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사도행전

사도행전22장,예수님처럼

호리홀리 2015. 6. 4. 12:22

글라우디오 루시아는 정직하고 편견이 없는 로마 군인으로서, 편파적인 유대인 무리에 비해 훨씬 나은 사람이었다. 유대인들은 잘 점검해 보지도 않고 바울이 드로비모를 성전 안뜰에 데리고 들어갔다고 추정했다. 반면, 글라우디오 루시아는 바울이 애굽의 테러리스트라고 생각했었지만 진상을 알게 되자 즉시 생각을 바꾸었다. 바울은 천부장 루시아 앞에서 유창한 헬라어로 자신이 다소 출신의 유대인임을 말하면서 군중들에게 말할 기회를 요구하여 허락을 얻어냈다.


22:1-4

바울은 성전에서 안토니아 성채로 올라가는 돌 계단에 서서 적대적인 군중들을 향해 담대하게 변명(ajpologiva)을 했다. 그의 민감함은 청중들을 “부형들아“라고 공손하게 부른 것과 아람어(히 브리 방언)를 사용한 것-그것 자체만으로도 그들을 조용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에서 나타난다.

“부형들아”(#Andre" ajdelfoi; kai; patevre")라는 호칭은 스데반이 먼저 사용한 말이다(7:2). 스데반의 설교와 순교는 바울에게 계속하여 영향을 주어왔다(참조8:1

특히, 바울의 “부형들아”라고 하는 표현은 단순한 칭호 이상의 의미가 담겨있다. 지금 돌을 들 어 자기를 치려고 하는 자들이지만 바울은 그들이 형제임을 의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육신 적으로 그들이 같은 유대인임에 틀림이 없지만 바울은 이들이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 들이고 믿게 되면 그리스도안에서 형제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가지고 그들 앞에서 이야기 하 고 있는 것이다. 바울은 천부장에게 했던 말을 반복한다. gegennhmevno"(나고), ajnateqrammevno"(자라고), pepaideumevno"(교육을 받고)라는 말로 누가는 확고한 전기적인 도식을 따르고 있다. 여기서 사용되는 세가지 즉, 출생했고, 자랐고, 배웠다는 형식은 당시에 자신을 소개하는 전형적인 방법이었다.  다시 말하면 바울은 유대인으로 길리기아의 다소에서 났고, 예루살렘성에서 자랐으며,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교육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면 과연 가말리엘은 어떤 사람인가? 그는 유명한 랍비 힐렐(Hillel)의 손자로서 산헤드린 공회의 회원일 뿐 아니라 당대에 율법의 제1인자라고 할 정도로 유명한 학자였다. 그러므로 바울이 유대적이라는 것은 논의의 여지가 없이 명백했다.

뿐만 아니라 바울은 하나님에 대한 자신의 열심에 주의를 집중시킨다. 그 열심은 유대인들의 열심과 마찬가지로 큰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그 도를 믿는 사람들은 남자나 여자나 핍박했으며, 심지어 감옥에 보내고 죽음에 이르도록 하기까지 핍박했기 때문이다. 의회는 이것을 증명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바울이 다메섹까지 가지고 간 망명자 소환 명령서를 발부한 것은 바로 그들이었기 때문이다.

  

22:5-11

바울의 회심

바울의 회심에 대하여는 본문 이외에도 9장(1-18절)과 26장(12-18절)을 비교해서 살펴보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세 기록 사이에 차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분명히 누가는 같은 사건을 기록했지만 똑같은 말을 사용하여 기록하지는 않았다. 세 기록을 비교해 보면 강조의 차이점은 있으나 내용에 있어서는 본질적으로 일치된다. 9장에서는 바울의 동행자들은 서 있었고 바울은 엎드러진 것으로 묘사하고 있으나(9:4,7,8), 26장은 바울과 동행자들이 모두 땅에 엎드러진 것으로 묘사한다(26:14). 또 9장은 같이 가던 사람들이 소리만 듣고 아무도 보지 못했다고 기록한 반면(9:7), 22장은 동행한 사람들은 빛은 보면서도 소리는 듣지 못한 것으로 기록한다(22:9).

