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열왕기하(구속사)

열왕기하23장,요시야의 종교 개혁

호리홀리 2015. 9. 9. 10:14

 언약책의 모든 말씀을 읽어 - 22:8에서는 '언약책''율법책'으로 나와 있다.

언약책은 분명히 신명기이다. '언약'(, 베리트)'율법'(, 토라)은 신명에서 서로 밀접하게 연관 되는 단어이긴 하지만 동일한 의미는 아니다. 그런데 본절에서 저자가 역대기 저자와 마찬가지로(대하 34:30) '언약책' 이란 용어를 사용한 것은

 1.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맺었던 '언약'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2. 동시에 이제 그 언약을 재확립하려는 상황을 설명하기 위함이다(24:7).

) -->앗수르와 바벨론의 압박속에 있을 때 신명기를 읽어내려 갈 적에 듣는이들이 얼마나 두렵고 떨렸겠는가?

신명기27장을 읽을 때 당시의 백성들 같이 아멘으로 화답했을 것이다. 

  여호와 앞에서 언약을 세우되 24:7을 보면 모세가 "언약서를 가져 백성들에게 낭독하여 들리매 그들이 가로되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본절에 기록된 상황과 매우 유사한 언약체결식이다.

 

 마음을 다하고...율례를 지켜 - 이는 신명기가 가르치고 있는 근본 교훈이다. , 쉐마 본문(6:4-9)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마음과 힘과 성품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의 계명을 지킬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곧 하나님께 대한 인간의 전적인 헌신과 사랑을 의미하는 바 율법의 제일가는 계명이다(22:37, 38). 때문에 요시야도 백성들 앞에서 무엇보다 이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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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하23:4]

 버금 제사장 - 혹자는 이를 스바냐와 같은 부제사장(25:18)을 가리킨다고 한다(Ho-bbs). 그리고 랍비들은 이를 대제사장의 대리들을 뜻한다고 했다. 그러나 여기서 '버금 제사장' 이란 대제사장과 구별되는  일반 제사장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Keil, B hr).

 

 문을 지킨 자들 - 이들은 곧 성전 바깥 문을 지키고 보호하는 임무를 맡았던 레위인들(22:4;대상 23:5)이다. 레위인들은 각자 맡은 일에 따라 하나님께 봉사하였는데도 곧 사무관, 유사, 재판관, 문지기, 찬양 대원 등으로서였다(대상 23:4, 5).

 

 바알과 아세라 - 유다가 앗수르의 지배를 받을 당시, 즉 므낫세와 아몬의 시대(B.C. 697-640)에는 바알과 아세라 숭배를 포함한 온갖 가나안 우상들이 범람했다(21 :1-7, 21). 그러나 요시야 시대에 이르러 앗수르의 영향력이 쇠퇴하자 이제 요시야는 유다의 자주성(自主性)을 회복하기 위해서도 그같은 이방의 우상을 척결하고 있는 것이다. 22:3 주석 참조.

 

 하늘의 일월 성신 21:1-18의 강해 '자연신론의 제형태'를 참조하라. 고대 애굽인들이나 가나안족 등은 해와 달, 별들을 우주에 거하는 여러 신들의 분신(分身)으로 보고 숭배하였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그것들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물체에 불과하는바 성경은 그것들에 대한 숭배 해위를 언급하고 있다(4:19).

 

 바깥 기드론 밭에서 불사르고 - 기드론(Kidron)은 다윗 성 동쪽에 있는 계곡이다. 길이는 약 5km로서 예루살렘 성벽과 감람 산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이 기드론 계곡은 예루살렘 성보다 낮은 곳에 위치해 있었으니 우상 숭배에 쓰인 모든 기명들을 끌어내어 불태위 버리기에 적절한 곳이었을 것이다. 아사왕도 바로 이 기드론 골짝기에 있는 시냇가에서 우상을 불태운 적이 있다(왕상 15:13).

 

 그 재를 벧엘로 가져 가게 하고 - 벧엘(Bethel)은 북이스라엘이 왕국 분열 시대부터 금송아지를 세웠던 우상 숭배의 본거지이다(왕상 12:27-33). 요시야가 파괴하여 불사른 우상의 재를 이 벧엘로 가져가게 한 것은 아마 이로써 북이스라엘 멸망의 원인이 되었던 우상 숭배를 영원히 종식시키고자 하는 상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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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상을 섬기게 한 제사장들을 폐하며 - 여기서 '제사장들'에 해당되는 히브리어 '케마림'은 특별히 우상을 숭배하는 제사장을 가리키기 위해 사용된 단어이다. 이러한 용례는 호 10:5과 습 1:4에도 나타난다. 그러나 이것은 반듯시 바알의 제사장이나 선지자들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여기서는 므낫세와 같은 유다왕들에 의해 산당의 제단에서 분향하도록 임명된 제사장들을 가리킨다. 한편 성경에서 여호와의 참된 제사장을 가리키는 단어는 대개 '코헨'이다(8;왕상 2:27;14:18;19:22;1:5;18:3).

 

 열 두 궁성 - 여기거 '궁성', 마잘로트)의 문자적인 의미는 '저택들', '머무는 장소들'이다. 아람(수리아)에서 이는 하늘의 12성좌(星座)를 가리키나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천체들이 차지하고 있는 하늘의 전영역을 가리킨다(B hr).

 

 여호와의 전에서 아세라 상을 내어 - 므낫세는 하나님께 회개한 후 자신이 여호와의 전에 세웠던 아세라 목상(21:3, 7)을 제거했었다(대하 33:15). 그러나 그 후그의 아들 아몬에 의해 다시 아세라 목상이 세워졌다(대하 33:22). 이제 요시야는 바로 그 우상을 다시금 작파(作破)하고 있는 것이다.

