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강좌/언약신학

창조언약

호리홀리 2015. 6. 22. 19:48

창세기 1장 28절 창조 언약



창세기 1장 28절.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이 구절은 하나님의 세상 창조 사역으로 있는 여섯째 날에 관한 것으로 하나님께서 자기의 형상으로 창조한 사람에게 주시고 있는 말씀이다. 여기에서 언약이란 말이 직접적으로 등장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 구절은 하나님의 언약이며, '창조언약'이다.

첫째, 사람 창조와 함께 이것에서의 하나님 나라를 이룰 것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계시되고 있기 때문이며 둘째, 이는 창세 전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에서 가지신 하나님 나라에 대한 계획에 의하여서 되어진 것으로 서로 연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카일. 델리취(C. F. Keil and F. Delitzsch)는 그의 주석 창세기에서 "사람의 창조는 하나님께서 땅에 발하신 말씀을 통하여 일어나지 않고,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라는 신적 작정의 결과로 일어난다"라고 말하였다. 그렇다면 창조한 사람에게 주어진 명령인 창세기 1장 28절 또한 신적 작정의 결과로 주어지고 있는 것일 것이며, 이는 그 작정에 품으신 영원한 약속인 하나님의 언약으로 말씀되고 있는 것이라는 것이 해석에 있어서 자연스럽다.



여기에서 보면, 하나님이 자신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만들었다는 본의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존재로서의 사람을 말한다. 하나님이 떠난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 그 사람을 하나님의 창조 사역에서 천지 만물의 창조와 함께 '하나님의 형상'으로 사람의 창조를 다루는 것에서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천지 만물을 '다스리는 자'로 세우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하나님의 형상인 사람에게서 하나님이 떠난 자로서의 사람은 단지 육의 형상인 아담으로서의 사람만 남을 뿐이다(창 5:3, 참조 6:3). 이런 사람이 자기들의 형상으로 만든 신의 형상이 있는데 곧, 우상이다(신 5:8). 사람이 이렇게 우상을 만드는 까닭은 철저하게 '자기들을 위하여서' 이다. 곧 탐심으로 자기들의 형상을 따라 우상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탐심은 우상숭배이다"(골 3:5)라고 말한 것이다.

하나님이 자기의 형상으로 사람을 만들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이 함께 하여 앞으로 설명되어질 '다스리는 자'에서 말씀되고 있는 하나님의 언약의 사람을 만들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면 하나님의 형상이 어떻게 사람과 함께 하여 하나님의 형상이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게 하셨는가? 창조 이후에 하나님은 제2위 하나님으로 나타나신다. 곧 하나님이신 그리스도이시다. 그러나 구약에서는 그리스도란 신의 명칭은 직접적으로 사용되지 않고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과 관련해서 예언된 그리스도로서 사용되고, 주로 '여호와'이신 하나님으로 등장한다. 그럴지라도 '여호와'와 '그리스도'가 다르지 않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다. 그리스도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아직 아무 것도 창조되지 않은 때부터 존재하신 분으로서 모든 만물을 자신의 목적과 영광을 이루려고 지으셨다. 즉 모든 만물은 자신을 지으신 분을 위하여 창조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형상이 있는 자는 자신을 지으신 분을 위한 삶을 사는 존재여야 한다. 여기에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이 있으며, 이것이 하나님의 형상이 없어 오직 자기를 위하여 사는 사람으로 있는 육의 형상일 뿐인 사람과 다른 차이를 갖는다.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이 있는 사람에게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창 1:26), 또한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 1:28)고 말씀하셨다. 사람이 자신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위하여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를 말씀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이 말씀에 대해서는 '문화명령'(cultural mandate)이라는 말로 잘못 이해되어 왔다. 그러나 '문화명령'이라는 말은 용어 자체부터 문제성을 안고 있다. 왜냐하면 '문화'(文化)란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1)인지(人智)가 깨어 세상이 열리고 생활이 보다 편리하게 되는 일. (2)철학에서, 진리를 구하고 끊임없이 진보·향상하려는 인간의 정신적 활동, 또는 그에 따른 정신적·물질적인 성과를 이르는 말. [학문·예술·종교·도덕 따위.] 문명. (3)문덕(文德)으로 백성을 가르쳐 이끎을 의미하여서 삶에서 사람이 근본이 되고 있다. 그리고 사람은 자신들을 위하여 끊임없이 문화를 발전, 발달시켜 나간다. 이러한 문화명령의 관점에는 사람이 자신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위한 삶이 전혀 들어 있지 않다. 만일 문화명령의 차원에서 창세기 1장 28절을 이해한다면, 이것이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뜻 이행을 사람에게 가지고 있는 것일지라도 사람이 다스리고 지배하는 문화란 인본주의의 발상(發想)을 가져올 뿐이다. 이는 하나님이 금지한 선악을 알게 하는 과실을 사람이 임의로 먹은 것에서도, 그리고 가인과 그 후손들이 세상을 다스리고 지배한 데 따른 문화에서도 그 모두에서는 하나님이 없는 바벨탑 문화만 세울 뿐이다.

