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다와 베냐민의 무리 - 이스라엘 열지파의 반 역시 그들에게 동조하지 아니하고 계속해서 다윗 왕조를 섬긴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를 가리킨다(10:1-19). 이 중 베냐민 지파가 다윗 왕조를 섬기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왕상 12:21 주석 참조.
함께하실지라...버리시리라 - 이는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의 말씀으로서 모세 때에도(신 4:29), 다윗과 솔로몬의 때에도(24:20;대상 28:9), 그리고 신약 시대에도(약 4:8) 주어졌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개선하여 돌아오는 아사 왕에게도 선지자 아사랴를 통하여 이 같은 언약의 말씀을 상기시키신 것은 그로 하여금 언약에 순종할 때 주어지는 축복을 계속해서 누리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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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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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에는...제사장도 없고 율법도 없은 지가 - 이와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가르치는 제사장이 없었던 시대는 많았다. 사사기 시대에도 그랬고 이스라엘의 멸망과 포로 때에도 그랬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교육이 부재(不在)할 때 참신이신 여호와가 인식되지 못하고 진리가 밝히 드러나지 못했다.
이제 오래였으나 - 이것은 과거 시제로만 국한하여 해석할 수 없다. 왜냐하면 히브리어 원문에 따라 본절은 "많은 날들을...그렇게 할 것이다"로도 번역될 수 있기 때문이다(P.C. Barker). 따라서 본절은 과거에도 하나님의 말씀이 부재했던 때가 있었듯이 앞으로도 그러한 때가 있을 수 있다는 의미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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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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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환난 때에...돌아가서 찾으매 - 본절의 시제는 3절의 시제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와우 접속법에 따라 본절의 완료형 동사도 미완료 동사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환난 때에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 돌아가서 찾으면 저가 그들의 만난 바가 되신다는 말씀은 어느 시대에든 적용될 수 있는 영원한 언약의 말씀이라 하겠다. 실상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고 약속하셨다(렘 2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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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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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에 - 이것은 어떤 특정한 때를 가리키기보다는 3절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참신이 없고 가르치는 제사장도 없고 율법도 없을 때, 즉 일반적을 그러한 현상이 있는 때를 가리킨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열국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아라초트'의 본래 뜻은 단순히 '그 땅들'이다. 물론 이 말은 '열국'을 의미할 때도 있다. 그렇지만 역대기 저자는 이 단어를 이스라엘 땅의 여러 지역을 가리키는 단어로 자주 사용하고 있다(11:23;대상 13:2). 따라서 본절 역시 열국이 아니라 이스라엘 모든 땅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는데 이는 전후 문맥과도 잘 부합된다.
사람의 출입이 평안치 못하며 - 이는 이스라엘 땅에 평화가 사라지고 큰 공포 분위기가 조성될 것을 가리킨다(삿 5:6;6:2). 즉, 다시 말하면 외적이 이스라엘을 침입하여 이스라엘을 다시르게 되고 나라는 무정부 상태로서 모든 권리와 자유를 박탈당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출입'이 끊어지게 되는 것은 성경에서 대개 완전한 멸망을 상징한다(수 6:1;대하 16:1). 하나님 앞에서 패역했던 북왕국과 남왕국은 모두 이러한 경우를 당했었다(왕하 17:6;25: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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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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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가 저 나라와 서로 치고 - 혹자는 이를 민족 간의 전쟁으로 해석하나(Kamphausen) 본문의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의 배교(背敎)에 대한 경고의 말씀인고로 그러한 해석은 맞지 않다. 따라서 이것은 이스라엘 지파 간의 싸움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베냐민 지파와 이스라엘의 다른 지파들과의 싸움(삿 20:35-45)이나, 길르앗 사람과 에브라임 사람간의 싸움(삿 12:4-6) 등을 들 수 있다. 즉, 본절은 여호와의 율법이 부재할 경우 이스라엘 민족 안에서 다툼과 분쟁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요란케 하셨음이니라 - 위와 같은 경우를 당하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심판을 당할 때에는 반드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 돌아가서 그를 찾아야 하며 그렇게 할 때 저가 만나 주실 것이라는 의미이다(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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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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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절은 선지자 아사랴의 예언의 결론 부분으로서 아사 왕으로 하여금 내부적인 종교 개혁의 고삐를 늦추지 말고 박차를 가하도록 촉구하는 말씀이다.