 

 불사르고 빻아서 가루를 만들어 - 이로 보아 아세라(Asherah) ()은 나무로 만든 후 그 위에 도금(鍍金)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이와같이 우상을 부수어 가루로 만드는 행위는 출 32:20에서 모세가 금송아지를 없앨 때 사용했던 방법이다. 그리고 아사 왕도 태후 마아가의 우상을 이와 동일한 방법으로 제거했었다(왕상 15 :13).

 

 평민의 묘지에 뿌리고 - 히브리인들의 무덤은 일반적으로 천연동굴 또는 연한 암석이나 산허리를 깎아서 만든 동굴이다(23:19, 20;27:60;11:38). 그러나 그러한 굴을 마련하지 못한 하층민들은 그냥 땅을 파서 사체를 매장하기도 하였다. 23:3-20 강해, '매장과 화장' 참조. 한편 고대로부터 기드론 골짜기(4)에는 히브리인들의 공동 묘지가 있었는데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 그러한 묘지는 보통 부정한 곳으로 간주되었다(19:16). 그러므로 요시야가 이곳에 우상의 가루를 뿌렸다는 것은 곧 우상이 부정한 것임을 의미한다. 더군다나 요시야는 이와같이 부정한 것을 무덤에 없애버림으로써 다시는 백성들 가운데서 그러한 가증스런 이들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랬을 것이다(37:1-14;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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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하23:7]

 미동의 집 - '미동'에 해당되는 히브리어 '하카데쉼'은 남창(男娼)들을 가리킨다(23:17;왕상 14:24; 15:12; 22:46). 이들은 고대 근동 지방의 우상 숭배 의식때, 그곳 여제사장들과 의식상의 성관계를 맺거나 그렇지 않으면남색(homosexuality)하는 자들의 상대 역활을 하였다. 그런데 율법상 남색행위는 사형에 해당되는 추행으로 금지되어 있었다(18:22; 20:13).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다 백성들이 여호와의 전 부근에 이 미동(美童)의 집을 만들어 주고 우상을 숭배하며 남색을 즐겼다는 사실은 그만큼 그들이 패역해졌다는 의미이다.

 

 그곳은 여인이 아세라를 위하여 휘장을 짜는 처소이었더라 - 여기서 '여인' 은 아세라(Asherah)의 여사제들을 가리킨다. 앞서의 미동들은 항상 이여사제들과 함께 거처하였다(Rawlinson). 한편 이 여인들은 휘장을 만들어 우상을 꾸미거나 우상 신전을 장식하며 그곳에서 행음하였는데 이에 대해서는 겔 16:16 이하에 잘 나타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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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하23:8]

본절은 이제 요시야의 왕의 개혁이 예루살렘에서 온 유다에로 확산되었음을 보여준다.

 유다 각 성읍에서 모든 제사장을 불러오고 - 요시야는 각도처에 흩어져 있는 산당들에서 더이상 불법한 우상 숭배 의식이 시행될 수 없도록 모든 제사장들을 예루살렘으로 불러 모았다. , 이는 각 산당에서 이루어지던 우상 숭배를 청산하기 위한 것이며 또한 예루살렘 중앙 성전에서 거국적(擧國的)으로 유월절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21-23).

 

 게바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 - 게바(Geba)는 오늘날의 '야바'(Jaba)에 해당되며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몇 마일 되지 않는 곳에 위치해 있다. 이곳은 본래 베냐민 지파의 성읍이었는데 훗날 레위 지파의 기업이 되었다(21:17;대상 6 :60). 한편 이곳은 벧엘과도 인접했으며 오히려 벧엘보다도 더 우상 숭배가 극심했던 곳으로 알려지고 있다(Rawlinson). 다음으로 브엘세바(Beersheba)는 유다의 최남단에 위치한 성읍이다(20:1;삼상 3:20). 그런데 전하는 바에 따르면 이곳 역시 게바와 동일하게 우상 숭배가 성행했었다고 하다(Y. Yadin).

 

 성문의 산당들 - 여기서 성문은 예루살렘 성문을 가리킨다. 이곳은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공공 집회 장소로 사용되던 넓은 장소이다. 그런데 이곳에까지 산당이 세워졌음을 볼 때 므낫세와 아몬 당시 얼마나 우상 숭배가 극심했는지를 알 수 있다. 한편 혹자는 이 산당이 이방인들이 기도하며 예물을 드리도록 하기 위해 세워졌다고 한다(B hr). 그러나 그 사실 여부에 대해서는 확인할 길이 없다.

? 여호수아의 대문 - 구약에서 '여호수아의 문'을 언급한 곳은 이곳 밖에 없다. 그러나 예루살렘 성문 부근이라는 사실 외에는 오늘날까지도 그 문의 정확한 위치에 대해서 알려진 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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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하23:9]

 산당의 제사장들은 예루살렘 여호와의 단에 올라가지 못하고 - 산당에서 예배를 집행했던 제사장들이 이처럼 그들의 직무를 거의 박탈당했다. 요시야가 산당의 제사장들을 예루살렘으로 불러 모아 이러한 징계를 가했던 것은 아마 1. 우상 숭배를 하지 않은 제사장들의 사기를 드높임과 동시에 2. 사이비적(似而非的)인 예배를 완전히 제거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다만 그 형제중에서 무교병을 먹을 뿐이었더라 - 율법에 따르면 개인적인 결함으로 제사장의 자격을 잃은 자들은 예배에 참여할 수는 없었으나 하나님의 전에 바친 성물만은 먹을수 있었다.(21:21-23). 본절에서 직무를 정지당한 제사장들이 다른 제사장들과 더불어 식사에만은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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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하23:10]

