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고린도전서

고린도전서3장,교회의 지도자들에게

호리홀리 2015. 6. 9. 09:34

교회의 지도자들에게

 

 

 

 

 어린아이는 긍정적 메타포로 쓰일 때도 있고 부정적인 메타포롤 쓰일 때도 있다. 여기서는 부정적이다. 어떻게 부정적인가? 아직 잘 모르면서 자신들의 세계에 갇혀 다 아는 것처럼 느끼는 상태에 있는 것이 어린아이들이다. 고린도 교인들은 자신의 신분이 영에 속한 자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육신에 속한 세상 사람처럼 행동을 하고 있다(3절). 그래서 바울은 그들을 어린아이처럼 다루겠다고 한다. 특히 지도자 따르는 문제에 있어서 그렇다(4절). 그들이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사역자들은 교회의 주인이 아니다(3:5-9)

   

바울과 아볼로는 하나님의 밭에서 일하는 일꾼일 뿐이다. 바울과 아볼로는 그들을 통해 고린도인들이 믿음을 갖게 되었던 ‘디아코노스’(= 종, 집사, 일꾼)일 뿐이다. 바울은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다. 그러나 자라나게 한 것은 오직 하나님이시다(6절). 주인공이 하나님이심을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한다. 심는 사람과 물주는 사람은 조연으로서 그분께 속한 ‘쉰에르고이’, 즉 같이 일하는 동역자들이다. 그들은 자기에게 맡겨진 일을 한 것으로 하나님 앞에서 상을 받을 것이다. 주인이 주는 급료를 받고 열심의 정도에 따라 상을 받을 것이다(8절).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결국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바울과 아볼로는 하나님이 시켜서, 그분 아래서 함께 일하는 일꾼들일 뿐이다. 그리고 고린도 교인들은 하나님께 속하여 하나님께서 주권을 행사하시는 하나님의 밭이다.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하나님의 집이다.

   

(1) 바울과 아볼로는 주인이 아니다. 그들은 ‘디아코노스’일 뿐이다. 시켜서 일하는 종들이다. 하나님께서 주인이시다. 아볼로와 바울을 핑계로 해서 이 교회의 주인이 누구인지 따지지 말아라. 제발 부탁이다. 내 이름 들먹거리지 말아다오. 하나님께 송구스러워 고개를 못 들겠다. 하나님께서 주인공이며 주인이시다.

 

(2) 여러분들도 주인이 아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것이다. 하나님의 역사가 발생하는, 그래서 곡식과 채소가 자라서 열매를 맺고 수확이 되어야 하는 밭이다. 하나님께서 거하시며 당신의 일을 하시는 하나님의 집이다. 그분의 집 갖고 당신들의 것인 양 다투지 말아다오.

 

(3) 그러나 긍정적 함의가 있다. 일하는 사람들은 다름 아니라 하나님의 종이면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동역자들이다.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하는 일은 천지를 만드시고 역사를 주관하시며 섭리로 세계를 붙들고 당신의 나라를 만들어 가시는 하나님의 일이다. 대통령이 일을 시켰다고 생각해 보라. 어떻게 하겠는가?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한 일에 대해 상을 주실 것이다. 고린도전서 9:18, 24-27를 읽고 이에 대한 바울의 자세를 묵상해 보자.

 

 

 하나님의 일꾼들이 유의할 점(3:10-17

 

  기초는 바뀔 수 없다. 그 위에 좋은 건축물을 제대로 잘 세워야 한다. 하지만 기초를 바꾸어서는 안 된다. 기초는 예수 그리스도이다(10-11절). 교회의 기초는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분의 십자가의 복음이다. 마태복음 16:15-19를 읽고 교회의 반석이 무엇인지 묵상해 보라.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 이외의 것을 다시 기초로 닦으려는 일체의 시도는 교회를 교회 아닌 것으로 만든다. 사회봉사, 친목, 종교적 관행, 특정 주장, 목사의 생존 수단 등이 교회를 설립하는 기초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 기초 위에 건축물을 세우는 사람들은 그 건축 행위에 대해 하나님의 평가를 받는다(12-15절). 그 평가에 입각하여 보상과 처벌이 결정된다. 교회 건축의 각 부분을 맡은 하청업자들은 자신의 일에 대해 평가를 받고 그에 입각하여 도급 받았던 일에 대한 지불을 받는다. 바울은 여기서 당시의 건축 관행을 비유로 쓰고 있다.

   

교회의 일을 하는데 있어 부실 공사를 하지 말라는 말씀이다. 부실 공사에 대해서는 책망이 있을 것이다. 부실 공사로 인해 무너져 내렸던 주요 건축물들을 생각해 보라.

 

더 심한 경고가 하나 추가된다. 교회는 하나님의 성전이다.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시는 하나님의 집이다. 부정한 것이 들어가서는 안 된다. 이 정결을 유지하기 위해 제사장들은 온갖 노력을 다했다. 성전을 더럽히면 거룩하신 하나님께서는 성전을 더럽힌 사람을 멸망시키셨다. 이것은 하나님의 성결이 지닌 속성이며 본질이다. 하나님의 성결은 부정함 자체를 격파한다. 여호와의 궤를 함부로 다루다가 죽은 사람들이 있었다. 여호와의 성소에는 아무나 들어가지 못한다. 잘못하면 죽는다. 여기서 바울은 이러한 거룩함의 위엄을 상기시킨다. 교회는 성령이 거하시기 때문에 성전이나 마찬가지다. 더럽히지 말라. 잘못하면 죽는다.

 

 여기서 성전을 더럽히는 행위로 지목된 것이 무엇인가? 무슨 일이 있었길래? 다름 아닌 분열의 행위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다. 교회를 쪼개는 것, 그리스도의 몸을 나뉘게 하는 것이 바로 성전을 더럽히는 일이다. 교회의 일치는 이처럼 존엄하다. 누구든지 함부로 손상할 성격의 것이 아니다. 교회를 나누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죄 없다 아니 하신다. 엄하게 꾸짖으신다.

 

  인간의 지혜를 의지하지 말라. 결국 스스로 속는 것이다.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가는 것이다. 자기 지혜를 의지하여 자기 함정을 스스로 파는 것이다(18-19절). 하나님께는 인간의 지혜가 헛것이다. 겸손하라. 하나님의 말씀을 좇으라.

 

여기서 바울은 다시 처음의 핵심 이슈로 돌아간다.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3:21, 참고, 사 2:22, 시 146:3-5). 사람 때문에 교회를 나누지 말라. 그러면서 바울은 인간의 지혜를 의지하는 사람들을 다시 질책하고 있다. 당시 견유학파나 스토아 철학자들은 지혜로운 자가 모든 것을 소유했다고 말했다. “현인들이 모든 것을 소유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옳다. 그들만이 만물을 활용하는 법을 알고 있다”(Cicero, De Finibus 3.22.75). “만물은 지혜자의 것이다”(Seneca, De Beneficiis 7.3.2-7.4.3). 21절 하반 부터는 이러한 철학적 금언을 인용하면서 그들의 존재가 어디에 귀속되는지를 변증한다.

 

사람을 자랑하여 사람으로 나뉘지 마십시오. 모든 것이 다 여러분들, 지혜롭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의 것이 아닙니까?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상이나 생명과 사망 현재나 미래, 모두 다 여러분들의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그리스도의 것이지요. 그리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인이십니다! 이것을 잊지 마세요(20-23절 의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