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은 3차에 걸친 전도여행의 대단원의 막을 내리고, 예루살렘 상경을 준비하고 있다. 20장에 열거된 중요한 사건들 속에는 성령의 역사와 함께 바울의 삶과 사역, 목회적 소명, 그리고 바울의 중심사상까지 포괄적으로 내포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20:1-6
마게도냐와 그리스로 간 바울
바울은 3년 가까이 아시아의 중심지며, 큰 도시였던 에베소에서 복음을 전하였다. 그러나 아데미 여신의 우상을 만들어 파는 데메드리오와 직공들이 일으킨 소요로 인해 바울은 더 이상 그곳에 머물러 복음을 전할 수 없게 된다(19:23이하). 에베소의 광적인 소요가 그치자, 바울은 제자들을 불러 권면한 후 작별하고 마게도냐로 가게 된다(20:1). 여기서 “소요가 그치매”(20:1)라는 문구는 바울이 에베소를 서둘러 떠나게 된 경위를 진술하는 것처럼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에베소의 서기장이 무리를 설득하여 질서를 회복시키고(19:35-41), 바울이 제자들과 여유있게 작별의식을 치루는 장면을 연상해 볼 때 ‘소요가 그치매’란 문구는 바울이 또 다른 사역지를 위해 에베소를 떠나게 된 시간적 배경을 설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바울은 처음 계획했던 대로 마게도냐로 간다(19:21).
마게도냐는 소아시아 맞은편 지역으로 오늘날 그리스에 속하며, 빌립보와 데살로니가, 베뢰아 등의 도시가 있는 곳이다. 2절에서 말하는 “그 지경으로 다녀가며”란 말은 에베소에서 고린도에 이르는 긴 육로 여행 도시 전체를 말하는 것으로 본다. 바울은 2차 전도 여행 때 핍박으로 인해 이곳을 급히 떠나게 되었기 때문에 아쉬움이 많았던 곳이다(행16:19-17:15). 그러므로 바울은 처음 전도의 옛 중심지인 빌립보(16:12), 데살로니가(17:1), 베뢰아(17:10)의 공동체를 재방문했을 것이며 이 기간 중에 바울이 로마서 15:19에서 말한 바와 같이 일루리곤(Illyricum)까지도 갔을 것으로 본다. 그렇다면 마게도냐에서 체류한 기간이 상당히 긴 기간이었음을 추측해볼 수 있다. 바울은 전에 복음을 전했던 이 지역들을 찾아다니며 제자들에게 많은 말로 권면했고(20:2) 많은 위로를 받았으리라 본다. 고린도 후서도 이때 기록한 것으로 본다(고후 7:6).
그 후 바울은 헬라로 가서 석달을 머물렀다.(20:2) ‘헬라’는 고린도 아테네 등이 있는 아가야 지역을 뜻한다. 당시 헬라와 아가야을 뒤섞어 쓰는 것은 헬레니즘 시대 저자의 특징이었다. 그러므로 바울이 실제로 체류하였던 곳은 아가야의 수도 고린도였다. 바울은 고린도에서 가이오의 따뜻한 대접을 받으면서(롬 16:23) 이 기간에 로마서를 기록하였다(롬15:17-33). 바울에게 있어 로마교회는 복음을 위한 전진기지에 해당되었으며, 스페인까지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열망이 강했기 때문에, 바울은 로마를 방문하기 앞서 먼저 공식적인 편지를 보냈던 것이다.
바울은 헬라에서의 사역을 마치고 배타고 수리아로 가고자 했다(20:3). 바울의 계획은 고린도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유대인 순례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자 했다. 하지만 바울은 유대인들의 공모 즉 바울의 생명을 노리는 그들의 계획을 알고 해상보다 훨씬 늦은 육로를 택해 마게도냐를 거쳐 돌아가게 된다. 이로 인해 바울은 마게도냐의 여러 성도들과 다시 교제를 나눌 수 있었으며, 또 여러 사람이 바울과 함께 동행하게 된다(20:4). 바울과 일행은 교회의 회중들과 함께 무교절을 보낸 후 빌립보에서 배를 타고 닷새만에 드로아에 도착하여 먼저 온 형제들과 합류하게 된다(20:6).
