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열왕기하(구속사)

열왕기하21장,이방 사람의 가증한 일을 본받아

호리홀리 2015. 9. 8. 11:30

 므낫세 (Manasseh)가 왕이 될 때에 나이가 12세였다. 따라서 므낫세는 히스기야가 15년간의 생명을 연장받게 된 때로부터 제3년째에 태어난 셈이다(20:6).

 

 오십 오 년을 치리하니라. - 본절에 기록된 므낫세의 통치 연수(B.C 697-642)는 연대기 계산에 큰 어려움을 가져온다. 왜냐하면 므낫세부터 예루살렘 멸망(B.C.586)까지 유다왕들의 총 통치 연수는 대략 1106개월인바 B.C. 697년부터 계산할 경우 약 20년정도가 더 초과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딜리(Thiele)는 므낫세와 그의 부친 히스기야간에 공동 통치(섭정)가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의 그러한 섭정 이론은 매우 설득력이 있기 때문에 많은 주석가들이 그의 주장을 따르고 있다(Leon Wood, Hobbs).

 

 그 모친의 이름은 헵시바더라. - '헵시바'(Hephzibah)라는 이름의 뜻은 '나는 그녀안에서 기쁨을 누린다' 또는 '나의 기쁨은 그녀에게 있다'이다. 그러나 그녀의 행적에 대하여선 성경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다만 유대 전승에 따르면, 그녀는 선지자가 이사야의 딸이라고도 하나 분명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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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하21:2]

 이방 사람의 가증한 일을 본받아서. -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직전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가나안 족속들의 석상과 우상 그리고 산당을 모두 훼파하라고 명령하셨다(7:5). 그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이 우상숭배를 본받게 될 것을 염려하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상 숭배했던 왕에 대해서 엄한 징계를 내리셨다(왕상 13:34;21:17-26). 그럼에도 불구하고 므낫세는 아하스와 같이(16:3) 이방인들의 각종 우상을 섬겼다(4-9).이러한 므낫세의 행위는 통치자가 마땅히 지녀야 할 역사 의식과 주체 의식이 없었음을 증거한다. 따라서 위기에 처한 백성들에게 비젼(Vision)을 제시해 줄 목자가 없었던 유다는, 결국 바벨론의 침략에 맥없이 무너져 버리고 고통을 겪게 되었던 것이다. 이에 관해서는 평행기사인 대하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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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하21:3]

 산당을 다시 세우며 - 이처럼 므낫세가 과거 히스기야에 의해 척결되었던 산당을 다시 세우므로써 히스기야가 이루어놓은 종교개혁은 수포로 돌아가게 되었다(18:4). 그리고 예루살렘 중앙 성전으로 집중된 유다 백성들의 마음도 모두 뿔뿔이 흩어져버리게 되었다. 한편 카일(Keil)은 당시 므낫세가 그토록 부패한 정책을 편 것은 여호와를 의지하지 않고 애굽을 의지하여 앗수르를 물리치자고 주장했던 히스기야 때의 거짓선지자들과 다른 불신앙의 세력들이(28:7, 14;30:9) 어리고 경험없는 므낫세의 배후에서 그에게 우상 숭배를 하도록 부추켰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외에도 막강한 통치력을 가졌던 히스기야와 당대의 신앙의 거성(巨星)이었던 선지자 이사야의 죽음이 백성들 사이에 신앙의 큰 공백을 만들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바알을 위하여 단을 쌓으며 - 유다에서 바알(Baal)을 숭배한 것은 아달랴 이후로(11) 아하스(대하 28:2)에 이어 므낫세가 세 번째이다. 그러나 므낫세는 실제로 아하스보다 더 공개적으로 바알 숭배를 허용한 듯하다. 왜냐하면 역대기 기자와는 달리 본서기자는 아하스가 바알 숭배했다는 사실을 기록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16:3,4). 한편 본서 기자는 므낫세의 이러한 행위를 가리켜 '아합의 소위를' 본받은 것이라고 말한다(왕상 16:31-34). 그런데 본장에 의거할 때 므낫세는 오히려 아합보다 더 극심하게 바알 및 이방신들을 숭배했음이 분명하다.

