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요한계시록강해

1과. 모든 열쇠를 가지신 예수그리스도 계시록 1장: 1절~20절

호리홀리 2014. 12. 15. 12:11

  1과. 모든 열쇠를 가지신 예수그리스도


  성경본문 : 계시록 1장: 1절~20절


 

  B.C44년 시저가 브르터스에게 암살을 당하자 시저의 양아들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가 후계자의 자리를 놓고 서로 격돌을 벌이는데, 로마제국 전체가 둘로 나뉘어 그 싸움은 20년 동안 계속됩니다.

  옥타비아누스는 안토니우스를 악티움해전에서 제압했으나 그를 따르는 장군들의 저항은 계속됩니다. 옥타비아누스는 20년 동안 반란을 완전히 진압한 후에 로마로 금의환향(錦衣還鄕)하면서 외친 것이 있는데, 그것은 강력한 로마(‘FAX ROMANNA’:평화의 로마), 세계 대제국의 로마입니다.

  원로원에서는 그를 인정하고 그의 공을 높이 세워 새 이름을 지어줍니다. 그 이름이 ‘아우구스투스’입니다. 누가복음 2장 1절의 ‘가이사 아구스도’가 아우구스투스인데, 이 아우구스투스는 ‘신’이란 뜻입니다. 그때부터 로마의 황제 우상숭배가 시작되었고, 그를 신격화하고 로마황제를 보고 ‘주’라고 불렀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라는 말입니다. 로마황제 이외 누구든지 ‘주’라 부르는 자는 사형에 해당하는 것이 당시 로마의 법이었습니다. 

  아우구스투스가 영(令)을 발하여 호적 영(令)을 내렸을 때 예수그리스도가 탄생하게 됩니다. 1세기의 성도들은 예수그리스도를 향해 ‘주’라고 불렀습니다. 1세기 성도들은 로마황제 이외 누구든지 ‘주’라고 부르는 자는 사형에 해당하는 것을 알고도 예수그리스도를 ‘주’라 불렀습니다. 그러므로 자연스럽게 1세기 성도들에게 핍박과 고난이 계속해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로마시대의 3대 박해로는 네로, 도미티안, 트랴얀입니다. 지금은 도미티안황제 때의 사건입니다. 요한계시록의 기록 연대는 A.D.  90~96사이로 추정되며 다른 제자들은 다 순교당하고 요한은 지중해 연안의 작은 밧모섬에 유배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사도 요한은 밧모섬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다시 보게 됩니다.


  요한계시록의 주제는 한 인물, 한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하는데, 그는 예수그리스도입니다. 앞으로 나타날 현상이나 일에만 초점을 맞추다보면 요한계시록 해석이 흔들립니다. 이점을 생각하면서 본문 1절을 보겠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계시는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것입니다. 그가 장차오실 재림의 순서에 대한 계시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요한에게 지시하신 것입니다. ‘반드시’는 ‘게네스다이’로 강조하고 있으며 ‘될 일’은 ‘데이’를 쓰고 있는데 이것은 신적동사로 복음서에 자주 사용되고 있는 단어입니다. 즉 반드시  일어나야 되는 일로서 당위성을 강조하는 신적 표현인 것입니다. 예수께서 고난과 죽음, 부활을 말씀하실 때에도 ‘데이’를 사용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재림 역시 신적당위성인 것입니다. 2절 보겠습니다.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의 본 것을 다 증거하였느니라”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그리스도의 증거, 자기가 본 것을 증거 합니다. 요한은 이‘증거’라는 말을 요한복음과 요한서신에 이어서 계시록에서도 계속해서 사용합니다. 3절 보겠습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3절에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는 단수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듣는 자와 지키는 자’는 복수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다시 해석하면,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고 지키는 자들’이 됩니다. 읽는 자의 뜻은 공개적으로 읽는 것입니다. 즉 회람용을 의미합니다.