사도행전16:11에서는 드로아에서 빌립보까지 배 타고 이틀만에 도착하는데 반해 여기서는 닷새가 소요된다. 기후로 인해 향해가 순조롭지 않았음을 추측해볼 수 있다. 또한 바울의 사역이 결코 순탄하지 않으며, 사람의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또한 성령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일들이 추진되고 있다는 것을 사건을 통해 확인시켜주고 있다. 반대세력에 부딪힐 때마다 성령은 그것을 통해 또 새로운 일들을 성취해나가고 있다.
바울의 여행 주 목적이 무엇이냐를 깊이 생각해보게 되는데, 그와 함께 동행했던 사람들의 이름을 살펴볼 때 일반 성도가 아닌, 바울을 수행하며 재정 관리를 돕도록 임명된 교회의 대표자들이었다는 사실을 먼저 알 수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그는 교회들을 계속 격려할 뿐만 아니라 예루살렘의 궁핍한 신자들을 돕기 위해 연보를 거두었으며 이 연보를 위해 갈라디아와 아시아와 마게도냐와 아가야 지방의 교회들에게 준비시켰던 것으로 본다(롬 15:25-32; 고전16:1-4). 당시 이방인 교회들의 연보는 단순히 사랑을 나타내는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유대인과 이방인이 복음 안에서 그리스도의 한 몸을 이루고 있음을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행위였다.
20: 7-12
드로아에서 말씀을 전함
누가는 드로아에서 이레를 머무는 동안 한 사건을 비교적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이 사건은 이방인 지역에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목격하게 해준 일이기도 하다. 때는 “안식 후 첫날”로(20:7) 곧 주일에 대한 언급이 최초로 나타나게 된다. 그리스도의 부활과 성령강림 사건이 안식 후 첫날에 일어났으므로 바울이 일행과 함께 성도들과 “떡을 떼려 하여”모였다는 것은(20:7) 당시 초대교회가 가진 자연스럽게 드려진 예배였다고 본다. 또한 그날에 모인 성도들은 성령의 임재에 대해 열렬히 사모했으며, 고대하는 마음이 충만했으리라 본다. 그리고 무엇보다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였다는 것은, 그 당시 ‘드로아’가 이방 지역임을 감안하여 일반적인 로마식 계산 방식에 따랐다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그곳에 모인 성도들은 주일 오전 또는 오후에 모여 예배를 드리고, 이어서 바울의 성경 강론을 계속 들었다는 것이 된다. 그리고 바울은 유대의 날짜와 다른, 주일을 피해 다음날 드로아를 떠나게 되는 것이다.
‘떡을 떼는 일’은 많은 무리가 한꺼번에 개인집에 모인 것과 밤 늦게 까지 성경 강론을 계속’했다는 점을 볼 때 이는 주의 거룩한 만찬(the Lord's Supper)을 기념하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 마땅하다. 또한 그들이 안식 후 첫날에 모인 목적을 가르쳐주는 것이며, 떡을 떼는 일은 반드시 말씀을 강론한 후에 실시되었음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20:7-11). 또 초대교회의 집회 장소로 개인집의 다락방이 사용되었다는 점이다(20:8 ; 1;13). 장소의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초대교인들은 모이기에 힘쓴 자들이었음을 알 수 있다. 모인 윗다락에 등불을 많이 켰는데도(20:8) 불구하고 유두고란 청년은 창에 걸터 앉아 깊이 졸다 삼층 누에서 떨어져 죽게 된다(20:9). 20장 9절에서 전반절의 ‘등불을 많이 켜 둔’ 이유에 대한 답변이 후반절에 나타나고 있다. 즉 다락에 등불을 넉넉히 켜 놓은 목적은 다락의 위치가 삼층이란 점과 장소가 비좁았음을 볼 때 누구나 사방이 잘 보이도록 하기 위함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사고를 사전에 방지하고자 하는 집주인의 배려였는지도 모른다.