 

 일월 성신(日月 星辰)을 숭배하여 - 북왕국에서는 이러한 천체(天體) 숭배가 널리 시행된 것으로 보인다(17:16). 아마 그것은아합 때부터 시행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유다에서 일윌 성신 숭배가 처음 소개된 것은 아하스 때이며(23:12)므낫세 때에 비로서 널리 유행되었던 것 같다. 한편 습 1:5과 렘 8:2 에세도 이러한 일윌 성신(日月星辰)숭배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데 모세 율법은 일찍부터 이러한 일들을 분명히 금하였다(4:19;17:2-7). 

 

 [왕하21:4]

 여호와의 전의 단들을 쌓고 - 이것은 여호와의 전에 바알의 단들을 세운 것을 가리킨다. 이러한 행위는 여호와의 주권적인 권위에 대한 도전이며 하나님의 백성들은 배타적으로 오직 여호와만을 섬겨야 한다는 사실(5:7)에대한 반항이라고도 볼 수 있다.

 

 [왕하21:5]

 여호와의 전 두 마당에 - 왕상 6:36에 따르면 성전에는 안뜰 하나만 있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반면에 겔 40:17-19에는 안뜰과 바깥뜰 둘 다 언급되어 있다. 그런데 스미스 (Smith)의 성전에 관한 설명에 따르면 당시 성전에는 여인의 뜰, 남자의 뜰, 제사장의 뜰이 있었으며 신약 시대의 헤롯 성전에도 이세 뜰이 모두 갖추어져 있었다고 한다. 따라서 여기서 두 마당이라고 한 것은 성전의 이 세 뜰 가운데 두 마당을 가리키는 것 같다(Hob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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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하21:6]

 그 아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며 - 이는 곧 몰록(Moloch)과 관계된 인신 제사(人身祭祀) 행위를 가리킨다. 이에 관해서는 16:3의 주석을 참조. 한편 모세 율법은 이와 같은 제의(祭儀)에 관해서도(18:10) 분명히 "여호와께서 이런 일을 용납지 아니하시느니라"(18:14)고 금기의 말씀으로 못박고 있다.

 

 점치며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오넨''구름이 끼게 하다'라는 뜻의 '아난'에서 변형된 것으로서 본래는 천체의 어떤 변화들을 가리킨다(9:14). 그러나 여기서는 그러한 천체의 변를 보고선 길일(吉日)과 흉일(凶日)을 판단하는 행위를 가리킨다(Rawlinson).

 

 사술을 행하며 - 여기서 사술(邪術)이란 각양 각색의 마술 뿐 아니라 사람을 미혹시키는 모든 미신적 행위를 다 일컫는 말이다. 17:17 주석 참조.

 

 신접한 자와 박수를 신임하여 - 먼저 '신접자'란 접신술(接神術)을 하는 사람, 곧 죽은 자와 교통한다는 자를 가리킨다. 그리고 '박수' 란 남자 무당을 가리킨다. 모세 율법은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서 이러한 자들을 용납치 말라고 하였다(18:11-14). 그런데도 므낫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저들을 가까이 한 것이다.

 

 [왕하21:7]

아세라 목상 - 우가릿(Ugarit) 문서에 따르면 아세라(Asherah)는 바다의 여신이며 엘(El)신의 배우자로 언급되어 있다. 그리고 이 여신은 바알을 포함한 몇몇 다른 신을 낳은 신으로 묘사되었는데 성경에는 종종 바알과 함께 언급되었다(3:7;6:26-30);왕상 18:19). 또한 아세라는 분향 제단(17:8),(17:2) 산당(대하 17:6), 다른 우상 (대하 34:3)과도 관련되어 언급되었다. 한편 아세라는 '통나무''기둥', 그리고 조각된 상()을 의미하기도 하므로 각 번역본들에서는 다양하게 번역되었다(34:13;7:5;12:3;17:817:2;5:14 ).

