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강좌/언약신학

다윗 언약

호리홀리 2015. 6. 22. 20:22

다윗 언약 

 

구속사적 관점에서 성경을 볼 때, 사무엘하 7장은 구약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왜냐하면 언약사적인 관점에서 볼 때, ‘다윗 왕조의 언약’은 ‘모든 질서의 시작에 관한 언약을 담고 있는 창조 언약’(창 1~2장), ‘창조 질서의 보존을 약속한 노아 언약’(창 8:20~17), ‘후손과 땅을 약속한 아브라함언약’(창 15:1~21), ‘계명의 언약인 시내산 언약’(출 19~24장)과 밀접하게 이어지며, 나아가 구약에서 마지막으로 구원사의 완성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약속하여 주신 ‘새 언약’(렘 31:31~34)으로 나아가는 주요 발판이 되기 때문이다.

다윗 언약이 창조 언약과 이어지는 것은 하나님께서 온 우주를 창조하시고, 만물을 돌보고 다스리는 권세를 자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신 아담에게 주셨으나,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통치자들이 하나님의 왕권을 올바로 행사하지 못했기 때문에, 새 아담인 다윗에게 주님은 자신의 왕권을 이제 위임하시고,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두어 다스리게 하셨기 때문이다(시 8, 72편).

다윗 언약이 보존언약인 노아 언약과 이어지는 것은, 인간의 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총이 계속되는 ‘무조건성’이 다윗 언약에서 ‘징계에도 불구하고 언약이 지속되는 무조건성’으로 이어질 뿐 아니라(삼하 7:14하),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보전하시는 방편이 장차 오는 다윗 왕권을 통하여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사야가 바라본 다윗의 후손 메시아 왕은 온 우주에 참된 평화와 질서를 가져오는 분으로 그려지고 있다(사 11:1~9).

다윗 언약이 약속의 언약인 아브라함 언약과 이어진 것은, 두 언약이 모두 ‘은혜 언약’으로서 중심 성격을 띨 뿐 아니라, 두 언약이 항상 언약의 당사자에게 ‘믿음’을 요청하고 있으며(창 15:6; 사 7:9하), 아브라함 언약의 중심 약속을 이루는 ‘후손’과 ‘땅’이 다윗 언약에서 ‘후손’과 ‘보좌’와 ‘땅’(시 2:8)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시내산 언약은 주님의 주권적인 의지로 시작되었을 뿐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원을 받은 후, 하나님의 백성의 도리를 따라 살도록 율법과 계명을 선물로 주신 언약이었으므로 기본적으로 ‘은혜 언약’의 틀 속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무엇보다도 시내산 언약은 아브라함 언약의 큰 틀 속에서, 이제 아브라함의 후손이 나라와 백성을 이룬 후, 참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삶의 내용에 관한 법도와 계명들이 주어지고 있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시내산 언약에서 그들은 자발적으로 주님의 왕권을 받아들였으며, 주님을 섬기기로 헌신하였다(출 19:8). 시내산 언약을 통하여, 왕과 백성으로서 주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공식적이고, 자발적인 관계가 세워진 것이다. 이제 시내산 언약의 큰 틀 속에서 다윗 언약이 주어진다. 즉 다윗 언약은 아브라함 언약과 시내산 언약의 틀 속에서 다윗의 왕권을 중심으로 움직여지는 언약의 체계이다. 달리 말하자면, 다윗 언약은 이전 언약을 폐기하지 않으며, 강화시키고 있다. 특히 이 언약에서 주님은 자신의 왕권을 다윗에게 위임하셔서, 다윗 왕을 통한 통치를 시작하셨다. 이제 주님에게 순종하는 것은 다윗에게 순종하는 것이며, 다윗을 거스르는 것은 주님을 거스르는 것이 되었다. 다윗과 그의 후손들은 주님의 율법 아래에 있었으며, 주님께 순종하는 모범을 보여야 했다.

불행하게도 다윗 언약은 다윗 후손들의 범죄와 연약함으로 하나님께서 원래 목적하신 뜻을 이루지 못하고, 다윗 왕조는 파산하며, 성전은 무너지고, 백성들은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가게 되었다. 이런 배경 속에서 예레미야와 에스겔은 우리의 마음을 말씀과 성령으로 새롭게 하시는 새 언약의 은총을 바라보게 되었다.

