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장은 언약적 축복,16장은 언약적저주, 대조를 통해 언약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15장에서 하나님과 언약을 체결했으나 16장에서는 적국과 언약을 체결하는 장면이 나오고있다.
베냐민 지파의 라마(수 18:21-28)는 예루살렘 북쪽 약6km 지점에 위치해 있으며 오늘날의 '엘-람'(xlRam)에 해당된다(삿 4:5;19:13). 이라마(Ramah)는 에브라임에서 예루살렘으로 통하는 교차로에 위치하고 있는 곳이다. 바아사는 아사의 명성을 듣고 남하(南下)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막기 위하여(15:9) 이곳을 요새화하여 경비를 강하했다. 또한 이로써 유다 정복을 위한 전초(前哨) 기지 확보라는 전략적 목적도 꾀하였다. 왕상 15:17 주석 참조. 한편 라마보다 더 북쪽에 있는 벧엘은 과거 아비야가 여로보암에게서 빼앗은 성읍이다(13:19). 그런데 이때에 라마와 함께 이 벧엘도 바아사에 의해서 탈환되었던 것으로 추측된다(Payne). 이와 같은 바아사의 침략은 아사가 아람 왕 벤하닷에게 원조를 요청하게 된 배경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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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16:2]
은금을 취하여 - 본절과 병행 구절인 왕상 15:18에는 '은금을 몰수히 취하여' 벤하닷(Ben-hadad)에게 보냈다고 기록되어 있다. 즉, 아사는 바아사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그 부친의 구별한 물건과 자기의 구별한 물건'(15:18) 전부를 아람 왕 벤하닷에게 도움을 청할 목적으로 갖다 바쳤던 것이다. 이처럼 아사는 초기에 온전히 여호와께만 의지함으로 받은 축복의 선물들을 이제 여호와가 아닌 다른 사람을 의지함으로 다 잃게 되었다. 도한 그는 이와같이 아람 왕을 이스라엘 민족간의 문제에 개입토록 함으로써 그 다음 한 세기 동안 계속해서 아람이 이스라엘을 간섭하게끔 만들었다(왕하8:28, 29;16:5-9).
[대하16:3]
내 부친과 당신의 부친 사이에와 같이 - 이는 벤하닷의 아버지인 다부림몬(왕상15:18)과 아사의 아버지 아비야 사이에 상호 동맹 조약이 체결되었던 적이 있음을 가리킨다(Payne). 당시 아비야가 여로보암에게서 크게 승리하였기 때문에(13:13-19) 다브림몬은 북왕국 이스라엘과 조약을 맺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로 볼 때 아람은 항상 이스라엘의 정세(政勢) 변동에 크게 영향을 받았음이 분명하다.
나와 당신 사이에 약조하자 - 이처럼 아사는 그의 부친 아비야는 달리 비굴하게 먼저 아람에게 약조를 청하였다. 이는 마치 유다 왕 아하스가 앗스르 왕 디글랏 빌레셀에게 원조를 요청하던 때의 모습과 유사하다(왕하 16:7 이하). 그렇지만 이같이 하나님 대신 외국 군대를 의지하던 자들의 결말은 다 동일하여 도리어 이방인의 압제 하에 놓이고 말았으니 자승 자박(自繩自縛)의 대표적 경우라 하겠다.
바아사와 세운 약조를 깨뜨려서 - 아람(Aram)은 이미 북이스라엘과 약조를 맺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사의 요청에 기꺼이 응하여 쉽게 약조를 깨뜨렸다(4절). 아람이 이와같이 한 이유는 다음과 같이 추측할 수 있다. 아람은 처음에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분열되는 틈을 타서 남왕국 보다 많은 지파와 세력을 가진 북왕국(왕상 11:29-36)과 동맹을 맺어 안전을 구가했다. 그런뒤 어느 정도 세력을 키워 팔레스틴 진출을 꿈꾸고 있던 차에 아사가 그 명분을 제공해 준 것이다. 그래서 앞서 이스라엘과 맺은 약조를 무시한 채 이스라엘을 공격하여 자국(自國)의 이득을 취할 수 있었던 것이다.
성도들 간의 분쟁은 오히려 사단이 성도들을 이간질하게 하는 빌미를 제공하게 되다는 점이다(눅 11:17;고전 1: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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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16:4]
아사로부터 많은 뇌물을 얻었을 뿐 아니라(2절) 팔레스틴으로 진출할 기회를 얻는 일석 이조의 이득을 본 벤하닷(3절)은 지체없이 이스라엘 땅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본절은 이때 벤하닷이 공략한 이스라엘 성읍들의 명단을 보여준다.
