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열왕기하(구속사)

열왕기하17장,언약적 저주

호리홀리 2015. 9. 4. 12:06

 이스라엘을 앗수르의 손에 붙인 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을 숭배했기 때문이고, 선지자들을 보내심으로 그들에게 악한 길에서 돌이키도록 말씀해 주셨지만 듣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일”이란 앗수르의 침략으로 인한 이스라엘의 황폐함을 말한다. 외형적으로 보면 앗수르의 침략은 강한 나라가 약한 나라에 대한 침략이었다. 그러나 이 일은 하나님께서 섭리 가운데 범죄 한 이스라엘을 징계하기 위하여 행하신 일이었다. 우리의 삶 가운데 일어나는 어떤 일들은 외적으로는 어쩔 수 없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처럼 보일지라도 실제로는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일어나는 것임을 말해 준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해 주신 환경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것이 있는지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앗수르로부터 침략을 당한 것은 그들의 범죄로부터 온 것이다. 이스라엘이 지은 죄란 자신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하나님을 배반함으로 우상을 숭배를 한 것이고, 또한 하나님께서 그들의 복된 삶을 위하여 주신 율례를 거역하고 오히려 이방 사람들의 규례와 부패한 이스라엘의 여러 왕들이 세운 율례에 따라 행한 것이다.

 

언약백성은 약할지라도 하나님 경외하기에 힘쓴다면 하나님께서 그들의 힘이 되어 주심으로 세상의 누구도 감당할 수 없는 강한 자들이 될 수 있지만, 그들이 강할지라도 하나님 경외하기를 버린다면 하나님께서도 그들을 대적의 손에 붙이심으로 그들은 세상의 누구도 이기지 못하는 약한 자들이 될 수밖에 없다.

“또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서 물리치신 이방 사람 같이 그 곳 모든 산당에서 분향하며 또 악을 행하여 여호와를 격노하게 하였으며 또 우상을 섬겼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행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일이라(17:11,12)” 이스라엘의 이와 같은 행위들은 여호와를 격노케 하였다. 여기 “격노”는 하나님께서 죄인들에게 대하여 가지신 성품들 가운데 하나다. 하나님은 의로우신 분이시므로 죄에 대해서는 격노하신다. 어떤 사람들은 이와 같은 사실을 알지 못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강조함으로 죄와 그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약화시킨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품 가운데 격노하심을 안다면 결코 이런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이 죄 가운데 거할 때 그들에 대하여 격노 하실 뿐만 아니라 그들을 심판하신다. 앗수르의 침략은 범죄한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격노였고 또한 심판이었다.

이스라엘이 이처럼 하나님을 격노케 했고 심판을 자초한 또 다른 한 가지는 그들이 회개의 메시지를 듣고도 돌이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호와께서 각 선지자와 각 선견자를 통하여 이스라엘과 유다에게 지정하여 이르시기를 너희는 돌이켜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 나의 명령과 율례를 지키되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명령하고 또 내 종 선지자들을 통하여 너희에게 전한 모든 율법대로 행하라 하셨으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고 그들의 목을 곧게 하기를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믿지 아니하던 그들 조상들의 목 같이 하여(17:13,14)”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죄 가운데 거하고 있을 때, 즉시 심판치 않으시고, 먼저 그들에게 죄로부터 돌이킬 수 있는 기회를 주신다. 선지자들이 전하는 회개의 메시지야 말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사랑하시므로 죄로부터 돌이키도록 주시는 말씀이다. 여기 “목을 곧게 했다”는 말은 마음을 강퍅케 했다는 의미도 되지만 또한 교만히 행했다는 뜻도 된다. 실제로 마음을 강퍅케 하는 것과 교만히 행하는 것은 모두 권고의 말을 듣고도 돌이키지 않는 것을 말해 준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하여 회개할 것을 권고하셨지만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들이 듣지 않은 것은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스스로를 지혜롭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여기 스스로에 대하여 하나님보다 지혜롭다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교만이다. 교만하면 마음을 돌이킬 수 없고 돌이킬 수 없는 바로 그 마음이 강퍅한 마음이다.

 

유다의 심판을 언급하신 것은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나타내 주시기 위함이었다. 즉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유다가 범죄 했을 때에도 심판하셨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사실은 세상의 어떤 나라나 누구에게든지 동일하게 하나님은 자신의 공의로우시다는 것을 말해 준다. 실제로 하나님은 이스라엘(분열되기 이전의 이스라엘)의 죄로 인하여 나라를 다윗의 집에서 찢어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에게 주셨다. 그러나 여로보암은 이스라엘을 우상숭배로 몰아 더 큰 죄를 범하였음으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앗수르에 붙여 그들의 손에 사로잡혀가게 하신 것이다.

 

앗수르의 이주 정책에 의하여 이스라엘 사람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사로잡혀가서 앗수르 제국의 여러 지역에 흩어졌고, 대신 다른 민족들이 이스라엘로 이주해 왔다. 본문에서 언급한 바벨론과 구다 아와와 하맛과 스발와임 등은 앗수르가 이스라엘에 이주시킨 민족들의 이름이다.

