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역대상(구속사)

역대상9장,직분을 지킨 사람들

호리홀리 2015. 8. 18. 13:52

 야곱의 유언 속에서도 ‘물어뜯는 이리’라고 표현한 것처럼 베냐민 지파는 과격함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이었으나, 다 용감한 사람들로 바뀌어졌습니다. 즉 과격함의 성향이 오히려 용감한 지파로 바뀌고 약점을 장점으로 승화해간 사람들의 대명사가 된 것입니다.처음보다 나중이 좋았고,조급함이 열정으로, 이처럼 베냐민은 여느 지파보다도 많은 수의 사람들이 70년 뒤  귀향하면서 이스라엘의 일부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본문 9장의 족보는 다윗 왕 이전의 족보가 아닌, 다윗 왕 이후 그것도 바벨론 포로생활 70년을 지내고 다시 고국 땅으로 돌아온 이후의 12지파 족보를 언급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쉽게 말해 9장의 족보 이야기가 먼저 기술되어 있지만 오히려 10장보다 나중 역사이고,10장부터가 9장의 족보보다 훨씬 이전의 역사입니다.
이것은 곧 역대기서를 기술하되, 격변하고 있는 포로생활 이후 이스라엘 사회를 염두에 두고서 지금까지의 족보들을 먼저 길게 언급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9장 1-9절에는 8장까지 언급한 지파의 족보와는 달리, 포로생활에서 귀환한 12지파의 족보를 언급함으로써 그 대가 끊어지지 않았음을 말해줍니다.  1절 말씀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온 이스라엘이 그 계보대로 계수되어 그들은 이스라엘 왕조실록에 기록되니라. 유다가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갔더니”
 
역대기 말씀의 의도는 어느 일부 지파의 족보를 강조하기 위함이라기보다 ‘온 이스라엘’ 전체를 거론함으로써 고토로 돌아온 지파들 간의 연합을 이끌어내고자 함입니다. 1절 하반절에 밝힌 바대로 유다 왕국이 무너진 이유는 나라 자체가 범죄한 나라였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어느 정도 믿는다 자부하던 유다 사람들이었지만, 실제로는 자신을 도와 전쟁에 이기게 해주실 거라 생각했던 신앙심이 완전히 무너지고 심지어 왕까지 쇠사슬 칭칭 감고 노예처럼 타국으로 끌려가는 수모를 당하였던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바벨론 이국 땅에서 70년간 살아야 했던 왕족과 귀족 출신 사람들은 고향에 대한 한없는 그리움과 더불어 하나님에 대한 신앙의 자괴감으로 인해 삶의 희망이 별로 없었을 것입니다. 이들에게 필요한 하나님의 메시지는 이스라엘에 대한 죄의 심판으로만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리는 일입니다.
 
역대기 말씀의 끝부분인 역대기하 36장 21절 .
 
“이에 토지가 황폐하여 땅이 안식년을 누림 같이 안식하여 칠십 년을 지냈으니,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더라.”
 
이스라엘 백성이 70년간 자신에 대한 신앙 성찰과 하나님에 대한 원망이 뒤섞인 채로 외국 땅에서 살아온 세월이, 하나님 보시기에는 땅이 70년 지나면 안식년을 누림 같이 그렇게 안식년을 얻기 위해 준비하는 세월로 보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비록 70년의 세월이 인간에게는 아버지, 아들, 손자까지 삼 세대에 걸쳐 한없이 길게 느껴지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이스라엘을 잊지 않으시고 약속의 자녀로 약속의 땅인 가나안 땅으로 다시금 인도하셨던 것입니다. 
 
이제 잡혀갔던 이스라엘 사람들 일부가 귀환했습니다. 70년 후돌아온 고국 땅이 그들에게는 낯선 생활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나 돌아온 땅은 그 땅에 계속 남아 있었던 사람들의 차지였습니다. 그러다보니 거주자들과 귀환자들 간에 갈등이 심화되지 않았겠습니까? 살아보지도 않은 땅을 70년 만에 돌아와서는 그 땅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한다면, 그 땅에 남아 오래 살고 있었던 사람들로서는 또 얼마나 화가 나는 일이겠습니까?


10절부터 34절까지는 귀환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의 족보를 특별히 언급합니다. 포로귀환 이후 달라진 것 중 하나는 다윗 왕가가 더 이상 다스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다윗에게 주어진 하나님에 대한 언약이 희석화되기 쉬운 여건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여전히 붙잡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이스라엘에게 신앙의 결집이 요구되었습니다. 바로 성전을 중심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의 생활은 재편되기 시작했고 이를 위해 1,760명의 제사장과 212명의 성문 지킴이가 필요했습니다. 이러한 예루살렘 성전 중심의 문화는 자연스럽게 제사장과 레위인들을 통해 공동체 지도력을 구성하게끔 만들었습니다. 

본문에 반복되는 단어는 직분입니다. 그들은 돌아와 충성되이 직분을 지켯슴니다. 아니 직분을 지키기위해서 돌아온 것입니다. 그 중에 반복되는 직분은 문지기입니다. 다윗은 시84:10에 하나님 전의 문지기를 사모했습니다. 얼마나 자랑스러운 직분일까요. 그러나 은혜없이 할 수 없는 일이지요. 그들은 기쁨과 열정으로 이일을 감당했습니다. 자연히 성전중심의 신정국가로소의 기틀이 세워지는 중요한 직분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 전의 문지기를 사모하는 사람들이 불일듯 일어날때 부흥의 역사는 시작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70년이 지나 말씀대로 고토로 부르셨습니다. 그 부르심은 거주자들과의 또 다른 갈등을 야기 시키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신앙의 갱신을 불어넣어주기 위해 다시금 성전 중심, 말씀 중심의 삶으로 회복하게 해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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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위로자요, 권면자로 부름받은 레위인과 제사장을 통해 다시금 성전 중심, 말씀 중심으로 회복되는 공동체의 삶이 필요한 것입니다.  심판이 아니라 회복을 원하시는 하나님의 본심대로 주님의 넘치는 은혜를 담는 그릇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