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열왕기하(구속사)

열왕기하19장,히스기야의 언약기도

호리홀리 2015. 9. 7. 11:54

그 옷을 찢고 굵은 베를 입고 / 극한 슬픔과 원통함 그리고 겸비함을 나타내는 행위이다 그런데 히스기야가 이러한 감정을 토로(吐露)하였던 것은 랍사게가 하나님을 모독하였기 때문이다(18:33-35). 즉 히스기야에게 있어 무엇보다도 참을 수 없었던 것은 앗수르의 예루살렘 포위도, 백성들이 당하는 어려움도 아닌 바로 여호와의 이름이 이방인에 의해 모독당한 것이었다.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 앗수르의 위협과 조롱에 직면하며 보여 준 히스기야 왕의 이와 같은 태도는 똑같은 위기 상황에 처하였어도 달리 행동한 아하스나 시드기야, 여호야김 왕들에 비해 상당히 대조적이다(16:1-20; 23:34-24:5;24:17-25:7). 즉 히스기야는 그들과 같이 군대나 무기의 힘으로 원수들을 대적하지는 않고 기도와 눈물과 겸비함으로 여호와께 매달렸으며 하나님의 사람 이사야를 찾았던 것이다(2).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은 히스기야의 신앙 자세를 보시고서 그를 환란 가운데서 건져내주셨다(6,7,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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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하19:2]

  제사장 중 장로들 - 여기서 '장로들'이란 제사장 중에서 탁월하며 나이가 든 사람을 가리킨다(19:1). 그런데 히스기야가 이들을 이사야 선지자에게 파견한 것은 자신의 신앙적 자세를 확인시키기 위해서이며 또한 하나님의 뜻을 구하기 위해서이다. 한편 지금까지 제사장들이 이와같이 왕의 일을 돕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선 경우는 별로 없다. 그러나 이번 만큼은 히스기야에게 적극 조력(助力)하고 있음은 앗수르의 침공으로부터 예루살렘을 지켜야 한다는 그들의 굳은 결의에서 나타난 양상으로 추측된다.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 - 열왕기서에서 처음으로 이사야(Isaiah) 선지자가 소개되고 있다. 그러나 그의 부친 아모스(Amoz)는 선지자 아모스(1:1)와는 동일 인물이 아니다.

 

 [왕하19:3]

 곤란과 책벌과 능욕의 날이라 - 여기서 '곤란'(차라)은 전쟁의 재난을 당해 곤경에 처하였음을 가리키고, '책벌'( 토케하)은 유다 백성의 죄악에 대해 하나님께서 징계하셨음을 가리킨다. 그리고 '능욕'( 네아차)은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을 버리시므로 원수에게 모욕을 당하게 하셨음을 가리킨다. 이와같이 히스기야 왕은 그때의 상황올 신앙의 눈으로 올바로 판단하는 지혜가 있었다. 성경에 의하면 이러한 올바른 시대적 판단은 대개 하나님의 구원 및 약속과 연결됨을 볼 수있다(10:14;삼상10:8;26:24;삼하4:9;왕상1:29).

 

해산할 힘이 없도다 - 여인이 임신하여 해산할 능력이 없다면 아이도 산모도 모두 위태하게 된다. 여기서 이는 유다 민족이 환란을 당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해결할 능력 및 방법이 없음을 의미한다. 이와 유사한 비유는 호13:13에서도 나타난다(Keil &Delitzsch Commentary, Vol. III, p442). 이처럼 히스기야는 당시의 상황에 대한 올바른 신앙적 인식은 있었으나 자신에게 그것을 헤쳐 나갈 능력이 없음을 호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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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하19:4]

 혹시 저의 말을 들으셨을지라 - 이말은 히스기야의 절망적인 탄원이다. 여기서 '혹시'( 올라이)라는 추측의 말은 자신과 백성들의 죄악은 랍사게의 말대로(18:25) 심판받아 마땅하지만 그리할지라도 하나님을 모독하는 랍사게의 말을 들으시고 하나님께서 이 탄원에 응답하시기를 간절히 원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즉 히스기야는 하나님께 우리의 죄악은 보지 마시고 원수들의 모독의 말에 분노하셔서 옹답해 주실 것을 빌고 있는 것이다. 이와같이 히스기야는 원수들의 막강함과 희롱의 말에 좌절하지 않고 오직 여호와의 공의에 호소하는 길만이 살 길이라고 믿고 있었다.