 힌놈의 아들 골짜기의 도벳 - '힌놈의 아들 골짜기'는 약칭하여 '힌놈의 골짜기'(Hinnom Valley)로도 불리운다(15:8;18 16). 이곳은 예루살렘 성밖, 서쪽에서 남쪽으로 둘려 있는 계곡이다. 다음으로 도벳(Topheth)은 이 힌놈의 골짜기 가운데 하시드 문 근처의 토기장이 밭 부근에 위치한 산당이다(7:31,32). 이 일대는 본래 가나안 사람들이 신성시 하던 곳인데 후에 타락한 유대인들에 의하여 바알과 몰록을 숭배하는 우상의 중심지가 되었다(32:35). 한편 도벳에 해당되는 히브리어 '토페트'의 뜻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학자들 간에 해석이 매우 다양하다. 1 ''이라는 뜻으로 보는 사람이 있는데 거기에서 아이들을 불에 태울 때 북소리를 크게 울려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들리지 아니하게 하였기 때문이라고 한다(Rawlinson, Matthew He-nry). 2 '침뱉음'이라고 보기도 하는데(Keil) 그곳은 경건한 사람들의 혐오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17:6). 3 '용광로'라는 뜻으로 보는 이도 있는데(Gesenius, B hr, Ho-bbs), 그것은 그곳에서 몰록을 숭배할 때 아이들을 불로 태웠기 때문이라고 한다(3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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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하23:11]

 태양을 위하여 드린 말들 - 태양신에 대한 숭배는 이미 오래 전에 애굽에서 유행했었다. 그리고 B.C. 8세기경 아람어로 기록된 진질리(Zinjirli)비문에도 태양신인 샤마쉬(Sha-mash)와 관련이 있는 레쿠벧(Rekubel) 신이 언급되어 있다. 그런데 그 비문에 태양이 바알하닷과 함께 숭배된 것으로 나와 있는 바 앗수르인들 역시 가나안 사람들처럼 태양 숭배와 우상 숭배를 병행했었음을 알 수 있다. 아마 성경이 대개 우상 숭배와 관련하여 '태양상'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음도 그러한 연유에서일 것이다(26:30; 대하 14:5; 34:4,7; 17:8; 27:9; 6:4,6). 17:16 주석 참조. 한편 태양에게 말을 바치는 관급은 고대 여러 민족들 가운데 행해졌다(J. Austel). 그런데 이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말과 마차가 함께 드려지던 의식은 바사(Persia) 시대에 유행했다(Pulpit Co-mmentary).

 

 이 말들은...시종 나단멜렉의 집 결에 있던 것이며 - 나단멜렉(Nathan - Melech)의 집은 성전의 물품들과 기명(器皿)들을 저장해 두는 성전 창고들 중의 하나였던 것 같다. 왜냐하면 성전의 많은 창고들이 때로는 사람들의 거처로도 사용되었기 때문이다(13:7). 그리고 그 창고들 가운데 일부는 마굿간으로도 사용되었다(Keil &Delitzsch).

 

 태양 수레를 불사르고 - 태양 수레는 태양을 숭배하는 의식을 해할 때 행군용으로 사용되던 것이다(Keil & De-litzsch Commentary, Vol. ,p. 486). 요시야는 이와 같이 천체 숭배나 우상 숭배에 의하여 더럽혀진 물건이나 동물들을 모조리 제거하였다(4,6,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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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하23:12]

 아하스의 다락 지붕에 세운 단들 - '아하스의 다락방'이 어디에 위치해 있었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본절 전후 문맥이 성전 내에 설치된 우상 숭배의 기명들을 다루고 있는 것으로 봐서 성전 경내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혹자는 보다 더 상세하게 그 다락방이 문쪽에 있는 성전 마당의 건물들 중 하나인 다락방으로 보고 있다(Thenius). 그렇다면 그 건물은 아하스가 성전으로 들어가는 입구 및 낭실(廊室)을 제하였을 때(16:18) 세워졌던 것으로 추측된다(Keil). 왜냐하면 렘 35:4에 따르면 그 문에 있는 건물은 다락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유다 열왕' 이 우상을 위한 단들을 다락 지붕에 세웠다고 했는데 그것은 곧 아하스가 세운 다락방의 단들이 히스기야의 종교 개혁(18:1-6)에 의하여 제거된 후 므낫세와 아몬에 의해 다시 복구된 사실을 의미하다(21). 그 단들이 요시야 당시까지 널리 알려져 있었다는 사실은 예레미야와 스바냐의 증거에 의해 알 수 있다(19:13;1:5).

 

 므낫세가 여호와의 전 두 마당에 세운 단들 - 21:5에 따르면 므낫세는 성전 뜰에 하늘의 일월 성신(日月星辰)을 위한 단을 쌓은 것으로 나와 있다. 이에 관해서는 그곳 주석을 참조하라. 한편 므낫세가 회개할 때에 이단들을 성전 마당에서 제거하긴 하였으나(대하 33:15) 부수지 않고 단지 성밖에 던져 두기만 했었다. 그래서 므낫세의 아들 아몬은 그 단을 다시 본래 위치에 쉽게 세워둘 수 있었을 것이다(대하 33 :22).

? 기드론 시내 - 앞서 언급된 기드론 골짜기(4)에 비가 내리면 그 계곡은 간헐천(間歇川)을 이루는데 바로 이를 가리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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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하23:13]

 멸망 산 - 이것은 예루살렘 앞, 감람산 남쪽 끝 지역을 지칭하는 것으로서 오늘날의 '실완'(Silwan)이라는 아랍 마을에 해당되는 곳이다. 과거 솔로몬은 이방 여인들과 결혼하면서 우상 숭배에 빠져 이곳에 모압, 암몬 등 여러 이방인들의 신들을 모시는 산당을 세웠다(왕상 11:5, 7, 33). 그러므로 그 후 이곳은 히브리인들이 죽은 자들의 뼈를 버리는 등 대단히 부정한 곳으로 간주되었다.

