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요한계시록강해

2.요한계시록의 주제

호리홀리 2014. 12. 15. 12:03

2.요한계시록의 주제


  계시록은 두개의 큰 세력이 긴장관계를 끌고 나가고 있습니다. 이마에 인친 14만4천의 무리와 이마에 짐승의 표 666을 받은 자들입니다. 결국은 전자의 무리들이 승리합니다. 그들은 이긴 자이며 현실을 극복하고 타개하여 승리한 자들입니다. 이것이 요한계시록의 주제입니다.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천국의 모양이나 형태, 죽음 이후의 세상 등에만 관심을 갖게 됩니다.


계시록은 천국의 인테리어나 방의 개수 등을 기록한 말씀이 아닙니다. 계시록을 가지고 장난을 치는 사람들이나 이단들이 얼마나 많은가요? 그런 것에 현혹되어서는 안 됩니다.  현실이 아무리 우리의 앞을 가로막고 발목을 붙잡는다 해도 끝까지 승리하는 성도가 되어야합니다. 현실을 책임감 있게 감당해야하며 악의 세력, 사탄의 세력에 대항해서 피 흘리기까지 싸우는 성도와 공동체가 되어야합니다.


  어떻게 싸울 것인가?

  세속적 힘의 논리를 가지고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적을 내 앞에 무릎 꿇리게 하고 싶은 유혹이 들기도 하지요. 시원할 수는 있지만 아닙니다. 우리는 종종 그런 유혹을 받습니다. 내가 힘이 좀 있다고 생각될 때에 그런 유혹을 받지요. 그러나 그것은 기독교가 아닙니다. 예수님을 어린양으로 묘사하지 않았던가요? 가장 힘없고 약한 어린양의 피 흘림과 죽으심으로 승리하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싸우는 것입니다. 전투적 교회를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세속적가치관을 갖게 되면 천국에서도 더 좋은 집 더 큰 것을 갖고 싶은 유혹이 듭니다. 이런 것을 극복하고 성경적가치관을 가지고 바르게 살게 만드는 것도 요한계시록의 기록목적중 하나입니다.


  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교회는 대표성과 보편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계시록은 다른 성경이 그러하듯 회람용입니다. 모든 이들이 계시록의 청중인 것이지요. 계시록이 묵시문학의 형태를 빌린 것은 밧모섬에서 로마의 검열을 피하고자한 목적이 가장 크다 하겠습니다.  계시록의 바벨론은 로마를 암시하고 황제는 사탄을 암시하는 1차 해석이 나오는 것입니다.  성경은 명제적형식이 아닙니다. ‘이러니 이렇게 해라’는 식의 논리가 아닌 내러티브 형식을 빌려 기록되었고 더욱 강력하게 보여주기 위해서 묵시문학의 형태를 빌린 것입니다.


  계시록을 이해하는 또 하나의 열쇄는 예배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우리는 이방인과 다른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닌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위해서 자신의 이익의 극대화를 위해서 신앙 생활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5장에서 요한은 ‘누가 인을 뗄 것인가’ 울며 통곡합니다. 그런데 드디어 천사의 음성이 들립니다. 유다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 예수그리스도라는 음성을 듣습니다.. 예수그리스도가 어떤 분인가 하고 보니  일찍 죽임을 당한 어린양입니다. 보잘 것 없는 어린양이신 그리스도, 너무나 보잘 것 없는 어린양이신, 그것도 일찍 죽음 당하신 어린양입니다. 어린양이 승리하시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계시록의 시작입니다. 거창하신 모습이 아니며 항공모함에 전투기를 가득 실은 것 같은 모습도 아닙니다. 애굽의 열 재앙의 승리도 어린양의 피가 아니었던가?  부디 기독교를 오해하거나 잘못 이해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계시록은 묵시문학의 특징대로 많은 암호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17,18장에 나오는 세상의 도성 바벨론의 1차 해석은 로마입니다. 바벨론은 하나님의 도성과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도성은 새 예루살렘을 가리킵니다. 하나님나라의 궁극적인 승리와 대조되는 바벨론의 멸망은 순식간에 일어납니다. 17장에서는 하루아침에 멸망하며,18장은 애가입니다. 666은 14만4천과 역시 대조를 이룹니다. 천국의 재료를 최고의 가치로 보여주는 것은 천국은 가장귀한 곳, 가장 가치 있는 곳이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