바울이 유두고를 살리는 행동을 통해 또 해석할 수 있는 것은 알레고리적 측면에서 누가는 유두고의 죽음과 다시 살아남을 통해 초대교회 성도로 하여금 부활의 감격을 재현했음을 짐작하게 된다(20:9-12). 그러므로 이 장면은 단순히 한 개인이 겪게 된 사건이 아니라, 당시 초대교회의 성도들로 하여금 성령의 역사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현장이다. 또 누가는 유두고가 다시 살아남으로 그들이 “위로를 적지 않게 받았더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죽은 자를 살리신 하나님의 기적을 통해 그들의 신앙이 더욱 견고해지며, 하나님의 능력을 증거하게 되리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20:13-16
밀레도로 가는 바울
드로아를 떠난 바울과 그 일행은 두 편으로 나뉘었다. 바울은 육로로 앗소로 가고, 나머지 일행은 배를 타고 먼저 앗소에 가서 기다리게 되었다(20:13).
드로아에서 앗소까지는 약 32km나 되는 거리인데 바울은 혼자서 이 육로로 가는 길을 택했다. 여기서 바울이 왜 일행들과 헤어져 혼자 가는 길을 택했는가에 대해 여러 설이 있지만 바울이 전도자였다는 사실을 근거로 할 때, 아마도 둘러보아야 할 지역과 사람들이 있었음을 추측해볼 수 있다.
바울은 앗소에서 일행을 만나 승선하였다. 그리고 그 배는 앗소로부터 70km 정도 떨어진 레스보스섬의 수도 미둘레네에서 첫 밤을 보내고 둘째날 밤에는 가능한 서둘러서 오순절 안에 예루살렘에 도착하려는 마음 때문에 항구에 배를 정박(碇泊)시키지 않은 채 이른 아침까지 기오 앞에 있었다. 그리고 셋째날에는 사모에 인접한 항구인 트로길리움(Trogyllium)에 체류하여, 넷째 날 에베소 곁에 있는 밀레도에 도착했다. 밀레도는 에베소 남쪽에 있는 항구다(20:14-15).
20장 16절에서 바울은 에베소에 들리지 않고 급히 지나가는 이유가 오순절 안에 예루살렘에 도착하기 위함임을 밝힌다. 왜냐면 마게도냐와 아가야 지방의 교회가 예루살렘 교인들을 돕기 위하여 모금한 연보를 전해 주는 일이 시급했기 때문이라 본다. 그리고 오순절을 지키려 모여든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좋은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며 그동안의 선교 보고를 하고자 하는 바울의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본다.
20:17-35
고별 설교
바울이 에베소 장로들에게 행한 고별 설교는 그 상황과 신학적 주제와 사용된 어휘들을 통해 바울서신의 구성과 유사점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바울의 사상적 경향을 입증해주고 있다. 그러나 사도행전에 나타난 다른 설교들 즉 유대인들(2:14-36), 3:12-26)이나 이방인들에게(10:34-43, 17:22-31)전한 설교와는 다른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우선 이 연설을 듣는 대상은 “장로들”(20:7)이다. 바울과 함께 3년동안 에베소에서 사역한 동역자들이었다. 사도시대에는 장로와 감독 사이 구분이 없었기 때문에 에소 교회의 ‘장로들’(presbuteroi) 역시 ‘감독자들’(episkopoi)로 불려지고 있다.(20:28) 그러므로 장로들은 교회 내의 행적적인 일은 물론 목회적 임무까지 수행했다는 것을 짐작하게 된다(약5:14; 벧전5:1-4).
이러한 상황을 비추어볼 때 바울의 설교 속에는 다른 어떤 설교에서는 볼 수 없는 바울의 목회적 소신과 전도자의 소명의식이 더욱 간절히 담겨있다 본다.