 

 시돈 사람의 가증한 아스다롯 - '아스다롯'(Ashtaroth)'아세라'(Ashe - rah)와 더불어 풍요, 다산, 사랑 또는 쾌락의 여신이다. 과거에는 아세라와 아스다롯이 동일한 신인 것으로 오해되었으나 최근의 연구 결과 엄연히 구분되는 다른 두 신임이 판명되었다. 한편 아스다롯은 고대 근동의 여러 지방에서 두루 숭배되었느데 그 가운데서도 특히 두로 (Tyre)와 시돈(Sidon) 백성들이 열렬히 숭배하였다. 이 아스다롯은 지역에 따라 여러 명칭으로 불리웠는데 헬라에서는 아프로디테(Aphrodite), 로마에서는 비너스(Vinus)로 알려져 있다.

? 모압 사람의 가증한 그모스 - 그모스(Chemosh)는 모압인들이 민족신으로 섬기던 전쟁의 신이다. 때문에 성경에서 모압인들은 종종 '그모스의 백성' 으로 불리우고 있다(212:29;48:46). 그런데 그모스를 가리켜 '가증한 그모스'라고 칭하는 까닭은 그모스에게도 몰록처럼 인간 제사가 드려졌기 때문이다(Mesha Tablet).

 

 암몬 자손의 가증한 밀곰 - 밀곰(Milcom)은 일명 몰렉(Moloch), 몰록(Moloch), 말감(Malcam)으로 불리우던 암몬인들의 민족신이다. 이 신을 섬기는 제의(祭義)의 특징은 인신(人身) 제사에 있었는바 성경에서 가장 가증한 신으로 언급되고 있다(20 :1-5). 

 

 [왕하23:14]

 석상들...아세라 목상들을 찍고 - 요시야의 이러한 행위는 곧 율법의 가르침에 따른 것이다. , 7: 5;12:3;16:21, 22에서는 이와 같은 것들을 모두 제거할 것을 가르치고 있다.

 

 사람이 해골로 그곳에 채웠더라 - 19:16-19에서 보는 바와 같이 죽은 사람의 시신(屍身)에 닿는 것은 곧 '부정함' 을 뜻한다. 따라서 요시야가 이와같이 행한 것은 우상의 신과 그 신들을 섬겼던 자들을 모독하기 위함이었다고 하겠다. 6절 주석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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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하23:15]

이제 요시야의 개혁은 베냐민 땅인 벧엘까지 확산되었다. 여기서 요시야가 북방국 이스라엘 땅이었던 벧엘에까지 개혁을 확산시켰다고 해서 이상하게 생각할 것은 없다. 왜냐하면 이곳 베냐민 땅은 과거 유다 왕국에 소속된 적이 여러번 있었기 때문이다(대하 11:12). 그리고 당시 앗수르는 쇠퇴기에 있었기 때문에(22장 강해 참조) 자신들의 식민지인 이스라엘에 관심을 기울일 수 없었을 것이다.

 

 여로보암이 벧엘에 세운 단과 산당 - 이에 대해서는 왕상 12:25-3313:2을 참조하라. 한편 여로보암(Jeroboam, B.C. 930-910) 시대부터 벧엘은 송아지 우상 숭배의 중심지였다. 그런데 이곳에 다른 이방의 우상들이 언제 세워졌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추측컨대 17:24-41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이방인들의 이주에 의해서 송아지 숭배와 우상 숭배가 혼합된 것이 아니가 생각된다(Rawlinson).

 

 그 산당을 불사르고 - '산당'(, 바마)은 일반적으로 '높은 장소'를 지칭하며 영어에서도 단지 high place로 번역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고고학적 발굴에 의해 과거 그곳에는 대리석으로 된 제단과 함께 부수적인 건물들이 있었음이 판명되었다(Keil, B hr, Rawlinson). 그런데 그 건물들은 본절에 언급되어 있듯 요시야가 불사르고 돌이나 금속으로 된 것은 모두 빻아서 가루로 만들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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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하23:16]

 산에 있는 묘실 이는 벧엘 부근 동산에 있던 공동 묘지인 듯하다. 그런데 이곳에는 과거 벧엘에 살던 늙은 선지자의 묘실(왕상 13:30)도 있었다(17,18).

 

 그 묘실에서 해골을 취하여다가 단 위에 불살라 - 이처럼 요시야가 묘실에서 뼈를 가져다가 단 위에서 불사른 것은 벧엘의 단을 모독케 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혹자는 15절에서 이미 단이 파괴되었는데 어떻게 단 위에서 뼈들을 불사를 수 있었는가를 의문시 한다(Thenius). 그러나 이미 잘게 부수어진 단 위에 그 뼈들을 태웠다고 본다면 충분히 본절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B hr).

 

 이 일을 하나님의 사람이 전하였더니...말씀대로 되었더라 - 이것은 본서 기자가 본절에 나타난 것과같은 요시야의 행위에 대해 역사적으로 해석한 글이다. , 다시말하면 본절에 기록된 요시야의 행위는 왕상 13:2에서 '하나님의 사람'이 예언했던 대로의 성취하기 위해 의식적(意識的)으로 그처럼 행동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요시야가 이러한 예언에 대해서 안 것도 실상 이 일을 행한 이후이다(17).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요시야를 통해 그 같은 예언이 실제적으로 실현되었던 것이다. 사실 왕상 13:2을 보면 약 300여년 전에 이미 '요시야'라는 이름까지 구체적으로 명시하면서 그가 벧엘의 단을 더럽힐 것이라고 예언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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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하23:17]

 유다에서 왔던 하나님의 사람의 묘실 - 여기에서 '유다에서 왔던 하나님의 사람'이란 과거 여로보암 당시 여로보암의 우상 숭배 행위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 및 심판을 선포하기 위해 유다에서 벧엘로 나아왔던 무명(無名)의 선지자를 가리킨다(왕상 13: 20-26). 그러자 노선지자가 그 시신을 거두어 자기 묘실에 장사지내 주었는데(왕상13:27-32) 본절에서 말하는 묘실은 바로 이 묘실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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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하23:18]

