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데살로니가 후서

데살로니가후서3:1~5,중보기도의 사명

호리홀리 2015. 6. 26. 11:05

3장: 재림 신앙

1-5절, 중보기도의 사명

[1, 2] 종말로 형제들아, 너희는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주의 말씀이 너희 가운데서와 같이 달음질하여 영광스럽게 되고 또한 우리를 무리하고 악한 사람들에게서 건지옵소서 하라.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님이라.

본문은 바울 사도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기도를 부탁하는 말씀이다. 데살로니가전서 5:25에서도, 바울 사도는 “형제들아,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말씀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기도의 효력, 즉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들어주신다는 것을 믿는다면, 우리는 무슨 일을 위해서든지 하나님께 기도해야 할 것이다. 특히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꾼들을 위하는 가장 좋은 길은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다.

 

바울 사도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부탁한 기도 제목은 두 가지이었다. 첫번째는, 주의 말씀이 그들 가운데서와 같이 달음질하여 영광스럽게 되기를 기도하라는 것이었다. 바울 사도가 전한 주의 말씀은 데살로니가 교인들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였었다. 데살로니가전서 1:5에서 바울 사도는, “이는 우리 복음이 말로만 너희에게 이른 것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이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떠한 사람이 된 것은 너희 아는 바와 같으니라”고 증거하였었다. 이제 그는, 주의 말씀이 그들 속에서 그렇게 힘있게 역사한 것처럼, 그 동일한 말씀이 또 다른 곳의 다른 사람들 속에서도 힘있게 역사하기를 기도하라는 것이었다.

‘달음질한다’는 말(트레코)은 ‘자유로이 혹은 빠르게 전진한다’는 뜻이다. 주의 말씀이 달음질하기를 원한다는 말은 주의 말씀이 자유로이 또 빠르게 전파되기를 원한다는 뜻이다. ‘영광스럽게 되기’를 기도하라는 것도 주의 말씀이 무능하고 무력하여 사람들에게 무시당하지 않고 영혼들을 구원하고 변화시키는 역사가 있기를 기도하라는 뜻이다. 말씀의 힘있는 역사(役事), 이것은 언제나 어느 곳에서나 말씀의 일꾼들이 간절히 소원하는 일이다. 왜냐하면 말씀의 효력 있는 역사가 있을 때에 하나님의 일이 이루어지고 교회가 든든히 세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말씀의 힘있는 역사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실 때만 가능하다.

 

바울이 교인들에게 부탁한 두번째 기도 제목은, 바울 일행을 무리하고 악한 사람들에게서 건져달라는 것이었다. ‘무리하다’는 원어(아토포스)는 ‘제자리에 있지 않다’는 말로서 ‘이성과 양심을 저버리다, 악하다’는 뜻을 가진다. 바울이 이런 기도를 부탁한 것은 육신의 죽음을 두려워했기 때문이 아니고 복음 전파의 직무를 다하기를 원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주께서는 제자들에게,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고 말씀하셨다(마 10:39). 바울 자신도,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라고 고백한 적이 있다(행 20:24).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님이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 모든 사람에게 전파되어야 하지만, 모든 사람이 다 믿는 것이 아님을 증거한다. 요한복음에 보면, 예수님을 따르던 많은 제자들은 그를 떠나갔고 더 이상 그와 함께 다니지 않은 때가 있었다(요 6:66). 사도행전에 보면, 바울 사도가 죄수의 몸으로 로마에 도착하여 날을 정하고 모여온 유대인들에게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강론했을 때 그 말을 믿는 사람들도 있고 믿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다(행 28:24). 심지어 지금 믿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 중에도 하나님께서 참으로 구원하신 자가 아니면 어느 날 떠나갈 수도 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심은 것마다 내 천부께서 심으시지 않은 것은 뽑힐 것이니”라고 말씀하셨다(마 15:13).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믿지 않는 자들의 믿지 않음이나 방해와 해침과 핍박을 이상히 여기지 말고 그들에게서 떠나서 다른 곳으로 가서 또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주님 자신의 가르치신 바이었고 또 사도들이 행한 바이었다. 복음서에 보면, 주께서는,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도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고 말씀하셨다(마 10:14). 사도행전 18:6, 7에는 이런 기록이 있다: “저희가 대적하여 훼방하거늘 바울이 옷을 떨어 가로되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나는 깨끗하니라. 이 후에는 이방인에게로 가리라’ 하고 거기서 옮겨 하나님을 공경하는 디도 유스도라 하는 사람의 집에 들어가니 그 집이 회당 옆이라.” 비록 우리가 지금 믿지 않는 사람들을 완전히 포기해 버리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그들에게만 얽매이지 말고 또 다른 곳, 또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할 것이다.

 

 

[3, 4] 주는 미쁘사 너희를 굳게 하시고 악한 자에게서 지키시리라. 너희에게 대하여는 우리의 명한 것을 너희가 행하고 또 행할 줄을 우리가 주 안에서 확신하노니.

