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사도행전

사도행전21장,예루살렘에서

호리홀리 2015. 6. 4. 09:28

 21장은 바울의 3차 전도여행(사도행전 13:1~21:14)과 예루살렘을 통한 로마로의 여행(행21:15~28:31)이 교차하는 시점에서 발생한 사건들을 다루고 있다. 밀레도에서 세 차례에 걸친 이방 선교를 마친 바울은 그 동안의 선교 결과를 보고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향하였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핍박으로 바울은 투옥되고 가이사랴에서 옥고를 치룬 뒤 로마로 향하게 된다. 이처럼 사도행전의 21장에서부터 마지막 장까지는 죄인의 신분인 바울이 로마에 도착하기까지의 여정 가운데 발생한 일련의 사건들이 엮어지고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사도행전 21장은 사도행전의 후반부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21:1-14

밀레도에서 가이사랴로 

 밀레도에서부터 예루살렘에 이르기까지 바울의 여정이 소개된다. 바울과 그 일행은 밀레도에서 고스, 로도, 바다라에 도착한다. 바다라에서 베니게 곧 페니키아로 직접가는 배를 만나 그것을 타고 구브로섬을 왼쪽으로 끼고 돌아 일단 중간 하역지인 두로에 짐을 내리기 위해 상륙한다. 여기에서 바울은 두로에서 제자들을 찾아 교제하며 칠일동안 머무는데 제자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바울의 예루살렘행을 만류한다. 여러 날 후에 바울 일행과 두로의 교인들이 바닷가에서 함께 기도한 후 작별한다. 바울이 두로에서 돌레마이에 도착해 형제들을 방문하여 하루를 보내고 이튿날 가이사랴에 도착하여 예루살렘 초대교회의 일곱집사 중 하나인 빌립의 집에 머문다. 빌립 집사에게는 딸이 넷 있었는데 모두 처녀로서 예언하는 자들이었다. 여러 날 후 아가보 선지자가 유대로부터 내려왔다. 아가보가 예루살렘에서 결박될 것을 성령께서 말씀 하셨음을 행동으로 보여주며 바울 일행과 모인 사람들이 바울의 예루살렘행을 만류하지만 바울은 자기를 만류하는 것은 자신의 마음만 아프게 할 뿐이라면서 자신은 결박뿐 아니라 죽음까지 각오했음을 밝힌다. 그러자 일행이 더 이상 만류하지 않고 주의 뜻에 맡긴다.

 1절은 항해일지이다. 여행 첫날은 고스까지 갔고, 둘째 날은 로도스까지, 그리고 셋째 날은 리가오니아의 항구인 바다라까지 갔다. 누가문서에서 가장 두드러진 현상은, 모든 등장인물들이 이동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도행전에서 펼쳐지는 여행은 누가 자신의 신학적 지리를 따르고 있는 것이 명백하다. 이것은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증인 될 것이라”(행1:8)는 부활하신 예수의 선교 위임에 입각한 것이다.

사도행전에서의 여행은 복음 증거자인 바울의 여행에 집중되어 있다. 첫째는, 유럽선교의 시작을 설명하는 것으로 바울이 환상을 보는 장면이고(16:6-12) 둘째는, 예루살렘에서 개정될 바울의 재판과 관련된 마지막 여행이며(20:1-7;13-16,21:1-9;15-17)셋째는 바울이 황제에게 상소함으로 지속될 바울 재판의 최종목적지인 로마까지의 여행이다(27:1-28:16) 이 여행 과정은 우리-내러티브(We-narratives)와 모두 연결되어 있다. 물론 누가가 ‘우리’의 정체성에 대해서 분명한 언급을 하지는 않지만 내러티브의 흐름으로 볼 때 누가는 그들 가운데 포함되어 있는 것이 분명하다. 사도행전에서 연속적으로 전개되는 여행은 바울 선교에서 가장 중요한 활동의 근거가 된다. 