 사마리야에서 온 선지자 - 북왕국의 새로운 수도(首都)인 사마라아(Samaria) 성이 세워진 것은 오므리 시대이다(왕상 16:24). 이후 '사마리아'는 이스라엘 전체를 가리키는 별칭으로 통용되었다. 17:24-41 강해, '사마리아' 참조. 한편 본절의 '사마리아에서 온 선지자'란 왕상 13장에 나타나는 '벧엘에 사는 한 늙은 선지자' 를 가리킨다. 그런데 본절에서 요시야가 유다에서 온 선지자와 사마리아에서 온 선지자의 뼈를 그 묘실에 그대로 두게 한 것은 하나님의 사람에 대한 예우였다고 볼 수 있다. , 요시야는 과거에 노선지자가 했던 말(왕상 13:31, 32)을 기억하고선 그 말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그들의 뼈를 훼손시키지 않았을 것이다(Rawlin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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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하23:19]

 사마리아 각 성읍...산당을 요시야가 다 제하되 - 대하 34:6, 7에는 요시야가 통치 제 12년에 종교 개혁을 단행했던 사마리아가 각 성읍, 즉 이스라엘 각성읍들의 이름이 나온다. 그것은 곧 므낫세, 에브라임, 시므온, 납달리 및 사면 황폐한 성읍들이다. 그런데 당시 앗수르의 식민지 치하에 있던 사마리아 왕국에 대해 요시야가 무슨 권한으로 이러한 종교 개혁을 단행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확실히 알 수 없다. 단지 추측할 수 있는 것은 앗수르가 앗술바니팔(Ashurbanipal, B.C. 669-626) 왕이 죽은 후 메대와 바벨론으로부터 협공을 당할 정도로 국력이 급격히 쇠퇴했다는 것이다(22장 강해 참조). 그래서 요시야는 앗수르의 간섭을 받지 않고 사마리아 땅까지 쉽게 관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와 관련 혹자는 요시야가 사마리아 땅까지 영토를 확장하였다고도 한다(Ewald). 아무튼 요시야가 유다 백성에게서와 마찬가지로 북쪽 이스라엘 지역에 남아 있는 자들에게도 세금을 부과할 수 있었던 것으로 봐서(대하 34 :9) 당시 요시야의 행정력이 사마리아 땅까지 미치고 있었음은 분명하다(PulpitComment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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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하23:20]

 산당의 제사장들을 다 단 위에서 죽이고 - 산당 제사장들의 이 같은 죽음 역시 이미 왕상 13:2에서 예언한 대로이다. 유다에서와는 달리 이스라엘 산당의 제사장들은 여로보암 통치 이래 레위 자손이 아닌 보통 백성 들이었다(왕상 12:31). 그래서 이스라엘 산당의 제사장들은 유다 산당의 제사장들과는 달리 정직(停職) 조처(9)를 당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죽임을 당했느데 이것은 율법에 의한 것이다. , 모세 율법은 레위 지파 중 아론 자손만이 제사장직을 맡도록 규정하고 있으니(28:1) 이를 어기고 스스로 제사장으로 행세하는 자들은 당연히 제거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한편 요시야가 불법 제사장들을 제거한 행위는 바알 제사장들을 죽였던 예후(10)와 여호야다(11:17-19)의 전통과도 연결된다(Hobbs).

? 사람의 해골을 단 위에 불사르고 - 우상을 빻아 무덤 위에 뿌린 것과 유사한 행동으로(6) 우상 제단을 모독함과 동시에 그 단이 부정한 것임을 강조하는 행위이다. 6절 주석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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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하23:21]

본절로부터 23절에 기록된 유월절 기사는 평행 구절인 대하 35:1-19에 비해 매우 간략하다. 역대기의 기록에 의하면 요시야에 의해 시행된 유월절은 다음과 같은 성격을 지녔음을 알 수 있다. 1 유다 백성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까지도 참여했다는 점이다(대하 35:18). 2 모세의 율법이 명하는 모든 의식들이 적법하게 준수되었다는 점이다. 여기서 그 유월절이 율법에 적법했다는 것은 신명기의 내용 뿐만 아니라(16:1-18) 보다 많은 내용을 담고 있는 출애굽기에 기록된 유월절 규례까지 지켰다는 뜻이다(12:3-20; 13:5-10). 따라서 앞서 힐기야 제사장이 발견한 율법책(22:8)은 모세 5경 전부를 포함하고 있었음이 틀림없다(Rawlinson)

 

 [왕하23:22]

 사사가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시대 부터...이렇게 유월절을 지킨 일이 없었더니 - 과거 히스기야 시대에도 유월절은 시행되었으나 그 때에는 율법에서 명하는 유월절 규례와 어긋나는 점이 많았다. 예를 들면 1 율법이 정한 때에 시행되지 않았고(대하 30: 2, 3), 2 규정된 정결 의식을 행하지 않은 채 유월절 양을 먹은 점(대하 30:18)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면에서 볼때 요시야 때에 행한 유월절은 실로 뜻깊은 것이다. 본절의 '이렇게'라는 부사 역시 지금까지 요시야와 같이 율법의 규정대로 완전하게 유월절을 지킨 적이 없음을 강조해 준다. 한편 이외에도 요시야가 행한 유월절의 특징으로는 다음과 같은 점을 들 수 있다. 1 거국적인 차원에서 시행되었다는 점(대하35:18), 2 예루살렘에서 실시되었다는 점(대하 35:1), 3 역대기 제사장들의 역할을 활성화시켰다는 점(대하 35:2, 10-14)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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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하23:23]

 요시야 왕 십 팔 년에 - 22:3에 이어 요시야 18년이 두번째로 강조적으로 표기되었다. 이것은 본서 기자가 요시야 18년을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하게 보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 요시야 12년에도 종교 개혁이있었으나 (대하 34:1-7) 본서 기자는 보다 대대적인 종교 개혁이 시행되었던 요시야 18년을 더욱더 중요시 여기고 있는 것이다. 이에 관해서는 22:3주석을 보다 참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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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하23:24]

본절에서 보여주는 바와 같이 요시야는 공적(公的)인 예배의 완전한 개혁을 성취한 후 사적(私的)으로 개인들의 가정에서 행해지던 모든 미신과 우상 숭배를 폐지하는 일을 계속했다(Thenius).

