이 소리를 지르매 - 여호사밧은 아람 장관들의 집중적인 공격에 매우 위급해졌음을 느끼고 크게 소리를 질렀다. 그때 그가 외친 소리로 보았던 것 같다(왕상22:32). 그래서 아합에 대해서 잘 알고 있던 아람 군대 장관들이 그가 아합이 아님을 알고는 추적을 멈추었다고 열왕기 기자는 기록하고 있다(32).

 

 여호와께서...저를 떠나가게 하신지라 - 역대기 기자는 아람 병거 장관들이 그와 싸우지 않고 물러간 것을 여호와의 은혜에 의한 것으로 적고 있다. 여호와께서는 위급한 상황 가운데 처한 여호사밧을 향해 간섭하심으로 적군의 손에 넘기지 않으셨던 것이다. 아합과 죄악의 동맹을 맺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분별치도 못하고 이 전쟁에 참여하여 죽음의 위경에 처한 그는 여호와의 은혜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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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18:32]

아람 병거 장관들은 여호사밧이 이스라엘 왕 아합이 아님을 확인하고 쫓기를 그만두었다. 그들은 아람 왕의 명령을 받들어 순종한 것이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로 된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사밧이 아닌 아합을 그들에게 내어주어 심판하기로 작정하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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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18:33]

 한 사람이 우연히 활을 당기어 - 여기서 '우연히'는 진 중에서 마구 쏘아 대던 화살 하나가 아합 왕을 맞히게 된 것과 관련된다. 여호와께서는 미가야의 예언대로 아합을 죽이시기 위하여 사기가 충천(衝天)해 있는 아람의 군사 한 사람을 사용하신 것이다. 한편 그 아람의 궁수가 아합 왕인 것을 분명히 알 수 없으나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뜻을 성취하시기 위해 열심으로 활을 쏘는 그 궁수를 사용하셨음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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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하18:34]

 왕이 병거에서 스스로 부지하며...죽었더라 - 아합은 화살에 맞아 부상당했지만 전쟁이 격렬하여 그것을 처리할 여유도 갖지 못한 채 병거에 버티고 서 있어야만 했다. 이것은 하나님의 형벌이 아닐 수 없다. 그는 거짓 선지자들의 예언에 따라 원정 계획을 결단하고 행동으로 옮긴 결과 이런 결말을 맞게된다. 그는 참 선지자 미가야의 예언을 좇지않고 거짓 예언을 따랐기 때문에 죽게 된 것이다. 거짓이 아합을 죽였다. 믿지 않아야 할 거짓을 믿고 따르다 결국 이런 형벌을 받게 되었으며 자기의 영욕을 따라 무엇을 행하려다 형벌을 받았다. 그의 죽음은 미가야 선지자의 예언의 성취였다(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