 

이 남아있는 자를 위하여 - 여기 '남은 자'(remnant)사상은 바벨론 포로기 이후에 주로 등장하던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포로기 이전에도 실상이 같은 사상이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예를 들면 이사야의 아들 '스알야숩'(Shear-Jashub)의 이름의 뜻이 '남은 자가 돌아오리라'는 것임이 그 일례이다(7:3). 그리고 본장의 끝부분에 나오는 이사야의 예언에도 '남은 자'에 대한 특별한 개념이 등장하고 있다(30,31). 한편 당시의 시대 상황으로 볼 때 남은자는 직접적으로 북이스라엘 10지파와 산헤립의 1차 침입시 멸망한 46개 이상의 성읍 거민(18:13)을 제외한 예루살렘 백성들을 가리킨다고볼 수 있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 있어서 이는 히스기야와 같이 믿음으로 여호와께 의지한 신앙인들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왕하19:5]

 이사야에게 나아가니 - 얼핏보기에는 이 말이 3절의 '저희가 이사야에게 이르되'라는 말과 중복되어 불필요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당시에 왕의 명령은 주로 서신으로 전달되었으니 본절은 그 편지를 이사야에게 전하는 장면으로 보인다(Hobbs). 한편 이와같이 히스기야가 사신들에게 서신을 주어 보냈다는 것은 그가 선지자 이사야에게 사신을 보냄에 있어서 얼마나 심사 숙고하여 사려깊게 행했는지를 짐작케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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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하19:6]

 앗수르 왕의 신복 - 이처럼 이사야는 랍사게(4)를 가리켜 앗수르 왕의 '신복'( 나아레)이라고 표현했다. 일반적으로 왕의 사자를 가리키는 용어는 '에베드'로서 자신을 헌신하여 드리는 종이란 뜻이다.그러기에 '여호와의 종'이라고 할 때도 이 단어를 쓴다(10:23). 그러나 본절에 사용된 '나아레''젊은 아이'. '몸종'을 가리키는 단어 '나아르'의 복수형으로서 이 단어를 사용한 것은 멸시적인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2:23; 4:12).

 

나를 능욕하는 말을 인하여 두려워하지 말라 - 이사야 선지자는 히스기야의 질문에 대해 하나님으로부터 즉각적인 영감을 받아 이같이 대답했다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언약 백성들에게 평강을 약속하시는 성경의 독특한 용어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15:1), 이삭(26:24), 야곱(46:3), 여호수아(1:8))등을 향해 사용되었다. 또한 이 말은 신약에서도 게속하여 성도들을 위로하기 위해 사용되고 있다(14:27;27:24;1:17). 이처럼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향하여 '두려워 하지말라'고 말씀하심은 당신께서 친히 성도들과 함께 하시고(7:14), 성도들을 지키시고, 인도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8:31-39). 그러므로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라는 사실을 께닫고(딤후1:7), 여호수아처럼 강하고 담대하게 닥쳐오는 모든 어려운 환란에 대처해야 한다. 한편 '능욕하는 말'( 기데푸)4절에 나오는 '훼방하였으니'( 하래프)와 동의어인 것으로(Hobbs), 신성 모독적인 조롱의 말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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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하19:7]

 내가 한 영을 저의 속에 두어 - 여기서 ''는 분명 랍사게가 아닌 앗수르 왕 산헤립을 의미한다(35-37). 그러나 본절의 정확한 의미는 분명하지 않다. 다만 학자들은 본절의 '한 영''두려운 마음' 또는 '겁많은 영'으로 이해, 하나님께서 산헤립의 마음속에 겁약(怯弱)과 공포심을 불러일으킨 것을 뜻한다고 추측한다(Thenius,Rawlinson).

 

풍문을 듣고 - 여기서 '풍문'( 쉐무아)이란 단순히 '소식'을 뜻하는 말이다. 이 말은 9절에 나오는 구스 왕 디르하가의 진군 소식을 가리킨다(Lange,Keil). 어떤 학자들은 이 풍문을 35절에 기록된 앗수르의 몰살(沒殺) 사건에 관한 소식으로 보고 있는데(Rawlinson) 이는 타당하지 않다. 왜냐하면 여호와의 사자가 앗수르 군대를 쳤을 당시 앗수르 왕 자신도 그의 군대와 함께 있었으므로 소식을 듣기 보다는 직접 목격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저로 칼에 죽게 하리라 - 산헤립의 죽음에 관한 예언은 37절에서 성취되었다.

 

 [왕하19:8]

 이미 라기스에서 떠났다 함을 듣고 - 산헤립은 라기스에서 예루살렘을 공격하겠다던(18:17) 최초의 목표를 바꾸어 '립나'로 떠났다. 그것은 예루살렘을 공격하는 것보다 우선 자신의 뒤를 공격해 오는 구스 왕 디르하가의 공격을 막는 것이 더 급하였기때문일 것이다(Keil &Delitzsch).

