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요한계시록강해

서론

호리홀리 2014. 12. 14. 12:45

요한계시록강해


                                                                                                                                          

                                                                                박인대교수


  계시록은 천국의 모습이나 휴거 같은 것에 관심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그러면 계시록은 왜 기록되었을까요?  계시록을 현실도피나 휴거의 갈망, 재림의 갈망으로 몰아가서도 안 되며 두려움의 의도로 몰아가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계시록은 묵시문학의 형태를 빌어 기록되었습니다. 묵시문학의 특징은 마치 암호를 푸는 것 같이 난해합니다. 일제시대 우리 민족의 애환을 노래한 ‘울 밑에 선 봉선화야 네 모양이 처량하다’ 는 노래는 일종의 묵시 문학입니다. 요한계시록에는 666 숫자의 암호 같은 내용도 많이 있습니다.


  계시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독교적 묵시문학과 일반적 묵시문학을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 일반적 묵시문학은 세상을 이해하는 관점이 세상은 악하다고 봅니다. 세상은 악이 가득하다. 그러므로 희망이 없다는 것이지요. 진정한 희망은 다음 세상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세상을 선과 악, 성과 속의 대결구도로 이해하는 dualism(이원론적 사상)입니다. 이것이 한국교회의 계시록해석의 주류였습니다. 현실을 부정하고 현실도피·현실피안은 현실에 대한 포기, 자포자기, 실망, 좌절, 분노, 각종질병으로 나타납니다. 결국 염세적이고 비관적이며 세상을 부정적으로 보게 되지요. 세상엔 별로 관심도 없습니다. 세상을 관조하거나 시니컬한 태도를 보일 수 있습니다.


  기독교적 묵시문학은 미래에만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극복하고 타개하며 궁극적 승리를 믿고 역동적인 삶을 사는 것입니다. 현실극복, 현실타개, 현실승리가 목적입니다. 궁극적 승리를 확인하고 현실에 들어와 싸워 이기는 삶이지요. 이긴 자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요16:33절에서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에서 ‘이기었노라’는 미래완료를 사용하셨습니다. 고난, 환란, 우상숭배, 환경, 자아에 대해 이겨놓은 삶이란 것입니다. 승리하는 삶이 기독교 묵시문학의 특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