손이 약하지 않게 하라 - 이는 용기를 잃지 말라는 뜻으로(느 6:9;습 3:16)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찌니"(갈 6:9)라는 말씀과 일맥 상통한다. 즉, 이는 다시 바꾸어 말하면 개혁의 대의 명분(大義名分)이 여호와께 있으므로 아사는 낙심할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와 유사하게 예수께서도 자신이 세상을 이기셨으므로 우리가 환난을 당할 때 '담대'하라고 당부하셨다(요 16:33). 한편 본절은 아사의 종교 개혁이 강력히 실시되므로 인해 우상 숭배자들의 반발과 저항이 거세게 일어날 것을 예견해 준다고 하겠다. 그러나 이후에 나오는 구절들 속에는 그러한 반발에 대해 전혀 언급이 없는데 이는 아사가 얼마나 훌륭하게 그리고 철저하게 종교 개혁을 수행했는가를 암시해 준다.
너희 행위에는 상급이 있음이니라 - 의(義)를 행하는 자가 받을 상급에 관해서 성경은 여러 번 자주 언급하고 있다(창 15:1;잠 11:18;전 4:9;렘 31:16;고전 3:8;15:58). 그 가운데서도 특히 예수께서 말씀하신 '팔복'(八福)은 백미(白眉)를 이루는 것이니 참조하라(마 5: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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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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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자 오뎃의 예언 - 1절의 '오뎃의 아들 아사랴'와는 달리 본절에서 단순히 '선지자 오뎃'이라고 기록하고 있는 이유를 정확히 규명하기가 매우 어렵다. 왜냐하면 본절은 1절에서와 같이 '선지자 오뎃의 아들 아사랴의 예언'이라고 보아야 한다면 '예언'에 해당하는 히브리어가 명사의 연계형(construct state)이 되어야 하는데 원문에는 독립형(absolute state)으로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 즉, '예언'이라는 단어에 어떠한 수식어가 붙든지 이 단어는 연계형이 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절에서는 왜 독립형으로 기록되어 있는지 아무도 설명을 못 한다. 그래서 혹자는 본절에서 '선지자 오뎃'이라는 단어를 빼버려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비교적 유력시되는 견해이다(Pulpit Commentary).
가증한 물건 - 이는 우상 또는 우상 숭배와 관계있는 물건들을 가리킨다(왕상 11:5;15:12;왕하 23:13, 24;겔 30:7, 8;단 9:27). 이는 곧 하나님께서 그 같은 우상들을 얼마나 혐오하시는지를 잘 나타내 주는 표현이다.
에브라임 산지에서 빼앗은 성읍들에서 제하고 - 아사가 등극한 이래 지금까지 남왕국과 북왕국 간에는 전쟁이 없었다. 아사가 북왕국과 전쟁한 것은 이스라엘 왕 바아사 때에 가서이다(왕상 15:16-22). 그러므로 본절은 아사의 부친 아비야가 여로보암 왕에게서 빼앗은 성읍들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13:19). 이는 많은 학자들도 지지하는 견해이다(Payne, P.C. Barker).
여호와의 낭실 앞 여호와의 단을 중수하고 - 솔로몬 성전의 제단은 여호와의 낭실 앞에 있었다(8:12). 그런데 여기서 '중수하고'( , 하다쉬)라는 단어는 '깨끗하게 하다', '새롭게 하다'(삼상 11:14;시 51:10)라는 뜻도 지니고 있는바 비유적으로 우상으로 더러워진 것을 '다시 성별한다'는 의미로도 쓰일 수 있다. 그래서 혹자는 아사가 우상 숭배로 말미암아 오염된 여호와의 제단을 깨끗하게 한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Bertheau). 그러나 '하다쉬'라는 단어가 문자적으로 사용될 때도 종종 있었는데 그럴 때는 '고치다', '수선하다'(repair)라는 의미를 갖는다. 따라서 본절 역시 문자적인 의미로 보는 데에는 전혀 무리가 없다(Pulpit Commentary). 한편 이와 관련하여 카일(Keil)은 솔로몬 성전을 건축한 지 이미 60년이나 지났기 때문에 여호와 신앙을 새롭게 장려하기 위해서 아사가 제단을 수축(修築)한 것이라고 주장한다(Keil & Delitzch, vol. III, p. 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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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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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를 모으고 - 아사 왕은 전국가적인 개혁을 수행하고 새롭게 언약을 세우며 백성들의 결의를 다지기 위해 대집회를 열었다. 이는 솔로몬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성전으로 옮기기 위해 예루살렘에서 열었던 대집회(5:2) 이후 처음 있었던 대집회로서 이때 치르었던 제사의 규모도 상당히 컸다(11절).
