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열왕기하(구속사)

열왕기하18장,여호와를 의지하라

호리홀리 2015. 9. 4. 12:33

이십 구년을 치리하니라 - 20:1-11절에는 히스기야가 중병(重病)에 걸렸다가 하나님께 기도하여 생명을 연장받는 기사가 나온다. 히스기야는 바로 그러한 병을 앓기 이전에 14년을, 그 병이 나은 이후에 15년을 도합 29년간 유다를 다스렸다.

 그 모친의 이름은 아비라 - 대하29:1절에는 그 모친의 이름이 '아비야'(Abi-jah)로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아비'(Abi)'아비야'의 축약형으로 그 뜻은 '여호와는 나의 아버지이시다'이다.

 스가리야의 딸이더라 - 스가리야(또는 스가랴)의 뜻은 '여호와께서 기억하시다'이다. 이 사람은 사8:2절에 나오는 '여베레기야의 아들 스가랴'와 동일 인물로 추측된다. 거기에서 스가랴는 '진실한 증인'으로 소개되어 있는데 그 같은 영향이 외손자 히스기야에게까지 미친 것같다. 대하 29:1 주석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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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하18:3]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 이러한 특별한 찬사는 유다 왕들 가운데 오직 아사(왕상15:11)와 요시야(22:2)에게만 주어졌다. 이러한 평가는 북왕국의 열왕들에 대한 평가와 아주 대조적인 것이다. 아마도 그 아비 아하스와 선지자 이사야의 접촉이 잦았던 점으로 보아(7:3-16) 히스기야는 어릴 때부터 이사야의 영향을 많이 받았을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러한 영향이 스가리야로부터 받은 영향과 함께 히스기야를 훌륭한 신앙인으로 성장시켰을 것이다(Pulpit Comment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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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하18:6]

 여호와께 연합하여 떠나지 아니하고 - 히스기야 왕에 대한 이러한 평가는 신4:4의 말씀에 준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사실 히스기야는 여호와를 향한 정열이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세속의 삶 가운데서 살아가는 성도들이 신앙을 지켜나가기란 그리스도와 한 몸으로 연합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다(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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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하18:9]

 사마리아...에워쌌더라 - 히스기야의 영도 아래 유다는 다시금 부흥의 기치(旗幟)를 올렸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호세아가 이끄는 이스라엘은 멸망의 위기에 이르렀다. 이스라엘에 그 같은 환란이 임한 것은 다름 아니라 그들의 죄악 때문이었다(12). 따라서 히스기야와 유다는 이러한 사실에서 더욱더 교훈을 받아 각성하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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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하18:10]

 삼 년 후에 그 성이 함락되니 - 여기서 3년이란 기간은 히스기야 4년에서 6년까지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이는 만 3년이 아닌 2년 몇 개월에 해당된다. 이러한 기록은 17:5의 기록과도 일치한다. 한편 본문에서 사마리아성을 에워싼 자는 분명히 살만에셀로 나타나 있다(9). 그러나 정작 그 성을 함락시킨 장본인이 누구인지는 분명히 나타나 있지 않다. 그러나 대개의 학자들은 사마리아 성이 함락된 것을 B.C.722년 사르곤 2세의 원년의 일로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성을 함락시킨 공적은 살만에셀에게로 돌려지곤 하는데 그 만큼 살만에셀의 역할이 컸기 때문이다. 17:3 주석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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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하18:12]

본 절은 17:7-23에 기록된 사마리아 성의 함락 원인을 몇 마디 말로 지적해 놓은 것이다. 여기서 요약해 놓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목은 (1)하나님 말씀에 대한 불순종, (2)하나님의 언약을 저버림, (3)모세의 율법에 대한 거역, 이 세 가지이다

 

 [왕하18:13]