 “두로“ 바울은 이전에 베니게 지역을 통과한 적이 있었다(15:3).

4절, “성령의 감동으로” 사도행전은 성령을 강조한다. 그래서 사도행전을 성령행전이라고 도 한다. 성령의 충만한 사람은 증인의 삶을 사는 것이다.(행1:8) 그리고 바울은 “성령의 이끌림”을 받았다(20:22). 그런데 여기에서 오히려 전도하러 예루살렘에 들어가고자 하는 바울을 말린다. 그렇다면 “성령의 감동으로”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두로의 형제들이 바울더러 예루살렘에 가지 말라고 한 것은 성령이 지시한 것으로 이해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이 성령의 지시였다면 바울이 그대로 행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성령이 그 둘 중 몇 형제에게 예루살렘에서 바울을 기다리고 있는 위험한 일을 보여주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들의 생각으로 그렇게 예루살렘에 가지 말라고 말린 것이다.

 7,  돌레마이에도 형제들이 있는 것으로 보아 그곳에도 교회가 있었다. 돌레마이에서 가이사랴 까지는 50-60km로서 하루에 걷기에는 너무 먼 길이었으며, 게다가 갈멜산을 돌아서 가야 했다. 그래서 그들은 그곳에서 하루를 머문 것으로 보인다.

 8장 40절에서는 빌립이 가이사랴에 왔다고 말한다. 그리고 아마도 그가 가이사랴 교회를 세웠을 것이다. 빌립은 스데반의 옛 동료였으며(6:5), 여기서는 “복음전도자”, 즉 “복음선포자”로, 그리고 “일곱 중의 하나”로 지칭된다. 빌립을 복음전도자로 지칭하는 것은 이전의 그의 활동과 관계되는 것일 수 있고(8:4-13,26-40) 또 가이사랴에서 교회의 지도자와 말씀 선포자로서의 현재 기능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 빌립을 통해 성령의 힘이 히브리인들에서 헬라인들에게 넘어가고 있음을 볼 수 있다(6-8장). 또한 7집사의 지도력이 12집사의 지도력과 차별성이 없음을 알 수 있다. 12사도의 체류에 대해서는 15장과 16:4에서 그들에 관한 언급이 마지막 나올 뿐이다.

 9,  “그에게 딸 넷이 있으니 처녀로” 이들은 어떤 특별한 방법으로 주님을 섬기기로 헌신한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예언의 은사는 남녀모두에게 허락되었음이 분명하다(2:17-18). 여자들 역시 하나님의 사역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저자 누가는 남녀 평등의식이 있었음이 분명하다. 저자 누가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아나니아와 삽비라... 이렇게 남녀모두를 써주는 것을 볼 때에 그리고 이렇게 여인들이 하나님사역에 적극적으로 참여함을 서술한 것을 볼 때 누가에게는 남녀 평등의식이 있었음이 분명하다.  

10 , 누가는 아가보를 선지자로 표현한다. 누가는 조연들은 선지자로 표현하였고 주연들은 성령의 충만한 사람으로 표현한다(4:8;5:32;6:3;7:55;11:24;13:9). 아가보는 약 15년 전 안디옥에서 예루살렘에 닥칠 기근을 예언했던 바로 그 선지자였다(11:27-29).

[ 11 ] 아가보의 예언은 구약에서 종종 발견되는 예언적 상징주의의 하나다(왕상11:29이하;사20:2이하;렘13:1이하;겔4:1이하).

[ 12 ] 예루살렘에서 당할 바울의 운명을 통지하는 예언의 말씀이 얼마나 극적이었던지 가이사랴의 기독교인들뿐만 아니라 바울과 함께 여행하던 일행들까지도 그에게 계획을 포기하도록 간청하였다. 여행 동료들과 그 곳 그리스도인들의 간청은 경고를 보다 강화시키는 역할을 하며, 위험을 강조한다. 여기서도 성령이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가지 말라고 경고했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이 여행을 계속한다면 성령의 지시를 어기는 것이 된다. 하지만 그렇게 해석하면 안 된다. 성령은 단지 닥쳐올 위험을 알려주었을 뿐이고 신도들은 그들 자신이 생각에 따라 간청했을 뿐이다. 4절과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다.

