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사도행전

사도행전24:10~27 총독의 두가지 관심

호리홀리 2015. 6. 4. 13:02

더들로의 송사에 대하여 총독 벨릭스는
바울에게 변론 할 수 있는 기회를 줍니다.
바울의 변론의 내용은 더들로가 고소한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 합니다.
더들로가 성전을 모독했다고 하는데, 11-12절에
[ 당신이 아실 수 있는 바와 같이 내가 예루살렘에 예배하러 올라간지 열이틀 밖에 못되었고 ]
[ 저희는 내가 성전에서 아무와 변론하는 것이나 회당과 또는 성중에서 무리를 소동케 하는 것을 보지 못하였으니 ] 바울은 고소당할 일이 없고, 하지도 안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13절에 고소자들의 증거도 분명치 않다고 말합니다.

반면에 바울은 한 것은 또 분명히 했다고 말합니다.
14-15절에 [ 그러나 이것을 당신께 고백하리이다 나는 저희가 이단이라 하는 도를 좇아 조상의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과 선지자들의 글에 기록된 것을 다 믿으며 저희의 기다리는 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라 ]
그러니 나는 조상의 하나님을 믿는다
나는 율법과 선지자들의 글 - 즉 성경을 믿는다
나는 의인과 악인의 부활을 믿는다

바울의 고백은 하나도 잘못된 것이 없습니다.
유대인들도 하나님을 믿고 성경을 믿고 부활을 믿습니다.
따라서 이것은 죄목이 될 수 없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16절입니다.
[ 이것을 인하여 나도 하나님과 사람에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노라 ]
사도 바울은 자기가 주장한 것에 대하여 최후 보루는 양심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 누구 앞에서도 떳떳한 사람입니다.
바울의 위대함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바울이 복음을 위하여 온갖 고난과 수모와 결박과 매를 맞았기 때문에 위대하다기 보다
그 누구 앞에서도 떳떳하게 설 수 있었기 때문에 위대한 사람입니다.
바울은 떳떳한 사람이기에 자신이 예루살렘에서 겪었던 일을 낱낱이 보고합니다.

17-20절까지 요약하면
바울이 전도 여행을 마치고 해외에서 돌아오면서
이방 교회의 구제헌금을 모아서 가지고 온 것과
하나님 앞에 결례를 드린 것을 다 이야기 합니다.
만약 당신들이 고발한 것처럼
해외에 있는 유대인들이 나를 반대한다고 하면
자기들이 직접 송사할 일이지 왜 당신들이 나서서 송사를 하는가?
그렇다면 이 재판에 나와서 당당하게 이야기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이렇게 반박하면서 내게 문제가 있다면
내가 공회 앞에서 부활을 믿는다고 말 한 것 밖에 없다 는 것입니다.

재판정에서 자기를 변호할 기회를 갖게 된 바울은
이렇게 아주 사리가 분명하게 자기 자신을 변호했습니다.
그는 자기를 송사하는 이들의 허점을 날카롭게 지적했고,
자신의 결백에 대해서도 주저없이 분명히 주장했습니다.
강하게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던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신의 신앙문제에 이르러서는
송사하는 이들의 주장을 그대로 인정했습니다.
인정했을 뿐만 아니라 더욱 적극적으로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면서
하나님과 사람 앞에 양심의 거리낌 없이 떳떳하게 살아왔음을 자신 있게 말했습니다.
복음 앞에서 당당한 바울의 태도는 오늘 우리가 가져야 할 그리스도인의 자세입니다. 

 총독 벨릭스의 판결이 사도 바울에게 어떻게 내려졌으며
그 결과가 가져오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22-23절)
22-23절에  벨릭스 총독이 재판을 보류시킵니다.
[ 나도 이 도에 대해서 잘 안다 그러니 천부장 루시아가 내려오거든 더 들어 보고 그때 가서 처결하자
바울을 지키되 자유를 주며 누구든지 수종하는 것을 금치 말라 ] 고 하고는 재판을 끝냅니다.
벨릭스가 나도 이 도에 대하여 잘 안다 고 말하는 것은
벨릭스는 유대 지방에서 상당히 오랜 생활과
24절에 그의 유대인 아내 드루실라 덕분에
유대교와 기독교에 대해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비록 재판은 정치적 문제로 시작되었지만,
오랜 경험으로 미루어 유대인들의 비난이 종교적인 색채를 띠고 있음을 알고 그는 논쟁자들 사이의 대립 가능성을 없애고 그의 관할권 내의 평화를 유지하고자 재판을 연기시켜 버렸습니다.
총독의 재판 보류
물론 총독 벨릭스는 다른 혹심이 있어서 재판을 보류시켜 놓았지마는
여기에는 하나님의 세심한 배려와 간섭이 있습니다.
총독의 재판 보류는 바울에게 있어서는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작용을 한 것입니다.
만약 무죄다, 라고 했으며사십 명이나 되는 유대인들이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고 바울을 죽이겠다고 기다리고 있는데 감옥 밖으로 나오면 언제 어떻게 살해당할지 모릅니다.그러니 하나님께서
아직은 나가면 안된다 그래서 보류한 것입니다.