 히스기야 왕 십 사 년에 - 산헤립(Sannacherib)의 선임 왕인 사르곤 2(Sargon,II)B.C.722년에서 705년까지 약 17년 내지 18년간을 통치했다. 그리고 산헤립은 그 뒤를 이어 B.C. 705년에 즉위했다. 그런데 앗수르의 기록에 의하면 산헤립은 그의 통치 제 4년에 히스기야에 대한 원정을 실시하였다고 한다(Pawlinson). 따라서 이때(즉 히스기야 14)B.C. 701년 경이 되며 그렇다면 히스기야의 즉위 연대는 B.C. 715년 경이 된다

 

 앗수르 왕 산헤립이 을라와서...취하매 - 산헤립의 1차 원정 목적은 에굽을 징벌하기 위한 것이었다(Josehpus, Keil, B hr). 그런데 유다의 히스기야가 아하스 때와는 다르게 조공을 거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블레셋의 가사 지방을 공격함으로써, 블레셋과 동맹하여 애굽을 치려던 계획에 많은 차질을 주었다(7,8). 때문에 산헤립은 먼저 유다 공략, 장애물을 제거하려한 것이다. 한편 산헤립의 비문(碑文) 기륵에 따르면 이때 산헤립이 히스기야로부터 탈취한 성은 모두 46개로 욥바, 에그론, 딥나, 라기스 등 중요한 요새를 전부 탈취하였다고 한다(Grid). 사실 미1:10-16에도 이러한 성들이 히스기야 시대에 탈취되었음이 언급되어 있다. 이와 관련해서는 또한 대하 32:1과 사10:28-32 등 참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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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하18:14]

 히스기야가 라기스로 보내어 - 라기스(Lachish)는 예루살렘과 가사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 성읍이다. 유다 지파에 할당된 성읍중 하나로(15:39) 르호보암에 의해 요새화되었다 (대하11:9). 14:19 주석 참조.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타티'(*)는 정치적인 '과오'를 뜻하는 단어로서 '배반하다'라는 뜻의 히브리어 '파솨'와 동일한 용법으로 사용된다(1:1;3:5). 한편 이사야 선지자는 이때의 상황을 히스기야의 연약함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로 표현하고 있다(8:9-15;10:24-26; 14:24, 25). 즉 초기에는 단호한 반 앗수르 정책을 폈던 히스기야도(7) 그만 마음이 약해져 앗수르의 막강함에 굴복하였고 백성들은 '내일 죽으리니 먹고 마시자'(22:13)며 모두 절망하였던 것이다.

 앗수르 왕이...히스기야로 내게 한지라 -한 앗수르의 기록을 보면 이때의 상황에 대하여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나는 히스기야를 예루살렘에 새장 속의 새처럼 가두었다. 그리고 그의 주위에 참호를 둘렀으며 누구든지 문 밖으로 나오는 자는 처벌했다'.그리고 이에 덧붙여 산헤립이 탈취한 성읍의 이름들이 나열되어 있다. 또한 거기에는 본절의 금,은 외에도 보석, 상아, 의자와 상아 침상, 귀한 목재, 그의 딸들, 궁녀들, 남녀 음악사 등을 대가로 받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와같이 히스기야의 연약함 때문에 그와 그의 백성들이 당한 고충은 실로 엄청나다. 그런데 이처럼 성도들도 불신앙적 처사로 인해 영육간에 많은 꾀를 당할 경우가 있다. 따라서 항상 주님을 의지하는 믿음으로 모든 두려움을 극복해야 할 것이다(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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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하18:15]

열왕기에서 외적의 침입으로 인하여 성전(聖殿)과 왕궁이 함께 수탈되는 것은 하나의 공식적인 패턴(pattern)처럼 나타난다(왕상14:25-28). 그것은 곧 하나님의 백성이 범죄할 경우 하나님은 더 이상 그들의 왕실과 함께 하지 않으며 임재(臨在)의 처소인 성전에도 함께 하시지 않음의 한 증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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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하18:16]