이처럼 다민족이 살고 있는 사마리아는 더 이상 하나님만을 경외하는 곳이 될 수 없었다. 그들은 각자 자신들이 숭배하던 신을 숭배한 것이다. 하나님은 사마리아에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에 대하여 침묵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 가운데 사자들(lions)을 보내어 몇 사람을 죽이심으로 사람들로 하여금 이 일이 하나님을 섬기는 사마리아 땅에서 이방신을 숭배함으로부터 임한 하나님의 진노하심으로 알게 하셨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앗수르 왕에게 말하여 이르되 왕께서 사마리아 여러 성읍에 옮겨 거주하게 하신 민족들이 그 땅 신의 법을 알지 못하므로 그들의 신이 사자들을 그들 가운데에 보내매 그들을 죽였사오니 이는 그들이 그 땅 신의 법을 알지 못함이니이다(17:26)” 사자들로 일어난 사건은 앗수르 왕에게 보고되었다. 이 보고는 당시 이들이 이 사건을 어떻게 이해했는지 잘 말해 주고 있다.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자신의 뜻을 계시하실 때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계시해 주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만일 당시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그들에게 보내어 이와 같은 일을 했더라면 앗수르는 그것을 반란으로 여겼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사람이 아닌 짐승들(사자)을 보내어 그들 중에 몇 사람을 죽이게 하셨을 때 그들은 이것을 하나님의 진노하심으로 인하여 일어난 일로 알았다. 이처럼 하나님은 자신의 뜻을 이들의 영적 수준(종교심)에 맞게 계시해 주신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에게 자신의 뜻을 계시해 주실지라도 그들은 확실치는 알지 못할지라도 희미하게나마 알 수 있다(롬1:20).

 

앗수르 왕은 이 보고서를 받고 다음과 같이 조치하였다. “앗수르 왕이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그 곳에서 사로잡아 온 제사장 한 사람을 그 곳으로 데려가되 그가 그 곳에 가서 거주하며 그 땅 신의 법을 무리에게 가르치게 하라(17:1)” 왕의 명령에 따라 사로잡아 온 자들 가운데 제사장 하나를 벧엘로 보내어 그곳에서 이민족들에게 여호와 경외하는 법을 가르치게 했다. 그러나 그 일은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왜냐하면 이런 가르침이 여러 민족들로 하여금 그들 자신이 오랜 전통 가운데 지켜온 신앙과 사상으로부터 돌이키게 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여러 민족이 혼합해서 살고 있는 이스라엘은 종교, 사상, 문화 등 모든 것을 혼합 되었고 이로 인하여 이스라엘의 신앙과 문화조차도 순수성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이때의 모습에 대하여 본문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러나 각 민족이 각기 자기의 신상들을 만들어 사마리아 사람이 지은 여러 산당들에 두되 각 민족이 자기들이 거주한 성읍에서 그렇게 하여…이와 같이 그들이 여호와도 경외하고 또한 어디서부터 옮겨왔든지 그 민족의 풍속대로 자기의 신들도 섬겼더라(17:29-33)” 신앙의 순수함을 지킬 수 있는 환경과 문화는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신 특별한 은혜다. 이런 환경과 문화가 허락되어 있는 동안에는 우리가 영적으로 타락했을지라도 돌이킬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만 하나님께서 이런 환경을 취하여 가시면 그때는 돌이키고자 하여도 돌이킬 수 있는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약속의 땅을 허락해 주시고 그들에게 이방인들을 그 땅으로부터 쫓아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너희가 만일 그 땅 거민을 너희 앞에서 몰아내지 아니하면 너희의 남겨둔 자가 너희의 눈에 가시와 너희의 옆구리에 찌르는 것이 되어 너희 거하는 땅에서 너희를 괴롭게 할 것이요 나는 그들에게 행하기로 생각한 것을 너희에게 행하리라(민33:55)”

 

이스라엘이 앗수르로부터 멸망한 후, 이스라엘 가운데 이와 같은 혼합된 형태의 신앙은 계속 되었다. 물론 이런 모습은 여로보암 때로부터 이스라엘의 전통이 되었지만 앗수르로부터 멸망당한 후부터 더욱 심화 되어 돌이킬 수 없는 지경이 된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불행한 일이었다. 이스라엘은 그 땅을 약속의 땅으로 받았고 또한 그 땅에서 자유롭게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 수 있는 축복을 받았지만(애굽에서는 이런 축복을 누릴 수 없었다.) 은혜를 은혜로 알지 못하고 오히려 이 땅에서 또 다시 이방의 우상을 숭배하고 그들의 풍습을 따랐다. 이로 인하여 이 거룩한 땅은 더렵혀진 것이다.

이스라엘은 앗수르로부터 패함으로 여로보암으로부터 시작하여 약 209년의 역사로 역사 속으로 영원히 사라졌다(BC931-722). 열왕기 기자는 이 비극의 역사를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고 오히려 이전 풍속대로 행하였느니라 이 여러 민족이 여호와를 경외하고 또 그 아로새긴 우상을 섬기니 그들의 자자 손손이 그들의 조상들이 행하던 대로 그들도 오늘까지 행하니라(17:40,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