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요한계시록강해

3과. 세상에서 승리하려면 성경본문: 계시록 2장: 12절~29절

호리홀리 2014. 12. 15. 12:25

3과. 세상에서 승리하려면


성경본문: 계시록 2장: 12절~29절



  버가모교회


  버가모는 서머나라는 도시에서 북쪽으로 96km떨어진 곳입니다. 부유한 도시입니다. 버가모 도시는 행정도시이고 로마의 총독부가 주둔하고 있었던 곳입니다.

  로마의 두 번째 황제 아우구스투스 때부터 황제우상숭배가 시작되었는데, 이 사람들은 자진해서 아첨하면서 황제 신전, 가이사의 신전을 3개나 세웠습니다. 로마의 시민이라는 자부심도 갖고 있었고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신들의 아버지 제우스를 섬겼고, 그의 부인 지혜의 여신 아테네 신에게 지혜를 달라고 섬겼고, 또 술의 신 디오니소스를 섬겼습니다. 그러므로 도시 전체가 신전들로 가득했던 곳입니다.

  이런 곳을 12절‘좌우에 날선 검을 가진 이’심판주이신 예수그리스도가 우상숭배의 본부인 이곳을 심판하겠다는 것입니다. 계시록의 ‘검’의 모티브는 심판으로 나오고 있습니다.13절을 보겠습니다.


  “네가 어디 사는 것을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단의 위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단의 거하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네가 어디 사는 것을 안다. 거기는 ‘사단의 위가 있는 곳이다’라고 말씀하시는데, 여기서 ‘위’라는 말은 사단의 보좌가 있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도시 전체가 사단의 본부, 사단의 사령부라고 할 정도로 우상의 제단들로 가득 차있는 곳입니다. 교육과 예술과 문화가 아주 발달한 에베소 다음으로 크고 중요한 도시였습니다. 또 짐승을 잡아서 신들에게 바치고, 다음에 시장으로 유통하는 사탄이 지배하는 도시였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도 마찬가지입니다. 공중권세 잡은 자가 지배하는 이 세속도시 속에서 하나님의 사람들이 어떻게 믿음을 지켜야 할까요? 13절을 보겠습니다.


  “네가 어디 사는 것을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단의 위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단의 거하는 곳(황제를 숭배하는 신전)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끝까지 믿음을 굳게 지키면서 순교했던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헬라어 성경에 보면 1인칭 소유격이 두 번 강조됩니다. 

‘나의 충성된 나의 증인 안디바’로 기록이 되었습니다. 초대 교부였던 터툴리안의 기록에 의하면, 안디바는 버가모 교회의 목회자였다고 합니다. 서머나교회 교인들은 목회자가 화형당하는 것을 보고 더 믿음위에 굳게 섰는데, 버가모교회 교인들은 안디바가 화형당하며 순교하는 것을 보고 크게 흔들렸습니다. 다음 14절을 보겠습니다.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앞에 올무를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구약성경에 보면 발람의 교훈이 나옵니다. 발람은 돈을 받고 거짓 교훈을 가르쳤던 거짓 선지자입니다. 발람의 교훈이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15절을 보겠습니다.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의 교훈이 곧 니골라당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에베소교회는 말씀에 굳게 서서 니골라당의 교훈을 철저하게 배격했지만 버가모교회는 니골라당의 교훈을 받아들였습니다. 말씀이 약했던 교회입니다. 말씀이 약하면 이단사상이 침투하게 됩니다. 그래서 12절 처음에 보면, ‘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노니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진 이’라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검’이 무엇일까요? ‘검’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말씀의 검으로 승리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16절을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임하여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내가 네게 속히 임하여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라는 말씀 속에서 역시 말씀에 굳게 설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버가모교회는 말씀이 약해서 핍박이 몰아치니까 니골라당에게 무너져 버리는 안타까운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17절 보겠습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승리의 모습은 늘 똑같이 일곱 교회에 나타납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에게는 감추었던 만나를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감추었던 만나와 대조적인 표현은 14절의 우상의 제물입니다. 우상의 제물을 먹도록 미혹하여 가르쳤던 니골라당, 그러나 승리하는 자에게는 감추었던 만나(말씀)를 주고 흰 돌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흰 돌은  재판할 때 재판장이 흰 돌을 집어서 들면 무죄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 흰 돌에 무엇이 기록되었느냐면 끝까지 이기고 이긴 너희 언약 백성의 이름을 기록했다는 말씀입니다. 버가모교회는 우상으로 가득한 도시에서 핍박으로 인해 우상에게 무릎을 꿇었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우리는 우상으로 가득한 현대의 세속도시에서 어떻게 승리하며 살 수 있을까요? 그들에게 우상숭배는 문화가 되어버렸습니다. 마치 구약시대에 바알이 문화가 되어버렸던 것처럼, 또한 하나님과 우상을 같이 예배했던 산당이 백성들의 문화와 풍습이 되어 뿌리 뽑지 못하고 오히려 솔로몬도 거기서 일천번제를 드렸던 것처럼 오늘 우리 속에도 세속주의와 우상은 깊게 자리 잡고 있는 것입니다.