 자기가 모든 기둥에 입힌 금 - 솔로몬의 경우에서처럼(왕상6:20-22, 2830,32) 히스기야는 성전을 깨끗케 하면서 성전의 문과 기둥에 금을 입혀 장식한 것 같다(대하29:17-19). 그러나 이제 그가 그러한 금까지도 벗겨서 산헤립에게 조공으로 바쳐야했던 것은 아하스 때에(16:8) 이미 성전과 왕궁의 은금을 조공으로 다 바쳤기 때문에 앗수르 왕에게 바칠 삼십 달란트의 금(14)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Rawlinson). 한편 달란트(Talent)를 무게 단위로 계산할 경우 1달란트는 약 34.27kg에 해당하는 중량이다.

 

[왕하18:17]

본절을 앗수르의 2차 침입으로 보느냐 아니면 1차 침입(13-16)의 연장으로 보느냐에 대해서는 학자들에 따라 다음과 같이 견해가 다르다. (1)먼저 이것을 1차 침입의 연장으로 보는 학자가 있다(Keil, B hr). 이 견해의 대표자가 카일(Keil)인데 카일은 앗수르 왕이 히스기야로부터 조공을 받은 뒤에(16) 히스기야가 저자세로 나오는 것을 악용하며 자기 나라로 돌아 가지 않고 도리어 예루살렘을 침공했다는 것이다. 카일은 이 같은 근거로 평행구절인 사36:1,2를 든다. 사실 사36장의 1절과 2절은 매우 매끄럽게 연결되어 있어서 외관상으로 보기에는 1차 침입의 연장인 것으로 볼 수 밖에 없다. (2)그러나 대다수의 학자들은 이것을 2차 침입으로 보고 있다(Rawlinson, Hobbs). 그 이유는 첫째, 앗수르의 2차 침입시에는 구스 왕 디르하가와 교전하는 장면이 나오는데(19:9) 이 디르하가(Tirhakah)는 히스기야의 동맹 요청에 응하여 히스기야를 도우러 왔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유다와 구스(에디오피아)간에 동맹을 체결하는데는 상당한 기간이 지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므로 앗수르의 침입은 2차 침입으로 보아야한다. 둘째, 1차 침입시에 유다는 이미 군사력이나 경제력에 있어서 완전히 쇠진한 상태에 있었으니 계속해서 앗수르와 맞서 교전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따라서 앗수르는 B.C.701년에 1차 침입을 한 후 2년후인 B.C.699년에 2차 침입을 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또 위에서 언급한 사36장에서 1절과 2절 사이에는 약 2년간의 간격이 있었다고 보아야한다(Hobbs). 한편 구스 왕 디르하가에 대해서는 19:9 주석을 참조하라.

 다르단 - 다르단(Tartan)뿐 아니라 뒤이어 나오는 랍사리스(Rabsris), 랍사게(Rabshakeh)는 모두 고유한 인명으로 오해될 수 있다. 그러나 실상 이것들은 모두 앗수르의 관직명이다. 이 중 다르단은 앗수르 군대의 직위와 관련된 공식적인 직명인 것으로 추측된다(Lucknbill,Ancient Records). 이와 관련 혹자는 '다르단'이 총사령관직이었다고도 한다(Rawlinson).

 랍사리스 - 이 단어의 문자적인 의미는 '내시장'(內侍長)이다. 그러나 '내시장'이라는 직함이 군대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는 분명치 않다.

랍스게 - 이와 관계가 있는 히브리어는 '술 맡은 자'라는 뜻에 해당되는 '마쉬케'(40:5)가 있다. 따라서 랍사게는 왕의 비서와 같은 직함을 나타내는 것으로 추측된다(Hobbs).