창세기 1장 28절을 '하나님 나라적인 문화명령'이란 용어로 사용할지라도, 여전히 부적절하다. 그것은 하나님이 맡기신 만물을 하나님의 뜻대로 다스려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하나님 나라의 문화가 있는 세상으로 만들 명령을 받았다는 것으로 이해를 몰고 갈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하나님은 사람을 자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여서 그에게 하나님의 권한을 위임시켜 주어서 만물을 다스리게 하셨다고 보게 된다. 이는 한 조직신학에서 "창세기 1:28에서는 이간이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의 명령을 받은 사실을 말하고 있다. 이 축복의 명령을 노동명령, 또는 문화명령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하나님의 피조물인 이 우주전체를 다스리는 권세와 능력, 또는 지혜를 주셨다고 하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이다"라고 정의하고 있는 사실에서도 잘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이해에 의해서 그리스도인의 세계관을 말하고 있는 것이 기독교의 현실이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하나님은 사람에게 기대하는 바를 가지며, 원하시는 바가 있는 것이 된다. 하나님이 사람을 통해서 세상을 어떻게 만들어 가신다거나, 사람을 위해서 세상을 어떻게 만들어 가게 하신다거나, 그래서 사람을 어떻게 축복을 누리게 하신다는 것으로 말이다. 그리고 그런 것으로서의 하나님 나라의 모습을 띤 세상을 그려내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의 언약으로 등장하는 모든 것의 그 어디에도 그러한 의도는 없다. 단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를 두고 그리스도 안에서 택한 자기 백성을 위한 계획을 알게 하여 주실 뿐이다. 그런데 창조언약에서만 여기에서 벗어나는 의도를 말씀하여 주시는 것일 수는 없다.

사람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여 만든 세계의 지배자가 될 수 없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자신의 형상으로 지으시고 그들에게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을 '정복하라', '다스리라'고 하신 것은 하나님의 작정에서 갖는 뜻과 그 의지에 따른 것으로 먼저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것과 함께 주어진 것이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하나님의 형상인 사람으로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의 온 땅에 충만하여 나가게 하시면서 또한 그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게 하신 것이다. 따라서 여기에 주가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대로 창조한 사람을 하나님이 그들을 위하여 만드신 세상에 채워 가신다는 것이다. 그에 따라서 사람은 번성하고 온 땅 곳곳에 충만할 것이다. 그리고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은 이름을 지어준(창 2:19) 사람의 다스림을 받는 것에서 사람은 동일하게 자신을 지으시고 사람(아담)이라고 이름하신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져나갈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정복하라', '다스리라'고 하신 말씀은 문화명령을 내리시는 차원에서의 말씀이 아니라, 오직 창조주이신 하나님만이 세상의 지배자임을 증거하고 보여주어야 될 책임에 있다는 것을 말씀해 주시는 것으로서 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세상에 선양할 자인 사람인 것이다. 이렇게 사람은 하나님을 위하여 존재한다.

창세기 1장 28절은 창세 전에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그와 함께 작정하신 하나님의 작정이 지닌 약속이 하나님으로부터 지음을 받은 첫 사람에게 선포된 것이며, 이는 온 세상에 주어진 것으로, 하나님께서 자신의 나라를 충만케 하실 것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여 주시는 것으로 언약의 성격을 가지는데 창조언약으로 불려질 수 있다. 그에 따라서 이 하나님의 언약이 의미하는 궁극적 결국은 작정된 하나님 나라의 성취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여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영적인 존재가 되게 하셨으며, 그 지으신 사람에게 복을 주시며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며 정복할 것을 말씀하심으로써 창조에 대한 하나님의 작정을 사람에게 나타내시는 것으로서의 언약의 성격을 가진다. 이때 하나님의 작정은 '하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질 것'이기에, 이 땅에서 이룰 일인 동시에 또한 하늘에서 이루어질 일이다. 바울은 하나님이 은혜로 오래 전에 정하신 그 계획은 때가 차면 하나님께서 하늘에 있는 자이나 땅에 있는 자이나 모두를 사방에서 모아 영원히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함께 있게 한다면서 그 계획에 따라 우리는 처음부터 하나님의 것으로 선택되었다는 사실을 말하였다(엡 1:9-11).

창세기 1장 28절의 창조언약에서 하나님이 약속으로 주시는 언약의 형식은 아브라함 때에 와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에서 '땅'과 '자손'과 '하나님이 주가 되심'을 약속하셨다. 그래서 "땅의 모든 족속이 복을 받을 것"(창 12:3)이란 약속을 주시는 언약으로 주어졌는데, 예수께서는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마 8:11)을 것을 말씀하셨으며, 모든 나라가 와서 이스라엘의 구원에 참여할 것이라는 사실은 구약 예언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주제였다(사 45:6; 49:12; 59:19; 렘 3:18; 말 1:11).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창세 전의 영원한 작정에 따라 "때가 차매" 세상에 오셨다. 그리스도의 이 오심은 자기 백성들에게 오신 것이며, 그리스도는 그들 중에서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에게서만 영접을 받는다(요 1:11-13). 이 영접은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흠 없는 거룩한 자로 만드실 것을 작정하신 데 따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 (요 1:29)이 되셔서 그 일을 이루심으로써 그를 믿는 모든 믿는 자들에게서 있게 하셨는데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하나님의 권능이 그 사실을 입증하였다.

그래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오심과 구속 사역을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에 의한 언약과 연계해서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창세기 1장 28절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구속를 통해서 이룰 것을 작정하신 데 따라 세상 창조에서 그 하나님의 뜻을 자신의 형상대로 지으신 사람에게 알리시고 또한 이를 온 세상에 선포하신 '창조언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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