이욘 - 이는 '메리아윤'(Merj 'Ayun)이라는 지명으로 현존하고 있는 곳으로서 남달리 지파의 산지 아래에 타원형으로 형성되어 있는 기름진 땅이다. 그 부근에는 리타니(Litany)라는 강이 있었는데 오늘날 납달리 평야 북쪽 끝에 위치하고 있는 '텔 디빈'(Tell Dibbin)과 동일한 것으로 추측된다(Curtis).
단 - 이는 이스라엘의 북쪽 경계선 지역에 있는 성읍이다(삿 18:29). 본래의 이름은 '라이스'(Laish)였는데 단지파가 이곳으로 이주해 와 '단'(Dan)이라고 개명(改名)하였다(삿 18:1, 2, 29-31).
아벨마임 - 왕상 15:20에서는 일명 아벨벧마아가(Abel-beth-maachah)로도 불리우고 있다. 이곳은 레바논 기슭에 위치하고 있던 납달리 지파의 성읍으로서 시돈과 해안지대로 통하는 교통의 요지였다. 이는 베가가 디글랏 빌레셋에게 빼앗겼던 성읍이기도 한데(왕하 15:20) 삼하 20:18에서는 단순히 '아벨'(abel)로도 불리웠다.
납달리의 모든 국고성 - 병행 구절인 왕상 15:20에는 '긴네렛 온 땅과 납달리 온 땅'이라고 나와 있다. 그러나 거기서 접속사 '과'(, 와우)는 '즉'(namely)으로 수정 번역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긴네렛 온 땅이 곧 납달리의 곡창 지대로서 솔로몬이 국고성(國庫城)을 많이 세운 곳이기 때문이다(8;6). 한편 긴네렛(chinnereht)은 신약 시대의 '게네사렛'과 동일한 지역으로서 갈릴리 바다 서쪽 지역을 가리킨다(민 34:11;수11:2;12:3;19:35). 역대기 기자는 당시 그곳이 '긴네렛'보다는 납달리 국고성으로 더잘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언급한 듯하다(Keil). 한편 이상의 이욘, 단, 아벧마임, 납달리의 모든 국고성은 이스라엘의 북쪽 변방 지대로서 바아사가 성을 건축하던라마와는 반대 위치에 있었다. 이로 볼 때 아람이 직접 이스라엘과 접전한 것이 아니라 반대편에서 공격함으로써 바아사로 하여금 유다 공격을 포기하도록 만든 것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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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16:5]
라마 건축하는 일을...그친지라 - 자신의 주력 부대가 거개 라마에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에 북쪽 변방에 아람이 침입했다는 소식을 들은 바아사는 라마 건축하는 일을 포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편 본절과 병행 구절인 왕상15:21에는 바아사가 "라마 건축하는 일을 그치고 디르사에 거하니라"고 언급되어 있다. '디르사'(Tirzah)는 당시에 북왕국의 수도이다(왕상 14:17;15:21, 33). 이로 볼 때 바아사는 라마 건축하는 것보다 수도를 방어하는 것이 급선무라 판단하여 라마에서 디르사로 돌아갔음이 분명하다. 그런데 역대기 저자는 이 사실을 생략하고 있다. 왕상 15:21 주석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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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16:6]
아사왕이...게바와 미스바를 건축하였더라 - 바아사가 벤하닷의 침입을 맞아 수도를 방비하러 간틈을 타 아사 왕은 유다 백성들을 거느리고 가 라마를 재탈환하였다. 그리고 바아사가 라마를 건축하던 돌과 재목을 가져다가 게바와 미스바를 건축하는 데 사용하였다. 여기서 게바(Geba)는 예루살렘 북쪽 약 9.6Km 지점에 위치한 오늘날의'예바'(jeba)를 가리킨다 (Curtis). 이 게바는 아사 때부터 줄곧 유다 왕국의 북방 한계선에 있는 성읍으로 나타난다(왕하 23:8;슥 14:10). 다음으로 미스바(Mizpah)는 예루살렘 북서쪽 약8km 지점에 위치했던 성읍으로 오늘날의 '나비 삼월'(Nabi Samwil)이다. 이 성읍 역시 성경에서 자주 언급되고 있다(삿 20:1, 3:21:1,5,8;삼상 7:5등). 한편 아사 왕이 게바와 미스바를 건축한 것은 북왕국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서인데 렘41:9에 보면 아사가 미스바에 큰 '구덩이' 곧 저수지를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다(Ke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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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16:7]
선견자 하나니 - 하나니(hanani)란 이름은 성경에 여러 명 나온다(대상 25:4,25;스10:20;느 1:2;12:36). 그렇지만 선견자 하나니에 대한 언급은 여기 밖에 없다. 이 선견자 하나니는 바아사의 집안이 몰락할 것을 예언하고 아사의 아들 여호사밧을 도왔던 선견자 예후의 아버지이다(19:2;20:34;왕상 16:1).