 윗못 수도 곁 곧 세탁자의 밭 - 대하32:30에는 '윗못 수도''기혼의 윗 샘물'로 기록되어 있다. 히스기야는 예루살렘성 밑으로 수도를 건설하여 성 밖에서 흐르는 물줄기와 기혼(Gihon) 시냇물을 끌어들여 이곳 샘에 저장하였는데(20:30) 이것은 식수나 세탁용, 또는 전시(戰時)의 비상용으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사실 예루살렘에서는 적군에 포위당헹을 때 생활 용수(用水) 공급 문제가 언제나 큰 골치거리였으니 히스기야는 이를 타개하기 위하여 지하수로를 건설하였을 것이다. 한편 이 윗못 수도는 이미 아하스 때에도 있었는데(7:3). 이때는 예루살렘 성 밖에서 성의 서편을 따라 힌놈 골짜기(Valley of Hinnom) 아래로 물이 흘렀다. 그러나 히스기야 때에 이것을 성내로 끌어들인 것이다(Keil &Delitzsch), 따라서 본절에서 앗수르 군대가 윗못 수도곁 큰 길에서 유다와 맞섰던 장소는 예루살렘 성밖 서쪽 기혼으로 들어오는 물의 근원지이다. 히스기야는 산헤립의 1차 칩입후 2차 예루살렘 침입을 대비하기 위하여 앗수르 군대가 사용할만한 모든 물 근원올 막았었다(대하3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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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하18:18]

 궁내 대신 엘리아김 - 22:19,20에 따르면 엘리아김은 셉나(Shebna) 대신으로 궁내 대신 자리에 올랐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당시에 '엘리야김'(또는 옐리아김)은 대단히 흔한 이름이었던 것 같다. 예를들면 여호야김(Jehoiakim)이 왕이 되기 이전의 이름도 엘리아김이었다(23:34). 한편 궁내 대신은 나라의 주요 행정적 책임자로서 때로는 왕의 자문(諮問)을 담당하기도 한다(Hobbs).

 서기관 셉나 - 서기관은 조서 또는 공문서들을 기록하는 관리이다. 22:15-22에 의하면 셉나는 하나님 앞에서 패역한 결과 궁내 대신의 자리에서 밀려났음을 알 수 있다.

 사관 요아 - '사관'에 해당하는 '자카르'의 문자적인 뜻은 '기억하는 사람'이다. 아마도 요아(Joah)는 앗수르와 유다간의 담판이라는 중요한 역사적 사건을 실록(實錄)에 기록하기 위하여 파견되었을 것이다(Pulpit Comment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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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하18:19]

 대왕 앗수르 왕 - '대왕'(the great King)이라는 호칭은 비단 앗수르 왕 뿐만 아니라 바빌론, 바사의 왕들도 사용했던 호칭이다(26:7;2:37). 즉 그들은 대제국의 통치자로서 그에 걸맞는 칭호를 스스로 누렸던 것이다(Keil &Delitzsch).

 너의 의뢰하는 이 의뢰가 무엇이냐 - 여기서 ''는 히스기야 왕을 가리킨다. 앗수르 왕의 대변인인 랍사게는 이와같이 히스기야 왕에 대한 어떠한 존칭도 사용치 않고 직접 '히스기야'라고만 부르거나(22,29,30,31,32) ''라는 경멸스러운 호칭을 하고 있다. 즉 여기서 랍사게는 산헤립에게는 '대왕'이라는 칭호를 사용하면서도 히스기야에게는 '' 또는 '히스기야'라고 부름으로써 모욕적인 태도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또한 여기서 랍사게는 히스기야의 반앗수르적인 태도를 비꼬면서 '네가 무엇을 믿고 이렇게 자신만만이냐'(공동 번역)라고 조소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비록 앗수르의 랍사게가 사용하긴 했지만 '의뢰하다'라는 뜻의 히브리 단어 '바타흐'는 신학적으로 깊은 의미를 담은 용어로서 왕하 후반부에 자주 등장한다. 이 단어와 관련 우리는 1:3에서 옐리야 선지자가 아하시야 왕의 사자들에게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없어서 너희가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러 가느냐"라고 한 말을 상기할 수있다. 즉 본서 기자는 왕하 전체에서 '여호와께 의뢰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주제로 부각시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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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하18:20]

