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강좌/언약신학

아담언약

호리홀리 2015. 6. 22. 19:18

아담 언약 



성경은 하나님의 구속사이다. 그리고  구속사는 하나님의 언약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언약 사상은 성경의 첫 권인 창세기에서부터 나타나며, 전 성경에서의 사상이기도 하다. 하나님은 창세 전에 가지신 영원한 계획인 구원의 계시성을 언약에 의하여 나타내셨다. 그리고 성경은  언약의 중요성을 증언한다. 하나님은 특정한 사람들과 언약을 맺으셨는데, 아담,노아, 아브라함. 이스라엘, 다윗과의 언약 수립에서 찾을 수 있다. 이스라엘의 선지자들은 새로운 언약(렘31:31)이 성취될 날을 예언했고, 그리스도 자신은 최후 만찬을 언약적인 언어로 설명하고 있다(눅22:20). 하나님은 이처럼 언약을 통해서 택하시고 부르신 자들에게 자신의 뜻인 구원의 비밀을 알리셨다. 그러나 유기된 자에겐 알지 못하도록 감추셨다(마13:11-15). 그것은 유기된 자에겐 하나님의 은혜를 허락하시지 않아 그들의 귀를 둔하게 하시고 눈은 감게 하여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키지 못하게 하신 하나님의 주권 행하심이다.

'언약'이란 명칭은 창세기 6장 18절에서 비로소 나온다. "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자부들과 함께 그 방주로 들어가고". 따라서 이전에는 언약이란 말은 나오지 않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언약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선지자 호세아는 "저희는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 기거서 내게 패역을 행하였느니라"(호 6:7) 라고 말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아담은 하나님의 언약 안에 놓여져 있었다. 그리고 그 언약은 창세기 2장 16-17절에서 말씀하시고 있는,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라고 말씀하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는 것을 금지한 명령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이렇게 언약이란 말을 직접적으로 사용하지는 않았을지라도 선지자는 에덴동산에서의 아담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명령을 '언약'의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후 언약이라는 말은 창세기에서 25회나 발견되며, 창세기 이외의 모세오경에서와 시편 그리고 선지서들에서도 20여 차례나 나타난다. 더욱이 신약에서도 언약(Covenant)이라는 단어는 매우 분명하게 나타난다. 예수의 죽음이라는 위대한 기념비가 세워질 때 구세주께서는 "이 잔은 나의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다"(눅22:29)라고 말씀하셨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족속들에게 주셨던 축복들을 열거하면서 그들에게 '언약들'(롬9:4)을 세우셨음을 선포하였다. 바울은 갈라디아 사람들에게도 '두 언약'을 설명한다. 그런가 하면 에베소 성도들은 그들이 거듭나지 않은 시절에 자신들이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엡2:12)이었음을 회상했으며, 히브리서는 그리스도가 중보자되신 '더 좋은 언약'(히8:6)에 대한 설명이다.


행위언약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주신 언약은 에덴 동산 중앙에 두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과실을 먹는 것을 금지한 '선악과'로 다루어진다. 그리고 이것을 통해서 맺으신 하나님의 언약은 통상 '행위언약'의 개념으로 이해되어져 왔다. 윌리암스(G. I. Williams)는 소요리문답 강해에서 "첫 언약은 '생명언약'이라 부르는 데, 하나님은 아담에게 생명을 약속하셨다. 또 이것을 행위언약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이는 하나님이 선물을 주기 전에 먼저 순종을 요구하셨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박윤선도 그의 주석 창세기에서 "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신 것이 계약의 말씀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행위계약(行爲契約)의 말씀이다."라고 말하였다. 그의 이러한 견해는 헤르만 바빙크(Herman Bavink)의 견해를 그대로 따른 것이다.