 립나 - 립나(Libnah)는 라기스(Lachish)의 북쪽에 위치한 오늘날의 '키르벱 텔엘사피'(Khirbet Tel el-Safi)와 동일한 곳이다. 이곳은 예루살렘 남서쪽 약 40km 지점이다. 오늘날 이곳에서 석회 명판(名板)이 발견되었는데 산헤립 통치 때의 것임이 판명되었다. 한편 미1:10-16을 보면 산헤립은 마롯과 라기스를 주요 군사 활동 지역으로 장악하고 예루살렘 향하여 진군할 준비가 다되어 있었음을 알 수있다(Hob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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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하19:9]

 구스 왕 디르하가 -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디르하가(Tirhakah)B.C. 710년경에 태어나 B.C. 699년경에 구스의 왕위에 올랐다고 한다. 그러나 그때 그는 약 12세 정도의 어린 나이였기 때문에 그의 형제 사바타가(Shabataka)의 도움을 받았다. 그런데 디르하가는 비단 구스(Cush) 왕일 뿐만 아니라 애굽의 25대 왕조 중 세번째 왕으로서 애굽 왕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인물로 손꼽혔다. 그러나 성경에서 그를 애굽왕이라 하지 않고 구스 왕이라고 한 것은 그가 본래 구스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한편 당시 수많은 소국(小國)들로 나뉘어져 있던 애굽은 구스의 피앙카에 의해서 대부분이 정복돼었고 디르하가에 의해 그 실제적인 지배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B.C. 699년경 앗수르가 히스기야를 공격하자 디르하가는 히스기야를 돕기 위해 산헤립을 공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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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하19:10]

 너의 의뢰하는 네 하나님이...하는 말에 속지 말라 - 히스기야에게 보낸 산헤립의 두번째 편지의 내용은 첫번째의 그것에 비해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18:19-35의 내용은 대단히 포괄적이나 여기서는 오로지 공격과 비난의 초점이 히스기야의 여호와 신앙에로 모아졌다. 이것은 산헤립이 첫번째 사자들 히스기야에게 보낸 이후로 히스기야가 더욱더 여호와께 간구하고 선각자를 찾았다는 사실 산헤립이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앗수왕은 히스기야가 여호와께 의뢰하는 것을 집중적으로 힐난하고 있다. 즉 산헤립이 이같이 공박한 이유는 히스기야가 군사력의 절대적인 열세에도 불구하고 오직 여호와 신앙에 입각, 끝까지 항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마도 산헤립은 히스기야가 여호와께 대한 믿음을 버리기만 한다면 아무 희생을 치루지않고서도 예루살렘을 점령, 남은 병력을 디르하가와의 전투에 집중시길 수 있다고 생각하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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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하19:11]

본절에서 산헤립은 역사적인 사실 둘을 근거로 들어 히스기야가 여호와께 의뢰하는 것이 헛됨을 지적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역사적인 유비(analogy)는 하나님의 불변하심과 공의를 설명하는 방법으로 구약 성서에서 자주 사용되고 있다(4:32-40;29:2,3;23:3,4). 그리고 역사적인 사실들을 들어 그 신용 여부를 따지더라도 산헤립보다는 여호와 하나님이 훨씬 더 의뢰할 만 할 것이다. 사실 여기서 산헤립이 말하는 앗수르의 열왕이란 고작 디글랏 빌레셀, 살만에셀, 사르곤 정도이다. 그리고 앗수르가 강대국으로 부상한 것도 기껏해야 50여년을 넘지 않는 형편이다. 따라서 산헤립이 그 같은 열왕들의 정복 역사를 들먹이면서 히스기야에게 조상 대대로 전수받은 여호와 신앙을 버리도록 종용(慫慂)하고 있음은 참으로 우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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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하19:12]

 고산과...나라의 신들이 건졌느냐 - 산헤립은 또다시 역사적 사실을 들어 고산, 하란, 레셉, 들라살과 같은 성읍의 이방신들이 각기 자기 성읍들을 앗수르의 손에서 건지지 못하였음을 주장하고 있다. 한편 고산, 하란, 레셉, 들라살 등의 성읍들은 모두 메소포타미아의 북서쪽에 위치해 있다(Hobbs). 이 중 고산(Gozan)은 오늘날의 '델 하라프'(tel Halaf)로 추정되는 성읍이다. 17:6 주석 참조. 그리고 하란(Haran)은 메소포타미아와 헷 족속의 땅을 연결하는 중요한 상업 도시로 과거 아브라함의 제2의 고향이다(11:32). 다음으로 레셉(Rezeph)은 유프라테스 강 상류에 위치한 오늘날의 루사파(Rusafa)이다. 마지막으로 에덴 족속이 있는 들라살(Telassar)B.C.856년경 앗수루나 시르팔(Asshur-nasirpal) 2세에 의해 정복된 오늘날의 빗 아디니(Bit Adini)이다(J. B. Prichad, Ancient Near Eastern Texts). 그리고 그곳의 '에덴 족속'은 본래 '베드에덴의 아들들'(the sons of Betheden)이란 뜻으로 베드에덴의 잔존 거민을 가리킨다. 베드에덴은 암1:5에 나오는데 유프라테스 강 북쪽, 하란 남쪽 지역이다. 그런데 이상의 모든 성읍들은 B.C 9세기경 앗수르의 해외 정복과 관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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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지를 받아 보고 - 본절에서 처음으로 편지에 관해서 언급되고 있다. 그러나 당시에도 편지는 국가간의 외교적인 활동에서 사용되는 공식적인 주요 수단 중 하나였다(5:5;20:12;대하2:11;2:9). 아마도 앗수르는 자신들의 입장을 분명히 하기 위해 이러한 편지를 사용하였을 것이다.