 이는 입에 붙은 맡 뿐이라 - '입에 붙은 말'이란 마음속으로는 확신이 없으면서도 입술로만 하는 맡을 가리킨다. 사실 히스기야가 끝까지 전쟁의 모사(謀士)요 능한 자되시는 여호와(24:8)를 확신하고 신뢰했다면 앗수르인들의 이런 조롱을 당치 않았을것이다. 과거 모세는 홍해 바다에 막혀 애굽 군대를 피할 수 없는 절박한 상황에서도 여호와에 대한 신뢰가 굳건했기 때문에 승리를 맛볼 수 있었지 않았던가(14: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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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하18:21]

 이제 네가 저 상한 갈대 지팡이 애굽을 의뢰하도다 - 여기서 이미 히스기야가 애굽과의 동맹을 교섭 중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히스기야가 이처럼 애굽과 동맹맺는 것을 누구보다도 비난한 사람은 이사야 선지자였다(31:3). 사실 당시에 애굽이 어느 정도 이전 세력을 되찾고 막강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은 앗수르와 맞설 만한 상대는 되지 못하였다(Hobbs). 한편 여기서 랍사게가 애굽을 갈대에 비유한 것은 애굽을 상징하는 나일 강변에 갈대가 많기 때문이다(Keil). 그러기에 겔29:6과 사42:3에도 애굽은 이스라엘에게 갈대 지팡이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상한 갈대 지팡이''여호와에 대한 의뢰'는 완전히 대조적인 것이다. 갈대, 그것도 상한 갈대를 의지하는 자는 그 갈대가 부러질 때 껍질에 찔려 오히려 피를 흘리게 되지만(36:6) 여호와를의지하는 자는 영원 무궁 형통하게 될 것이다(1:1-3), 한편 성경에서 '상한 갈대'라는 표현을 '꺼져 가는 등불'과 함께 인생의 연약함을 비유할 때도 사용된 적이 있다(423;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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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하18:22]

본절에 기록된 랍사게의 날카로온 비평은 크게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 (1)히스기야가 종교 개혁의 일환(一環)으로 산당과 제단을 파괴한 것(4)은 지금에 와서는 전혀 무의미하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2)히스기야의 그런 종교적 혁신이 지금에 와서는 그가 하나님을 의뢰함에서 나온 행위였다고 주장할 만한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사실 히스기야의 종교개혁에 대한 이러한 랍사게의 비평은 당시 히스기야의 순수한 열정과 신앙에만 비추어 본다면 맞지 않는다. 그러나 상황이 변한 지금에 와서 랍사게의 이러한 말은 분명 히스기야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 예리한 질책이 되었을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랍사게는 이와 같은 말을 함으로써 히스기야의 기세를 꺾는 데 성공한 셈이다. 그런데 이에서 더 나아가 랍사게는 자기 자신을 히스기야의 그러한 신앙 상태를 징벌하기 위해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사자로까지 표현하고 있다(25). 이는 분명 오만무뢰한 태도로서 곧 하나님을 망령되게 한 헹위가 아닐 수 없다(Matthew Hen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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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하18:23]

 만일...말 이천 필을 주리라 - 22절과 본절의 내용을 볼 때 산헤립 왕은 유다의 정치적, 종교적 상태 뿐만 아니라 군대 현황에 대해서도 거의 정확한 자료를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J.B Pritchard, Ancient Near Eastern Texts). 그래서 그는 유다 왕 히스기야의 신앙심을 동요시켰을 뿐만 아니라(22) 유다의 군사력의 약점을 공격함으로써 계속 히스기야의 기세를 꺾을 수 있었던 것이다. 한편 대하32:1-8을 보면 히스기야는 앗수르의 침입에 대비하여 병력을 보강하고 말들을 정돈한 것으로 나타나있다. 그러나 그것은 본절에 기록된 랍사게의 말처럼 그 기병의 수가 말들을 탈수 있을 만큼도 되지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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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하18:25]