그러나 이런 차이점은 사건의 조화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첫 번째 문제는 그들이 다메섹으로 가는 도중 예수님이 나타났을 때 모두 땅에 엎드러졌으나 얼마 후 동행자들은 일어섰고 바울만 계속 엎드러져 있었다고 볼 때 잘 조화된다. 또 두 번째 문제는 바울 이외의 다른 사람들도 주님의 음성을 들었지만 바울만이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있었고, 바울을 둘러싼 빛은 보았지만 아무도 예수님의 모습은 보지 못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22:9에 대해 칼빈은 이렇게 주석하고 있다.

“사도행전9:7에서 누가는 바울의 동료들이 깜짝 놀라 서 있었을 때 그들은 그 소리는 들을 수 있었으나 아무도 보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한편 여기서는 바울은 그들이 광채를 보았다 해도, 바울과 이야기하고 있었던 그분의 음성을 그들이 듣지 못했다고 말하고 있다. 그들이 어떤 모호한 소리를 알아 차렸다는 것은 불합리하지 않다. 비록 그들이 바울 자신처럼 그것을 구별하지 못했다 해도 말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는 그를 억제시키고 질책으로 그만을 진압시키기를 원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은 한 음성을 듣고 있다. 왜냐하면 한 소리가 그들의 귀를 때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어떤 사람이 하늘로부터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바울과 이야기하고 있는 사람의 음성을 듣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리스도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들도 물론 바울을 감싸고 있는 빛의 광채를 보고 있으나, 그들은 하늘로부터 그 음성을 보내고 있는 어떤 사람도 보지 못한다.”


 

22:12-16

아나니아

 아나니아는  인정받은 모범적 유대인으로 부각된다(12절). 그러나 바울은 아나니아도 역시 제자였다는 사실(9:10)을 고의로 언급하지 않는다. 경건한 유대인 아나니아가 바울에게 하나님의 그와 관련하여 하시고자 하는 계획을 알려준다. 14절에 작성된 표현, 즉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 자기 뜻’ 등은 청중들의 유대적 자의식에 호소하는 것이다. 여기서 바울은 다메섹의 아나니아의 입술을 통해 그가 부활하신 주님에게서 사도적 사명을 부여받은 것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14절과 15절은 핵심이 되는 구절이다. 이스라엘 하나님께서 바울을 택하셨다는 점이다. 여기서 ‘택하셨다’는 단어는 proceirivzomai의 부정과거 중간태로서 ‘계획하다, 목적하다, 결정하다’란 뜻을 가지고 있다. 즉 하나님께서 그의 계획 가운데 바울을 구별되게 세우셨다는 말이다. 그러면 그 목적은 무엇인가? 한마디로 말해서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려는데 있다. 그리고 그 뜻은 부활하신 주님을 보고 그의 음성을 듣는데서 깨닫게 된다고 하였다. 우리는 가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로 고민할 때가 있다. 그래서 때로는 인간의 뜻과 하나님의 뜻을 구별하지 못할 때가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계시된다. 따라서 주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한다. 이것을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주님에 관하여 예언한 구약의 말씀과 주님의 말씀과 행적을 기록한 복음서, 그리고 그것들을 당시의 성도의 생활에 적용하고 해석한 서신들, 즉 구약과 신약 전체가 다 하나님의 뜻을 밝혀주는 계시인 것이다.