[ 13 ]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경고와 간청은 수난에 대한 바울의 각오를 공공연히 밝히게 만든다. 그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는 감옥에 갇힐 뿐만 아니라 죽임을 당할 각오까지도 되어있다. 바울은 이방인의 손에 넘겨짐으로써 유대인들이 예수에게 행한 일을 자기도 또한 겪게 될 것이다(눅18:32) 또한 여기에서 저자 누가의 문학적인 구성을 볼 수 있다. 누가는 지리를 통하여 이야기를 서술해 가는데 이야기의 중심지는 바로 예루살렘이다. 예루살렘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이유는 예루살렘은 예수의 탄생과 죽음 그리고 부활과 승천이 예루살렘이었기 때문에 이것을 통하여 유대교에 대한 기독교의 정당성을 확보하려하였다. 누가의 예루살렘 지향성은 여기 외에도 12:25, 15:22, 19:21, 20:16, 25:1 에도 나타난다.

[ 14 ] 바울이 이방인의 손에 넘겨지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뜻이다(18:21). 아마도 그것을 통하여 바울이 로마로 가서 복음을 전하는 시작이 될 것이다(9:15-16). 또한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에서 우리는 기도에 관해 배울 수 있다. 예수님의 기도는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었다.”(22:42) 또한 주님이 가르쳐준 기도에도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한다. 기도란 하나님이 뜻을 이루는 최선의 것이다.


21:15-26

 예루살렘 도착

여러 날 후에 바울 일행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간다. 얼마 후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때 가이사랴의 몇 제자가 함께 동행하고 가아사랴의 제자들이 바울 일행이 예루살렘에 머물곳으로 구브로 출신으로서 나손의 집을 택하여 그를 데리고 간다. 예루살렘에 돌아온 일행을 형제들이 반갑게 영접한다. 그 이튿날 바울이 주의 형제 야고보와 예루살렘 교회 장로들에게 문안하며 자신의 이방인 선교 사역을 상세히 보고한다.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들이 바울의 이방 선교 보고를 듣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그리고 야고보와 장로들은 수만 명에 이르는 유대인 출신 신자들 사이에 바울이 이방에 있는 모든 유대인들을 가르치면서 율법을 무시한다는 소문이 퍼져 있음을 전한다. 그리고 야고보와 장로들은 유대인 출신 신자들의 오해를 불식시키고자 바울에게 결례를 행할 것과 다른 결례 서원자들의 비용도 대신 지불할 것을 제안한다. 동시에 전날의 이방인 신자들을 위한 예루살렘 공회의 의견 내용을 재언급함으로써 이는 유대인 출신 신자들만을 위한 것일 뿐 이방인 신자들에게는 해당되지 않음을 강조한다. 바울이 야고보와 장로들의 제안을 받아들여 이튿날 다른 네 명의 결례 서원자들과 함께 결례를 행한다. 그 후에 성전에 가서 제사장들에게 정결 기한이 끝나는 대로 예물을 바쳐야 한다는 것을 고했다.

[ 15 ] 가이사랴에서 예루살렘에 이르는 거리는 약 100km였으며, 하루에 갈 수 있는 거리가 아니었다.