 내가 어찌 여호와의 뜻이 아니고야 -여기서 이방인인 랍사게가 '여호와의 뜻'을 운운한다고 할지라도 이상하게 생각할 것은 없다. 왜냐하면 당시 고대 근동에서는 전쟁에 패한 것을 그 나라 신의 진노로 해석하는 경우는 흔히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예를들면 모압 왕 메사는 모압이 이스라엘 왕 오므리의 억압을 받는 것(3:4)을 모압 신 그모스의 진노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고레스 역시 자신이 바벨론을 차지한 것은 말둑(Marduk) 신의 도움 때문이라고 생각했다(J.B. Pritchard). 따라서 랍사게가 '여호와의 뜻'을 운운한 것은 22-24절에서 전개된 논리의 당연한 귀결인 것이다. 즉 다시말하면 (1)히스기야가 여호와를 의지하지 않고 애굽을 의지한 사실과(24) (2)여호와의 산당과 제단을 제한 사실(22)등에 대하여 여호와께서 앗수르를 보내 유다를 심판케 하셨다는 것이다. 더욱이 랍사게는 당시에 유대의 예언자들이 앗수르의 침입을 여호와의 심판이라 외치고 있었다는 사실(8:7)을 미리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Keil,Rawlin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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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하18:26]

본절을 통해서 볼 때 랍사게는 히브리 방언에 아주 능통했던 것 같다. 그렇다면 그가 이렇게 유다 말로 19-25절까지의 내용을 말한 것은 유다의 사기를 꺾기 위한 것이었음에 분명하다(27). 그래서 본절에서 유다의 세 사자(使者)는 유다 말로 말하지 말고 아람 말로 말하라고 한 것이다. 한편 아람어는 당시에 주요 외교 언어였으며 바사(Persis)시대에는 공식적인 바사 제국의 언어가 되었다(Hobbs).

 유다 방언 - 유다 방언은 서부 셈계 방언에 속한다. 그리고 앗수르어 및 아람어와 동족어이기도 하다.

 

[왕하18:27]

 자기의 대변을 먹게 하고 자기의 소변을 마시게 하신 것이 아니냐 - 이는 곧 계속적인 악순환만 있을 뿐이며 헤쳐나갈 길이없다는 것을 비유한 표현이다. 즉 앗수르의 군대가 장기간 예루살렘을 포위할 경우에는 성벽위에 앉아서 자기의 말을 듣고 있는 일반 백성도 왕의 신하들과 함께 먹을 것이 없어서 대변과 소변을 먹어야 할 처지가 되고 말 것이니 지금 항복하는 것이 훨씬 나을 것이라는 말이다. 랍사게의 이런 말은 이스라엘 백성을 현혹하며 위협하는 것이다. , 백성들이 이와 같은 말을 듣고 하루속히 항복하기를 원하도록 하려는 위협적인 술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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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하18:29]

 저가 너희를...건져 내지 못하리라 - 본절과 같은 랍사게의 말은 당시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과는 정반대된다. 왜냐하면 이사야는 여호와께서 유다를 도와 주실 것이라는 충고(19:6,7;대하32:6-8)와 함께 앗수르에 의해 예루살렘이 함락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언했기 때문이다(31:4-6). 그런데도 랍사게는 지금까지 히스기야의 사자들에게 말하던 것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예루살렘 성 위에 있는 백성들과 병사들을 향하여 '히스기야에게 속지말라'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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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하18:30]

 여호와를 의뢰하라 함을 듣지 말라 - 사실 대하 32:6-8에 의하면 히스기야는 처음에는 굳센 신앙 가운데서 오직 여호와만을 의지하라는 말로써 군대 장군들과 백성들을 위로하였음을 알 수 있다. 아마도 히스기야의 그러한 행위는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에 힘입은 바 클 것이다. 그런데 과거의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던 랍사게는 이제 히스기야가 다시금 돌이켜 여호와를 의지하라고 소리쳐도 그에 귀기울이지 말라고 선동함으로써 민심(民心)을 동요시키고 있는 것이다(대하32: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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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하18:31]

본절에서 랍사게는 이제 마지막으로 유다 백성들을 회유하고 있다.