구약성경에 나타나는 주된 언약들은 하나님의 구원의 경륜을 이루는 하나님의 계획으로서 통일성을 이루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사의 완성을 이루어 가는 주된 과정으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사무엘하 7장은 단지 이스라엘 왕국사에서 역사의 한 단면만을 보여주는 이야기가 아니라, 성경 전체의 맥을 이루는 중요한 장으로 자리잡고 있다. 


뿐만 아니라, 사무엘하 7장은 사무엘상하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를 잡고 있다. 사무엘서는 이스라엘 역사에서 사사시대가 끝나고, 왕정시대가 시작되는 시점으로 시작되어, 다윗 왕조가 완전히 자리를 잡는 것으로 끝나고 있다. 특히 본서는 “한나의 기도”로 시작하고(삼상 2장), “다윗의 기도”로 마치는(삼하 23장) 수미일치의 형식으로 짜여져 있다. 한나의 기도는 ‘하나님이 세우신 왕’과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자’를 통한 주님의 통치를 바라보고 있는데(삼상 2:10), 다윗은 그의 유언에서 자신이 바로 ‘하나님께로부터 기름 부음 받은 자’이며(삼하 23:1), ‘하나님이 나와 더불어 영원한 언약’을 세웠다고 고백한다. 즉 사무엘상은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바라보며, 사무엘하는 그 사람이 바로 다윗임을 증거해 준다. 이 중앙에 고리를 만들어 주는 것이 사무엘하 7장의 다윗 언약이다. 물론 다윗 언약은 사무엘서로 끝나지 않고 열왕기서로 이어진다. 다윗은 임종 직전에, 그의 아들 솔로몬에게 그가 여전히 ‘모세 언약’ 아래에 있음과(왕하 2:3), 그가 다윗 언약의 당사자로서 ‘왕조’와 ‘후손’의 약속을 갖고 있음을 말해준다(왕하 2:4). 열왕기서에서 다윗의 후손은 계속 하나님 앞에 실패하지만, 주님은 ‘다윗을 위하여 등불을 끄지 아니하시고 있음’을 열왕기서 저자는 언급함으로써, 다윗 언약이 계속 효력을 발휘하고 있음을 증거해 간다. 그는 끝으로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여호야긴의 석방’을 다룸으로써, 다윗 언약의 약속이 새롭게 이루어질 것을 희망하고 있다(왕하 25:27~30).


사무엘하 7장의 인접 문맥을 살펴보면, 다윗은 이제 통일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삼하 5장). 왕으로서 다윗은 무엇보다도 먼저 아비나답의 집에 수십 년 동안 방치된 하나님의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가져와, 예루살렘의 이스라엘 신앙의 구심점으로 만들며, 장차 시온신학의 발판을 만들었다(삼하 6장). 이런 배경 속에서 다윗은 하나님의 법궤를 안치할 수 있는 ‘성전’을 짓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며, 자신의 뜻을 선지자 나단에게 전한다(삼하 7:1~2). 고대 근동아시아의 여러 왕들이 왕권을 확립한 후에 성전을 세우는 관습을 생각해 본다면, 다윗의 뜻은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겨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울은 하나님의 법궤를 안치할 성전을 지을 것에 대해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는 점을 고려해 볼 때, 다윗의 소원은 아름다운 것이었다. 그는 특히 자신이 ‘백향목 궁’에 살지만,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 있다’는 점에 대해 부담감을 가진다. 다윗은 ‘하나님의 궤’에 대해 특별한 애정과 관심을 갖고 있었다.


다윗은 ‘하나님의 집’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었으며, ‘하나님의 집’을 짓고자 하는 소원을 나단에게 말한다. 그때 나단은 “여호와께서 왕과 함께 계시니 무릇 마음에 있는 바를 행하소서”라며, 크게 기뻐하였다(삼하 7:3).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그의 종 선지자 나단과 달랐다. 주님께서는 나단을 통하여 “너가 나를 위하여 나의 집을 세우겠느냐 아니라 내가 너를 위하여 너의 집을 세우리라”는 왕조 창건의 신탁을 주셨다. 이리하여 다윗 언약은 하나님께서 선지자 나단을 통하여 주신 신탁의 형식으로 제시되고 있다. 여기의 말씀을 몇 가지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네가 나를 위하여 나의 거할 집을 건축하겠느냐”(5절). 대답은 “아니다”이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인 다윗뿐 아니라, 그 어느 누구도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사실 집을 건축할 수 없다.” 하나님은 스스로 계신다. 이후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성전 봉헌을 드리면서, “하나님이 참으로 땅에 거하시리이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전이오리이까”라며, 자신이 지은 성전이 하나님께 보잘 것 없음을 고백하고 있다(왕하 8:27).