 

여호와 앞에 펴놓고 - 여기서 히스기야의 신앙의 진지함과 여호와를 훼방하는 자들에 대한 강한 증오심을 발견할 수 있다. 즉 히스기야가 성전에서 산헤립의 편지를 펴놓은 것은 하나님께서 그 글에 나타나 있는 산헤립의 교만과 불경(不敬)을 보시고서 그를 책벌하시며 또한 유다 백성을 구원해 주시기 염원하는 마음에서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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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하19:16]

 여호와여 귀를...눈을 떠서 보시옵소서 - 이런 내용의 글들은 주로 슬픔과 탄원의 기도 가운데 많이 나타난다(17:6;71:2;86:1;102:13;116:2). 그리고 귀로 듣고 눈으로 보는 이러한 신인 동성 동형론적(神人同性同形論的)인 표현은 기도의 간절함을 나타내 보여 준다. 이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삼하2:4-20 강해, '신인 동형 동성론'(Anthropomorthpism)을 보다 참조하라. 한편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 에네카)은 복수형으로 사용되었고, ''( 오즈네카)는 단수형로 사용되었다는 점이다. 사람들이 무엇을 자세히 볼 때는 대개 양 눈을 크게 뜨지만 무엇을 자세히 듣기 위해 귀를 기울일 때는 한 쪽 귀만을 듣고자 하는 쪽으로 향하여 기울이기 때문에 이런 표현이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Keil &Delitzsch Commentary. Vol. III, pp.447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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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하19:17]

 앗수르 열왕이 과연...하고 - 본절에서 히스기야는 산헤립이 오만해 하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음을 이처럼 인정하고 있다. 사실 열방들을 정복한 앗수르의 막강함을 인정했기 때문에 히스기야는 더욱더 여호와께 의뢰할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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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하19:18]

 또 그 신들을 볼에 던졌사오니 - 17절에 이어 또한 히스기야는 산헤립이 주장하는 것처럼 이방신들 가운데 어떤 신도 앗수르에 대항하여 이기지 못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그런데 갓(God)과 아스돗(Ashdod)의 신들에 대한 사르곤 2(Sargon II)의 기록을 보면 앗수르는 그 같은 우상들을 불태우지 않고 노획물로 탈취하여 자기들 수호신으로 삼았다고 한다(J.B.Pritchard). 따라서 본절의 '불에 던졌다'는 기록은 그러한 우상들에 대한 본서 기자의 거부감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있다(23:11).

 

이는 저희가 신이 아니요 - 여기서 히스기야는 앗수르가 열방들을 파괴하고 그 신들을 없앨 수 있었던 것은 결과적으로 앗수르가 그만큼 위대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신들이 실제로 생명과 능력을 지닌 신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즉 히스기야는 비록 앗수르가 인간의 손으로 만든 나무와 돌 따위의 신은 대적하여 이길 수 있었으나 살아계시는 참된  여호와 하나님(16)을 이길 수는 없음을 하나님 앞에서 확신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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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하19:19]

 이제 우리를 그 손에서 구원하옵소서 - 여기서 '이제' 또는 '그러므로 이제'( 웨아타)라는 전치사는 대단히 중요하다(39:8). 왜냐하면 이는 곧 지금까지 드린 기도의 내용에 의거해 하나님께서 반드시 응답해 주실 것을 간구하는 일종의 마지막 쐐기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히스기야의 간절함을 엿볼 수 있다. 한편 이와같이 여호와에 대한 참된 신앙을 무기로 하여 이방의 위협과 대결한 역사적인 사례로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삼상17:46). 갈멜 산에서 엘리야와 바알 선지자들과의 싸움(왕상18:37) 등을 들 수 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히스기야의 힘있는 기도가 유다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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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하19:20]

본절에서 이사야가 히스기야에게 기별하여 온 히스기야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의 말씀은 다음 세 가지로 나타난다. (1)히스기야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셨다는 것이다. (2)산헤립의 교만함을 보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3)이제 산헤립에 대하여 여호와께서 당신의 뜻을 행하시겠다는 것이다. 이와같이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보시고, 행하셨다는 연속적인 응답은 츨3:7,8에서도 잘 나타난다. 이와같이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기도에 3중적으로 분명하게 응답하셨다. 그러기에 이제 본절 이하에 나오는 산헤립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은 앞서 랍사게가 큰소리쳤던 내용(18:17-35)과는 완전히 대립된다. 이와 관련해서는 평행 기사인 사35:21-35을  참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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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하19:21]

 처녀 딸 시온 - 땅이나 성읍들을 가리켜 '' 또는 '처녀'로 비유하는 것은 시가서나 예언서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시적(詩的)표현이다(23:12;47:1;46:11;1:15). 그리고 '시온'(Zion)은 일명 '다윗 성'이라고도 불리운 예루살렘 성읍을 가리키킨다. 삼하5:7 주석 참조. 그런데 여기서 시온 성을 가리켜 '처녀 딸'이라고 한 것은 잦은 외침에도 불구하고 히스기야 때까지 한번도 이방인의 발에 완전히 짓밟혀 본 적이 없는 사실을 곧 숫처녀에 비유하기 위함이다.