 내게 항복하고 내게로 나아오라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 원문의 문자적인 뜻은 '내게로 나와서 나와 함께 복을 만들자' 이다. 즉 여기 한글 개역 성경에서 '항복하고'로 번역된 히브리어 '쎄라카''선물', ''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영역 성경에서는 이 부분을 '우리가 화평하자'로 번역하고 있다(Niv,Rsv).

 너희는 각각 먹고 마시라 - 이러한 회유(懷柔)의 말은 27절에 나오는 위협의 말과 대조가 된다. 한편 여기서 그 포도와 무화과를 먹는다는 표현은 신8:833:28에 나오는 풍요의 땅 가나안에 대한 묘사와 일맥 상통한다. 그리고 우물의 물을 마신다는 표현 또한 뭍질적인 풍요를 비유하는말이다. 즉 랍사게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항복하고 앗수르에로 나아올 경우 그곳에서 풍족한 삶을 살게 되리라고 유혹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이 약속의 땅을 떠난다는 것은 곧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을 의미한다. 그럴 경우 그들에게 돌아갈 것이라곤 오직 눈물과 한숨, 고통의 빵 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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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하18:32]

 너희를 한 지방으로 옮기리니...꿀이 있는 지방이라 - 본절에서 랍사게는 앗수르의 이주 정책을 애써 미화시켜 유다 백성들을 설득하고 있다. 즉 본절에는 앗수르의 군대 장관이 예루살렘 성민들에게 일종의 유토피아를 약속하는 듯한 모습이 기록되어있다. 산헤립의 전왕 사르곤 2세는 사마리아 사람들을 타지역으로(17:6), 그리고 타지역의 사람들은 사마리아로(17:24) 이주시켰는데, 당시의 앗수르 왕들은 정책상 흔히 피정복민들을 집단 이주시키곤 하였다. 따라서 랍사게의 감언 이설 또한 이러한 정책의 일환에 불과할 뿐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사단은 자기가 하는 일이 인간들의 복지를 위한 것처럼 꾸미려 하나 실상은 노략질하는 이리와 같다(7:15)

 

 듣지 말라 - 랍사게는 여호와에 대한 유다 백성의 신앙을 빼앗아 앗수르에게로 그 마음을 돌이키려고 애썼다. 예를 들면 (1)25절에서 그는 여호와를 유다를 심판하시는 분으로 묘사하고 있다. (2)그리고 29,30절에서는 여호와께 의뢰하는 것이 헛되다고 말하고 있다. (3)또한 31,32절에서는 여호와가 유다 백성에게 주신 축복을 앗수르 왕도 줄 수 있다고 한다. (4)마지막으로 33-35절에서는 다른 이방 신들과 마찬가지로 너희 신 여호와도 너희 유다 백성을 앗수르의 손에서 건지지 못한다고 말한다. 이와 같은 랍사게의 감언 이설과 회유는 하나님의 손에서 그의 백성들을 빼앗아 가려는 사단의 회유와 같다. 즉 사단은 항상 여호와에 대한 부정적인 신앙을 강요하고 온갖 감언 이설로 하나님을 의지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그런즉 우리들은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굳게 서 아무도 우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해 할 것이다(요일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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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하18:33]

 열국의 신들 중에 있느냐 - 이처럼 랍사게는 이스라엘의 여호와를 열국의 이방 신들과 동일선상에 두고 있다. 이것은 열국의 신들에 비해 여호와의 독특함을 강조하고 있는 신4:34의 말씀과 명백한 대조가 된다. 때문에 신명기적 역사관을 지닌 열왕기 기자에게 있어서 이러한 문제는 신학적인 핵심적 관건이 된다. 왕상 서론, '저자' 참조. 그가 본서 첫장에서 여호와와 이방신들 간의 대조적인 면을 문제삼았고 또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그러한 면을 강하게 인식하도록 설교한 것도 바로 이러한 연유에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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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하18:34]