[ 16 ] “그의 집에 유하려 함이라.” 어느 집에 묵거나 식사를 제공 받는 환대의 주제는 초기 기독교 문학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환대는 초기 기독교에서 지도자를 선택하는 자격조건에서도 결코 배제되지 않는 중요한 덕목 이었다  (딤전3:2;딛1:8;행16:12-15;17:5;21:16;28:7,14몬22). 또한 환대는 최소한의 후원이었다. 나손은 바울과 그의 일행을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재력이 있는 제자였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의 상류계층과 가진 자들은 사유물을 공적으로 사용하도록 자신의 것을 내어놓았을 뿐 아니라 자신의 터가 나눔의 장이 되도록 제공했음을 주목해야한다.

[ 21 ] 이것은 교회 내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의 관계와 관련된 세 번째 갈등이었다. 첫 번째는 이방인의 세례문제였는데, 이는 사도행전 11장에서 해결되었다. 두 번째는 이방인들에게 할례를 요구하는 문제였는데, 이는 사도행전 15장에서 해결되었다. 이제 여기서 교회가 당면하는 문제는 유대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들의 유대적 관습, 가치, 관례를 포기하도록 요구하는 것이었다. 바울은 이 문제의 중심인물이었는데, 왜냐하면 이방인 선교의 지도자로서 유대전승을 공경하기를 원하는 유대인 그리스도인에게 특별히 호의적이지 않은 사회적 상황을 바울이 조성했기 때문이다. 이방인 선교가 계속하여 성공하며, 교회 내의 유대 그리스도인들의 수가 점점 더 소수가 되면서, 이 문제는 더욱 가열되었다. 그러므로 바울에게 불리한 소문이 그들에게 전해 졌을 때 그들이 그에 대해 아주 나쁜 인상을 갖게 되었다라는 것은 당연하다.

[ 23-26 ] 당시 예루살렘의 그리스도 공동체에는 네 명의 가난한 나실인이 있었다. 그들의 나실인 서약기간은 이미 만료되었다. 그리고 그들이 조달할 수 없었던 봉헌비용을 바울이 담당해야 했다(이러한 행동은 경건으로 간주되었다). 그는 이 사실을 해당 사제에게만 알리고 봉헌 시기를 결정해야 했다. 바울은 외국에서 왔기 때문에 레위법적으로 부정하다고 여겨졌다. 이 때문에 그는 먼저 정결의식을 함으로써 레위법전적인 정결을 다시 회복해야만 했다. 이것은 신고한 다음 3일째 되는 날과 7일째 되는 날에 죄 씻음의 물을 뿌림으로써 이루어졌다. 먼저 이렇게 레위법적으로 정결해진 다음에야 바울은 네 명의 봉헌 예식에 참석할 수 있었다. 이에 따라 바울은 장로들의 제안을 받아들였을 때 네 명의 나실인과 함께 성전으로 가서 거기서 자신의 속죄의식을 신고하고, 네 명의 나실인의 결례의 만기된 것을 신고했다. 이로써 그가 비용을 지불한 제사가 드려진 날짜를 알 수 있다. 그것은 바울로 자신의 죄 씻음을 받았던 7일째 되는 날이었다. 바울이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들의 제안을 기꺼이 받아들인 것은, 바울은 율법에 얽매인 것이 아니라, 교회 내의 유대인적인 요소와 이방적인 요소의 조화로운 관계를 도모하고자 하는 선한의지 때문이었다.