윌리암스를 비롯하여서 각 사람이 이렇게 선악과를 통해서 주어진 하나님의 언약을 생명언약, 또는 행위언약이라고 규정한 것은 웨스트민스터 삼대 표준문서의 하나인 소요리문답서에서 이를 다룰 때, "사람이 창조함을 받은 본 지위에 있을 때 에 하나님께서 저를 향하여 섭리하시는 중 무슨 특별한 작정을 하셨습니까?"(제12문)라는 질문에,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후에, 완전히 순복하는 것을 조건으로 삼아 생명의 언약을 맺고, 선악을 분별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는 것은 사망의 벌로써 금했습니다."라고 답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담은 하나님께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2:17)라고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 말씀을 불순종하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었다. 비록 헤르만 바빙크나 그의 견해를 따른 박윤선이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교리문답서와 이를 해석하는 자들이 모두 이 하나님의 말씀을 '행위언약'의 차원에서 이해하는 견해를 가졌을지라도, 분명한 것은 이것을 '언약'(言約, Covenant)으로 분명히 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언약은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에서 잘 나타나 있듯이 하나님의 계획으로 하나님께서 반드시 실천하실 것을 의미한다. 아담의 범죄는 이런 차원에서 이해하여야 한다. 비록 아담이 사단의 시험을 받아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함으로 범죄 하였지만, 이는 아담의 자유의지 안에서 그의 책임론으로만 다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자유의지조차도 하나님이 작정하신 바 그 뜻을 온 세상을 경영해 가시는 섭리론에 두고 계신데 따른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작정에 대한 우리의 믿음이다.

아담이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불순종하여 지은 죄는 자신의 타락과 함께 자신 안에서 전인류의 타락을 가져와 죄와 죽음 아래 있게 하였다. 아담이 인류의 시조인 동시에 또한 인류의 대표자인 까닭에 아담 안에 들어 있는 그의 모든 후손들도 아담과 함께 죄와 죽음 아래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시고 그 이름을 사람을 의미하는 뜻인 '아담'(!d;a,,,;)이라고 지은 것에서 전인류의 상태가 예시되어 있었다. '아담'이란 이름은 붉은 땅을 의미하는 말인 hm;d:a}에서 나왔는데, 이 말도 같은 어원인 '붉음', '흙', '먼지'를 의미하는 rp}[에서 나왔다. 이렇게 붉은 흙에서 나온 인간에게서는 선한 것을 아무 것도 기대할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결과가 아담이란 이름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이며, 이는 또한 하나님의 언약을 어기는 것에서 나타난 것이다. 그러므로 흙에서 나온 인간은 흙으로 돌아간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정녕 죽으리라고 선언하신 '죽음'이다.

아담의 불순종으로 모든 인간은 아담 안에서 죄인이 되었다. 아담의 후손으로 오는 모든 인간은 죄의 종[노예]의 비참한 상태에 놓여 있으며, 죄 값으로 죽음의 형벌을 받는다. 이런 인간은 그 마음이 하나님을 상실한 자로서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며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고 일부로라도 거짓된 것을 섬기는 악한 죄를 행할 뿐만 아니라 육은 죄성에서 나오는 온갖 욕망에 이끌려 산다. 이것이 아담의 불순종 이후의 인간의 실상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크고 놀라우신 은혜는 아담의 불순종 이후에도 계속되어지는데 더욱 크게 나타난다. 범죄한 아담에게 찾아오셔서, 그를 창조 하셨을 때 하셨던 것처럼 언약에 담은 생명을 구원의 약속으로 주셔서 그 약속에 따라서 구속의 역사를 경영해 가실 것을 계시하신 것이다. 아담언약은 그렇게 이 언약으로 말미암아서 올 하나님의 은혜인 구원의 약속을 가져다 주기 위해서 준비되어지고 먼저 주어진 것이었다. 그리고 그 약속의 증표로 죄로 인해서 오는 수치 속에 있는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지어서 입혀 그들의 부끄러움을 가리워주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새로이 주신 약속은 그와 그에게 속한 모든 후손을 구원의 소망 속에 있게 하였다. 그리고 이것은 인간에게 하나님을 주로 모시고 섬기는 중에 소망의 성취를 기다리는 믿음을 주시는 일이었다. 인간은 하나님이 주신 구원의 약속이 있어서 소망을 가질 수 있고, 그 소망을 믿음의 내용으로 가짐으로써 하나님 앞에 있는, 그리고 하나님을 섬기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간다. 이러한 관계성을 '믿음'으로 설명한다. 또한 하나님은 구원의 약속을 주어 인간을 소망 속에 두시고 믿음으로 살게 하시는 것을 통하여 그의 순종을 이끌어 내신다. 인간은 언약에서 약속으로 주시고 있는 소망을 믿음의 내용으로 가짐으로써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의에 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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