 

이 전과 예루살렘에 내 이름을 영윈히 둘지라 - 솔로몬이나 다른 열왕들이 우상 숭배에 빠졌을 때에도 예루살렘 성전 안에까지 우상을 들여오는 일은 없었다. 단지 그들은 예루살렘 앞 맞은편 언덕에 그 우상들을 세우곤 했다(왕상11:7). 그러나 므낫세와 그의 조부 아하스(16:11-14)는 하나님의 이름을 둔 성전(4)에까지 우상을 들여와 섬기는 불경을 범했다. 한편 이처럼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함에도 불구하고 성경에선 므낫세에 대해 어떠한 징벌이 가해졌다는 기록은 볼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에 의한 것이었을 뿐(3:1-6) 므낫세의 행위는 궁극적으로 심판 날에 임할 하나님의 진노를 쌓는 짓이었다(2:4,5). 그러므로 후에 므낫세가 쇠사슬에 결박되어 바벨론으로 끌려가는 징계를 받은 것도 이러한 죄의 축적에 의한 결과로 볼 수있다(대하 3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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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하21:8]

 그 열조에게 준 땅에서 떠나 유리하지 않게 하리라 - 이것은 삼하7:10에 기록된 약속의 말씀이다. 그러나 본절의 전반부에 기록된 '모세의 명한 모든 율법을 지켜 행하면' 이라는 조건문은 이 약속이 율법에의 순종에 근거해 있음을 보여 준다(3:20;12:10;21:44). 이와같이 하나님의 약속은 언제나 하나님의 언약이나 계명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먼저 그 같은 언약이나 계명을 저버릴 경우에는 하나님의 약속 또한 파기(破棄)되곤 하였던 것이다(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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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하21:9]

 므낫세의 꾀임을 받고 - 여기서 '꾀임을 받고'에 해당되는 히브리어'이트엠''방황하다', '길을 잘못 가다'라는 뜻의 동사 '타아'의 히필형(Hihpil:사역형 능동)이다. 이는 곧 '므낫세가 길을 잘못 가도록 만들었다'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 이것은 므낫세가 우상 숭배의 주동자가 되어 백성들에게 우상숭배의 죄악을 강요하였음을 가리키는 말이다(11).

 

 열방보다 더욱 심하였더라 - 이스라엘 백성들의 사악한 행위를 그들 앞에서 멸망당한 열방들의 행위와 비교하는 이러한 어법은 선지자들의 예언 속에도 자주 나타난다. 즉 선지자들은 흔히 이스라엘의 행위를 '신 아닌 것'을 섬기는 자들의 행위보다 더악하다고 표현하고 있다(9:7; 2:9-13). 또 예수께서도 이와 비슷한 방법으로 고라신과 벳새다 백성들을 책망하신 적이 있다(11:21). 아무튼 본장에서 므낫세의 행위는 그의 부친 히스기야의 행위와 완전히 정반대로 나타난다. 따라서 히스기야를 다윗에 비긴다면(18:3)므낫세는 아합에 비길 수 있을 것이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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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하21:10]

 그 종 모든 선지자들 - 므낫세의 통치 기간(B.C. 697-642) 동안에 어떤 선지자가 활동했는지 전혀 알려진 바가 없다(Hobbs).이사야와 선지자 미가는 히스기야가 죽기 이전에 예언 활동을 멈추었다. 그리고 예레미야와 스바냐의 사역은 요시야(Josiah,B.C. 640-609)왕 때에 시작되었다. 따라서 므낫세의 통치 기간 55년 동안에 성경상으로 알려진 선지자들은 아무도 없는 셈이 된다. 그러나 본절부터 15절에 기록된 말씀들을 볼 때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방법으로 또는 익명의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하여 계속해서 선포되었음이 분명하다(대하 33:10). 그리고 그러한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므낫세의 행적에 대한 평가가 전승(傳承)되었음에도 분명하다. 15:1-4에 기록된 말씀은 바로 그러한 점을 입증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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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하21:11]

12,13은 예레미야서와 다른 성경에도 나타난다(19:3;2:8;7:8). 하지만 그 말씀들은 서로 다른 배경에서 선포된 것이다. 따라서 여기서 주어진 말씀들은 선지자적 전통에 따른 신명기적 요약의 말씀으로 이해하여야 할 것이다.