21:27-40

바울의 체포 

바울은 유대인 신자들의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들의 제안을 받아들여 일주일을 기간으로 성전에서 결례를 행하였다(행 21: 26). 그런데 결례의 기간이 끝나갈 즈음에 아시아로부터 온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바울을 발견하고 무리를 선동하며 바울을 붙잡는다. 그들은 외치며 바울이 세계 각처에서 유대인과 율법과 성전을 훼방하는 교훈을 퍼뜨린다고 비방한다. 또 바울이 헬라 출신 드로비모와 함께 다니는 것을 두고 바울이 이방인을 성전에 데리고 들어와 성전을 더렵혔다고 모함한다. 이에 흥분한 백성들이 바울을 잡아 성전 밖으로 끌고 간다. 성전 바깥뜰에서 안뜰로 연결되는 문이 즉시고 닫히고 무리들이 바울을 구타하여 죽이려한다. 백성들의 소요 소식을 듣고 로마군 천부장이 달려오자 무리가 바울에 대한 구타를 멈춘다. 천부장이 바울을 결박한 후 무리에게 바울의 죄가 무엇이냐고 묻는다. 유대인 무리가 바울에 대하여 제각기 말하는 죄목이 다르므로 천부장이 일단 바울을 영문 안으로 데려가도록 명한다. 무리들이 워낙 난폭하게 굴어 영문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이르러서는 군병들이 바울을 들쳐 메고 가야 할 정도가 되었다. 무리들은 바울을 죽이라고 외치며 군병들의 뒤를 따른다. 바울이 영문으로 들어가기 직전에 천부장에게 헬라어로 자기변호의 기회를 달라고 요청한다. 천부장이 바울이 헬라어를 사용하자 바울을 얼마 전 난을 일으켜 광야로 잠적했던 애굽인으로 오해한다. 바울이 자기는 다소 출신임을 밝히며 재차 자기변호를 요청한다. 천부장이 바울의 자기변호를 허락하고 바울은 층계위에 서서 일단 손짓으로 유대인 군중들을 진정시키고 바울이 유대 군중을 향하여 히브리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한다. 이로써 바울은 사도행전 22장에 나오는 긴 변론을 시작하게 된다.

[ 27-28 ] 바울을 붙잡은 것은 그리스도인 유대인들이 아니라 아시아 유대인들이었다. 바울에 대한 유대인들의 고소는 이미 21장 21절에 서 예루살렘의 지도자들 특히 야고보의 고발로 드러난다. 이 장면은 바울과 유대인들 간의 관계가 점점 악화될 것을 암시한다. 바울이 유대교의 질서를 파괴했거나 혹은 그가 유대 그리스도인들에게 율법이나 습관을 포기하라고 강요했다는 사실은 증명되지 않는다. 반대로  바울은 그의 동역자인 디모데가 할례를 받고 유대교의 나실인 서약을 하도록 했다.(16:3, 18:8) 이 고소는 반-유대적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이 부분에서 유대인의 이미지는 압도적으로 부정적이다. 

[ 29 ] 유대인들은 바울이 에베소 사람 드로비모를 데리고 성전에 들어간 줄로 생각했다. 유대인이 아닌 사람이 성전에 들어가면 죽음을 당했다. 그리고 그들은 이에 대해 비난함으로써 군중들을 흥분하게 했다. 실상은 바울과 함께 예루살렘 성내에 있었을 뿐인데 말이다. 만약 드로비모가 금지구역에 들어갔다면 유대인들은 바울보다는 오히려 드로비모를 공격했을 것이다. 즉 여기서 유대인들의 바울에 대한 고소가 사실상 거짓이라는 것이 드러난다. 이처럼 바울을 모략하는 행동은 그들이 결코 명예롭지 못함을 드러내는 하나의 충분한 사례가 된다. 그러므로 사도행전에서 저자의 관점에서 유대인들은 바울(기독교)의 대적자로 나타난다.

[ 30 ] 유혈행위로 인해 거룩한 곳이 더럽혀져서는 안 되었기 때문에 문을 닫았다.