 

 신접한 자와 박수 - 21:6 주석 참조.

 

 드라빔 - 이것은 고대에서부터 이스라엘을 포함한 근동 각지의 사람들이 각자 가정에서 섬기던 신이다(31:19). 이는 사사시대나(18:14) 왕조 시대에도 매우 성행하였으며(삼상 19:13) 심지어 포로 귀환 이후에도 숭배되었던 것으로 나타난다(10 2). 이에 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창 31:19 주석을 참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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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하23:25]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그와 같은 자가 없더라 - 이는 곧 이스라엘 열왕들 중에 요시야만큼 온전하게 율법을 준행한 자가 없었다란 의미이다. 그런데 본서 저자는 앞서 히스기야 왕에 대해서도 이와 유사하게 평가한 적이 있다(18:5).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그 평가 내용을 분석해 보면 1 히스기야가 어느 왕보다도 하나님을 의뢰하였다면 2 요시야는 하나님의 율법을 준행함에 있어서 열왕들보다 더 완전했다라는 의미로 구분된다. 그렇지만 이러한 평가는 다시 '그 조상 다윗과 같이' 정직히 행했다는 공통된 평가로 요약될 수 있다(18:3; 22:2). 따라서 본서는 히스기야나 요시야가 다른 열왕들에 비해 하나님 보시기에 더 정직하게 행했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그와 같은 자가 없었더라'했던 것이다. 18:5주석 참조.

 

 본절에서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라는 표현은 신 6: 5에 기록된 쉐마(Shema) 본문에 의거한 평가이다. 3절 주석 참조. 그리고 '모세의 모든 율법을 온전히 준행한'이란 표현은 다윗이 솔로몬에게 누차 당부했던 말들(왕상2:1, 3; 6:11-13;8:25, 26; 9:1-9) 속에서도 여러번 나타나는데 이것은 율법 준수에 대한 요시야의 철저한 면을 보여 준다. 한편 구약 외경서 가운데 하나인 집회서 49:4에는 다윗과 히스기야와 요시야를 제외한 모두 유다의 왕들이 범죄하므로 멸망당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Pulpit Comment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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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하23:26]

 그러나...진노를 돌이키지 아니하셨으니 - 요시야가 행한 많은 개혁과 선한 행위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유다를 멸망시키고자하는 하나님의 진노를 돌이킬 수는 없었다. 본문에 보면 그 이유는 선왕(先王) '므낫세의 죄' 때문이었다고 한다(21:1-16; 24: 3; 15:4). 여기서 '므낫세의 죄'라고 하는 것은 지금까지 유다가 하나님 앞에서 행한 모든 죄를 통틀어 가리키는 표현임과 동시에 유다가 필연코 멸망 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단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것은 마치 과거 북왕국 이스라엘이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로 인해 멸망한 것과 같다(17:21-23). 그런데 이 모든 사실은 멸망으로 예정된 어떤 백성이 그 죄악에서 돌이킬 때 하나님께서 심판의 뜻을 돌이키신다고 약속하신 말씀과 서로 상반되는 듯한 인상을 준다(29:12-14). 그러나 이 두 가지 사실은 다음과 같이 조화될 수 있다. 1 이것은 허다한 결함 투성이의 이스라엘을 폐하는 대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이스라엘을 다시금 일으키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에 기인한 것이다(31:31-34; 37:25-28; 3:9; 9:6-8; 6:15, 16). 2 요시야 왕의 완벽한 순종 행위와는 달리 유다 백성들의 마음은 여전히 변하지 않고 므낫세 때의 구습(舊習)을 쫓아 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은 불가피하였다는 점이다. 이러한 사실은 예레미야서와 스바냐의 예언서를 보면 분명히 알 수 있다(2-13, 16-19; 1).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심판을 연기하거나 돌이키실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와같이 하나님은 당신의 오래 참으심을 무시하고 계속 죄에 거하는 자들에 대해서는 아모리 족속을 위시한 가나안 족속들을 그 땅에서 쫓아내셨듯이(21:11; 15:16; 왕상 21:26) 그 땅에서 쫓아내거나 멸망시키실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하나님의 진노가 더 크게 타오르기 전에 죄에서 돌이키는 결단을 보여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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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하23:27]

 내가...버리리라 - 이처럼 본절에서 여호와께서는 유다와 예루살렘 성을 버리시겠다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유다의 범죄가 이스라엘의 범죄와 동일하다고 판단하신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범죄를 이방인들의 범죄와 동일한 것으로 규정했던 17:8, 15절의 말씀과 연결된다. 지금까지 하나님께서는 유다와 이스라엘 백성을 전적인 은혜 가운데 택정하사 당신의 눈동자같이 아껴 주시고 보호해 주신다(32:8-10).그러나 이제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죄악으로 인해 택하신 유다와 예루살렘을(19:34; 21:7) 버리시겠다고 하신 것이다(6:30). 이것은 포로 이전 시기 유다인들의 죄악상이 얼마나 심각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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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하23:29]

 애굽 왕 바로느고 - 역사상 '바로느고'(Pharaoh Neco)에 대해서는 아주 잘 알려져있다. 이에 대해서 간단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그는 니느웨(Nineveh)가 멸망한 후 3년째 되던 해인 B.C. 609년에 애굽의 왕이 되었다. 왕이 된 그는 당시 앗수르를 장악하고 있던 바벨론 왕 나보폴라살(Nabopolassar)과 격전을 벌였으나 승부를 내지 못하고 유다 땅을 침략하기 시작했다. 그 이후 B.C. 605년 경에 다시 나보폴라살을 공격했는데 이때에 나보폴라살의 아들 느부갓네살(Nebuchadnezzar)이 갈그미스 전쟁에서(대하 35:20) 애굽을 격파했다. 이것으로 애굽의 세력 확장은 중단되었다.

