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 이 년을 치리하니라. - 아사랴는 B.C.791-767까지 약 24년간 그의 부친 아마샤와 섭정을 했다(Thiele, Mysterious Numbers). 그러므로 그가 정식으로 등극한 해는 아마샤가 죽은 해인 B.C.767년이며 그가 단독으로 통치한 기간은 약 28년간이 되는 셈이다. 그리고 여기서 그가 16세에 왕위에 올랐다는 것은 그가 처음 섭정하기 시작한때의 나이를 가리킨다. 이에 대해 요세푸스(Josephus)도 그가 16세에 등극하여 52년간 다스린 후 68세에 사망했다고 기록했는데, 이것 역시 그가 16세에 섭정을 시작했음을 간접적으로 입증해 주는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아사랴가 24년간이란 장기간 동안 부친 아마샤와 함께 섭정을 했다는 분명한 증거는 찾기 힘들다. 단지 학자들은 아마샤가 북이스라엘의 요아스(B.C.798-782)와 싸울 때에 자기 아들을 왕으로 세웠을 것이라고 추측할 뿐이다. 그리고 아마도 그의 부친 아마샤의 실정(失政)에 대한 반감 때문에 섭정했으리라 추정된다(14:1-20).
여골리야라. - 대하26:3에서와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왕의 부친에 대한 언급은 없으며 모친의 이름만 기록되어 있다. 이 이름의 뜻은 '여호와는 능하시다', 혹은 '여호와께서 정복하신다'로 주의 전능하심과 공의로움을 반영한 것이다. 한편 요세푸스(Jose-phus)는 그녀를 '아기알라'로 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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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랴의 치적에 대한 평가는 그의 부친 아마샤에 대한 평가(14:3)와 유사하다. 그런데 본서에서 유다 왕들의 치적을 평할 때 그 기준은 항상 다윗 왕이었다. 그러나 다윗에 비길만한 칭찬을 들은 왕은 히스기야와(18:3) 요시야(22:2) 뿐이다. 한편 역대기기자는 아사랴, 즉 웃시야가 스가랴 선지자가 살아 있는 동안 여호와께 구했다고 기술하고 있다(대하26:5). 이는 그가 우상 숭배 때문에 여호와의 진노를 받은 것이 아니라 그의 교만에 의해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것임을 반영한 것이다(5절; B h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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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하15:4]
산당은 제하지 아니하였으므로. - 유다 열왕들의 치적을 평가함에 있어서 여호와 신앙에 대한 배교적인 행위를 일삼던 장소인 산당을 제하지 않는 것은 왕의 선악 여부를 판가름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왕상15:14; 22:43; 왕하12:3; 15:35).
여호와께서 왕을 치셨으므로. -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다'(3절)라는 표현 뒤에 본절과 같은 말이 나옴은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그러나 역대기의 저자는 왜 그가 하나님의 진노를 받을 수 밖에 없었는가 하는 이유를 분명히 밝힌다. 즉 대하 26장을 보면 아사랴(웃시야)가 이방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해 많은 영토를 얻었을 뿐만 아니라(대하26:2-7) 그의 권세가 널리 알려져 그는 두려움의 존재가 되었다. 그러나 그는 그 결과를 하나님의 은혜로 돌리지 않고 부왕 아마샤와 같이 자신의 능력과 힘에 돌리는 교만을 나타냈던 것이다(대하26:16). 그중에서도 특히 그는 제사장의 직무를 침범하려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것이다(대하26:16-18). 이처럼 하나님께 대한 교만은 영적 타락을 가져와(호7:9,10) 하나님을 부인하고(시10:4) 자기 도취에 빠지게 되어(렘43:2) 결국은 멸망에 이르는 것이다(잠16:18).
그 죽는 날까지 문둥이가 되어. - 아사랴가 문둥병에 걸린 것은 그의 통치 말년이기 때문에 그리 오랜 기간은 아닌 것 같다. 왜냐하면 아사랴가 문둥병자가 된 후 별궁에 거하고 있는 동안 그의 아들 요담이 왕궁의 일을 돌보았는데 이 때 요담은 적어도 15세 이상은 되었을 것으로 추측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요담은 왕위에 오른 때의 나이가 25세이므로(33절) 아사랴(B.C.791-739)가 문둥병에 걸렸던 기간은 10년 이하일 것이다.
