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과 암몬 여인 나아마의 소생(왕상 14:31)인 르호보암(Rehoboam)은 성경상에 유일하게 언급되고 있는 솔로몬의 아들이다. 따라서 그러한 그가 솔로몬의 사후(死後), 차기 이스라엘의 통치자로 왕위에 오른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다. 그러나 당시 신정 국가인 이스라엘 사회에서 비록 하나님의 뜻에 의해 세워지는 왕이라 할지라도 반드시 백성들의 지지가 필요하였다. 그래서 르호보암은 북쪽 이스라엘 열 지파의 지지를 얻기 위하여 당시 북쪽 지파들의 중심지였던 세겜(수24:1; 삿 9:7)을 방문하였던 것이다. 이처럼 이스라엘 사회에서 왕의 추대는 온 백성의 일치된 마음에 의하여 이루어졌는데 사울, 다윗, 솔로몬의 경우 역시 그러하였다(삼상 11:15; 삼하 5:3; 대상 11:3). 그러므로 온 백성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왕은 진정한 그들의 왕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세겜 - 에발 산과 그리심 산 사이에 있는 성읍으로 예루살렘 북쪽 약 58km 지점이다. 오늘날의 지명은 나불루스(Nabulus)인데 한때는 네압볼리(Neabolis)로도 불리운것 같다(P.C. Barker). 이곳은 에브라임 지파에게 속하였는바(수 20:7) 일찍부터 종교, 정치의 중심지였다. 왕상 12:1 주석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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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밧의 아들 여로보암(Jeroboam)은 일찍이 아히야의 예언(왕상 11:30-32)을 통하여 장차 자신이 이스라엘 10지파를 통치할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 사실이 사전(事前)에 솔로몬에게 발각되어 애굽으로 망명하여(왕상 11:40) 시삭(Shishak)의 보호 아래 있었다.
이 일을 듣고...돌아오매 - 여기서 '이 일'이란 솔로몬 왕의 죽음(9:31)을 가리킨다. 이제 솔로몬이 죽었기 때문에 여로보암은 더이상 애굽 망명 생활을 계속할 필요가 없었다. 더욱이 자신에게 주어진 이스라엘의 10지파를 차지하기 위해서라도 그는 속히 애굽에서부터 돌아오려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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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가 보내어 저를 불렀더라 - 본절과 병행 구절인 왕상 12:1-3에서는 '여로보암이 애굽에 있는 중에 무리가 보내어 저를 불렀더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그와 달리 본문에서는 여로보암이 애굽에서 돌아온 이후에 무리가 저를 불렀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렇지만 이것은 두 저자들이 여로보암이 애굽에서 돌아온 동기를 어떻게 보았는지에 따른 차이이다. 즉, 열왕기 저자는 여로보암의 환국(還國) 동기가 북쪽 10 지파의 반란 요청에 의하여 정권을 잡기 위한 정치적인 것이었다고 보았다. 반면에 역대기저자는 여로보암의 환국이 단지 망명 생활의 청산을 의미하며 그 후에 10지파의 요청에 의하여 적극적으로 정치적인 문제에 개입하게 되었다고 본 것이다. 그러므로 비록미묘한 차이이긴 하지만 역대기 저자는 여로보암이 타의에 의해서 보다는 좀더 자의에 의해서 반란을 주도했음을 강조하고 있다고 하겠다.
여로보암과 온 이스라엘이 와서 - 여기서 '온 이스라엘'이란 1절과 마찬가지로 '북쪽 열 지파'를 가리킨다. 그런데 이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와같이 쉽게 여로보암과 결탁할 수 있었던 것은 아마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인 듯하다. 즉, 과거 솔로몬이 다윗 성을 수축할 때 여로보암은 요셉 족속을 감독하는 자로서(왕상 11:28) 강제 노역과 막중한 세금에 시달리던 백성들의 불평을 잘 알고 있었고 그런 점에서 여로보암과 백성들의 마음이 통하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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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부친이 우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니 - 성경에서 '멍에'는 대개 비유적으로 속박과 노예 상태를 의미한다(레 26:13; 사 14:25). 여기서도 이는 과거 솔로몬이 백성에게 지운 강제 노역을 의미한다. 왕상 12:4 주석 참조. 이로 볼 때 솔로몬은 성전과 궁전을 완공하고 난 이후에도 기타 여러 건축 사업을 무모하게 추진하여 지나치게 개인적인 영화를 누렸음을 알 수 있다(8:1-6). 따라서 통치자의 그러한 무모한 정책과 계속적인 허영심은 백성들에게 못내 고통스럽고 굴욕적인 멍에를 안겨 준 것이다(신17:17, 20).