본문은 바울의 확신을 증거한다. 먼저, 그는 주께서 미쁘셔서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굳게 하시고 악한 자에게서 지키실 것을 확신하였다. ‘미쁘다’는 말(피스토스)은 ‘신실하다’는 뜻이다. ‘굳게 하신다’는 말은 믿음의 견고함을 가리킨다. 하나님은 우리의 구주이시다. 그는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고 그 믿음이 자라 견고하여지게 하신다. 우리의 믿음의 시작과 성장과 견고함은 다 신실하신 우리 구주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빌립보서에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고 증거하였다(빌 1:6). 또 히브리서에는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믿음의 시작자요 완성자이신] 예수를 바라보자”라는 권면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히 12:2).

‘악한 자에게서 지키신다’는 말에서, ‘악한 자에게서’라는 원어(아포 투 포네루)는 옛날 영어성경처럼 ‘악으로부터’라고도 번역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악한 자 곧 마귀의 시험과 유혹에 넘어지지 않도록 지키실 뿐만 아니라, 또한 악에 빠지지 않게 지키신다. 구주이신 하나님께서는 결코 우리를 죄악에 빠지게 버려두지 않으신다. 우리가 잠시 연약에 떨어질지라도 주께서는 즉시 우리를 일깨우셔서 그 연약에서 우리를 건지셔서 우리로 하여금 그 연약에서 떠나게 하신다. 그러므로 주께서 가르쳐주신 기도에서도,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고 했다.

바울 사도는 또한 데살로니가 교인들에 관해서 그들의 진실한 믿음과 순종을 확신한다. “우리의 명한 것을 너희가 행하고 또 행할 줄을 우리가 주 안에서 확신하노니.” 이것은 ‘주 안에서’의 확신이었다. 즉 바울 사도는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굳게 하시고 그들을 악한 자에게서 혹은 악으로부터 지켜주실 신실하신 주님 때문에 그들의 순종을 확신한 것이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그가 명한 것을 행하고 또 행할 것을 확신했다. 본절을 다시 번역하면, “너희에게 대하여는 우리의 명한 것을 너희가 행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앞으로도 행할 줄을 우리가 주 안에서 확신하노니”이다. ‘우리가 명한 것’이란 신약성경에 기록된 사도들의 교훈들을 가리킨다. 바울은 그들이 지금도 그 사도적 교훈을 순종하고 있으며 또 앞으로도 계속 그러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주님 안에서, 주님 때문에 그가 가지는 확신이었다. 오늘날도 성경말씀에 근거한 성실한 성경적 교훈들이 성도들에게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교회가 인간 설교자인 목사에게만 맡겨져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친히 도우시고 돌보신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5] 주께서 너희 마음을 인도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가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본절은 바울 사도의 기원의 말씀이다(‘인도 . . . 하시기를 원하노라’, 카튜뒤나이, 희구법). 바울 사도는 주께서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마음을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 안으로 인도하시기를 기원하였다. 신앙 생활에 있어서 마음이 매우 중요하다. 신명기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고 가르치셨다(신 6:5). 잠언에는,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말씀했다(잠 4:23). 우리의 마음이 중요하다. 우리는 마음을 헛된 데 두지 말고, 하나님의 바른 인도하심을 받아야 한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 안으로 인도하시기를 기원했다.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친히 보이셨고 또 우리 속에 일으시키는 사랑’을 가리킬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형제에 대한 사랑을 다 포함할 것이다. ‘그리스도의 인내’라는 말도 ‘그리스도께서 친히 십자가 위에서 보이셨고 또 우리 속에 주시는 인내’를 가리키는 것 같다. 이것은 그리스도 때문에 당하는 고난을 참게 하고 또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게 하는 인내이다.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는 모든 시대의 모든 성도에게 참으로 필요한 덕이다. 모든 성도가 하나님의 인도하심 속에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 안으로 들어가게 되기를 우리는 원한다.

 

결론적으로, 1절부터 5절까지에는 바울 사도의 권면과 확신과 기원의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오늘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첫째로, 성도들이 목사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 필요하다. 성도들은 특히 그들의 목사가 전하는 말씀이 사람들 속에 힘있게 역사하기를 위해 기도해야 할 것이다. 바울처럼 나도 여러분에게 이 기도 제목을 부탁드리고 싶다. 전파되는 주의 말씀이 사람들 속에 힘있게 역사하도록 여러분이 하나님께 기도해주기를!

둘째로, 우리는 오늘도 하나님께서 진실한 성도들을 굳게 하시고 그들을 악한 자에게서 지키시며 바른 성경 교훈을 순종하게 하실 것을 확신하자. 하나님의 교회는 연약한 인간 설교자 목사의 손 안에 있지 않고 우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시고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시는 신실하신 구원자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

셋째로, 그러나 우리는 동시에 하나님께 끊임 없이 기도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바울 사도처럼 주께서 우리 마음을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 안으로 인도하시기를 기도하자. 하나님의 도우심의 확신은 기도를 불필요하게 만들지 않고 오히려 더욱 기도하게 만든다. 주께서 우리를 도우시고 돌보실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낙망치 않고 주께 기도하는 것이다.

성도의 믿음이 힘있게 전파되고 굳세어지는 것은 이와 같이 기도의 교통을 통해서이다. 목사를 위한 성도들의 기도와, 성도들을 위한 목사의 기도, 이러한 기도의 교통을 통해 하나님의 일이 흥왕하여지고 성도들의 믿음이 굳세어진다. 우리는 말씀의 흥왕함을 위하여 그리고 우리 자신과 다른 이들의 믿음의 굳건함과 순종과 사랑과 인내를 위하여 힘써 기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