 

[왕하19:22]

본절에서는 앗수르가 예루살렘을 조롱하고 비난한 것은 곧 여호와를 비난하고 조롱한 것과 같음을 시사하고 있다.

 이스라엘 의 거룩한 자 - 이 용어는 이사야가 가장 즐겨 쓰는 표현으로 이사야서에는 무려 20여 차례나 기록 되었고(5:24;41:14;43:14;47:4; 49:7; 54:5;60:9,14) 그외 다른 성경에는 단지 서너 번 밖에 기록되지 않았다(71:22;51:5;60:9,14) 아무튼 이 단어의 중요성은 여호와 하나님의 유일성과 거룩성, 그분의 의로우심과 구원의 능력 등을 강조하는 단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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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하19:23]

 네가 사자로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 원문의 문자적인 뜻은 '사자의 손으로'이다. 여기서 ''( 야드)이라는 용어는 '사자'(使者)를 가리키기도 하지만 구약에서는 일반적으로 '자기 뜻을 펼쳐 행하는 행위'를 상징적으로 나타낸다(Garadon). 따라서 이 구절은 랍사게와 그의 동료들의 행위 뿐만 아니라 그들의 군사적인 움직임(18:17)까지도 지칭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Hobbs).

 여러 산꼭대기에 올라가며 - 일반적으로 앗수르인들은 병거를 타고 평지에서 싸웠기 때문에 산꼭대기에 올랐다는 표현은 좀 어색한 감이 있다. 그러나 앗수르 열왕 중에 딱 한번 레바논 산을 오른 왕이 있었기 때문에 이들은 이것을 굉장한 위업으로 기리고 찬양했던 것이다(Luckenbill). 그 앗수르 왕은 바로 살만에셀 3(B.C859-824)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레바논 깊은 곳 - 이는 곧 레바논의 내륙지(內陸地)에 있는 높은 산들을 가리킨다.

 높은 백양목과 아름다운 잣나무를 베고 - 앗수르 군대는 팔레스틴을 침공할 때 산악 지대의 나무를 베는 습관이 있었다. 그 까닭은 거주민들에게 해를 끼치고 곤궁에 처하게 하기위해 그런 일을 행하기도 했지만 주된 목적은 건축 재료로 쓰기 위해서였다(Pulit Commentary). 하지만 여기서 특별히 벌목 사실을 언급하고 있는 것은 일종의 제유법적(提喩法的)인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즉 하나님의 창조의 아름다움을 대표하는 '높은 백양목과 아틈다운 잣나무'를 벤다는 것은 그 나무들이 상징하는 팔레스틴 지방식 번영과 영예를 황폐케 하는것을 의미한다(Keil).

 그 지경 끝에 들어가며 - '그 지경 끝'에 해당되는 히브리어는 '멜룬 키초'이다. 그런데 이사야 1:8에는 이 용어가 '상직막'으로 번역되어 있다.여기서 상직막(上直幕)이란 채소밭에 일시적으로 지어놓은 일종의 원두막 같은 것을 가리킨다. 그러나 New English Bible은 이를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기슭'(fathestcomers)으로 번역하고 있는데 전후 문맥상 이것이 좀더 적절한 해석으로 보인다(Hob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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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하19:24]

 내가 땅을 파서 이방의 물을 마셨고 - '땅을 파서...물을 마셨다'라는 표현은 병행 구절인 이사야 37:25과 본절에만 나타나는 독특한 표현이다. 그런데 여기서 '땅을 판다'는 것은 적이 도망가면서 메워버린 우물을 다시 판다는 말(Thenius)이 아니고 물이 솟아날 만한 땅은 모두 파서 그 물을 취하였다는 뜻이다. 이처럼 당시 타인의 영역에 들어가 그곳에 우물을 판다는 것은 곧 그 지역을 정복하고 소유했다는 의미이다.