 그들이 사마리아를 내 손에서 건졌느냐 - 본절은 주어 '그들'이라는 말 때문에 문제가 되곤 한다. 따라서 70인역(LXX)과 벌게이트 역(Vulgate)에서는 이 문장 앞에 '사마리아 땅의 신들은 어디갔느냐?'라는 구절을 삽입하였다. 그러나 본절과 같은 성경 원문의 문맥이 어색하기만 한것은 아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사마리아 함락(B.C722) 이전에도 이방 신들을 많이 섬겼으며(17:24). 특히 함락 이후 그곳 잔류민들은 새 이주민들의(17:7-23) 종교를 무분별하게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들은 여호와께서 자기들을 구해 주지 못했으니, 이제는 새 종교들에 희망을 걸어 보자고 생각하며, 그 종묘들을 더욱 열심히 승배했을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신들이 그들을 구해줄 리는 만무한 것이었다. 한편 17장에서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이러한 사마리아의 멸망은 유다에 대해 상당한 위협이 되었을 것이다. 본장 서두(9-12)에서 먼저 사마리아의 멸망을 회고하고 있는 것도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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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하18:35]

 그 누가 그 땅을 내 손에서 건졌기에 - 랍사게의 입장에서 볼 때 본절과 같은 앗수르왕의 주장은 타당할지 모른다. 왜냐하면 실제로 사마리아는 앗수르의 침략 앞에서 제대로 힘도 써보지 못하고 멸망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븐명히 기억해야 할 사실은 사마리아 멸망이 하나님의 심판의 결과였지 단순히 앗수르의 침략 때문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사마리아를 구원하고자만 하셨다면 단번에 앗수르의 손에서 건져 내셨을 것이타(17:7-18). 4:34에서도 다른 신들은 결코 하지 못한 일을 여호와만이 행하셨음을 분명히 언급하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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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하18:36]

 대답하지 말라 - 유다 성읍민을 자극시켜 그들의 불평을 유도, 내란 사태에 빠뜨리려는 랍사게의 계획은 들은척도 아니한 백성들의 자세로 인해 수포로 돌아갔다. 이 같은 사실은 하나님을 절대 신뢰하는 자들에게 다가오는 사단의 유혹은 아예 상종조차 하지 않음으로써 물리칠 수있다는 영적 교훈을 제시해 준다(4:7;요일5:4;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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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하18:37]

 그 옷을 찢고 - 성경에는 여러 형태의 옷을 찢는 행위가 언급되어 있다. , 문둥병자의 경우에나(13:45), 상징적 행동으로(왕상11:30), 혹은 회개할 때(22:8-20) 옷을 찢었다. 그런데 무엇보다 성경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옷 찢는 행위는 슬픔이나 고통, 분노 등을 나타낼 때였다(37:34;7:6;11:35;삼하3:31;13:19;14:14). 본절에서 히스기야의 신복들이 슬픔과 분노를 표시한 이뿐만 아니라 왕과 하나님의 백성 모두를 무시하여 조롱했기 때문이었다.

 

랍사게의 말을 고하니라 - 이 상황은 1장에서 아하시야의 사자들이 아하시야에게 엘리야의 말을 전하는 장면과 비교된다(1:13-18). , 19절의 '대왕'의 말과1:16의 여호와의 말씀이 서로 대조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본서 기자가 이와같이 본장의 막바지에서 상당히 극적인 묘사를 하고 있는 것은 다음 장에서의 히스기야의 태도를 부각시키기 위해서 였을 것이다. , 히스기야는 하나님 대신 애굽을 의지한 결과 앗수르 대왕로부터 참람(僭濫)한 말을 들었다. 이에 그는 19장에서 다시금 회개하고 여호와의 말씀에 귀기울이는 행동의 전환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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