왕은...멍에를 가볍게 하소서 - 이스라엘 백성은 과거 430년 동안 애굽의 혹독한 강제 노역에 시달리다가(출 12:40, 41) 자유로운 몸이 된 자들이다. 그런데도 그들이 이처럼 자기들의 왕에게 강제 노역을 감해 달라고 간청하게 되었다니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이로 볼 때 솔로몬이 끝까지 백성을 위한 통치를 펼쳤더라면 왕국 분열의 비극은 발생치 않았을 것임을 알 수 있다. 왕상 12:4 주석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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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 일 후에 다시 내게로 오라 - 르호보암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온 여로보암을 보고 신중해질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강제 노동과 과중한 부역(賦役)을 감해 달라는 백성들의 요구가 어느 정도 정당한 것이긴 하지만 선뜻 응해 주었다가는 여로보암의 기세가 앙등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르호보암은 자기의 모사(謀士)들과 이 일에 대하여 논의하기 위한 시간이 필요하였을 것이다. 왕상 12:4 주석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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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들과 의논하여 - 여기서 '노인들'(, 제케님)이란 '장로' 또는 '원로신하'를 가리키는 말로서 과거에 솔로몬이 거느렸던 '모사들'을 가리킨다. 이 노인들은 르호보암에게 백성들을 후대하는 유화 정책(宥和政策)을 쓸 것을 충고했다. 본절과 병행하는 왕상 12:7에는 보다 강력한 어조인 '이 백성의 종이 되어 저희를 섬기고'란 말이 나온다. 그렇지만 역대기 저자의 입장에서는 왕이 백성들의 종이 된다는 개념을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에 '왕이 유화 정책을 쓴다면 백성들이 왕의 종이 될 것이라'고 달리 표현하였을 것이다. 즉, 역대기 저자는 '왕은 오직 하나님의 종이지 백성들의 종은 될 수 없다'는 사상을 견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선한 말 - 이에 해당하는 '드바림 토빔'은 본래 상대방을 기쁘게 해 주는 말을 가리킨다. 그런데 여기서는 르호보암이 백성들의 정당한 요구에 대하여 승락하는 것을 의미한다. 왕상 12:7 주석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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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노인의 교도(敎導)하는 것을 버리고 - 여기서 '교도하는 것'(, 에차)이란 타인에게 주는 진정한 충고나 조언을 의미한다. 그리고 '버리다'(, 아자브)란 탐탁치 않게 여기거나 무시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로 보아 르호보암은 자신에게 직접 말하지 않고 여로보암을 대동하고 나선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해서 크게 분노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는 노인들의 충고를 귀담아 듣지 않았을 것이다.
함께 자라난 소년들과 의논하여 - 여기서 '함께 자라다'는 말은 르호보암과 같은 교육을 받고 비슷한 경험을 하므로 말미암아 같은 사상과 같은 경향을 지니게 된 것을의미한다. 그리고 '소년'에 해당하는 '옐레드'는 어린아이로부터 장성한 청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층에 적용될 수 있는 말이다. 그런데 르호보암이 왕위에 오를 때 나이 41세였으니(왕상 14:21) 여기서 '소년'이란 르호보암 또래의 동년배들을 가리킴이 분명하다. 즉, 르호보암은 왕이 된 후 자신과 함께 자라 온 측근들을 새로이 모사로 기용하였던 것이다. 왕상 12:8 주석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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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어떻게 교도하여 - 이 질문 속에서 우리는 이미 르호보암이 어떤 답을 기대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 르호보암은 이미 이 신진 세력들을 중심으로 왕권을 구축하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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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새끼 손가락이 내 부친의 허리보다 굵으니 - 이러한 비유적 표현은 다음과 같은 뜻을 내포하고 있다. 즉, '나는 나의 부친이 했던 것보다 더욱 혹심하게 너희들을 억압할 능력과 의지가 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여기선 르호보암의 하찮은 재주나 능력이 솔로몬의 전능력과 힘보다 뛰어나다고 역설됨으로써 르호보암의 철권(鐵券) 통치 의지가 시사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왕상 12:10 주석을 참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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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찍으로 - 여기서 '채찍'은 솔로몬의 가혹한 통치를 의미한다. 한편 당시 애굽에서의 왕권의 상징은 채찍이었다. 그러므로 본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솔로몬의 정책을 애굽의 바로 왕과 같은 폭정으로 받아들이고 있음에 상응하는 표현이라 하겠다.