(2) 주님은 출애굽으로부터 지금까지 “집에 거하지 아니하고 장막과 회막에 거하며 행하였으며”(6절), 나아가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그 어느 사사에게도 “너희가 어찌하여 나를 위하여 백향목 집을 건축하지 아니하였느냐”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7절). 즉 주님은 자신의 구원사를 성막 중심으로 그동안 이끌어 오셨으며, 이방 나라들과는 달리 성전이 없어서 한번도 섭섭하신 적이 없었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위하여 성전을 짓고자 한 다윗을 하나님은 기뻐하셨으며, 그에게 ‘임마누엘’의 약속과(9절상반절), “너의 이름을 위대하게 해주겠다”는 약속과(9절하반절), “평화의 통치를 이룰 수 있도록 도우시겠다”는 약속을 주신다(10~11절). 즉 다윗은 주님의 집을 지으려고 하였지만, 오히려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지어주실 것이다”(11절하반절). 여기에서 ‘집’은 ‘왕조’를 의미한다. 이리하여 나단의 신탁은 ‘왕조창건의 신탁’이 된다.

(4) 이리하여 주님께서 다윗에게 주신 모든 약속은 다윗의 당대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의 후손에게까지 넘어가는 ‘영원한’ 약속이 되었다. 주님께서는 구체적으로 ‘후손’(zera)과 ‘보좌’(kisse)를 약속하셨다(12, 13절). 여기에서 ‘후손’은 구체적으로 ‘솔로몬’을 가리킨다. 솔로몬은 “네 몸에서 날 네 씨”로 언급되며(12절),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 나라 위를 영원히 견고케 하리라”고 한다(13절). 사실 ‘후손’과 ‘보좌’는 왕권을 구성하는 두 개의 중심 요소이다. ‘왕의 후손’에게는 ‘보좌’가 있어야 하며, ‘후손’이 있어도 ‘보좌’가 없다면 그는 더 이상 왕으로서의 직무를 수행할 수 없다. 따라서 주님은 다윗에게 ‘후손’과 ‘보좌’를 동시에 약속하신다.

(5) 다윗 언약에서 하나님과 다윗 후손의 관계는 ‘부자관계’로 수립된다. “나는 그 아비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14절상반절). 이리하여 다윗의 후손은 하나님의 아들로 입양되며, 언약관계를 맺게 된다.

(6) 주님께서는 이제 다윗의 후손들과 무조건적인 언약을 맺으실 것이다. 이 언약은 “그가 만일 죄를 범 하면 내가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내가 네 앞에서 폐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 것 같이 그에게서는 빼앗지 아니하리라”로 소개되고 있다(14절하반절~15절). 즉 다윗의 후손이 범죄할 때 징계는 있겠지만, 하나님의 은총을 완전히 거두시지는 않겠다고 약속하신다. 무조건적인 언약이란 언약 속에 조건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그 조건이 인간 당사자에 의해 파기되어도, 그 후손을 통하여 계속 관계를 유지해 간다는 점에서 무조건적이다.

(7) 다윗의 집은 영원할 것이다. “네 집과 네 나라가 네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16절). 이 하나님의 불변하는 약속은 역사적인 가변성과 근본적으로 갈등을 갖고 있다. 다윗의 후손들은 다윗만큼 주님을 향한 충성심이 없었다. 만약 그들이 계속해서 실패한다면, 하나님의 약속은 어떻게 될 것인가? 따라서 이 약속은 수많은 역사적 가변성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이 궁극적으로 이루어질 것을 바라보고 있다.


사무엘하 7장에 있는 왕조의 약속은 이후 선지서와 신약성경에서 메시아 왕의 도래를 기다리는 메시아 사상의 모판이 되고 있다. 나단의 신탁은 궁극적으로 장차 오실 다윗 왕과 그의 왕국에 대한 소망을 담고 있다. 그 완성은 장차 올 다윗의 후손들뿐 아니라, 한 명의 이상적인 후손 왕에게서 이루어질 것을 바라보고 있다. 따라서 사무엘하 7장에 담긴 메시자적 기대는 이후 시편과 선지서와 신약성경으로 이어지면서, 더욱 확장되고 강화되며, 그 왕과 왕국의 정체는 구속 역사의 발전 속에서 점차 명료해질 것이었다.