 

 아모리 사람 - '아모리 사람'(Amorites)은 일반적으로 가나안 족속들을 가리킨다(15:16;7:1;3:5). 그러나 선지자들에 의해 이러한 표현이 사용된 적은 흔치 않다. 아무튼 '아모리 사람' 은 가나안의 일곱 족속들 가운데 헷 족속(Hittites)에 버금가는 중요한 민족으로서 우상 숭배 때문에 하나님에 의해 가나안 땅에서 쫓겨난 대표적인 족속이다

 

 [왕하21:12]

 재앙을 내리리니 - 여기서 '내리리니'에 해당되는 동사 '메비'는 주로임박한 미래의 일을 가리키는 단어이다(22:16;왕상 14:10). 예루살렘 멸망(B.C. 586)은 므낫세 사후 (B.C. 642년경) 60년 후의 일인데도 불구하고 이 같은 단어가 사용된 것은 아마 하나님의 심판의 엄정성(嚴正性)을 강조하기 위함인 듯하다.

? 듣는 자마다 두 귀가 울리리라 - 이러한 표현은 삼상 3:11과 렘 19:3 에서도 나타난다.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이 지금까지 들어본 일이 없는 무서운 심판이 될것이며 그러한 심판의 소식을 들을 때 공포와 전율로 인해 귀가 멍멍할 정도가 될 것이라는 뜻이다(B hr, Keil, Smith).

 

 [왕하21:13]

 사마리아를 잰 줄과 아합의 집을 다림보던 추로 - 여기서 ''(, 카우)은 건축할 때 땅을 측량하는 도구를 가리킨다(1:16). 이 줄이 쳐진 지역은 새로운 건축을 위하여 땅을 파고 기존한 낡은 건물들을 제거하여 기초를 새로 놓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이러한 줄은 실상 하나님의 율법과 교훈을 뜻하는 비유적 표현이다. 다음으로 '', 미쉬콜레트)는 수평의 여부를 재는 도구이다. 건축자들은 이 추로 재어본 후 수평이 되지 않는 지역을 평평하게 하기 위하여 땅을 파거나 고르곤 한다. 따라서 여기서 줄과 추는 모두 인간의 행위를 계량(計量)하는 표준인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함을 알 수 있다. 한편 이사야 선지자는 본절과 유사하게 하나님의 예루살렘을 심판하실 때 공평으로 줄을 삼고 의로 추를 삼을 것이라고 했다(28:17). 그런데 사34:11에 기록된 '혼란의 줄과 공허의 추'는 법()이 없고 의()가 없는 혼란한 상태를 가리키는 비유적 표현이다.

 

 예루살렘에 베풀고 - 하나님께서 과거 사마리아와 아합을 재었던 것과 같은 동일한 표준으로써 예루살렘을 계량하실 터이니 결국 예루살렘 역시 사마리아처럼 멸망하고 말 것이라는 뜻이다.

 

 그릇을 씻어 엎음같이 - 이것은 그릇에 담긴 음식물을 비위 버리고 깨끗이 씻어 엎어 놓은 뒤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것을 가리킨다(B hr). 이는 곧 하나님께서 예루살렘과 그곳에 거하는 백성들을 완전히 멸해 버릴 것을 의미한다. 한편 영어의 격언에도 이와 유사하게 '슬레이트를 깨끗이 씻어 버리다'(wiping the slate clean)라는 표현 있는데 이것은 자신의 의무와 책임을 청산해 버리고 이제까지의 인연을 끊어버리는 것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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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하21:14]

 내가 나의 기업에서 남은 자를 버려 - 본절은 13절에서 언급한 "그릇을 씻어 엎음같이" 라는 표현에 대한 설명임과 동시에 유다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을 다시금 강조하는 말로 볼 수 있다. 한편 여기서 '남은 자'는 멸망되어 앗수르의 포로로 끌려간 북왕국 10지파(17)에 대하여 아직 남아 있는 유다 백성을 가리킨다. 앞서 히스기야의 기도로 인해 유다의 구윈이 여호와로부터 보장되었다(19:20-34). 그러나 이제 므낫세와 그에게 미혹된 백성들의 죄악(9)으로 인해 유다는 다시금 하나님께로부터 버림받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국가적 운명과는 상관없이 끝까지 여호와 신앙 가운데 거하는 개인 존재로서의 '남은 자'는 구윈받았음이 분명하다. 19:30 주석 참조.