전갈로 하리라 - 여기서 '전갈'은 단순히 '채찍'으로 비유하기에는 너무도 고통스러운 엄청난 압정(壓政)을 상징한다. 그런데 대개의 학자들은 본절의 전갈을 절지 동물로서의 전갈(scorpion)이 아니라 날카로운 금속 조각으로 만든 채찍의 한 종류로 이해한다(Curtis. 왕상 12:11 주석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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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로보암과 모든 백성이...나아왔으니 - 약속대로 여로보암과 모든 백성은 다시 삼일만에 르호보암 앞에 나아왔다(5절). 그런데 이미 그 삼일 동안 르호보암의 마음은 강경 정책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따라서 이제 남북 분열은 피할 수 없게 되었는바 하나님의 예언 성취의 때가 목전에 도래한 것이다(왕상 11:2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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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학한 말로 대답할새 - 여기서 '포학한 말'이란 '완고한 말' 또는 '분노에 찬 말'을 의미한다. 따라서 르호보암은 몹시 마음이 강퍅하여지고 분노하여진 상태에서 대답하였음을 알 수 있다. 즉, 르호보암은 지나치게 감정에 치우친 나머지 다윗의 왕권이 얼마나 큰 백성들의 지지에 의해 세워진 것인가를 기억하지 못하고 전형적인 동양의 전횡(專橫) 군주처럼 백성들을 무시하려 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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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10:14]
나는 더할지라...나는 전갈로 하리라 - '내가...하리라'와 같은 르호보암의 말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빗나간 어리석은 통치자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하나님은 분명히 솔로몬에게 '내가 너로 내 백성을 치리하게 하였다'고 말씀하셨고 솔로몬도 '주의 백성을 누가 능히 재판하리이까'라고 했다(1:10, 11).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난 정치인들은 기껏해야 채찍과 칼로 마치 백성들이 자기 소유물인 양 다스릴 뿐이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무고히 피흘린 자들의 음성을 들으시고 반드시 보수(報酬)해 주시는 분이시다(창 4:10; 9:6). 예수께서 "검을 가지는 자는 다 검으로 망하느니라"(마 26:52)고 말씀하신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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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10:15]
이 일은 하나님께로 말미암아 난 것이라 - '이 일'은 르호보암이 백성들의 요청에 대하여 거부한 것을 가리킨다. 그런데 역대기 저자는 이 일을 하나님의 섭리에 기인한 것으로 해석했다. 즉, 이로써 이제 이스라엘은 남북으로 분열하게 되었는데 이는 분명 솔로몬에게 예고되었던 형벌이 르호보암 때에 이르러 성취되게끔 배후에서 하나님이 역사하셨음을 증거해 주고 있는 것이다(왕상 11:29-33). 왕상 12:15 주석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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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10:16]
우리가 다윗과 무슨 관계가 있느뇨 - 이것은 다윗 왕조 자체에 대한 반감을 노골적이고도 강경하게 표현한 말이다. 본래 이 말은 세바(Sheba)가 다윗을 거스려 반역 운동을 일으킬 때 사용한 '격문'이었는데(삼하 20:1) 이제 르호보암 대적자들의 구호가 되었다. 한편 백성들의 이 구호는 단순히 르호보암의 왕권을 부정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다윗의 왕조 전체를 거부함으로써 하나님이 다윗 왕조를 통하여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대상 17장)을 파기하는 죄악을 범하고 말았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스라엘의 진정한 통치자가 여호와이심을 망각하고 단지 르호보암의 악정을 비난한 탓에 생긴 어리석은 소치이다. 백성들은 비록 자기들의 요구가 관철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여호와께서 참 이스라엘의 구속자이심을 믿어야 했으며 그 근본을 부인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남북 분열 책임은 솔로몬, 르호보암, 여로보암과 이스라엘 백성들 모두에게 있었다고 하겠다.