에브라임과...저희 중에 우거하는 자 - 이러한 표현은 이방인들을 가리킬 때 종종 사용되는 것이다(출 12:49;신 28:43;수 20:9). 그런데 여기서 이는 종교의 자유를 찾아 남하(南下)한 에브라임과 므낫세 사람들을 가리킨다. 그러한 이주 사건은 과거 르호보암 때에도 있었는데(11:13-17) 본문은 이제 아사 왕 때에도 여호와께서 아사 왕과 함께하심을 보고 남하한 사람들이 많았음을 증거해 준다.
시므온 가운데서 나와서 - 시므온 지파는 유다 남쪽 지방에 거주하면서 유다 자손의 기업 가운데서 기업을 얻었다(수 19:1-9). 그러므로 여기서 시므온 지파가 북쪽의 에브라임 및 므낫세 지파와 함께 나왔다는 말은 좀 이상하게 보인다. 이에 대해서 혹자는 시므온 지파가 이전에 북쪽으로 이주하였다가 다시 신앙의 자유를 찾아 에브라임과 므낫세와 함께 내려온 것이라고 생각한(Bertheau), 이에 대한 역사적인 근거가 불확실하다. 그리고 카일(Keil)은 이에 대해서 정치적으로는 시므온 지파가 유다 지파와 함께 하였지만 종교적으로는 예루살렘에서 여호와를 숭배하지 않고 북이스라엘처럼(왕상 12:25-33) 자기 성읍들에 우상을 세워 숭배하였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이에 대한 근거로 아모스서에서 시므온 땅인 브엘세바가 벧엘이나 길갈과 함께 우상 숭배지로 언급되고 있음을 든다(암 4:4;5:5;8:14). 그러나 왕상 11:31을 보면 시므온 지파도 분명히 정치적으로 북왕국의 열 지파에 속하였음을 시사하고 있으므로 이 견해는 타당치 않다. 한편 대상 4:24 이후를 보면 시므온의 성읍이 대체적으로 유다 지파에 흡수되어 버린 것으로 나타나 있다. 따라서 그 일로 인해 시므온 지파의 상당수가 북쪽으로 이주하였을 가능성이 크다. 이는 창 49:7에서 시므온 지파에 대하여 예언한 바, "그들을 야곱 중에서 나누며 이스라엘 중에서 흩으리로다"고 한 것의 성취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또한 그를 뒷받침해 주는 정확한 역사적인 자료가 없다. 따라서 이에 대한 연구는 앞으로도 더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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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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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 왕 십오 년 - 14:1에 보면 아사가 즉위한 지 10년 동안은 유다가 평안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세라가 백만 대군을 이끌고 유다를 침입한 것(14:9-15)은 아사 왕 11년경의 일이었던 것으로 추측된다(Pulpit Commentary). 그렇다면 아사와 구스 왕 세라 간의 전쟁은 적어도 4년 정도 걸렸다는 뜻이 된다(Curtis). 무론 이것은 아사 왕 15년에 열린 축제(11-15절)가 세라에게서 승리한 직후에 있었다는 가정(假定)에서 비롯된 결론이다(P.C. Barker, Keil). 실제적으로 아사 왕이 노획물을 거두고 그랄 사면 모든 성읍들을 평정하는 데에는(14:13-15) 상당 기간이 소요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11-15절에 언급된 축제가 아사 왕 십 오년(B.C. 895년경)에 있었다는 것은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다.