 

 그 대적의 손에 붙인즉 - 이러한 표현들은 사사기에서 자주 쓰였다(1:2;2:14;6:1;13:1). 그러나 여기서는 그때와 같이 되풀이 될 어떤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종국적인 심판을 나타낸다. 즉 이는 이제 여호와와 그의 백성간에 맺어진 특별한 언약 관계(19:5, 6)가 깨어지게 됨을 가리킨다. 그래서 그 결과 여호와의 소유이던 유다가 대적들의 노략물이 되게된 것이다(2: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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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하21:15]

 애굽에서 나온 그 열조 때부터 오늘까지 - 몰론 출애굽 시대부터 므낫세 시대까지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이 계속적으로 범죄했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과장된 표현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렘 2:1-8에서 보듯이 어떤 면에서 이스라엘의 광야 생활은 여호와와그의 백성 간의 결혼 생활로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본절은 열왕기 기자가 평가한 이스라엘의 죄의 역사 또는 타락의 역사이다. 즉 시 106편에 기록된바와 같이 이스라엘의 역사는 죄와 타락의 역사로 묘사될 수도 있고, 또 시 105편에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은혜와 언약의 역사로 묘사될 수도 있는 것이다. 한편 행7:39-43에 기록된 이스라엘의 죄의 역사는 본서 기자와 유사한 스데반의 사관(史觀)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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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하21:16]

본절에서는 므낫세가 행한 우상 숭배 이외에 그가 범한 또 다른 죄악들에 관해서 언급되고 있다.

 유다로 범하게 한 그 죄 - 므낫세가 유다의 백성들로 하여금 각종 우상들을 섬기게 한 죄악을 가리킨다. 9절 주석 참조.

 

 무죄한 자의 피를 심히 많이 흘려 - 이러한 표현은 완전히 신명기적이다(19:10, 13;22:8;27:25; 삼상 19:5; 7:6;19:4;22:3, 17;26:15). 한편 유대인의 전승에 의하면 므낫세는 당시 선지자들의 입을 봉하기 위하여 선지자들을 핍박하고 매일 그들 중 몇 사람을 살해하였다고 한다.(Ginzberg, Josephus).그리고 선지자 이사야도 이때 톱에 켜이어 순교를 당했다고 한다(Matthew Henry, Keil, Rawlinson)>. 한편 율법에서 '무죄한 자'라는 것은 죽음의 심판에 해당되지 않는 자, 즉 사면(赦免)을 받을 수 있는 자를 가리키며 이런 사람들은 보호해 주도록 되어 있다(19:10). 따라서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린 자'는 곧 살인자인 것이다(H.Christ). 그런데도 므낫세는 하나님의 법을 무시한 채 자신의 정책에 대하여 비판한다고 하여 신실한 자들과 선지자들의 무고한 피를 흘렸던 것이다.

 

 이 가에서 저 가까지 - 즉 다시 말하면 예루살렘의 한쪽 문에서 그 반대편 문까지라는 뜻이다. 이처럼 지금까지 예루살렘은 공평의 도시였으나 이제 므낫세 시대에 이르러서는 포학한 도시로 변했고, 의로운 도시였으나 부르짖음이 가득한 도시로 변하고 말았다(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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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하21:17]

 므낫세의 남은 사적 - 평행 구절인 대하 33:14에 따르면 므낫세의 다른 사적(事績)으로는 예루살렘 성읍을 요새한 일과 유다의 여러 성읍에 수비대를 두어 국방을 강화한 일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밖에도 특기(特記)할 일로는 그가 하나님 앞에 회개하여 구원을 얻은 사건(대하 33 :

10-13)이 있다. 그런데도 본서에서는 이처럼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 생략되어 있는 까닭은 아마 기록 목적상의 차이 때문일 것이다. 즉 유다 왕국 역사의 긍정적 측면을 부각시키려는 역대기 기자와는 달리 본서 기자는분명 므낫세가 전임자인 히스기야와 완전히 상반된 인물임을 강조하려 하였을 것이다(3).