 나의 발바닥으로 애굽의 모든 하수를 말렸노라 - 이것은 애굽에 있는 모든 강들을 정복했다는 뜻이다. 앗수르 군대는 외국 정벌시(征伐時) 그곳 강의 제방들을 파괴하여 온통 강을 망쳐놓음으로써 강을 통하여 얻는 문명의 이익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 것이 습성이었다.(Hobbs) 그러나 그의 아들 에살핫돈(B.C.681-669)B.C671년경, 애굽에 진근, 멤피스를 포위한 적이 있다. 따라서 단지 본절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히스기야가 팔레스틴 해안 지역의 평야를 짓밟은 것처럼 애굽에 대해서도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당시 산헤립이 얼마나 오만했던가를 충분히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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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하19:25]

 내가 태초부터 행하였고 상고부터 정한 바라 - 이것은 열국(列國)의 응망성쇠를 좌우하는 분은 곧 여호와이지 산헤립이 아니라는 말이다. , 이는 잠시 하나님께서 산헤립을 도구로 사용하셔서 범죄한 백성들을 심판한 것 뿐인데 산헤립은 그것을 알지도 못하고 스스로 능력이 있어 행한 것인냥 자랑하니 얼마나 어리석은가를 말하고 있는것이다(10:5-11). 한편 이와같이 하나님이 천하 만국의 주재자이시며 모든 역사의 배후에 그분의 섭리가 작용한다는 사상은 후기 선지서에서 더욱 분명히 나타난다(41:2;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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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하19:26]

 그 거한 백성의 힘이 약하여 - '힘이 약하여'에 해당하는 히브리 원문의 문자적인 뜻은 '손이 짧아서'이다. 이는 곧 '할 능력이 없어서'라는 뜻이다(Pulpit Commentary).

 들의 풀 같고 - 근동 지역의 풀은 여타 지역에 비해 수명이 짧고 특히 뜨거운 봄바람을 잘 견뎌내지 못한다. 때문에 오늘 있다가 내일 말라 버리는 그 같은 풀은 성경에서 종종 인생의 연약함과 허무함에 비유되곤 한다(37:2;102:11;40:6,8:1:11)

 나물 같고 - 여기서 '나물''연한 풀'을 가리킨다. 팔레스틴에서는 매년 3월경 늦은 비가 내린 후 새로 푸른 풀이 돋아나는데 그것이 바로 연한 풀이다.

 지붕의 풀같고 - 지붕 위에 풀이 나는 경우는 근동 지역에서 오늘날에도 여전히 볼 수 있다. 그러나 흙으로 지은 작은 집 지붕 위에 핀 풀은 뿌리를 깊게 내릴 수 없기 때문에 곧 시들어 죽기 마련이다.

 자라기 전에 마른 곡초 같으니라 - 그레이(Gray)'자라기 전에''동풍이 불기 전에'로 수정하여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대부분의 주석가들도 이를 따르고 있다(Hobbs). 그렇다면 본절은 곡초의 싹이 땅에서 오르자마자 뜨거운 바람에 타죽는 것을 가리킨다 하겠다. 아무튼 이상과 같은 본절이 뜻하고 있는 바는 앗수르가 열방을 쉽게 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의 힘을 다 빼앗아 버렸기 때문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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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하19:27]

 내가 다 아노니 - 139-2에도 본절과 유사하게 하나님의 전지(全知)하심에 대하여 언급되어 있다. 특히 본절에서 '거처', '출입', '분노' 등에 대해 하나님께서 다 알고 계셨다는 것은 인간의 모든 행위와 그 마음을 다 아셨다는 뜻이다. 이와 관련 시4:4에서는 인간의 심중에서 말하는 것까지 여호와께서 아시므로 두려워하라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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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하19:28]

본절은 앗수르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저주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앗수르에 대한 심판은 그들의 교만 때문임을 본서 기자는 분명히 말하고 있다.

 내가 갈고리로 네 코에 꿰고 자갈을 네 입에 먹여 - 이것은 앗수르인들이 행하던 행습을 본따서 하는 말이다. 실제로 고대 앗수르 지역에서 출토된 비문을 보면 본절이 말하는 것과 같은 모습으로 정복된 이방의 왕들이 끌려가는 행상이 부조되어 있다(4:2), 즉 에살핫돈의 비석에 부각(腐刻)된 그림에는 정복자가 애굽의 디르하가와 두로왕 발로의 코에 끈을 꿰어 그 끈을 쥐고 가는 장면이 나온다. 이로 보아 훗날 므낫세도 앗수르왕 에살핫돈에게 이런 모습으로 끌려간 것이 아닌가 짐작된다(대하33:11).

 

[왕하19:29]

본절에서부터는 히스기야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의 말씀이다. 즉 하나님께서 히스기야의 기도에 응답하사 환난 가운데서 유다 백성을 지켜 주실 것이니 그들이 안연(晏然)히 거하게 되리라는 약속이다.

 

스스로 자라난것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사파아흐''넘쳐흐르다'라는 뜻의 기본형 동사 '사파흐'에서 파생된 명사이다. 이는 다름아니라 씨를 뿌리거나 경작하지도 않았는데 저절로 식물의 씨주머니에서 씨가 터져나와 땅에 떨어져 자라나는 곡식을 가리킨다.

