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역대상(구속사)

역대상2장,언약적계보

호리홀리 2015. 8. 18. 13:05

 1장이 이스마엘과 에서의 계보를 통해서 이방 민족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 드러냈다면, 2장부터는 야곱과 그의 열두 아들의 족보 기록함으로써 하나님의 사랑이 이스라엘 민족에게 집중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본문 1절. “이스라엘의 아들은 이러하니 르우벤과 시므온과 레위와 유다와 잇사갈과 스불론과 단과 요셉과 베냐민과 납다리와 갓과 아셀이더라.”  2장부터 8장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을 할애해서 야곱의 열두 아들, 12지파에 대한 족보를 상세히 기록합니다.  시선이 이제 이스라엘을 향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족보를 자세히 살펴보면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야곱의 장자는 르우벤입니다. 당연히 족보의 처음은 르우벤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 자리를 유다가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 르우벤이 아비인 야곱의 침상을 더럽혔던 사건으로 인해서 장자의 명분을 요셉의 아들에게 빼앗겼기 때문입니다.

 

역대기의 기록목적은 바벨론 포로의 삶에서 이제 막 벗어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의 근원과 뿌리를 상기시키는데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이 지금은 나라를 빼앗기고 모든 것이 무너져 잿더미가 된 그 나라가 되었지만 그들은 여전히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으로 이어지는 하나님과의 언약의 관계 속에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에 기록된 대로 유다의 후손에는 다윗이 있었습니다. 그 다윗은 하나님과의 언약 안에서 이스라엘의 부흥을 이끌었던 왕이었습니다. 유다로부터 시작하여 이어지는 다윗의 계보를 가장 먼저 언급함으로써 그들이 여전히 하나님의 약속과 하나님의 은총 안에 있는 민족임을 상기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혈통으로나 육으로는 이스라엘이 아닙니다. 그러나 유다와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우리는 영적 이스라엘이 됩니다. 이스라엘이 바벨론과 앗수르라는 거대한 나라의 침략을 받았던 것처럼 영적 이스라엘인 우리들도 세상의 거센 공격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의 성벽이 무너지고 성전이 파괴되어 진 것처럼, 우리들의 거룩과 우리들의 믿음이 거센 공격에 무너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의 언약 안에 있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의 은총 안에 있는 자들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그 은혜가 우리를 회복시키고 그 언약이 우리를 다시 하나님의 자녀로 세워주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빌립보서 6장 6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구원을 시작하신 하나님께서 쓰러져 있는 우리들을 내버려 두시지 않습니다. 우리를 일으켜 세우셔서 하나님의 영광의 날까지 이끌고 가십니다. 역대기의 저자가 처참한 현실가운데 낙망해 있는 이스라엘에 보낸 메시지가 바로 이것입니다. 

유다지파의 계보를 잇는 두 명의 여인을 소개합니다. 가나안 사람 수아의 딸과 다말입니다. 사실, 이 두 여인의 이름이 굳이 족보에 기록될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첫 여인은 가나안 사람 수아의 딸, 즉 이방여인이었습니다. 두 번째 여인은 유다의 며느리인 다말입니다. 대를 잇기 위해 창기의 모습으로 시아버지와 관계를 맺고 아들을 낳은 여인입니다. 이 떳떳하지 못한 두 여인을 족보에 기록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죄에 대한 하나님의 너그러우심을 보여주기 위해서 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죄를 싫어하십니다. 죄는 속성상 하나님과 원수가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죄 때문에 독생자를 버리셔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두 여인을 유다 족보에 기록한 것은 그들의 죄를 간과하신 것이 아니라 그런 온전치 못한 인생을 언약백성 삼으셔서 주님의 뜻을 이루신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었습니다.

3절입니다. “유다의 아들은 에르와 오난과 셀라니 이 세 사람은 가나안 사람 수아의 딸이 유다에게 낳아 준 자요 유다의 맏아들 에르는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죽이셨고” 본문 7절입니다. “갈미의 아들은 아갈이니 그는 진멸시킬 물건을 범하여 이스라엘을 괴롭힌 자며” 유다의 두 여인의 후손 중에 에르와 아갈에 관한 기록입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이름만 간단히 명기하고 있는 것과 비교해서 이들의 죄를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죄에 대해서 결코 용납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한  의중을 엿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언약의 관계에 있다는 것은 종국에 하나님의 영광 잔치에 참여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담보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가 죄를 지어도 된다는 핑계나 근거가 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그 은혜 안에 있기에 우리는 더욱 죄에 대하여 죽은 자로 살아가야 합니다. 언약 안에 있기에 우리는 더욱 주님과의 신실한 약속을 지켜 행해야 합니다.

우리는 유다와 다윗의 후손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동참한 은혜 받은 자들입니다. 그 은혜를 받았다는 것은 우리가 어떠한 실수와 넘어짐에도 다시 일어설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 언약 안에 있다는 것은 죄에 대하여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며 거룩한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늘 하루도 은혜 받은 자로, 언약 안에 있는 자로서의 삶을 기쁘게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