아람 왕의 군대가 왕의 손에서 벗어났나이다 - 이는 곧 아사 왕이 여호와를 의지하기만 하였다면 바아사에게서 승리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본래 그와 동맹 관계에 있던(3절) 아람도 정복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뜻이다. 한편 본서에서 외국과 동맹을 맺음으로써 선지자로부터 책망을 받았던 왕들은 여호사밧(19:2), 여호람(21:11-15),요아스(24:19), 아마샤(25:15)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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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16:8]
룹사람 - 세라의 군대속에 룹 사람(the Lubims)이 있었다는 말이 14:9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역대기 저자는 그곳에서 단지 '군사 백만'이라고만 기록했다. 그렇지만 본절로 볼 때 시삭의 군대처럼(12:3) 세라의 군대에도 다른 용병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본저의 '룹' 12:3에는 '훕'사람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원어로 다같이 '루빔'으로서 리비아 사람들을 말한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12:3 주석을 참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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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16:9]
여호와의 눈은...감찰하사 - 이는 하나님의 전지하심(Omniscience)과 보호 하시고 섭리하심을 가리키는 성경의 관용적 표현이다(잠 15:3;슥 4:10).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 - 여기서 '전심으로'(, 솰렘)는 '일관된', '신실한'이란 뜻을 지닌 단어이다. 이것은 신실하신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요청하시는 언약의 한 조항이며 핵심이다(신 6:5). 그러기에 이전에 아사 왕도 자기 백성들과 함께 이 같은 자세를 견지할 것을 맹세하였었다(15:12).
이후부터는 왕에게 전쟁이 있으리이다 - 이미 1절에서 살펴보았듯이 아사와 바아사간의 전쟁은 아사 왕 26년에 바아사가 죽음으로써 끝이 났다(왕상 16:8). 따라서 이후부터 왕에게 계속해서 전쟁이 있었다는 성경적 기록이 어디에도 없다. 그러므로 본절의 내용은 아사의 후손들에게 적용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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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16:10]
선견자를 옥에 가두었으니 - 아사는 선견자 하나니의 질책에 분노하여 그를 옥에 가두고 말았다. 그가 이렇게 분노한 것은 벤하닷과의 동맹으로 이스라엘군을 축출하는 성공을 거두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니가 왕을 책망하기 때문이었다. 즉, 그는 전쟁의 방법보다는 결과만을 중시한 나머지 자신이 하님을 의지하지 않은 채 인간적인 교만을부린 것을 새각하지 않은 것이다. 아무튼 우리는 비록 아사가 인간적인 모략으로 일시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하나 하나님 앞에서 더 큰 실패를 자초하였음을 본절에서 발견하게 된다. 한편 여기서 '옥'(, 마흐페케트)은 '바꾸는 곳', '떨게하는 곳', '구르게 하는 곳'을 가리키는데 어떤 고문(拷問) 장소를 가리키는 것 같다(Keil &Delitzch, vol. III, p. 369). 실상 이 단어는 성경에서 단 세 번밖에 쓰이지 않았는데 모두 선지자의 고문과 관련하여 사용되고 있다(렘 20:2, 3;29:26). 그리고 본절은 구약 성경에서 최초로 왕이 선지자를 박해한 데 대한 기록이다. 이런 일은 이후로 자주 일어났는데 미가야에 대해서(24:21), 그리고 우리야에 대해서(렘 26:20-23) 가해진 박해 등을 들 수 있다.