[ 31-33a ] 이 장면에서 총독의 하급자인 유대인들에 대한 행동은 예루살렘에서 군사 및 행정 책임을 맡은 자로서 그의 직무에 일치함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그의 행동은 바울에게 제공한 긍정적 지원의 한 예로 볼 수 있다. 폭동에 대한 로마의 염려 때문에 바울은 구금되도록 유대인들의 손에 맡겨졌으며, 그래서 로마인들 자신에 의해서 심문을 받게 된 것이다. 더욱이 우리는 고린도 갈리오(18:12-17)와 천부장(21:33;23:12-32)으로부터 받은 일종의 로마의 후원을 ‘정치적 변호’와 동일한 해석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소란으로 인해서 심문이 완전히 망가지게 된 것은 천부장이 로마법과 질서의 상징으로 불완전하다는 증거, 즉 수치의 상징으로 제시될 수 있다. 또한 로마제국의 무능함을 보여주며 반-로마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또한 여기에서는 반-유대적 정서 역시 나타나는데, 유대인들이 천부장과 로마 군인들을 보았을 때, 그들이 바울을 때리기를 멈췄기 때문이다.  만일 유대인들의 주장이 옳았다면, 그들은 그들 자신의 무죄를 계속 주장할 수 있었을 것이다. 유대인들의 수치가 드러난다.

[ 33b-34 ] 천부장은 큰 소란 때문에 병영으로 바울을 데려오도록 명령한다. 이 장면의 주인공들은 로마의 관원들과 유대인들이다. 여기서도 역시 로마인들의 행동은 그들의 연약함과 부정의를 나타낸다. 바울은 전적으로 하나의 민중으로 취급된다.

[ 35-36 ] 유대인들의 감정은 격해져 바울을 없애라고 소리치며 따라간다. 이것은 반-유대적 정서의 한 예가 되며,  “그를 없이 하라”는 예수를 심판할 때 무리가 외쳤던 것과 똑같은 외침이었다.(눅23:18;요19:15)

[ 37-39 ] 바울의 헬라어 구사 능력과 이집트 사람인지에 대한 천부장의 심문에 관하여 바울이 답변했다. 천부장이 잘못 알았던 그 애굽인은 틀림없이 요세푸스가 말했던 사람일 것이다. 천부장의 생각에는 유대인들이 그렇게 미워 할만한 사람은 그 애굽인 밖에는 없는 것 같다고 생각 되었던 것이다.  이 구절은 알렉산드리아에서 발견된 여러 파피루스와 문학적으로 유사한 것으로 바울의 담대함, 그의 출생의 자부심, 그리고 그의 고향 다소에 대한 애착을 강하게 드러내는데 목적이 있다고 하겠다. 바울은 자신의 출생의 자부심과 고귀한 신분을 제시한다.  시민이 이방인이나 주변인으로 취급되는 것은 그 자체로 수치스런 일이 된다. 그러므로 천부장과 바울의 대화에서 우리는 바울이 직면한 이런 상황에서의 반전을 기하는 노력으로 하나의 카드를 제시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즉 바울은 이 내러티브에서 특히 그의 출생의 자부심을 통해서 로마 제국의 관리 앞에서 그의 우위를 드러냄으로 반-로마적 정서를 은근히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물론 체포당하는 것은 불명예이지만, 이 내러티브는 명예의 장면으로 계속해서 그것을 제시한다. 우선 명예는 권세와 관리 능력을 말한다. 로마의 군인들이 바울을 붙잡아 부대로 데려갈 때, 바울은 천부장에게 할 말을 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다. 그리고 거기에서 “허락하라”라는 동사는 부정과거 명령형으로, 우리는 바울의 자신 만만함을 짐작하게 된다. 내러티브는 이렇게 죄수 바울이 조정하고, 관리하는 분위기를 띠고 있다. 더욱이 천부장이 과거 소란의 책임자냐고 물었을 때, 그 말에는 응답하지 않는 대담함을 보여준다. 명예와 수치라는 가치에서 읽을 때, 질문하는 사람이 명령하는 위치에 서게 되는데, 우리는 대답하지 않는 바울의 모습에서 명예의 의지를 발견하게 된다. 다소시민권자라는 바울의 언급은 그를 이집트의 테러리스트와는 완벽하게 구별되는 모습이다. 이것은 바울의 재판 내러티브에서 그의 시민권에 관련된 첫 번째 사건이다. 사실상 이 사건은  마지막 지점인 로마를 향한 바울 여행의 출발점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