삼월에 - 이는 '시완 월'로서 양력으로 5, 6월에 해당되는데 이 달에 칠칠절(오순절) 절기가 있었다. 이 절기는 이스라엘의 3대 절기 가운데 하나이다. 레위기 서론, '히브리 절기와 축제' 참조. 아사 왕은 이 절기를 맞아 여호와와 맺은 언약을 새롭게 갱신 하였다(12-1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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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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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에 노략하여 온 물건 중에서 - 아사가 구스 사람에게서 탈취한 노획물 가운데에는 소에 대한 언급이 없다(14:13, 15). 따라서 본절에 언급된 소 제물은 하나님께 드리기 위해 아사가 특별히 구별하여 준비한 것인 듯하다. 한편 당시 아사가 탈취한 양과 약대 따위는 그 동안 상당한 숫자로 불어났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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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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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다하고...언약하고 - 이것은 백성들이 엄중한 맹세로 자신들을 여호와께 결속시켰음을 나타낸다. 렘 34:10에서도 이와 유사한 언약체결식이 소개되고 있다. 즉, 그들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를 찾기로 맹세한 것이다(신 4:29). 그런데 하나님께 대한 전적인 헌신과 사랑은 실상 인간의 제일가는 기본 의무이다. 때문에 아사는 백성들과 더불어 하나님 앞에서 이에 대하여 맹세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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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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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죽이는 것이 마땅하다 - 일견 잔혹하게 보이는 이 처형은 신명기적인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출애굽 당시 가나안인들의 다신교(polytheism)와 저속한 풍습은 이스라엘의 유일 신앙에 정신적인 위협이 되어 왔다.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가나안인들과 우상 숭배자들을 돌로 쳐 죽이라고 명령하셨다(신 7:1-4;13:6-10;17:2-7). 이 명령은 이스라엘 신앙의 순수성을 보전하기 위한 필연적인 조치였다. 따라서 본절은 하나님의 사랑의 성품에 배치되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이 악한 신학과 타락한 윤리로부터 결별하고 나아가 그것들을 멸절시키기 위해 단호한 행동을 취할 것을 촉구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같은 차원에서 오늘날 교회 안에서 징계 조례는 재고(再考)되고 강화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즉, 교회 내에서 부도덕한 행위를 일삼거나 복음의 진리를 흐리는 자들에 대해서 교회는 지체없이 징계 조례에 의거하여 명확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것이다(고전 5:3-5, 13;딤전 1:20). 신앙의 순결함을 수호하고, 신앙을 실천하는 일에 미지근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결국 파괴적인 결과만을 초래할 뿐이다(계 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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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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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가 큰 소리로 부르며...나팔을 불어 - 이는 백성들이 이 언약의 맹세에 순종으로 응답하여 화답한 것을 가리킨다. 한편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서 언약을 갱신하거나 기타 다른 기쁜 일이 있을 때 이와같이 악기를 동원한 사실은 다른 곳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23:13;느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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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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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도...그 사방에 평안을 주셨더라 - 이는 온 유다 백성이 언약 맺는 것을 기뻐하고 그 언약의 말씀을 준행한 데 대한 하나님의 축복의 결과이다. 그런데 이 평안의 기간이 얼마나 지속되었는가에 대해서는 19절 주석을 참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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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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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 왕의 모친 마아가 - 이미 앞에서 살펴 보았듯이 마아가(Maachah)는 아사의 모친이 아니라 아비야의 모친이며(11:23;13:2) 아사의 조모(祖母)이다. 이 마아가는 르호보암의 아내였는바(11:20) 이때까지 왕가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음이 틀림없다(Payne). 따라서 아사가 감히 마아가의 태후의 위(位)를 폐할 수 있었다는 것은 가히 놀라운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태후가 왕보다 더 큰 권위를 행사한 것이 통례였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아하시야의 모친 아달랴가 그녀의 손자 요아스 일족을 완전히 제거하고 정권을 장악했던 경우를 들 수 있다(왕하 11:1-3). 이로 볼 때 아사의 개혁 의지가 얼마나 단호했던가를 능히 짐작할 수 있다.