배가 밀레도 항구에 닿자마자 바울은 그곳에서 직선 거리로 약 50km 떨어진 에베소에 사자를 보내어 에베소 교회 장로들을 청했다(20:17).
바울은 장로들이 모인 자리에서 ‘너희도 아는 바니’(20:18)란 강조용법을 대동해 자신의 사역을 회고하며 간증하기 시작한다. 이는 데살로니가 전서 2:1-12절의 말씀과 밀접한 병행을 이루고 있다. 데살로니가 교회의 경우처럼 에베소에 있던 바울의 대적들은 그가 그곳에 없을 때 성도들에게 바울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심어주었다. 그래서 바울은 그의 고별 설교를 듣는 장로들에게 이 점을 변호해야만 했던 것이다.
그리고 바울은 지금까지 자신이 가르쳤던 복음은 자신의 삶과 일치하는 것으로 장로들 또한 가르침과 삶이 일치한 실생활을 증거로 교회의 치리자가 되기를 호소한다(살전 2:1-12).
여기서 바울은 주를 섬긴다는 것(20:19)이 주님의 ‘종’임을 깊이 인식하는 것이며, 그것이 곧 자신이 지금까지 에베소에서 행해 왔던 생활방식이며, 신앙태도였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그리고 20절에서 유익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꺼림이 없이”란 말로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전했던, 복음 전파의 다양성과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바울이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모두에게 전한 복음의 핵심은 ‘회개’와 ‘믿음’으로 당시 초대교회 복음의 핵심이 ‘회개와 믿음’이었으며, 기독교의 중심 교리였다는 것을 밝혀주고 있다.
바울의 고별 설교의 둘째 부분은 예루살렘으로 가려는 그의 확고한 결의가 나타나 있다.
“심령에 매임을 받아”(20:22)란 말은 문맥 전체로 보아 ‘성령에 매인 바’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바울은 하나님 손에 붙잡혀 예루살렘에서 당할 고난을 예측함에도 불구하고(20:23) 성령의 지시에 앞에 순종할 수 밖에 없는 자신을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학자들은 성령의 매임(20:22-24)과 경고(21:4, 10-14) 사이에는 모순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누가는 예루살렘에 가고자 한 바울의 결정이 “성령에 의한 것”이라는 진술로 시작했으며(19:21), 바울의 여행 계획에 관한 진술은 이 구절의 진술과 전혀 상충되는 점이 없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에 가는 것과 관련된 성령의 강권하심과 경고는 모두 성령의 지시에 포함되어 있다고 봐야 한다.
바울과 함께 있는 사람들은 바울의 신변을 염려하여 예루살렘에 올라가지 말라고 울면서 권하였으나 바울은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받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는 담대함을 보이고 있다(21:12-13). 이처럼 바울은 현실 앞에 놓인 운명을 예견함에도 자기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말을 남김으로, 자신의 존재에 대한 거룩한 가치를 역설적으로 상기시키고 있다(20:24). 그는 파수꾼의 사명을 다했기에 (26-27) 오히려 하늘에서 받을 면류관을 생각했던 것이다(딤후2:5; 3:8).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깨끗했다”(20:26)는 바울의 고백은 하나님의 뜻을 모두 전하였기 때문에 결코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다는 것을 증명해주고 있다. 그러므로 바울에게 있어 육신의 죽음은 새로운 생명으로의 연장을 가리키고 있다. 바울이 아무런 두려움없이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을 각오하게 되는 것도 영원한 생명을 보장받았다는 확신 가운데 있었기 때문이다.
