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고린도전서

고린도전서1:18~31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

호리홀리 2015. 6. 8. 13:07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

 

 

I

십자가의 도(ho logos 십자가의 말씀)는 양면성을 갖는다. 한쪽에서 볼 때는 형편없는 미련이며 터무니없는 무식이다. 그러나 또 한편에서는 십자가의 도가 ‘구원을 가져다주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이것은 당시의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에게 공히 마찬가지였다. 다음은 원문을 이해하기 쉽게 현대 감각에 맞도록 번역해 놓은 것이다. 특히 22-24절을 주목하여 살펴보자.

 

18십자가에 대한 이야기가 소멸되어가는 사람들에게는 바보 같은 소리로 들리겠지만, 구원을 받고 있는 우리들에게는 바로 하나님의 능력이 되지요. 19성경에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내가 똑똑하다는 이들의 지혜를 소멸시키며 현명하다는 자들의 분별력을 끊어 놓겠노라.”20현인(賢人)이 어디에 있습니까? 학자가 어디 있나요? 이 시대의 말쟁이들이여 당신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지요? 하나님께서 세상의 지혜를 바보로 만들지 않았던가요? 21왜냐하면 하나님의 지혜 체계 안에서는 이 세상이 자신들의 지혜를 통해 하나님을 알지 못했으니까요. 하나님께서는 믿는 사람들을 케리그마의 바보스러움을 통해서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답니다. 22유대인들은 표적이 될만한 일을 보기 원하고 헬라인들은 지혜를 추구합니다. 23그러나 우리는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선포하며, 그래서 이것이 유대인들에게는 스캔들이 되며 헬라인들에게는 바보 같은 말로 들리겠지요. 24그러나 하나님께서 부르신 자들에게는, 그들이 유대인이건 헬라인이건,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가 됩니다. 25왜냐하면 하나님의 바보스러움이 사람보다는 더 똑똑한 것이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는 더 강력한 것이기 때문이지요.

 

(1) 표적(sign)을 원하는 유대인들(요 4:48, 6:30, 마 12:38-40)에게 있어서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메시아)’는 걸려 넘어지게 하는 스캔들이다. 마가복음 8:27-38을 읽고 예수의 제자들에게 어떻게 ‘십자가에 달리는 그리스도’가 스캔들이 되었는지 확인해 보도록 하라.

(2) 헬라 문화는 지혜를 찾는다. 고대 그리이스인들은 ‘지혜의 사랑’(= philosophia)을 뜻하는 철학을 진리의 길로 생각했다. 그러한 그들로서는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라는 개념을 지혜로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이다.

 

바울의 복음이 그레코-로마 세계의 철학자들과 종교인들에게 주는 인상 또한 별반 다를 바가 없다.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을 가진 유대적 개념의 ‘메시아’ 또는 ‘그리스도’라는 단어를 설명하는 일만 가지고도 땀을 뻘뻘 흘려야 했을 것이다. 상상해보면 우스꽝스럽기까지 한 모습을 연상시키는 기름 뒤집어쓴 한 사내가 흉악범이나 정치범들을 처형하는 십자가에 달려서 최후를 맞이했다는 이야기는 도대체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리스도라는 자는 로마제국의 저 동쪽 끝에 있는 한 고집 센 민족의 말썽꾸러기로 낙인이 찍힌 사상적으로 불온하기 짝이 없는 인물인 것 같은데, 자기 민족에게서조차도 배척을 받았다 한다. 알쏭달쏭한 이 인물의 십자가 죽음이 헬라인들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었다는 바울의 선포는 스캔들을 넘어서 아예 천치(天痴)들 사이에서나 말하고 듣고 믿고 할 수 있는 그런 종류의 이야기거리였다. “미련한 것”이라고(고전 1:23) 점잖게 번역된 헬라어 ‘모리아’(moria)에서 오늘날 상대방을 비하하고 모욕을 줄 때 욕으로 사용하는 영어 단어 ‘모론’(moron, 天痴)이 나왔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바울의 복음이 그것을 듣는 이들에게서 불러 일으켰던 스캔들적인 거부 반응은 현대에 살면서 기독교 복음의 논리에 상당히 익숙해져 있는 우리의 상식을 불허할 만큼 강력한 것이ek..

 

(3) 이렇게 스캔들이며 미련한 것인 십자가의 도가 어떻게 하나님의 지혜인지 생각해 보라. 마가복음 10:45, 로마서 5:8 등의 말씀을 묵상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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