  요한계시록에는 ‘말씀’이라는 단어가 모두 복수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은 ‘말씀들’이 됩니다. 4절 보겠습니다.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와 그 보좌 앞에 일곱 영과”


‘편지(그라포)’는 ‘쓰다’라는 말인데 우리말 성경에는 의역을 해서 ‘편지하노니’라고 했습니다. 이는 바울 서신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라포’는 구약의 선지자들에게 ‘하나님이 이 같이 말씀하시기를’ 혹은 ‘주께서’라는 선지자적 표현입니다. 이는 단순히 요한이 본 환상 정도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요한에게 또는 바울에게 쓰라(전하라)고 하신 신적 명령이며 하나님 말씀자체가 되는 것입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의 선포가 철저하게 시내산 언약(모압 언약)에 기초하는 것 같이 요한계시록도 철저히 이에 기초하고 있는 것을 보여주며 이는 곧 선지자의 선포와 같은 것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는 요한계시록의 해석방법을 가르쳐 줍니다. 해석방법은 과거적, 현재적, 미래적으로 종합해서 해석해야 합니다. 장차오실 이’는 예수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6절에 보면, ‘그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벧전2:9)와 제사장(계1:6,20:6)으로 삼으신 그’는 예수그리스도입니다. 그리고 7절에 ‘볼지어다 구름 타고 오실 그’ 또한 예수그리스도입니다. 계시록1:7절은 단7:13(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슥12:10절(찌른 자들이 통곡하리로다)의 예언의 성취입니다. 단7:14절은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라’ 세상을 심판하신 후에 모든 권세를 인자(그리스도)에게 위임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매절마다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증거,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계시를 보여주려고 하는 것이 요한계시록의 의도입니다.


  그러면 요한계시록 1장 13~15절과 다니엘서 10장 5~6절을 서로 비교해 보겠습니다.


  “그때에 내가 눈을 들어 바라본즉 한 사람이 세마포 옷을 입었고 허리에는 우바스 정금 띠를 띠었고 그 몸은 황옥 같고 그 얼굴은 번갯빛 같고 그 눈은 횃불 같고 그 팔과 발은 빛난 놋과 같고 그 말소리는 무리의 소리와 같더라”(다니엘10장: 5~6절, 단7:9)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그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같고 그의 발은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 같으며”(요한계시록 1장 13~15절)


  다니엘서 10장 5~6절은 다니엘이 본 예수그리스도, 장차 올 예수그리스도의 모습입니다. 다니엘이 본 예수그리스도의 모습과 사도요한이 본 부활하신 예수그리스도의 모습은 똑같습니다. 

  계시록 1장 13절에서 강조하는 것은 옷인데, 이 옷은 ‘세마포, 흰옷, 발끝까지 끌리는 옷’입니다. 이 옷은 제사장이 입는 옷을 상징합니다. 예수그리스도를 제사장의 모습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발인데, 발은 주석으로 되어 있습니다. 놋의 상징은 승리를 상징합니다. 예수그리스도는 승리자이십니다. 예수그리스도가 구름타고 오시는 것은 하나의 현상이 아니라 승리자의 모습입니다. 10절에도 보면 나팔 소리가 울려나는 것은 승리를 상징하는 나팔소리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모습은 항상 승리자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빛난 주석 같은 발은 역시 예수그리스도의 승리를 보여주는 모습입니다.

  세 번째는 그의 음성인데,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 같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말씀이 전파되는, 증거 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초림을 우리는 예수그리스도의 오심이라 이야기 했고, 예수그리스도의 재림을 다시 오심이라 이야기 했습니다. 우리는 예수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사이에 있습니다. 다시 5절을 보겠습니다.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라는 인사말 후에 예수님이 처음 오셔서 하신 일은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의 죄를 해방하신 일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화목제물, 속죄제물이 되어 주셨습니다.

  그 다음에 하신 일은 6절에 보면 우리를 하나님 나라로 삼으셨고(벧후2:9), 또 제사장으로 삼으셨기 때문에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 제사장으로서의 사명을 감당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하실 일은 7절부터 입니다.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구름타고 오시리라’는 말씀을 실제적으로 구름을 타고 오시는 현상에만 초점을 맞추면 안 되고 승리자의 모습으로 오시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8절을 보겠습니다.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예수님은 알파와 오메가입니다. 또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던 분이고, 장차 올 전능한 분입니다. 헬라어의 알파벳 첫 자가 ‘Α(알파)’이고 끝 자는 ‘Ω(오메가)’입니다. 이 말은 예수님은 처음과 끝이 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시간관은, 하나님의 나라는, 또 기독교의 역사는 시작과 끝이 있습니다. 인간도 태어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는 것처럼 모든 것은 시작과 끝이 있습니다.

  불교의 시간관은 윤회설입니다. 계속 돌고 돈다는 윤회 사관입니다.