별궁에 거하고. - 이방에서는 나아만의 경우처럼 문둥병에 걸렸어도 자신의 직무를 수행할 수 있었던 것 같다(5:4). 그러나 이와는 달리 이스라엘에서의 문둥병자는 격리된 생활을 해야 했다.(레13:46; 민5:2,3; 12:10,14,15). 그런데 아사랴의 경우는 이스라엘의 풍습 뿐만 아니라 그 병의 정도가 아주 심하여 그가 왕임에도 불구하고 따로 격리 수용될 수 밖에 없었던 것 같다. 한편 '별궁'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베트 하하프쉬트'에 관하여 학자들은 매우 다양하게 해석한다(W.Rudolph, Zeitschrift fiur die alttestamentliche Wissenschaft, p.418). 이에 대한 몇가지 해석을 살펴보면, (1)어떤 신분상의 '욕된 상태'를 의미한다는 것과, (2)'장소적으로 어떤 격리된 상태'를 의미한다는 견해가 있다. 그런데 이렇게 해석을 달리하게된 이유는 히브리어 '하프쉬트'의 해석 때문이다. 즉 이 단어는 (1)'신분적 예속이나 책무 등으로부터의 자유'(출21:2,5,26,27; 신15:12,13,18; 삼상17:25)라는 뜻과, (2)'공간적인 분리'(KJV, RSV, NIV)라는 뜻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아로니(Aharoni, Biblical Archaeologist, p.116-117)는 아사랴 왕이 예루살렘에서 약5km정도 떨어진 라맛 라헬(Ramat Rachel)에 있는 굴 속에서 살았다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견해를 긍정적으로 볼 때 '별궁'의 의미는 (1)과 (2) 둘 다 동시에 수용될 수 있을 것 같다. 왜냐하면 당시의 문둥병자들은 성 밖에 따로 모여 살았기 때문이다(레13:46). 그리고 왕이 격리된 상황 내면에는 왕에 대한 '욕된 의미'가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왕의 신분이었기 때문에 성 밖으로 추방되지 않고 그를 위한 특별한 장소가 마련되었을 것이다(B hr). 한편 아사랴의 이런 저주의 삶은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어 죄 가운데서 고독하게 사는 인생들에게도 적용된다. 왕으로서의 영광스러운 지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무서운 저주 가운데서 살았던 아사랴와 같은 인생은 아무리 물질적으로 풍요하고 육체적으로 안락하다 할지라도 그의 영혼은 이미 죽은 상태에 있는 것이다(롬2:9). 왜냐하면 죄 그 자체가 하나님과의 교제를 단절시키기 때문이다(눅16:19-31).
요담이 궁중 일을 다스리며. - 섭정 왕 요담은 명목상으로 왕의 역할을 담당했던 것이 아니라 실제로 국사(國事) 전반을 다스렸을 것이다. 그리고 요담은 이때 섭정을 시작해서 웃시야(아사랴)가 죽은 후에도 계속해서 왕으로서의 역할을 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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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하15:6]
모든 행한 일. - 앗수르 왕 다글랏 빌레셀의 원정 기사에 보면 그의 통치 3년(B.C.743년, 혹은 742년)에 앗수르 군주가 '야우다아사랴우(Azaryau of Iauda)'로부터 공물을 받았다고 기록되어 있다(Luckenbill). 어떤 학자들은 여기에 나타난 이 인물을 아사랴 왕과 동일인으로 생각한다(Montgomery), 그러나 성경에서는 유다 왕이 그의 오랜통치 기간 동안에 앗수르의 속국으로서의 예를 행했다는 기록을 전혀 찾을 수 없다. 그리고 아사랴가 원정을 갔던 곳은 앗수르와 접한 북쪽을 제외한 유다의 남서방향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사실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대하26:6-15). 더욱이 오늘날 아사랴우가 북쪽 아랍에 있는 야유다(Iauda)의 아사랴유로 받아들여지고 있어 공물을 바친 인물이 아사랴가 아님을 더욱 확증해 준다(Herrmann, History, p.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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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하15:7]
그 열조와 함께 장사되고. - 이사야서는 웃시야 왕이 죽던 해를 선지자 이사야가 부름 받은 해와 일치시켜 기록하고 있다(사6:1). 한편 역대기 기자는 본절의 언급보다도 훨씬 더 구체적으로 웃시야가 '열왕의 묘실에 접한 땅 곧 그 열조의 곁'에 장사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어(대하26:23) 그가 문둥병에 걸린 채로 죽었음을 나타내 준다. 즉 그는 문둥병자였기 때문에 열조들의 무덤에 묻히지 못하고 열조들의 무덤곁에 묻힌 것이다. 또한 요세푸스(Josephus)도 아사랴가 단순히 자신의 땅에 홀로 묻혔다고 기록하고 있어 이를 뒷받침해 준다. 따라서 역대서의 기록과 본절의 기록은 모순되는 것 처럼 보인다. 그러나 제 2성전에 있는 아람어 비문을 보면 아사랴(웃시야) 왕의 뼈들을 후에 왕의 묘실로 이장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어 두 기록의 모순점을 해결해 준다(Y.Yadin, Jerusalem Revealed).
요담이...왕이 되니라. - 여기서 사용된 동사 '이믈로크'는 5절에서 '다스리며...치리하였더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쇼페트'와는 분명히 다르다. 왜냐하면 이는 히브리어 '마라크'에서 온 말인데 그 의미는 '다스리다', '보좌에 오르다', '참으로 왕이 되다'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5절에서는요담의 섭정을 지칭하는 것임에 반해 본절에서는 그가 실제적인 왕이 되었음을 가리키는 것이다. 한편 본서의 연대기 문제를 해결할 때는 이러한 동사의 사용에 주의해야할 것이다(Hobbs, Word Biblical Commentary, Vol. 13, p.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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