 

 앗수르 왕을 치고자 하여...올라가므로 - 느고가 왕위에 오른 때(B.C. 609)는 이미 앗수르가 바벨론의 수중에 떨어진 때(B.C. 610)이다. 따라서 느고가 앗수르 왕을 치러 유브라데 강가로 올라갔다는 말은 바벨론과 싸우는 앗수르 잔류군을 돕기 위해 갔다는 말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요시야 왕이 나가서 방비하더니 - 평행 구절인 대하 35:20- 27은 요시야와 애굽왕 바로느고와의 전투 기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1 전투의 원인:당시 팔레스틴에서는 앗수르가 멸망하고(B.C. 610) 바벨론 제국이 세력을 장악하고 있었다. 그러나 옛 앗수르 영토에는 아직도 앗수르 잔류군이 남아 있었고 바벨론도 본격적으로 세력을 확장하고 있지는 않았다. 따라서 이때야 말로 애굽으로서는 팔레스틴에 대한 지배권을 회복하고 옛 앗수르의 영토를 회복하는 데 더 할 나위 없는 호기라고 생각하였다. 이에 요시야는 팔레스틴에 대한 애굽의 지배권이 부활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서 군대를 동원함으로써 '므깃도 전쟁'이 발발하게 되었다. 2 경과:애굽 군대는 가사와 아스글론을 점령하고 점차 북상(北上)하여 므깃도에 이르렀다. 요시야의 군대도 갈멜 산맥을 통과하여 므깃도에 도착하였는데 이곳에서 양군간의 전투가 벌어졌다. 결국 하나님의 말씀(대하 35:21)을 거부하고 전쟁을 수행하던 요시야는 전사하고 유다군은 패퇴하였다. 이에 느고의 군대는 계속 북진하여 하란 공성(攻成)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하였다. 그러나 이 전쟁으로 애굽은 팔레스틴과 수리아에 대한 지배권을 확보하여 수년간 통치하였다. 3 의의:이 전쟁은 유다의 멸망에 대한 전조(前兆)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 전쟁의 패배로 인해 유다는 앗수르 대신 애굽의 속박을 받아 사실상 국권(國權)을 상실하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유다 왕 여호아하스는 바로느고에 의해 리블라(Riblah)로 호출되어 폐위당했으며, 엘리아김 같은 왕은 애굽 왕에게 충성을 표하기 위해 여호야김으로 개명(改名)을 해야만 했다(32-35). 그러나 유다를 지속적으로 지배하던 바로느고도 결국 갈그미스 전투에서 바벨론 군대에게 결정적인 패배를 당해 애굽으로 퇴각함으로써(24:7; 46:2) 유다는 바벨론에게 망하였다.

 

 므깃도 - 이곳은 오늘날의 '텔 엘 뭇셀린'(Tell el Mutsellin)에 해당되는 곳으로 이스르엘 평야에 위치한 청동기 시대의 성읍이다(12:11). 이곳은 애굽에서 메소포타미아로 통하는 주요 간선 도로상에 위치하였는바 팔레스틴에서 가장 전략적인 요충지 중 하나였다. 그런데 요시야가 예루살렘에서북쪽으로 이렇게 멀리까지 올라온 것은 전투 중 행여 유다 성읍에 어떠한 위험이라도 미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Rawlin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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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하23:30]

 그 시체를 병거에 싣고 - 대하 35:20-24에는 요시야가 므깃도(Megiddo)에서 치명적인 부상을 입은 후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죽은 것으로 나와 있다. 따라서 그것은 본절의 기사와 서로 상치되는 듯하다. 그러나 카일(Keil)의 견해에 따르면 역대기 기록은 요시야가 예루살렘에 돌아온 후 죽은 것으로 해석할 수 없으며 므깃도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도중 하다드림몬 (Hadad-rimmon) 쯤에서 죽은 것이 분명하다고 한다(12:11).

 

 국민이 요시야의 아들 여호아스를 데려다가 - 본서에 따르면 정치적인 일에 있어서 유다 '국민' 의 역할은 매우 두드러졌는데 특히 다윗 계통의 유다 왕을 선택하여 세우는 일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하였음을 알 수 있다(11:12; 21 :24). 한편 '여호아하스'라는 이름은 '여호와께서 붙드신다'라는 뜻으로서 렘 22 :10-12에서는 살룸(Shallum)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우고 있다. 그런데 국민들이 무슨 근거로 그의 형 엘리아김(34)을 두고 그를 왕위에 추대했는지는 알 수 없다. 혹자는 백성들이 동생 여호아하스를 더 유능한 자로 여겼기 때문이라고 하고(Keil), 또 다른 사람은 형 엘리아김이 요시야를 따라 므깃도로 나갔다가 느고에 의해 포로로 잡혔기 때문이라고도 하나(Rawlinson) 분명한 근거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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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하23:31]

 예루살렘에서 석달을 치리하니라 - 여호아하스의 이처럼 짧은 통치는 요시야가 죽은 이후 정국(政局)이 얼마나 혼란했는지를 간접적으로 시사해 준다.

 

 그 모친의 이름은 하무달이라 - 유다 왕들의 약력을 소개할 때는 이처럼 모친에 대한 소개가 대개 포함되는 것이 한 특징이다(18:2; 21:1; 22:1). 한편 '하무달'(Hamutal)이라는 이름의 뜻은 분명치 않다. 그런데 혹자는 '안개의 사촌'이라는 뜻이라고도 한다(Hobbs).