이후 사무엘 7장에 나타난 다윗 언약은 먼저 다윗의 유언(삼하 23:1~7)에서 새로운 강조점과 함께 발전되며 심화되고 있다. 여기에서 다윗은 이제 선지자적인 은사를 받은 자로서(2~3절), 왕조 약속의 신적 기원과 영원한 정당성을 천명하고 있다. 특히 다윗은 (1) ‘높이 들린 자’이며, (2) 주님께 ‘기름 부음 받은 자’이며, (3) 이스라엘을 지키는 자의 ‘사랑을 받은 자’로 소개된다. 나아가 그의 왕국은 (1) 주님을 경외함과 (2) 사람을 공의로 다스리는 것을 중심 특징으로 갖고 있다(3~4절). 요약하자면, 다윗의 후손만이 정당한 통치권을 가지며, 그만이 하나님의 나라에 축복과 풍년과 평화와 안녕을 가져온다고 말함으로써, 다윗 왕국의 영속성이 주님께서 허락하신 ‘영원한 언약’에 근거함을 밝히고 있다.

사무엘하 7장의 나단 신탁은 이후 시편 2편에서 이상적인 왕권을 가진 왕으로 새롭게 그려진다. 여기에서 다윗 왕은 (1) 하나님께서 시온 산에 세운 왕이시며(6절), (2) 하나님의 아들이며(7절), (3) 열방을 유업으로 물려받은 자이며(8절), (4) 그의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를 것(8절하반절)을 약속 받고 있다. 이것은 단순한 과장법이나 환상적 그림이 아니라, 참된 메시아 왕권에 대한 주님의 계시로 주어지고 있다.

나단 신탁에 나타난 메시아 사상과 다윗 언약은 시편 89편에서 만개되어 나타난다. 이 시편에서 다윗은 단지 ‘왕’이나 ‘하나님의 아들’로 나타나지 않는다. 그는 ‘주님의 택한 자’(bachir), ‘주의 종’(‘ebed), ‘경건한 자’(chasid, 19절), ‘용사’(gibbor, 19절), ‘기름부음 받은 자’(mesiach, 20절), ‘주의 아들’(ben), ‘주의 장자’(bekor, 27절), ‘세계 열왕의 으뜸’(‘elyon, 27절)으로 나타나고 있다. 시편 89편에서는 다윗 왕뿐 아니라, 그의 왕조도 이상적으로 묘사된다. 그의 나라는 ‘태양과 달’의 은유로 비교된다(36~37절). 오직 다윗의 후손에게만 주님께서 왕권의 정당성을 부여하셨다. 다윗의 왕권은 주님께서 친히 세우셨으며, 주님의 왕권의 기초가 되는 ‘의, 공평, 인자함, 성실함’ 위에 서 있다(14, 30~33절). 무엇보다도 다윗 왕은 여기에서 수난 받는 메시아 왕이다. 그는 주님께 버림받았으며(38절), “그의 왕관은 땅에 던져져 더러워졌으며”(39절), “그의 보좌는 땅에 엎어지고”(44절), 그의 원수들은 그를 포위하고 노략하고 능욕한다(31~42절). 그의 영광은 사라졌고(44절), 그는 수치로 몸둘 바를 모른다(44절). 수난 받는 주님의 종으로서의 다윗 왕의 모습은 이후 수난 당하는 메시아 사상으로 전개될 것이다. 



사무엘하 7장은 사무엘하 23장의 다윗의 유언과 시편 2, 72, 89편뿐 아니라 선지서의 수많은 예언들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본문을 전체적으로 기독론적 관점에서 생각해야 할 것이다. 즉 나단의 신탁에 담긴 모든 약속들은 궁극적으로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궁극적으로 성취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즉 예수 그리스도는 사무엘하 7장이 바라본 다윗의 후손으로서, 주님의 선택된 자요(삼하 7:8), 임마누엘이시며(9절), 위대한 이름을 얻으신이시요(9절하반절; 빌 2:9~11), 모든 원수를 물리치고 평화의 나라를 가져오시며(10~11절상반벌), 주님의 아들이시며(14절), 성전인 교회를 짓는 이시요(13절), 새 왕조인 하나님나라를 세우신 분이시다(11절하반절, 16절). 그의 보좌는 영원히 세워질 것이다(13절). 나아가 사무엘하 7장을 역사적인 위기 속에서 심화시킨 시편 89편에 나타난 다윗의 모든 칭호들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성취되며, 나아가 수난 당하는 종으로서의 다윗의 모습 역시 수난 당하는 종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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