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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과. 이기는 자에게 주시는 복 성경본문: 계시록 2장: 1절~11절

호리홀리 2014. 12. 15. 12:22

2과. 이기는 자에게 주시는 복


  성경본문: 계시록 2장: 1절~11절


  에베소교회와 서머나교회는 대조적인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에베소 교회


  왜 아시아의 일곱 교회들 중에 제일 먼저 에베소교회를 언급했을까요?

  주후 1세기경  수많은 교회들 가운데 가장 영향력 있고, 가장 크고, 가장 선교를 많이 하는 교회가 에베소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에베소교회를 먼저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에베소교회 유래


  사도바울이 2차 선교여행 때 에베소를 지나갔습니다. 3차 선교여행 때 에베소에서 두란노 서원을 세워 2년 4개월 동안 지내면서 신앙훈련과 제자들을 길러냈던 곳입니다. 에베소는 동서양의 문물이 만나는 곳이고 소아시아지역에서 제일 큰 항구 도시였습니다.

  로마의 두 번째 황제 아우구스투스 때부터 황제우상숭배 사상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로마에 아우구스투스를 섬기는 신전을 만들었으며 아시아의 수도로 에베소를 정했습니다. 이 에베소에도 황제를 섬기는 신전을 만들게 했습니다. 그 신전이 아데미신전입니다. 아데미신전은 정치 문화 종교 심지어 은행까지 갖추고 있어 에베소 시민들은 대단한 긍지와 자부심을 갖게 했습니다.

  그들은 모두 부유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동서양이 만나고 다인종들이 모여 사는 에베소에는 황제 우상숭배의 핍박이 다른 곳에 비해 비교적 약했습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교회들은 부흥했고 에베소교회는 큰 사역들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바울은 에베소를 떠나면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후임자를 에베소에 세우고 떠났습니다. 그가 누구일까요? 그는 다름 아닌 바울의 영적 아들 디모데입니다. 디모데가 목회하면서 에베소교회는 10년 동안 더 크게 부흥했습니다. 한 10년쯤 후에 사도요한이 예루살렘에서 에베소로 왔습니다. 그래서 에베소에서 성도들을 지도했습니다. 도미시안황제 때 사도요한은 체포되어 로마로 끌려가서 옥에 갇히고 고문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후에 밧모섬에 유배를 가게 됩니다. 밧모섬은 날씨가 좋은 날은 에베소 항구가 보이는 에베소 맞은편에 있는 섬이었고 사도요한은 이 밧모섬에서 요한계시록을 기록하게 됩니다. 

  사도요한은 도미시안황제가 암살을 당하자 밧모섬에서 풀려나서 다시 에베소로 와서 지내며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그런데 에베소에는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의 무덤이 있습니다. 왜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의 무덤이 에베소에 있을까요? 그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사도요한에게 어머니를 부탁하였기 때문입니다.

  에베소교회는 많은 칭찬을 들은 교회입니다. 어떤 칭찬을 들었는지 2절을 보겠습니다.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행위와 수고와 인내,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드러낸 것에 대해 칭찬을 들었습니다. 이처럼 에베소교회는 영적분별력과 행위와 수고와 인내가 있는 탁월한 교회였습니다. 또한 에베소교회는 바울이 떠난 후에도 두란노서원을 중심으로 말씀에 바로 서 있었던 대단한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이 교회에 이단 괴수 누가 들어 왔는지 6절을 보겠습니다.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하는 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


  니골라는 일곱 안수집사 중에 맨 마지막에 나오는 이름입니다. 일곱 안수집사 중에 첫 번째 사람은 스테반인데, 스테반은 이적과 기사를 행했던 탁월한 말씀사역자였습니다. 그러나 스테반은 순교의 제물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스테반의 순교로 인해 사도바울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다음 빌립은 위대한 전도자였고, 빌립 한 사람 때문에 이디오피아 내시가 복음을 받고 구원을 얻어 이디오피아 전체가 복음화 되었습니다. 빌립의 네 딸들도 전도자가 되어 일생을 처녀로 살았습니다.

  니골라도 행실과 윤리 도덕이 깨끗하였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성결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결혼도 하지 않았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불행하게도 니골라당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영지주의의 한 종파가 되었습니다. 영지주의의 앞잡이, 영지주의의 교사가 되었던 니골라가 가장 큰 교회인 에베소에 들어와서 나도 일곱 집사 중의 한 사람이라고 하면서 에베소교회를 어지럽게 만들었습니다. 이단들이 예수 믿는 사람들보다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깨끗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깨끗하고 탁월하다 할지라도 이단 사상을 접하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영적생활에 독이 되기 때문입니다.