 

그것에서 난 것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사히쉬'는 위에서 언급된 '스스로 자라난 것'이라는 뜻의 '사파아흐'와 동의어이다. 한편 유다 백성들이 첫 해와 그 다음 해는 자연적으로 자라난 식물을 먹고 제 3년에 가서야 비로소 경작한 식물을 먹게 될 것이라는 본절에 대해서는 학자들간에 다음과 같이 견해가 다양하다. (1)1년과 2년은 각각 안식년과 회년(25:5)이었기 때문에 율법을 따라 그렇게 명령했다는 것이다(Rawlinson). (2)앗수르 군대가 패망한 것(35)은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바로 그 해에 일어난 일이 아니며 2년이 지난 후에 앗수르가 퇴각했기 때문에 그렇게 예언했다고 보는 견해이다(Keil). (3)앗수르는 이사야의 예언이 있은 그 해에 바로 물러났으나 그동안 땅이 황무하게 되었고 또한 많은 백성들이 잡혀갔거나 죽거나 도망갔기 때문에 정상적인 회복을 하는데 약 2년 정도의 기간이 소요되었다는 견해도 있다(B hr). 우리는 이 세 가지 견해 중에서 어느 것이 꼭 옳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그러나 제 3년 되는 해에 포도나무를 심고 그열매를 먹게 될 것이라는 말씀을 볼 때 이는 분명 제 3년 되는 해에는 전쟁의 상흔(傷痕)이 자취를 감추고 이전과 같은 풍요함을 누리게 된다는 예언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이러한 회복의 예언은 확실히 히스기야에게 큰 기쁨이되는 하나님의 축복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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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하19:30]

 유다 족속의 피하고 남은 자 - 앗수르의 침입은 북왕국 이스라엘과 아람의 예루살렘 침입과 마찬가지로(16:5;7) 유다에 내린 하나님의 심판이었다. 그런데 이제 본절에서는 그 같은 하나님의 심판 속에서 건짐을 받은 '남은 자'가 다시 하나님 앞에서 견고히 서게 될 것을 말하고 있다 뿌리가 서리고...열매를 맺을지라 - 이는 곧 유다가 앗수르의 침입에 의해 멸절되지 않고 다시 번영할 것을 가리킨다. 이러한 번영에 대한 하나님의 예언은 요시야 왕 치세 때 실제로 성취되었다(23: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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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하19:31]

 남은 자는 예루살렘에서부터...시온산에서부터 나오리니 - 본절은 반복법을 사용하면서 유다의 구원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즉 산헤립의 침입으로 인하여 시온 산과 예루살렘 성안으로 피신했던 유다 백성들이 이제 다시 성에서 나와 각기 처소로 돌아가 생업에 종사하게 될 것을 예언하고 있다.

 여호와의 열심이 이 일을 이루리라 - 동일한 표현이 사9:7과 사37:32에도 나타난다. 이러한 구절들은 유다 백성의 구원의 근거가 여호와의 열심에 있음을 단적으로 증거해 준다. 그런데 그 같은 열심은 당신 백성들과의 언약에 대한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관련된다(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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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하19:32]

본절에서 마지막 절까지는 알에서 언급된 모든 내용의 결론 부분이다. 여기서 이사야 선지자는 여호와께서 예루살렘 성을 지키시고 앗수르를 징벌할 깃이기 때문에 그들은 유다 백성들이 있는 그 성에 대하여 어떠한 해도 끼칠 수 없다고 못박고 있다.

 

...방패...토성 - 당시 성을 포위하고 함락시키는 3단계의 과정을 보여 주는 구절이다. 즉 당시 성을 포위하고 공격하는 첫 단계는 공병(工兵)을 엄호하며 화살을 쏘는 일이었다. 그 다음으로 방패를 앞세운 공병대가 접근 사다리를 세우며 마지막으로 성을 공략하기 위해 성벽에 마주 대하여 토성을 쌓고 공성추를 설치하였다(Rawlin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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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하19:33]

이는 여호와의 맡쏨이시라. - 이사야의 이러한 강조적인 선언은 18:19'대왕 앗수르 왕의'과 본장 10-13절에 언급된 산헤립 왕의 말과 잘 대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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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하19:34]

 나와 나의 종 다윗을 위하여...구원하리라 - 본절은 하나님께서 유다 족속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근거를 밝히고 있다. 믈론 여기서 말하는 구원은 앗수르의 공격으로부터의 구원을 가리킨다. (1)하나님 당신을 위해서 : 예루살렘의 구원은 유다 백성이나 히스기야의 공로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 당신의 영광을 위해서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제 1의 목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모든 피조물들이 당신에게 영광 돌리기를 바라신다(고전10:31). (2)다윗을 위하여 : 이것은 다윗의 개인적인 신앙을 기리는 말이기 이전에 그와 맺은 언약을 지키시려는 하나님의 신실성을 의미하는 말이다(상하7:12,16). 이러한 하나님의 신실성은오늘날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영원한 언약 관계를 맺은 모든 성도들에게도 적용된다(26:28;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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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하19:35]

본절에서부터 마지막 절까지는 본장의 클라이막스 부분으로서 이사야의 예언의 말씀(7)이 성취되는 장면이다. 이와 관련 헤로도투스(Herodotus)와 요세푸스(Josephus)도 산헤립이 유다에서 퇴각한 것은 분명히 어떤 극심한 재난 때문이었다고 천명(闡明)한다.