그 우상을 찍고 빻아 - 본절과 병행 구절인 왕상 15:13에는 '빻아'라는 단어가 없다. 이 단어는 당시에 아세라 목상 뿐만 아니라 그 주위에 돌비나 금속 재료로 된 우상도 있었음을 암시한다. 왜냐하면 이 단어는 금송아지를 빻아 가루를 만든 것을 가리킬 때(출 32:20), 아세라 목상 이외의 것들을 파괴한 것을 가리킬 때(34:4, 7;왕하 23:6)에도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기드론 시냇가 - 이 강은 예루살렘 동편 갈람 산 사이를 흘러 사해(死海)로 들어가는 길이 약 5km의 간헐천이다. 왕상 2:37 주석 참조. 역사적으로 이 기드론(Kidron) 시냇가에서 우상 숭배하던 가증한 것들이 자주 파괴되었다(29:16;30:14;왕상 15:13;왕하 23:4, 6, 12). 그리고 요시야 시대에 이곳은 공동묘지로서 부정한 것들을 버리는 장소로 인식되기도 하였다(렘 26:23;31:40). 왕상 15:13 주석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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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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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당은 이스라엘 중에서 제하지 아니하였으나 - 산당의 제거 문제에 관해서는 14:3 주석에서 상세히 다르었으니 참조하라. 한편 본절에서 '이스라엘'이란 국명(國名)은 남왕국 유다를 가르키며 유다만이 합법적인 이스라엘 백성임을 암시하고 있다. 혹자는 "산당을 없이하고"(14:3)라는 표현과 본절의 "산당은...제하지 아니하였으나"라는 표현 간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하여 '이스라엘'을 북왕국으로 해석하기도 한다(Curtis, P.C. Barker). 그러나 본문은 북왕국과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일 뿐만 아니라 아사 왕이 북왕국의 내적 문제에 관여할 하등의 정치적 권한도 없었다. 따라서 위의 견해는 마땅히 철회되어야 할 것이다.
아사의 마음이 일평생 온전하였더라 - 본절과 병행 구절인 왕상 15:14에는 '여호와 앞에' 온전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온전' , (솰렘)이란 단어는 그 마음을 끝까지 일관되게 지속하여 어떤 일을 끝마쳤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이로 볼 때 아사는 종교 개혁에 평생을 바쳤음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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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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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전에 드렸더니 - 아사가 하나님의 전에 드린 보물들은 그 부친 아비야가 여로보암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여 거둔 전리품(13:19)과 아사가 구스 사람 세라에게서 빼앗은 전리품이다(14:13-15). 여호와의 전 곳간에 이같이 많은 보물들을 쌓을 수 있었다는 사실은 아사가 여호와께 큰 복을 받았다는 사실을 암시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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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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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 오 년까지 다시는 전쟁이 없으니라 - 본절은 해석상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문제가 있다. (1) 왕상 15:16, 32에는 아사와 북왕국의 바아사 사이에 일생 전쟁이 있으니라고 기록하고 있으나 본절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2) 이스라엘의 바아사는 유다의 아사 왕 3년에 즉위하여 아사 왕 26년에 죽었는데(왕상 16:8) 본절 및 16:1에서는 아사 왕 35년까지 평안했고 아사 왕 36년에 바아사와 전쟁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문제들에 대하여 혹자는 여기서 35년은 왕국 분열 이후부터 35년을 가리크는 것이며 바아사와의 전쟁은 아사 왕 즉위 16년(르호보암 17년+아비야 3년+아사 15년=35년)에 있었다고 생각한다(Keil, Payne). 만일 그렇다면 아사의 생애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처음 10년간은 평안했고(14:1), 아사 왕 11년에 세라와의 전쟁이 있었으며, 16년에 바아사와의 전쟁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해석은 왕상 15:16, 32의 '아사와 바아사 사이에 일생 전쟁이 있으니라'는 구절의 해석에는 도움이 되지만 왕상 16:8의 구절을 해석하기는 힘들다. 따라서 본절의 35년은 아사 왕 25년을 잘못 기록한 것이라는 주장(P.C. Barker)이 비교적 옳은 듯하다. 그렇다면 아사와 바아사 사이에는 일생 실제적인 전투가 있었다기보다는 르호보암과 여로보암 사이의 관계처럼(이에 대해서는 12:15의 주석을 참조하라) 일생 서로 적의에 가득차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아사 왕 26년에 죽임을 당했던 것 같다(왕상 16:1-4). 더욱이 26년에 있었던 바아사와의 전쟁에서도 아사 왕은 아람 군대의 원조를 요청하여 바아사를 물리쳤으니(16:2-5) 이로 보아 아사 왕 때에는 그 후에도 평안했음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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