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데살로니가 후서

데살로니가후서1:3~4,감사

호리홀리 2015. 6. 26. 10:14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할지니 이것이 당연함은 너희 믿음이 더욱 자라고 너희가 다 각기 서로 사랑함이 풍성함이며.

 ‘하나님께 감사할지니’라는 말은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지니’라고 번역하는 것이 원문의 뜻을 더 잘 드러낼 것이다. 바울 사도는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위해 항상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며 그것이 합당하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첫째로, 그들의 믿음이 더욱 자라기 때문이었다. ‘더욱 자란다’는 원어(훼페르아욱사노)는 ‘크게 자란다’는 뜻이다.

믿음은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는 것인 동시에 성경말씀을 믿는 것이다. 믿음은 단순히 신비한 감정이나 경험이 아니고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을 포함한다. 또한, ‘너희 믿음’이라는 말은 교회의 한두 사람의 믿음이 아니고 교인들 다수의 믿음을 가리킨다. 교회는 한두 사람만 잘 믿으면 되는 것이 아니고 전체가 잘 믿어야 한다. 그러므로 교회는 모이기를 힘써야 하고 모여서 말씀을 배우기를 힘써야 한다. 그래서 일치된 견고한 믿음과 지식을 가지고 주를 따르며 섬겨야 한다.

본문은 우리의 믿음이 자라야 함을 증거한다. 주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씨로 비유하셨다(마 13장). 땅에 심긴 씨는 싹을 내고 자라서 나무가 되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다. 이와 비슷하게, 우리가 받은 말씀과 그 믿음도 자란다. 어린 나무는 강한 바람을 견디기에 힘들지만, 크게 자란 나무는 강한 바람도 잘 견디어 낸다. 그것은 깊이 뿌리를 내렸고 가지가 굵어졌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의 믿음도 성경 말씀에 뿌리를 깊이 내려 견고한 지식을 가지고 순종으로 단련되면 강하여져서 어려운 시험과 환난도 이겨내는 강한 믿음이 될 것이다.

우리의 믿음의 성장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다. 고린도전서 3:6, 7에서 바울 사도는,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뿐이니라”고 증거하였다.  교회 건립이란 하나님의 택하신 모든 사람들의 완전한 구원을 가리키는데, 그 일 속에는 성도들의 세상에서의 거룩함과, 믿음의 성장과 온전함도 포함된다.  교회의 건립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이며 하나님의 영의 사역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지옥]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고 하셨다(마 16:18). 또 구약 스가랴 4:6에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영]으로 되느니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참된 성전 건립이 하나님의 영으로 이루어짐을 말씀하신 것이다. 우리의 믿음의 성장을 포함하여 성전 건립과 교회의 건립은 오직 하나님께서, 주 예수께서, 성령께서 하시는 은혜로운 사역이다.

물론 인간편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의 믿음의 확실함과 견고함을 위해 주신 성경책을 부지런히 읽고 배우며 믿음의 성장을 위해 기도하며 또 아는 만큼, 배운 만큼 하나님께 성실히 순종하는 일이 필요하다. 특히, 로마서 10:17의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는 말씀을 볼 때, 우리는 믿음의 성장을 위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부지런히 읽고 배우며 묵상해야 할 것이다.

바울 사도의 감사의 이유는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믿음의 큰 성장 뿐만 아니라, 또한 그들의 사랑의 풍성함 때문이었다. 바울 사도는 본절에서 “너희가 다 각기 서로 사랑함이 풍성함이며”라고 말씀했다. ‘너희가 다 각기’라는 말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전체적으로 사랑을 풍성하게 실천했음을 증거한다.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새 계명을 그들은 지켰다.

사랑은 구체적으로 거룩한 교제와 서로를 돌아보는 수고를 통해 표현된다. 사랑하려면 우선 모이기를 힘써야 한다. 그래서 히브리서 10:24, 25에는,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페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고 말씀했다. 교회는 모이기를 힘써야 하고 모여서 서로 교제하고 서로 돌아보아야 한다.