그리하여 바울을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쓰기 위하여 부르신 것이다. 여기서 ‘증인’(mavrtu")이란 용어는 대단히 중요한 단어이다. 왜냐하면 이 말은 법정에서 사용되는 용어로서 그가 목격한 바를 거짓 없이 고백하는 것을 말하기 때문이다. 바울은 모든 사람들에게-물론, 이방인을 포함하여-그분의 입으로부터 하나님의 뜻이라고 들은 것에 대한 증인이 되어야 한다. 6-11절의 사건을 통해서 촉발된 바울의 회심은 16절에서 그 종착점에 다다른다.


22:17-21

 이방인의 사도

바울은 성전에서 환상적 체험으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게 된다. 사도행전은 바울의 다메섹 경험을 세 번에 걸쳐서 기술하지만 성전에서의 환상은 본문에서만 언급한다. 바울 역시 이 환상의 경험을 자신의 서신에 기록하지 않았다. 예루살렘의 성전은 매우 독특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미 구약에서 이 도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나오는 곳이며(사2:1-4), 종말의 모든 암시가 주어져 있는 도시이다(욜3:1-6). 이러한 의미에서 바울은 자신의 사역을 묘사함에 있어 그 시작점을 예루살렘으로 말한다(롬15:19). 그러므로 이 성전에서의 환상은 바울에게 다메섹 사건을 올바로 이해시키는 사건이다.

여기에서 주님은 바울에게 이방인들을 위한 사도로 부르신 것을 말씀하셨다. 아마도 이 체험은 바울이 회심한 후에 예루살렘에 잠깐 방문하는 동안(9:26-30)에 일어난 것임에 틀림없다. 부활하신 주님이 바울에게 내린 지시에는 두가지 요소가 다 들어 있다. 하나는 “예루살렘에서 나가라”(18절)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너를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21절)는 것이다.

19-20절은 아마도 다음과 같은 뜻일 것이다. 바울 자신의 뜻대로 일이 진행되었다면, 그는 오히려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었을 것이다. 바울이 이전에(즉 회심전에) 행한 모든 일에 비추어서 판단하기로는 자기는 바로 유대인들에게 특히 신임받는 선포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진리를 발견한다. 즉 바울이 주저하고 있었을 때에 주님께서 그를 밀어서 떠나게 한 점이다. 우리도 때때로 주저할 때가 있다. 그 때에라도 주님께서 보내신다면 순종해야 할 것이다.


22:22-29

 로마 시민권

바울의 변론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의 말을 듣던 청중들은 흥분하여 바울을 죽이려고 달려들었다. 이 유대인의 반응은 스데반의 핍박 장면을 상기시켜 준다. 스데반은 유대인의 성전과 율법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함으로 순교했다. 그러나 여기서 바울은 한걸음 더 나아가 율법을 주신 하나님이 그의 이방인 선교사역을 명령했고, 자신은 그것을 따라서 행동했음을 주장한다. 결국 바울의 이러한 변론은 그들을 설득하거나 회유하지 못하고 그들의 마음을 자극하여 극도의 행동을 취하게 했다. 이에 대해서는 칼빈도 “유대인들이 분노했던 이유는 바울이 이방인에게 보내졌다고 말했기 때문이었다.”고 주장 했다. 또 존 스토트는 유대인들의 분노 이유를 이렇게 이야기 했다. “그들이 보기에 유대교로 개종을 권유하는 것(proselytism, 이방인을 유대인으로 만드는 것)은 괜찮았다. 그러나 복음 전도(evangelism, 이방인들을 먼저 유대인으로 만들지 않고 그리스도인으로 만드는 것)는 가증스러운 것이었다. 그것은 유대인과 이방인이 평등하다고 말하는 것과도 같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두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로 올 - 그것도 대등하게 -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23절에서 묘사된 행동(떠들고, 옷을 벗어 던지고, 티끌을 공중에 날림)은 바울을 돌로 쳐죽이겠다는 그들의 단호한 결의를 나타내는 상징적 표현이다. 아마도 누가가 이 사실을 기록할 수 있었던 것은 바울과 함께 계단에 서서 이 광경을 잘 볼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성난 군중들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이 있다. 그것은  편견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 하는 것이다. 어떤 확신을 시험해 볼 수 있는 좋은 방법은 그 확신을 가진 사람들이 어떤 종류의 기질이나 감정을 표출해 내는지를 관찰해 보는 것이다. 자신의 신념을 변호하는 자가 스스로 흥분하고 격분한다면 그것은 자신의 신념의 부당성을 반증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행위이다. 신약성경에 나타난 경우들을 보면, 복음을 변호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은 언제나 침착하고, 조용하고, 확신에 차 있으며, 결코 두려움이 없으며, 자신들의 견해와 다른 견해들을 가진 사람들처럼 교활하거나 독설을 퍼붓는 일이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자신의 주장을 변호하면서 격앙된 상태에 빠지는 사람은 자신의 변호 태도가 잘못된 것임을 알지 못하는 수도 있지만, 그러나 그러한 생각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