고별설교의 셋째 부분은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에 대한 권면으로 이어지고 있다. 바울은 당시 거짓교사들의 출현으로 목회의 많은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에 장로들에게 자신과 양떼를 위하여 근면하고 깨어 있어야 할 것을 강조했다(20:28-29). 실제로 에베소 교회에는 자칭 사도라 하는 자들이 들어왔고 니골라당이라는 이단이 들어와 분열을 획책하기도 했다(딤후1:15; 2:17 ; 계2:1-7). 그러므로 바울은 이 감독자의 직분이 성령께서 하나님의 신성을 위탁하여 다스리는 직무와 돌보는 직무를 함께 수행할 책임이 주어졌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나 데살로니가후서에서는 지역적인 의미로 “교회”란 단어를 사용했다(갈1:2; 살전1:1; 살후1:1) 그러나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서신에서는 보다 보편적인 의미로 이 단어를 사용했다. 그 이후 바울 서신에서 “교회”는 언제나 보편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서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20:28)를 치게 했다는 것은 교회의 본질을 말하고자 했던 것으로 본다. 교회는 희생의 피를 흘린 거룩한 곳이며, 값을 치루고 산 즉 교회는 인간의 힘으로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피를 흘리신 댓가로 세워졌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의 감독자들은 자기와 자기 양떼를 위하여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바울은 20장 34절에서 데살로니가(살후 3:7-12)와 고린도(고전 9:11-15;고후 11:7-12)에서처럼 에베소에서도 친히 노동을 하여 자신의 생계 문제를 해결했을 뿐만 아니라 동행들의 필요까지 채워주었다.(18:3; 고전 4:12; 살전 2:9). 이는 바울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지 않고 오직 섬김의 모습을 보여주는 삶의 증거다. 또 당시 반대자로부터 탐욕을 위해 복음을 전한다는 어떤 빌미도 잡히지 않기 위함이기도 하다. 그러나 바울이 에베소 장로들에게 최종적으로 당부하는 바는 “약자를 돌보며”라 했는데, 바울이 말한 약한 자들은 경제적으로 궁핍하고 신체상으로 병들고 약점을 가진 가난한 자를 가리킨다(엡4:28).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20:35)는 문구 자체는 복음서 어디에도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 말씀에 대해 단수로 주 예수의 “말씀”이라고 하지 않고, 복수로 “말씀들”이라고 말한 사실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바울은 예수님의 한 특정한 말씀을 생각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들을 요약하여 한 말이라 볼 수 있다(눅6:38, 30,35; 12:33-34). 산상보훈의 가르침 전체가 이웃 사랑을 주제로 하고 있기 때문에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님의 정신을 이어 받아, 장로들에게 전하고 있다고 생각해볼 수 있다.
20:36-38
밀레도 항구에서의 작별
당시 바울과 함께 동행하며 모든 현장을 목격했던 누가는 이 작별에 대한 내용과 광경을 아주 섬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바울은 장로들을 권면한 후 이들과 함께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한다(20:36). ‘무릎을 꿇는 것“은 하나님 앞에 자신을 낮추고 은혜를 간구하고자 하는 태도이다. 이 장면을 통해 바울의 인간적 슬픔과 하나님께로 향한 그의 간절함을 읽을 수 있다. 이어 바울은 작별인사를 하게 되는데 여기서 “입을 맞추다”란 헬라어 “카테필룬”(katefivloun)은 미완료 시제로 관례적으로 행하는 입맞춤이 아니라 사랑의 마음을 억누르지 못하는 아쉬움으로 몇 번이고 입을 맞추는 것을 뜻한다. 누가는 장로들의 슬픔을 “클라우드모스”(klauqmov")란 단어를 사용하여 마치 죽어 사별하는 사람에게 가지는 감정으로 표현했다(20:37). 이처럼 바울은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다 주고 이제 다시 목숨을 바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떠나야 했으며, “다시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는 유언과 같은 말에 장로들은 더욱 근심하며 슬퍼한다.
바울의 마지막 작별을 연상해볼 때 바울과 장로들 속에 일어나는 감정들은 인간적이면서도 성령에 이끌리는 복합적인 요소를 지녔다 볼 수 있다. 그러나 누가는 장로들이 바울을 배에까지 전송하는 모습을 묘사함으로써, 작별의 고통과 아픔들을 하나님의 고귀한 사랑으로 아름답게 승화시키는 것으로 막을 내리고 있다(20:3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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