 

사랑은 수고를 동반한다. 주께서는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라고 말씀하셨고(요 15:13), 친히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려고 십자가 위에 달려 돌아가셨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확증이며 모범이었다(롬 5:8; 요일 4:9, 10). 요한 사도는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고 가르쳤다(요일 3:18). 사랑은 구체적인 수고의 행위이다. 초대 예루살렘 교회는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줌으로써’ 사랑을 실천하였다(행 2:44, 45). 가난한 자를 무시하거나 멸시하지 않고 그에게 필요한 것을 주며 구제하는 것, 병든 자를 심방하여 위로하고 격려하는 것, 이런 일이 사랑의 구체적 행위다.

참된 사랑은 고린도전서 13장에 다음과 같이 잘 묘사되어 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4-7절).

 

 

 그리고 너희의 참는 모든 핍박과 환난 중에서 너희 인내와 믿음을 인하여 하나님의 여러 교회에서 우리가 친히 자랑함이라.

3절 끝과 4절 처음의 말은, 원문을 직역하면, ‘풍성함이며 그리고’보다 ‘풍성하여 그래서’이다. 그러나 그 뜻은 우리말 번역대로 바울의 감사의 또 하나의 이유를 보인다. 바울 사도는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많은 핍박과 환난 중에서도 인내와 믿음을 가졌기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한다. 세상은 사탄과 악령들이 어느 정도 주관하며 악인들이 활개치기 때문에 의롭고 경건한 성도들은 이 세상에서 각양의 핍박과 환난을 당한다. 디모데후서 3:12은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고 말씀했다. 역사상, 진실한 성도들은 믿음 때문에 굶고 헐벗어야 했고 정처 없이 방황하고 또 죽임을 당해야 했다.

그러나 우리는 고난 중에서도 참고 견디어야 한다. 특히 예수님의 재림 직전의 대환난 시대에 우리에게는 ‘믿음과 인내’가 필요하다. 요한계시록 13:10은, 적그리스도가 출현하여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될 것을 예언하면서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필요함을 강조하였다. 요한계시록 14:12도,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라고 말씀했다. 또 요한계시록 2:10은 말씀하기를,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고 했다.

성도들이 이 세상에서 모든 핍박과 환난을 참아야 할 이유는, 첫째로 하나님께서 살아계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살아계셔서 우리의 당하는 고난들을 다 보시고 알고 계신다. 그러므로 의로운 욥은 극심한 고난 중에 고백하기를,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고 하였다(욥 23:10).

성도들이 세상에서 모든 핍박과 환난을 참아야 할 또 하나의 이유는 그것들이 영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환난이 길어보여도 하나님이 주신 영생에 비교하면 잠간에 불과하다. 고린도후서 4:16, 17은 말씀하기를,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라고 했다.

성도들이 세상에서 모든 핍박과 환난을 참을 수 있는 이유는, 셋째로, 마침내 하나님의 나라가 이기고 하나님의 진리가 승리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소망의 내용들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로마서 5:3, 4에는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라고 말씀했다.

 

결론적으로, 2, 3절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과  교회를 위한 중요한 기도 제목을 찾는다. 첫째로, 우리는 우리 자신과  교회 전체의 믿음이 크게 자라기를 기도하자. 믿음의 성장은 하나님의 은혜로만 된다. 물론 우리편에서도 우리는 모이기를 힘쓰고, 성경을 읽고 배우기를 힘쓰고, 기도하고 순종하기를 힘써야 할 것이다.

둘째로, 우리는 성도들 간의 사랑이 풍성하기를 기도하자. 우리는 모이기를 힘쓰는 가운데 서로 교제하고 서로를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특히 가난한 형제들을 구제하고 병든 자들이나 어려움을 당한 자들을 심방하여 위로하고 격려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참된 사랑 곧 오래 참고 온유하고 상대의 유익을 먼저 생각하는 사랑을 가지고 그렇게 해야 할 것이다.

셋째로, 우리는 모든 핍박과 환난 가운데서도 참고 견디는 자가 되기를 기도하자. 우리는 마침내 하나님의 나라가 이기고 하나님의 진리가 승리할 것을 믿는다. 또 영원한 천국에 비하면 현재의 고난이 잠간에 불과하다는 것을 안다. 그러므로 소망을 가지고 참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