 

 립나 예레미야의 딸이더라 - 립나(Libnah)라는 지명은 하무달의 아버지가 선지자 예레미야와는 동명 이인(同名異人)임을 알려준다. 왜냐하면 선지자 예레미야는 아나돗(Ana-thoth)출신이기 때문이다(1:1). 한편 '립나'는 오늘날의 '텔엘바이드(Tell el Beide)에 해당되는 성읍으로(Grid)유다 평지에 위치하였다. 그런데 이 도시는 세펠라(Shephe-lah) 변방의 도시이기 때문에 자주 영토의 소유국이 바뀌었다. 혹자는 유다가 이 성읍을 차지한 것은 유다가 요시야 통치하에 크게 확장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나 (Oded) 분명한 근거가 없다(Hob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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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하23:32]

 여호아하스가...악을 행하였더니 - 이처럼 국민의 뜻에 의해 세움받은 여호아하스왕(30)은 그 열조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했다. 이러한 사실은 이미 26, 27절에서 언급되었듯이 하나님의 심판의 불가피성을 보여 준다.

 

 

 [왕하23:33]

 바로느고가 저를 하맛 땅 립나에 가두어 - 여기서의 '립나'(Riblah)31절의 립나와 다른 곳이다. 히브리 원본에는 본절의 '립나''리블라'로 기록되어 있다. 이곳은 하맛(Hamath)의 남쪽 80km 지점, 즉 오론테스 강변의 가데스 근처에 있는 큰 도시이다.

 

 예루살렘에서 왕이 되지 못하게 하고 - 애굽 왕 느고가 왜 예루살렘에 있는 여호아하스 왕을 립나에 가두었다가 애굽에까지 포로로 잡아갔는지(34)는 분명히 알 수 없다. 그러나 느고는 므깃도 전투에서 요시야를 이긴 후(29) 직접 유다의 내정(內政)을 간섭했음이 분명하다(Keil, Rawlinson). 그래서 유다 백성들에 의해 추대된 여호아하스를 폐위시키고 그의 형 엘리아김(Eliakim)을 왕위에 세움으로써 유다를 애굽의 속국으로 만들려고 하였을 것이다.

 

 은 일백 달란트와 금 한 달란트 - 히브리인들의 무게 단위에 있어서 1달란트(Talent)는 약 34.7kg에 해당된다. 성경 총론, '성경의 도량형과 화폐 및 월력' 참조.

 

 벌금으로 내게 하고 - '벌금'에 해당되는 히브리어 '오네쉬'는 어떤 잘못에 대하여 내리는 처벌의 일종이다(19:19). 한 나라가 타국을 침입하여 그곳을 점령했을 때는 보통 조공(, 민하)을 내게 하는데 여기서 바로느고는 유다에게 특이하게 벌금을 내게 했다. 이마 그 이유는 요시야가 애굽과의 전투에서 죽은 후 유다 백성들이 애굽의 동의없이 여호아하스를 왕으로 세웠기 때문일 것이다. 바로느고가 여호아하스를 애굽에 포로로 잡아간 것도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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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하23:34]

 엘리아김으로...그 이름을 고쳐 여호야김이라 하고 - '엘리아김'이라는 이름의 뜻은 아이러니(irony)하게도 '하나님이 세우셨다'라는 뜻이다. 그리고'여호야김''엘리아김''''여호와'로 바꾼 것으로서 뜻은 엘리아김과 동일하다. 그런데 여기서 느고가 엘리아김에게 이름을 바꾸도록 요구한 것은 이름의 뜻이 탐탁치 않아서가 아니라 자신의 명령에 대한 완전한 복종의 표시를 보이라는 의미에서 였다(24:17; 41:45; 1:7).그러나본절에 따르면 엘리아김은 형식상으로 이름만 바구었음을 알수 있다(Pulpit Comment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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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하23:35]

 국민 각 사람의...은금을 늑봉하였더라 - 여기서 '늑봉하다'에 해당되는 히브리어 '나가스'는 과도하게 공권력을 사용하여 세금을 징수한 것을 가리킨다. 다른곳에서 이단어는 '독촉하다'(15:2, 3)또는 '괴롭게 하다'(삼상 13:6; 5 :9; 58:3)등으로도 번역되고 있다. 한편 예레미야 선지자가 전하는 바에 의하면 여호야김은 국민들에게 세금을 늑봉하여 바로느고에게 바친 후 남은 것으로는 자신을 위해서 사치스런 궁전을 세웠다고 한다(22:13, 14). 또한 그는 선지자 우리야도 죽였다고 한다(26: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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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하23:36]

 여호야김의...십 일 년을 치리하니라 - 여호야김 통치 11년간(B.C. 609-598)은 바벨론이 서서히 강대국으로 부상하던 시기였다. 따라서 그의 통치 말년에는 바벨론의 영향도 컸으리라고 추측된다(Hobbs).

? 그 모친의 이름은 스비다라 - '스비다'(Zebidah)'선물을 주다' 라는 뜻이다. 그런데 여호야김과 여호아하스는 다같이 요시야의 아들이면서(30, 34) 이처럼 어머니가 다른 것은 요시야가 일국(一國)의 왕으로서 관례를 좇아 여러 아내를 거느렸기 때문일 것이다(삼하 3:2-5; 5:13-16; 왕상 11:3).

 

 루마 브다야의 딸이더라 - '브다야'(Pe-daiah)'속량하다'라는 뜻의 동사에서 파생된 이름으로서 이와 동일한 이름은 성경에 자주 나타난다(대상 3:18, 19: sm 3: 25; 8:4; 11:7; 13:13). 그러나 본절에 언급된 브다야에 대해서 더 이상 알려진 바는 없다. 한편 '루마'(Rumah)라는 도시 갈릴리 근처에 위치한 오늘날의 '길벱엘 라메'(Khirbet er-Rameh)일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이는 요시야의 영향력이 과거 이스라엘의 지경(地境)에까지 미쳤다는 증거가 된다. 19절 주석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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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하23:37]

 여호야김이...악을 행하였더라 - 애굽 왕 느고에 의해 옹립된 여호야김(34)은 애굽의 정책을 그대로 좇아 독재를 행한 또 한 명의 행악자(行惡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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