 

 범한 죄 - 므낫세는 하나님 보시기에 극악한 죄를 범하므로써 유다와 예루살렘이 멸망하는 결과를 초래했다(23:26, 27; 24:3, 4). 물론 므낫세 자신은 비록 회개하여 구원받았을지라도 그의 죄악으로 인해 유다 왕국 전체가 멸망받게 되었다는 사실은 죄의 결과가 얼마나 두려운 것인가를 일깨워 준다(5 :12, 19). 한편 역대기에 따르면 므낫세는 앗수르에 의해 바벨론으로 잡혀 갔다가 하나님께 회개하므로 구원받았음을 알 수 있다(대하 33:10-13). 그런데 앗수르가 므낫세를 자기 나라로 끌고 가지 아니 하고 바벨론으로 끌고 갔던 것은 당시 앗수르가 흔히 쓰던 정책이기도 하거니와(McKay) 본국이 반란자(사마스 숨 우킨, Shamash-shum-ukin)에 의해 소란스러웠기때문이다(Bright). 그리고 당시에 바벨론은 여전히 앗수로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Josephus).

 

[왕하21:18]

 웃사의 동산 - '웃사'(Uzza)는 유대인 중에 매우 흔한 이름이다(삼하 6:8; 대상8:7; 2:49; 7:51). 그러므로 정확히 누구를 지칭하는지 알 수 없다. 다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웃사의 동산'을 웃사가 만든 동산으로 알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최근의 어떤 학자들(Gray, McKay)은 이것을 므낫세가 가나안의 성신(星神)인 아타르멜렉(Attarmelek)을 기념하기 위하여 지은 동산이라는 새로운 견해를 내놓고 있다. 그러나 만일 이 견해가 옳다면 요시야가 종교 개혁할 때(23) 이 동산을 제거했다는 언급이 분명히 나올법한데 그러한 기록은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 한편 이 동산의 위치에 대해서도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다. 혹자는 다윗 성이 있는 언덕(Ophel) 남쪽 끝에 있었다고도 하며 (Hobbs, Thenius) 또 시온 산 위에 있었다고도 한다(Robinson). 그리고 카일(Keil) 같은 학자는 그 동안이 므낫세가 거하던 별궁 안에 있었다고도 한다.

 

 그 아들 아몬 - 유대인의 이름 가운데 이러한 형태의 이름은 흔치 않다(2 :57; 7:59). 여기서 '아몬''귀여운 것',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뜻을 가지기도 하나 애굽의 우상의 명칭이기도 하다(46:25). 그리고 이 이름은 왕상 22:26에서 사마리아의 한 통치자의 이름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따라서 므낫세는 사랑하는 자기 아들의 이름을 우상의 이름에서 본 따지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Rawlinson). 한편 므낫세에 이어 유다 제 15대 왕으로 등극한 아몬(Amon, B.C.642-640) 역시 그 아비를 본받아 악정(惡政)을 일삼은 것으로 나타난다(20-22). 이는 곧 아비의 영향이 자식에게까지 미친 일례에 다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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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하21:19]

 예루살렘에서 이 년을 치리하니라 - 흑자는 아몬이 2년이 아닌 12년을 통치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Ebrard).그러나 만일 그렇다면 1절의 주석에서 이미 설명한 바대로 예루살렘 멸망 연대가 10년 이상미루어져 B.C. 586년 에서 B.C. 576으로 수정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하지만 예루살렘 멸망 연대는 역사가 증거하는 부동(不動)의 사실이기 때문에 아몬의 12년 통치설은 불가능하다(Thenius).

 

 그 모친의 이름은 므술레멧이라 - 여기서 '므술레멧''보상하다'라는 뜻의 동사 '솰람'에서 파생된 '솔로몬'(,쉘로모)의 여성형이다. 히브리 이름 가운데 이와 동일한 어근에서 파생된 이름에는 살롬(15:10), 므술람(22: 3), 압살롬(삼하 3:3), 솔로몬(삼하 12:24) 등이 있다. 그러나 므술레멧(Meshulle-meth)에 관해 달리 알 수 있는 바는 없다.