온 이스라엘이 그 장막으로 돌아가니라 - 이는 백성들이 각자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는 뜻이 아니라 세겜에 있는 그들의 집합 장소로 돌아갔다는 뜻인 것 같다. 한편 팔레스틴은 지리적으로 남북이 크게 나누어져 있어서 더욱더 정치적 분열을 조장하기가 쉬웠다(Payne, Wyclif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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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10:17]
유다 성읍들에 사는 이스라엘 자손 - 이는 당시 유다 지경(地境)에 거주하고 있던 북쪽 이스라엘 열 지파 출신들도 포함해 지칭하고 있는 말이다. 왕상 12:17 주석 참조. 아마 그러한 북쪽 출신 사람들은 자기 고향 사람들이 여로보암과 함께 르호보암앞에 나섰을 때 그들과 행동을 같이 하였을 것이다. 그렇지만 협상이 결렬된 뒤에도 그들이 여전히 유다 성읍들에 남아 있었던 이유는 그들이 다시금 르호보암을 따랐기 때문이 아니라, 지리적으로 남북이 서로 단절된 상태에서 북쪽으로 이동하기가 힘이 들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 중에는 다윗 왕조를 생각하고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하는 경건한 사람들도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다(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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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10:18]
감독 하도람을 보내었더니 - 하도람(Hadoram)은 왕상 12:18에서 아도니람(Adoniram)으로도 번역되어 있긴 하나 실제 원문상의 이름은 '아도람'이다. 그런데 시대적으로 보아 이 자는 다윗 시대의 인물인 아도니람(삼하 20:24)과는 동명이인(同名異人)인 듯하다. 한편 르호보암이 하도람을 북쪽 열 지파에게 보낸 까닭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추정된다. 즉, (1) 격노한 지파를 달래어 협상을 하려고 했거나(Keil), (2) 아니면 그들에게서 세금을 징수하려고 했던 것 같다. 아무튼 이때 까지만해도 르호보암은 이스라엘 열 지파가 유다 지파에게서 분리되어 나갔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이 감독 하도람을 돌로 쳐죽인 것을 보고는 자신의 강압이 그들에게 소용이 없음을 알고 예루살렘으로 피신한 것이다. 그래도 그는 끝까지북이스라엘을 포기하지 않으려 했으니 유다와 베냐민 지파 18만명을 모아 무력으로 그들을 굴복시키고자 한 것이 바로 그 단적인 증거이다(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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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10:19]
이에 이스라엘이 다윗의 집을 배반하여 - 역대기 저자는 북이스라엘이 다윗의 집을 배반하였다는 사실을 결론으로 더 이상 북이스라엘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즉, 여기서 역대기 저자는 북쪽 지파들이 어떻게 여로보암을 그들의 왕으로 삼았는가(왕상 12:20 이하)를 전혀 언급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이후 북이스라엘의 역사에 관해서도 모두 생략해 버렸는데 떠났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도 우리는 역대기 저자가 철저히 다윗의 언약을 중심으로 이스라엘 역사를 기술해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오늘날까지 이르니라 - 본서 기자인 에스라가 여기서 열왕기와 똑같이 '오늘날까지'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 것은 단순히 시대적 착오에 의한 잘못된 기록이 아니다. 대신 이는 에스라 시대에도 과거 남북 왕국의 분열 및 대치 상황을 모든 사람들이 익히 알고 있었다는 뜻으로 그렇게 기록한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왕상 12:19 주석을 보다 참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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