  니골라당의 가르침은 지금은 은혜시대이므로 율법이 필요 없다는 율법폐기론을 가르쳤고 육신은 더럽고 악하며 영은 깨끗하고 선하다는 이분법을 가르쳤으며 지금은 은혜시대이기에 무슨 짓을 해도 용서받는다는 것을 가르쳤습니다. 니골라는 에베소교회와 버가모교회에 침투하여(계2:6,15) 결혼금지, 금욕주의를 가르쳤습니다.

  영지주의(Gnosticism)는 이원론사상을 가져 영혼과 육체로 나누었고 영혼은 깨끗하고 육체는 더러우니 육체를 학대하고 고난에 참여 할수록 영혼은 더욱 맑아지고 깨끗해진다고 하는 잘못된 사상을 가르쳤습니다. 영혼도 소중하지만 육체도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며 성전이기에 잘 관리해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지식을 중요시하는 극단적 헬라철학의 영향을 받은 그들은 1세기부터2세기까지 모든 교회를 흔들었으며(고전8:1,7의 지식=영지) 그들은 또한 죽으면 끝이라고 가르쳤고 예수의 인성만 강조한 무서운 이단이었던 것입니다. 유대교가 언약을 빼버리고 율법만 가르쳤듯이 영지주의는 복음을 빼고 지식만 강조하였고 이는 신비주의와 금욕주의로 발전했던 것입니다.

  사탄은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기 때문에 영적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영적전투의 실체를 알아야 합니다. 에베소교인들은 영적분별력이 탁월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말씀에 굳게 서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2절을 보겠습니다.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행위와 수고와 인내를 인하여 칭찬을 듣습니다. 또 칭찬이 계속되는 것을 3절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우리는 이 구절을 통해 성경적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 성경적 대화의 기술을 배우게 됩니다. 먼저 칭찬을 하고 책망하는 것입니다. 부부간의 대화나 자녀와의 대화에서도 먼저 칭찬하고 책망을 해야 합니다. 실제로 에베소교회가 칭찬받을 일들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4절을 보겠습니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너희가 처음 사랑을 버렸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모두에게 주는 교훈입니다.

  처음에 남자와 여자가 서로 사랑할 때 2만5천 볼트이상의  전류가 흐르지만 대부분 가면 갈수록 그 사랑이 무디어 지는데, 이것이 우리 신앙의 모습이 아닐까요? 여기의 사랑은 ‘아가페'로서 앞에 정관사가 계속 반복됩니다. 하나님께 받은 첫 은혜, 첫 사랑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에 대한 경고, 첫 사랑에 대한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5절을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첫 사랑을 어디에서 잃어버렸는지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회개(메타노에손)는 행동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에베소교회가 동서양의 교차되는 위치에서 열정을 가지고 선교와 전도하는 일에 수고와 인내로 많은 일을 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열정이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첫 사랑에 대한 처음 행위를 가지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에베소교회에 회개하지 않으면 촛대를 옮기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에베소교인들은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50년 후에 에베소에는 무서운 전염병이 돌았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에베소를 떠났습니다. 또 그 후에 지진과 전쟁이 일어나 에베소지역은 폐허가 되어버렸습니다. 지금은 에베소라는 도시 전체가 없어지고 유적만 남아 있습니다. 에베소교회도 없어졌습니다. 영원히 발전 할 것 같은 소아시아 최대의 항구도시가 사라진 것입니다.

  창세기에 보면 아담과 하와의 범죄 때문에 땅이 저주를 받습니다. 창세기의 이 사건은 계시록까지 이어집니다.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면 우리만 저주를 받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 가정, 직장까지 저주를 받습니다. 에베소교회가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자 교회만 없어진 것이 아니라 에베소라는 도시 전체가 폐허가 되어 버렸습니다. 이처럼 지역교회가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면 지역교회의 촛대만 옮겨지는 것이 아니라 도시 전체가 버림받게 됩니다. 창세기에 보면 아브라함 한 사람 때문에 아브라함이 가는 곳마다 그 지역이 복을 받습니다. 아브라함처럼 우리도 가는 곳마다 그 지역과 가정이 복 받기를 축원합니다.