 욧바 하루스의 딸이더라 - 하루스(, 하루츠)라는 이름은 ''(gold)을 가리키는 시적 표현이다(68:13의 히브리 원문 참조). 이와 유사한 이름이 시내 산에서 발견된 아라비아어 비문에도 나타나는바 따라서 아몬의 모친 므술레멧은 남방계 사람인 것으로 추측된다(Hobbs). 한편 이처럼 하루스라는 이름에서 므술레멧이 남방계 출신임을 추측할 수 있긴 하지만 욧바(Jotbah)라는 지명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혹자는 홍해 부근, 엘랏(Elath)의 북쪽 약 30km 지점에 위치한 것으로 생각하나 그것도 추측일 뿐이다. 그리고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갈릴리 건너편에 있는 요데파트(Yodefat)로도 알려지고 있는데(Grid) 그렇다면 이것은 아몬왕이 비유다계의 영향을 받았음을 암시해 준다고 할 수 있다(Hobbs). 그리고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므낫세가 아합과 밀접한 연관이 있었으며 아몬도 마찬가지라는 결론이 나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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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하21:20,21]

 그 부친 므낫세의 행함같이...행하여 - 본절에 아몬의 행적이 간략하게 묘사되어 있다. 그의 통치 방법은 그의 아버지 므낫세를 그대로 본딴 것이었다. 아몬의 뒤를 이어 왕이 된 요시야가 행한 종교 개혁을 보면 당시 아몬이 얼마나 우상 숭배에 광분(狂奔)했었던가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23:4-24). 한편 이러한 사실은 앞서 므낫세가 회개했던 것(대하 33:11-13)이 결국은 그 아들에게 아무런 영향을 끼칠 수 없는 것이었음을 암시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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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하21:22]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 - 비록 선왕(先王) 아하스 역시 우상 숭배에 몰두했긴 하나 그 여호와께 대한 예배를 전적으로 폐하지는 않았다(16:10-15). 그러나 므낫세와 아몬의 경우에는 이처럼 거의 완전히 여호와에게서 돌아섰으니 그 패역함과 완악함의 정도를 충분히 알 수 있다. 한편 습 1:1- 12을 보면 아몬의 죄악상을 보다 자세히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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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하21:23]

 반역하여 왕을 궁중에서 죽이매 - 성경에서는 아몬의 신복들이 아몬 왕을 반역한 이유에 대해서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말라마트(A. Malamat)는 이 시해(試害) 사건이 애굽의 충동에 의해 발생한 것이라고 한다. 물론 본절에서는 아몬이 우상숭배 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으로 죽은 것을 암시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와같은 정치적인 이유도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즉 말라마트에 의하면 아몬은 친 앗수르 정책을 폈기 때문에 애굽의 사주를 받아 시행된 것이라고 한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아몬 역시 그의 부친 므낫세처럼 무죄한 자의 피를 많이 흘린 탓에(16) 보복의 죽음을 당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Hob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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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하21:24]

 그 국민이...왕을 삼았더라 - 여기서 '그 국민'이란 사회적으로 부유하고 세도가 있는 특권층이 아니라 다윗 왕조의 회복을 갈망 하는 모든 유다 백성을 지칭한다. 이백성들은 외세의 영향을 빌어 정권을 잡으려는 반역배(反逆輩)들을(23) 죽이고 8세밖에 안된 요시야(22:1)를 왕위에 앉혔다. 이러한 사실은 유다 백성들이 비록 우상숭배로 하나님 앞에 심히 패역했지만 그래도 다윗 왕조의 정통성에 대한 역사 의식을 뚜렷이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즉 이러한 역사 의식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부친의 영향을 비교적 적게 받았을 8세의 요시야를 왕으로 세움으로써 배교적(背敎的)인 부친의 유물들을 모두 배격하고 의로운 왕이 될 것을 바랐던 것이다 요시야는 하나님 앞에서 가장 칭찬받는 왕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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