 여호와의 사자가 나와서 - 여기서 '여호와의 사자'(angle of the Lord)는 애굽에서 장자를 쳤던(12) 천사이자 다윗의 인구 조사때 이스라엘에 온역을 내렸던 바로 그 천사(삼하24:15,16)이다(B hr). 하나님께서 이제 앗수르를 징계하시기 위해 앗수르 군대에 그 천사를 보내신 것이다 십 팔만 오천을 친지라 - 이 수치로 볼 때 당시 앗수르 군대의 규모를 능히 짐작할 수 있다. 한편 이처럼 앗수르의 군인들이 일시에 십 팔만 오천이나 죽은 데 대해서는 역병, 광야의 돌풍, 구스 왕 디르하가(9)의 기습 등 여러 가지 까닭 때문으로 추측한다. 그러나 그것들은 추측에 불과할 뿐이고 다만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역사의 결과였다는 점이다(Pulpit Comment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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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하19:36]

 니느웨에 거하더니 - 니느웨(Nineveh)는 티그리스 강 건너편 동쪽 언덕에 위치한 성읍이다. 이곳은 B.C. 12세기부터 주목을 받긴했으나 그곳이 일약 앗수르의 수도(首都)로 발전한 것은 산헤립 때부터였다. 한편 산헤립은 귀국후 이곳에서 상당한 기간을지냈던 것 같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성경에서 '거하더니'( 야솨브)라는 용어를 사용할 때는 바로 그러한 의미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곧 산헤립이 죽을때까지 다시는 유다에 대하여 어떠한 새로운 원정(遠征)도 획책하지 않았음을 암시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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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하19:37]

 그 신 니스록의 묘에 경배할 때에 - 여기 '니스록'(Nisroch)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다. 혹자는 이것을 독수리 신으로 보고 있으나(Keil) '니스록''독수리'( 네쉐르)는 어원학상 너무 거리가 멀어 신빙성이 없는 것으로 판명났다(Rawlinson). 요세푸스는 '니스록'을 신명(神名)이 아닌 신전 이름으로 보고 있는데 그리하여 그는 그것을 헬라어로 옮기기를 '아라스케스'라고 하였다(Keil &Delitzsch).

 아드람멜렉과 사레셀이 저를 칼로 쳐죽이고 - 아드람멜렉(Adrammelech)과 사레셀(Sharezer)은 에살핫돈(Esarhaddon)과 더불어 산헤립의 아들들이다(37:38). 그런데 산헤립이 자기 아들들에게 암살당했다니 참으로 비극적이다. 한편 일반적으로 산헤립의 죽음을 B.C.681년경으로 보고 있으나 분명치 않다. 산헤립이 암살되었다는 사실에 대해 그의 손자인 앗술바니팔(Asshurbanipal)의 비문에 어느 정도 나타나 있기는 하나 자세한 것은 알 수가 없다. 이에 따르면 에살핫돈은 산헤립이 죽은 후 후계자 계승 문제를 놓고 암투를 벌인 것으로 되어 있다. 즉 에살핫돈은 산헤립의 가장 어린 아들로서 아버지를 죽인 다른 형제들과 싸운 것이다.

 아라랏 땅으로 도망하매 - 아라랏(Ararat)은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상단에 위치한 아르메니아(Armenia) 지역이다. 이곳과 관련해서는 과거 노아 홍수시 노아의 방주가 아라랏 산에 머문 사건을 상기할 수 있다(8:4). 그런데 산헤립을 시해한 그 아들들은 결국 아라랏에서 에살핫돈에게 잡혀 죽임을 당한 것 같다.

 에살핫돈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 에살핫돈(B.C.681-669)은 자기 아버지 산헤립이 다하지 못한 정복 전쟁을 계속하여 애굽의 멤피스까지 함락시켰다. 유다와의 관계에 있어서 그는 지독히 악랄한 통치자로 여겨졌다. 그 이유는 그가 므낫세의 통치기간 중 유다를 침공하여 므낫세를 쇠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끌고 갔기 때문이다.(대하33:11). 니느웨에서 발견된 B.C. 8세기 무렵의 한 편지에는 '유대인들이 은 10마나를 보냈다'고 기록되어 있는바, 여기에는 므낫세의 이름도 나온다. 뿐만 아니라 그는 유다와 베냐민 족속의 상당수를 포로로 잡아가거나 강제 이주시켰다(4:2).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을 괴롭혔던 그는 애굽 내지(內地)에서 얼어난 반란을 진압하던 중 병사했으며, 앗술바니팔이 그 뒤를 이어 왕위를 계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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