또 몇 백성을 학대하였더라 - 여기서 '학대하다'에 해당되는 히브리어 '라차츠'는 '파괴하다', '부수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O. Zockler). 이로 볼때 선지자에 대한 왕의 학정(虐政)에 대하여 불만을 가진 백성들이 상당수 있었음이 틀림없다. 그래서 아사 왕은 본보기로 몇명의 백성을 학대함으로써 다른 백성들이 불만을 표시하지 못하도록 만들었음이 분명하다. 이와 같이 한번의 죄악은 연쇄적으로 다른 죄악을 몰고 오기가 십상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죄의 사슬을 끊어버리기 위해서는 다윗처럼 하나님으로부터의 책망이 있을 때 곧 바로 회개하는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다(삼하 12:7,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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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16:11]
유다와 이스라엘 열왕기 - 여기서 아사 왕의 시종 행적을 기록한 사료(使料)는 왕상15:23에서 말하는 '유다 왕 역대 지략'과는 다른 사료인 듯하다. 역대기 저자는 '유다와 이스라엘 열왕기'라는 자료에 대해서 여기서 최초로 공개하고 있는데 이 자료를 통하여 그는 열왕기에 없는 많은 새로운 사실들을 소개해 주고 있는 것 같다. 이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역대상 서론, '역대기의 자료'를 참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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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16:12]
그 발이 병들어 심히 중하나 - 아사 왕은 그의 통치 39년에(왕상 15:23, 저가 늙을 때에) 그 발에 병이 들었다. 여기서 '심히 중하나'에 해당되는 히브리어 '할라'의 문자적인 뜻은 '닳아 빠지다'이다. 이로 보아 그의 병은 가려움증이 아주 심한 피부병이었던 듯하다.
여호와께 구하지 이니하고 - 여기서 역대기 저자는 아사에게 바아사와 전쟁할 때에 가졌던 교만한 마음이 없어지지 아니하고 마지막 죽음의 병을 앓게 된 때까지도 그의 교만이 계속돠었음을 보여준다. 이와 유사하게 히스기야 왕도 병들어 죽게 되었으나그는 인간 질병의 궁극적인 치유자는 여호와이심을 믿었기 때문에 나음을 입었다(왕하20:5;시 103:3). 이와같이 아무리 좋은 약이나 의원이 있다할지라도 여호와께서 허락하시지 않으시면 온전한 치유란 있을 수 없다(렘 8:22). 물론 의술이나 의약 그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그것은 일반 은총으로서 만민에게 허락하셨으며 바울도 디모데가 병이 났을때 치료의 일환으로 포도주를 쓰라고 권고했기 때문이다(딤전 5:23). 따라서 본절은 아사가 의원을 찾아간 그 자체를 정죄한 것이 아니라(1) 치유의 하나님(욥 42:10;시6:2;30:2;41:4) 대신 인간적인 방법을 의지한 것과 (2)미신적인 방법(삼상 28:7;왕하1:2이하;대상10:14)으로 의원을 의지한 것에 대한 정죄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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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16:13]
아사가 위에 있은 지 사십 일 년에 죽어 - 본절과 병행 구절인 왕상 15:23에는 아사가 늙어서 병들어 죽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이때에 아사의 나이가 얼마나 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가 없다. 만일 열왕기의 기록처럼 아사가 많이 늙었다면 혹자의 주장처럼 아사는 아비야의 아들(14:1)이 아니라 모친인 셈이 된다(15:16). 그러나 성경에서는 아사가 아비야의 아들임을 명백히 하고 있다(14:1;왕상 15:8). 그러므로 마아가는 그의 조모임이 틀림없다. 15:16 주석 참조. 한편 아사의 조모가 아사 통치시에까지 영향력을 미쳤다는 사실(15:16)은 아사 왕이 상당히 어렸을 때 왕위에 올랐음을 암시해 준다. 그러므로 41년간을 통치한 아사의 당시 나이는 그리 많은 편이 아니었을 것이다. 혹자는 아사 왕이 요시야 왕과 비슷한 나이에 왕위에 올랐으며 그가 죽을 때의 나이는 50세가 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P.C. Bar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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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16:14]
자기를 위하여 파 두었던 묘실에 - 왕상 15:24에는 "그 열조와 함께 그 조상 다윗의 성에 장사되고"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역대기 기자는 열왕기의 일반적인 진술보다 더욱 자세하게 아사의 다윗 성에 장사되긴 하였으나 자신을 위한 묘실을 따로 마련하여 두었다가 그곳에 묻히었음을 보여준다. 이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왕상15:24 주석을 참조하라.
많이 분향하였더라 - 이와같이 왕을 장사할때에 향을 피운 일은 성경에 많이 기록되어 있다(21:19;렘 34:5). 죽은 자를 위하여 향을 피우는 관습은 동양의 많은 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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