24절의 영문은 안토니아 요새를 말한다. 바울은 로마 병정들에 의해 그 안으로 호송되어 심문을 받게 된 것이다. 처음 천부장 루시아는 아람어를 알아듣지 못하여 바울로 말하도록 허락했다가 그로 인해 군중들이 소동이 일어나자 놀랐던 것이다. 바울은 즉시 백부장의 손에 넘겨졌는데 당시 백부장들은 주로 잡힌 사람들을 다루는 임무를 수행하였다. 군인들이 바울을 심문하기 위하여 흔히 하는 방법대로 채찍질을 하기 위해 가죽끈으로 묶자 바울은 자기가 로마의 시민임을 밝혔다. 이 선언은 진진하게 받아들여졌다. 왜냐하면 로마의 시민이란 주장을 무시하는 것은 큰 죄가 되기 때문이다. 천부장 루시아는 바울에게 “네가 로마 사람이냐”(27절)라고 직접 확인하였다. 천부장은 돈을 들여 로마의 시민권을 얻은 사람이었다(28절). 글라우디오 황제 제위 기간에는(A.D.41-54) 로마 시민권의 매입이 가능했었다. 그러나 천부장과는 달리 바울은 부모가 로마 시민이었기 때문에 나면서부터 로마 시민이었다. 아마 이 때 바울은 유창한 헬라어로 “나는 나면서부터 로마 사람이라”(28절)고 대답했을 것이다. 그러자 천부장은 깜짝 놀랐다. 왜냐하면 로마의 시민을 재판없이 묶는 것은 불법일 뿐 아니라 채찍으로 때린 자는 체포하도록 규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22:30

산헤드린 공회 앞에 서다

바울은 로마인이었고 로마법에 의하면 고소한 사람이 있어야만 심문할 수 있었으므로 고소자가 없는 지금의 상황에서 함부로 바울을 심문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 벌어진 사태에 대해서는 어떻게든 원인 규명을 해야 했고, 또 바울의 송사에서는 분명히 유대교의 종교적 논쟁점이 표준적 역할을 하기 때문에 천부장은 예루살렘 공회를 끌어들였다. 이것은 천부장이 바울 사건에 대해서 상당히 조심스러운 태도를 가지게 되었음을 시사한다. 왜냐하면 자신의 주관적인 판단이나 흥분된 군중에 의한 여론 재판을 피하여 그래도 유대 민족의 최고 법정인 산헤드린에서 사실을 규명하려 하였기 때문이다. 물론, 사실상 산헤드린은 바울을 적대하고 그를 죽이기까지 하려는 무리들이 가득한 반(反) 기독교 집단이었고 거기에서의 심리(審理) 결과가 바울에게 불리할 것은 자명한 일이었지만 천부장이 그것까지 생각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하여튼 바울이 산헤드린에 서게됨으로써 사건은 또다른 방향으로 전개된다(23장). 한글개역성경의 ‘제사장들’이란 번역은 ‘대제사장들’(ajrcierei'")이라고 고쳐야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