  두아디라교회


  두아디라는 내륙에 있는 도시입니다. 두아디라는 자주장사 루디아의 고향이기도 합니다. 루디아는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건너와 빌립보에서 자주 장사를 했습니다. 두아디라라고 하는 도시는 염료, 염색 혹은 은장색등 수공업이 발달했던 곳입니다. 그래서 도시 곳곳에 조합(길드, guild)이 많이 있었습니다. 또 이방인들이 많이 살았던 도시이기도 합니다. 두아디라에서 장사하는 사람은 조합에 속하지 않고 장사를 할 수 없었습니다.     사업하는 사람들이 조합에 가입하고 사업을 하는데 어떻게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그 조합에 가입하지 않고 사업을 할 수 있었을까요? 예를 들어 동대문 시장의 모든 상인이 예수님을 믿지 않아 주일에  시장 문을 여는데, 단 한 사람이 예수님을 믿어 주일에  시장 문을 열지 않아 벌금을 물어야 한다면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 두아디라의 상황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신앙을 지킬 수 있을까요? 여러분을 2000년 전의 두아디라로 초청합니다. 그럼 19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그들은 사업을 잘했습니다. 은행을 이용하지 않고도 사업을 잘했습니다. 믿음과 사업과 사랑과 섬김과 인내를 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8절을 보시겠습니다.


  두아디라라고 하는 도시는 제우스의 아들 아폴로라고 하는 태양신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아폴로 한 신만 섬기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 유적이 남아있습니다. 그런데 태양의 신을 섬기고 있는 이들에게 이런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눈이 불꽃같고 발이 빛난 주석과 같다. 제우스의 아들 대신에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 믿음을 굳게 지켰지만 20절에 누가 침투했습니까? 20절을 보시겠습니다.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이세벨이 침투했습니다. 이세벨은 별명입니다. 은유법을 쓰고 있습니다. 이세벨은 북 이스라엘의 왕인 아합에게 시집와서 자기가 고향에서 섬기던 바알을 들여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우상을 섬기게 했던 페니키아의 공주였습니다. 악녀입니다. 그런데 이 여자는 자칭 선지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세벨의 유혹에 넘어가 우상의 제물을 먹고 이세벨에게 무릎을 꿇은 안타까운 모습이 두아디라교회의 모습이었습니다. 또 이세벨은 많은 재물을 동원해서 조합을 통해 교회를 유혹하고 넘어트렸던 것을 보게 됩니다. 계속해서 21절을 보겠습니다.


  “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그 음행을 회개하고자 아니 하는 도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여러 번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22절을 보겠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그를 침상에 던질 터이요 또 그로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만일 그의 행위를 회개치 아니하면 큰 환난 가운데 던지고”


  내가 너를 ‘침상에 던진다’는 말은 무슨 말일까요? 구약의 이제벨의 최후를 연상시키는 장면입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질병에 던지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또‘간음’은 육적인 간음보다는 이세벨의 교리를 좇는 영적인 간음을 의미합니다. 24절을 보겠습니다.


  “두아디라에 남아 있어 이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소위 사단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다른 짐으로 너희에게 지울 것이 없노라”


  두아디라교회가 다 이세벨에게 넘어가버렸지만 그래도 남은 자들이 있었습니다. 25절을 보겠습니다.


  “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


  너희는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고 말씀하십니다.

  26절을 보겠습니다.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만국을 다스리는 철장 권세를 주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27절을 보겠습니다.


  “그가 철장을 가지고 저희를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저희를 다스리고 질그릇처럼 깨뜨리는 권세를 주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두아디라교회와 버가모교회는 이단 사슬에 무너져 버린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당시 디오니소스 축제가 되면 술을 마시고 벌거벗고 광란의 시간을 보냅니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예수 믿는 사람들을 유혹 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세대도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속에서도 사업, 장사를 하면서도 끝까지 믿음을 지킬 때 승리하는 삶을 살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