  헤로도토스(Herodotus)도 역사는 돌고 돈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이것은 불교 이전부터 있던 사상인데, 불교가 이 사상을 받아들여 시간관, 역사관을 만든 것입니다. 사람이 죽어서 곤충이 될 수도 있고 짐승이 될 수도 있다는 사상입니다. 이것은 비성경적인 사상입니다.

  가톨릭의 시간관, 역사관은, 유명한 역사학자 슈벵글러(Schwengler)에 의해서‘순환적이다’라고 주장합니다. 순환관은 나선형으로 돌고 돌면서 목적을 향해서 나아가는 역사관입니다.

  기독교의 시간관은 어거스틴의 말과 같이 선분 A에서 선분 B로 향하여 올라가는 시작과 끝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럼 9절을 보겠습니다.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하나님나라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첫째로, 환란입니다.

  둘째로, 인내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끝까지 환란 가운데서 인내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2장 1절부터 강조하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하나님나라에 들어가려면 환란도 당하고 핍박도 당하지만 인내해야 합니다. 특별히 1세기에 고난을 당하는 성도들을 위로하기 위해서 주신 말씀입니다. 그러나 1세기에 고난당하는 성도들을 위로하기 위한 측면만은 아닙니다. 소아시아교회는 그 지역을 대표하는 일곱 교회입니다. 상징성 있는 교회입니다. 아시아에서 가장 큰 교회인 에베소교회를 시작으로 한 이 일곱 교회의 공통적인 특징으로는 황제 우상숭배가 가장 강력한 지역교회입니다.

  그러므로 핍박이 가장 강력한 지역의 대표적 교회들이지 다 큰 교회만을 모아 놓은 것은 아닙니다. 이 일곱 교회는 그 당시의 현재적 교회이기도 하지만  다가올 모든 교회를 상징합니다. 1차수신자는 일곱 교회지만 2차, 3차 수신자는 다가올 모든 성도들에게, 교회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8절에서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보았지만 계속해서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16절을 통해 좀 더 살펴보겠습니다.

 

  “그 오른손에 일곱별이 있고 그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 있게 비취는 것 같더라”


‘오른손’은 능력을 가르칩니다. 계속해서 17절에서도 ‘오른손’이 나옵니다. 또 18절을 보겠습니다.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예수님은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지신 분입니다. 호텔에서 모든 방을 열수 있는 마스터 키(master key)가 있는 것처럼, 예수님은 모든 문제의 해결자가 되십니다.

  예수님은 모든 환란과 핍박과 고난과 모든 아픔과 질병과 문제에 대해서도 마스터키이십니다. 이것이 계시록을 푸는 열쇠이기도 합니다.

  이제 19절을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네 본 것과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


  ‘그러므로 네 본 것과’ 이것은 과거적 표현입니다. 그리고 ‘이제 있는 일’ 이것은 현재적 표현이고, ‘장차 될 일’ 이것은 미래적 표현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이렇게 과거적, 현재적, 미래적 방법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20절을 보겠습니다.


  “네 본 것은 내 오른손에 일곱별의 비밀과 일곱 금 촛대라 일곱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20절은 스가랴 4장 7절에 대한 해석입니다. ‘일곱’이라는 숫자가 요한계시록에는 54회 나옵니다. ‘일곱’이라는 숫자는 상징적 숫자이지 문자적인 숫자가 아닙니다. 요한계시록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려고 하면 큰 어려움에 처하게 됩니다. 또 영적으로만 해석하려고 해도 문제가 생깁니다. 그 당시의 시대적 정황과 상황을 이해하며 과거적 현재적 미래적으로 해석해야 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이 오른손에 붙잡고 있는 것은 일곱별의 비밀과 일곱 금 촛대입니다. 여기에서 일곱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이고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입니다. 일곱 교회를 상징하지만 예수님은 모든 교회를 오른손에 붙잡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일곱 교회는 ‘성령의 능력으로 사명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교회는 예수그리스도가 주인이시고, 예수그리스도의 명령에 의해서 움직이는 유기체입니다. 그 속에서 대위명령을 받아서 우리가 선교하고 전도하고 봉사하기 때문에 우리가 하는 것 같지만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하시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명을 받아 순종하므로 예수님의 오른손에 붙들린바 되어 시대적 사명을 감당하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어떤 이들은 계시록을 보면서 두려워하는데, 우리는 계시록을 보면서  재림신앙위에 굳게 서서 승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사도요한이 의도하는 바입니다. 1세기 성도들은 계시록을 보면서 환란과 핍박가운데서 승리하는 삶을 통해 불꽃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살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