  서머나 교회


  서머나의 ‘머’는 ‘향료’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서머나는 향료를 수출하는 도시이기도 합니다. 서머나는 에베소에서 북쪽으로 80km 떨어져 있는 소아시아의 조그맣고 아름다운 항구도시입니다. 이 서머나는 일곱 교회 중에서 황제우상숭배가 가장 강력했던 곳입니다. 도미시안 황제는 본보기로 예수 믿는 사람들의 재산을 다 몰수하고 여자와 아이들을 노예로 만들어버렸습니다.  A. D 26년 제3대 로마황제인 티벨리우스를 위한 성전이 세워졌고 하드리안, 카리큘라, 도미시안(81-96)때에 절정을 이루었습니다.

  로마 황제를 ‘주’라고 부르고 예수님을 부인하면  아량을 베풀어 주었지만  끝까지 예수님을 ‘주’라 부른 서머나 교인들은 심한 핍박을 받았습니다. 에베소가 다인종들이 모여 살아 핍박이 느슨했다면 이 서머나교회는 희생과 핍박의 본보기가 되었던 곳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끝까지 승리했고 7교회와 도시 중에 지금까지 남아있는 유일한 곳이 되었습니다. 그럼 본문 8절을 보겠습니다.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처음이요 나중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가라사대”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합니다. 계속해서 9절을 보겠습니다.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 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훼방도 아노니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단의 회라”


  이들은 예수님 믿는 것 때문에 환란을 당했고 경제적으로 궁핍해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너희가 예수 믿는 것 때문에 얼마나 환란을 당하고 궁핍하게 살아가는지 다 안다고 말씀하십니다. 서머나 교인들은 그런 환란에도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이들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모든 것을 다 빼앗겼지만, 그러나 실상은 너희가 부유한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심지어 예수님 믿는 것 때문에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이 노예로 팔려갔지만 끝까지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은 공동체의식이 가장 탁월합니다. 히틀러가 유대인들을 핍박할 때 유대인들이  아우슈비츠로 끌려가서 고통을 받을 때도 유대인 공동체 중의 예수님 믿는 사람들은 그 속에서도 따돌림을 받았던 것처럼, 서머나 공동체에서도 예수님 믿는 사람들은 고발을 당하고 훼방을 당하고 쫓겨나는 최악의 상황을 겪었습니다. 그러면 10절을 보겠습니다.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9절의 상황보다 더 큰 고난이  오는데 두려워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은 옥에 던져 시험을 받을 것이고 10일 동안 환난을 받을 것이라고 예언의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여기서 10일은 문자적인 숫자가 아니라 잠시, 잠깐을 의미하는 완전수를 말합니다. 그러나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러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실제로 얼마 후에 더 무서운 핍박이 오게 됩니다.

  사도요한의 수제자 폴리갑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서머나교회의 목회자였습니다.

   드디어 핍박의 화살이 폴리갑에게 왔습니다. 폴리갑은 체포되었고 원형경기장에 장작더미가 쌓여 있는 나무위에 묶여서 화형을 당하려 하고 있고, 옆에는 십여 명의 성도가 붙잡혀 있었습니다.

  그리고 원형경기장의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폴리갑의 친구였던 서머나 집정관이 폴리갑에게 “황제를 ‘주’라고 불러라 나중에 다시 예수를 믿던지 하고 지금  한 번이라도 황제를 ‘주’라고 부르면 너와 성도들을 풀어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폴리갑은 “내가 86년을 살면서 주님은 한 번도 나를 모른다고 하지 않았는데 나는 주님을 부인할 수 없다. ”고 고백하고 순교를 당했습니다.


  그러면 서머나교회와 서머나 도시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 중에 여섯 교회는 다 폐허가 되어 없어졌지만 서머나교회는 아직도 남아 있고, 서머나라는 도시는 지금도 번창해 있습니다. 지금은 터키가 다 회교권이 되었지만 서머나교회는 폴리갑 기념교회로 2000년 동안 핍박과 환난을 견디며 생명의 불빛을 비추고 있고 회교권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대조적인 두 교회, 에베소교회와 서머나교회에 대해서 나누었습니다. 우리가 2000년 전의 에베소교회의 교인이거나 서머나교회의 교인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요?

  교회가 크고 작은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며 먼저 예수를 믿고 나중에 믿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에베소교회는 첫 사랑을 잃어버렸고 첫 행위를 잃어버렸습니다. 이것이 에베소, 서머나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7절을 보겠습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귀 있는 자는’ 이것은 들을 귀 있는 자는 그런 뜻입니다. 또 11절을 보겠습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첫 번째 사망은 육신의 죽음이요, 두 번째 사망은 영원한 죽음이며 1세기의 성도들은 이런 용어에 익숙했던 것이라 설명할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계속해서 들을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으라고 촉구합니다. 여기에서 교회를 말씀하실 때 에베소 하나의 교회를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가고 오는 모든 교회와 모든 교인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