또 한가지 하나님의 은혜는
바울은 보호를 받으면서 휴식을 취하게 된 것입니다.
바울은 2년 동안 다른 일 없이 감옥 아닌 감옥 생활을 하게 됩니다.
어떻게 보면 지루한 시간인 것 같지마는
바울에게는 영육 간에 재충전할 수 있는 축복의 시간인 것입니다.
복음을 위해서 뛰어 다니던 바울이 2년이나 갇혀 있었으니
그 마음이 어떠했을까요? 본인은 몹시 답답했을지 모르지만
어쩌면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주신 휴식이 아닐까?
전도여행을 3차례나 하면서 얼마나 험난한 세월을 보내며
얼마나 많은 고난을 겪었는지 모릅니다.

친구들은 자유롭게 만날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그 안에서 영육 간에 휴식을 취하게 되고
후에 재판을 받기 위해서 공짜 배를 타고 로마로 갔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섭리는 오묘합니다.
이때 바울을 싣고 간 그 배를 가리켜 역사가 <토인비>는
'바울을 싣고 간 것이 아니라 유럽을 싣고 갔다'고 말했습니다.
보잘 것 없는 죄수 하나이었지만 그 죄수가 전한 복음이 유럽 전체를 살려놓았다는 말입니다.

재판을 맡았던 벨릭스 총독이 바울에게 강렬한 인상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24절 이하에 보면
수일 후에 그 아내와 함께 바울을 불러 예수에 관한 도를 듣습니다.
하지만 “의와 절제와 장차 오는 심판 ” 에 대한 바울의 강론으로 생긴 두려움이 복음의 귀를 닫게 만듭니다. 그래서 나중에 이야기 하자 하고는 돌려보냅니다.

그런데 벨릭스에 관한 이야기 중 재미있는 표현이 있습니다.
26절 [ 동시에 또 바울에게 돈을 받을까 바라는고로 더 자주 불러 같이 이야기 하더라 ]
총독 벨릭스가 바울의 인격에 대해서도 감화를 받았겠지만
총독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것은 혹 바울이 자기에게 돈을 좀 안 갖다 주나 싶어서 불렀다는 것입니다.
벨릭스 총독이 '돈을 받을까 하여' 바울을 불러 더 자주 이야기를 했다고 하니
명색이 총독인데 그렇게 머리가 안 돌아가는 걸까요?
아니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을까요?
우리가 보기에는 벨릭스가 어리석어 보이지만
벨릭스의 입장에서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으니 그러는 것 아닐까요?
바울은 마지막 세 번째 전도여행을 끝내면서
간절한 소망은 로마로 갔다가 서바나로 가는 것이었습니다.
세 번째 전도여행은 고린도 지역에서 마쳤습니다.
고린도는 위치가 예루살렘보다는 로마에 훨씬 가깝습니다.
바다 하나만 건너면 로마인데
바로 로마로 가면 될 터인데 로마와 반대쪽에,
그것도 멀리 떨어져 있는 예루살렘으로 생명의 위협을 받으면서 돌아옵니다.
왜? 곳곳에 목숨을 노리는 자들이 숨어 있을 뿐만 아니라
선지자들도 예루살렘으로 가면 체포될 것이라고 예언하였고
많은 사람이 예루살렘으로 가지 말라고 하는데
바울이 결연한 자세로 예루살렘으로 돌아옵니까?
여기에는 와야 할 이유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체포되기 전의 마지막 전도여행 중에
구제 헌금을 많이 모았습니다.
이렇게 모은 막대한 헌금을 각 교회의 대표성을 지닌 사람들로 하여금
지참케 하여 함께 예루살렘으로 귀환하였습니다.
바울이 어렵던 시절에 거액을 가지고 들어왔으니까 
소문이 안 날 리가 없죠.
소문은 항상 조금씩 굴절되거나 과장되게 마련입니다.
구체적인 내막은 잘 모르면서
그저 바울이 부유층 사람들과 함께
어마어마한 돈을 가지고 왔더라는 소문이 났겠죠.
그래서 벨릭스가 돈 욕심을 내는 겁니다.
돈을 좀 우려내려고 해도 상대를 잘 골라야 하는데 잘못 짚었어요.
결국 돈은 한 푼도 안 나오고
벨릭스가 먼저 총독의 자리를 내놓고 떠나게 됩니다.

총독에게는 두 가지 관심이 있었는데
하나는 하나님에 대한 관심이고, 하나는 돈에 대한 관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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