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사도행전

사도행전18장,동역자들

호리홀리 2015. 6. 3. 12:16

18:1-17

고린도에서의 바울

 

바울은 아덴을 떠나 계속 남서쪽으로 여행하여 고린도에 도착했다. 고린도는 B.C. 146년에 로마에 반역한 것에 대한 앙갚음으로  로마 장군 뭄미우스에 의해서 황폐되었다. 그 이후 B.C. 46년에 줄리어스 시저는 고린도를 재건하여 식민지로 만들었다. B.C. 27년에 고린도는 아가야 지방의 수도가 되었고, 오래지 않아 고린도는 이전에 누리던 번영을 되찾았다. 그러나 그것과 더불어 고린도는 성적으로 문란한 도시라는 악평을 얻게 되었고, 심지어 그리스도인들조차도 이러한 고린도인의 특별한 악습을 물리치기가 어려웠다. 더욱이 고린도는 거대한 상업적 중심지로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중앙 시장이었다. 헬라 본토와 펠로폰네소스 반도를 연결시켜 주는 지협 근처에 자리잡은 그 도시는 남북간의 육로뿐 아니라 동서간의 해로까지 모든 방향으로 교역로를 지니고 있었다. 또한 고린도 만에 있는 래춤과 동쪽으로 사론 만에 있는 겐그레아의 두 개 항을 자랑하는 고린도는 두 항구를 통해 양쪽 바다를 걸치고 있기에 ‘두 바다의 도시라고 부르게 되었다. 바울은 그 도시의 전략적 중요성을 보았음에 틀림없을 것이고 무역이 고린도로부터 사방팔방으로 뻗쳐 나갈 수 있다면, 복음도 그렇게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고린도의 부패성과 그에 반하는 전략적 중요성이 바울의 여행에 있어서 오랜 기간을 이 지역에서 사역하게 하는 요인이 된 것이다.

 

모든 유대인들은 로마에서 떠나라는 글라우디오 황제의 칙령은 아굴라, 브리스길라 부부가 고린도로 오게 된 직접적인 계기이다. 이 사건을 통해서 로마에서의 기독교의 영향을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수에토니우스(Suetonius, Life of Claudius 25:4)에 의하면 “유대인들은 크레스투스(Chrestus)의 선동을 받아 끊임없이 폭동을 일으켰으므로 글라우디오 황제는 유대인들을 로마로부터 추방시켰다.”고 설명한다. 수에토니우스는 기독교의 기원에 관해서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지도 않은 채 당시의 잦은 폭동에 관한 몇몇의 기록을 참고하고 나서, 그는 소요를 일으키는 여러 당파 가운데 한 당파의 지도자로서 크레스투스가 당시에 실제로 로마에 거주하면서 소요에서 유대인 사회에서 활약하는 지도자적인 역할을 담당했을 것이라고 그릇되게 상상했던 것 같다. 사실상 로마에 기독교가 들어옴으로 인해서 로마에 있는 여러 회당에서 분파가 발생하고 무질서가 야기된다는 점은 이 진술에 관심을 갖게 한다. 수에토니우스는 쫓겨난 사람들을 ‘유대인들’이라고 부르고 있으나, ‘크레스투스’는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듯하며, 그런 경우 유대인들은 그리스도인들이며 유대 공동체에서 일어난 소동은 복음으로 인해 야기된 것이었다.는 진술이 더욱 당시 로마에서의 기독교의 영향을 더욱 확증 할 것이다.

바울은 주 중에는 그의 직업에 종사했으며, 안식일에는 그의 본래적 사역에 전념을 했다. 이것은 고린도 지역의 지리적, 문화적 환경 속에서 복음의 절대적 필요성에 대한 불가피한 행동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실라와 디모데의 등장을 통한 전적인 사역의 시작은 그 곳에서의 전도 사역의 긴박함마저 느낄 수가 있다. 이들이 갖고 온 좋은 소식과 선교자금은 바울의 전도 열정에 불을 붙이는 역할을 한다. 이후에 나타나는 회당에서의 방해 사건은 전도 사역의 방향 전환을 일으키게 되며, 복음 전도의 대상이 구체적으로 바뀌는 계기가 된다.

 

회당에서의 훼방으로 인해 복음 전파의 방향을 전환하게 되며, 이방인들에게로 돌아서면서 바울의 급진적인 변화를 주목하게 되고, 이것을 통해서 전도 사역의 지역적 이동을 예상해보지만, 바울은 먼 곳으로의 이동을 삼가고 회당장 옆 디도 유스도의 집으로 옮긴다. 이것은 고린도 사역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며, 이 곳에서 오래 체류하는 이유인 구체적인 사역의 목적을 찾을 수 있게 된다. 이 사실을 확증하는 것은 환상 중에 주께서 바울에게 나타나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하심으로 이 곳에서의 하나님의 목적을 알게 되는 것이고, 구약의 말씀을 상기시키는 주님의 약속과 격려는 바울의 사역이 전적으로 하나님에 이끌려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18:18-23

바울의 여행

 누가의 중심은  예루살렘을 향하고 있다. 에베소는 소아시아의 문턱에 위치한 소아시아 최대의 상업도시이며, 로마에서 동방에 이르는 주요 통로 상에 세워져 있었기 때문에 지정학적인 이점에 정치적 중요성까지 누리고 있었다.이곳은 분명히 선교적인 관점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었지만 당장에 선교 목적이 있어서 방문한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선교의 가능성은 유망했지만 바울은 그 곳에 머물지 않고 서둘러서 여행을 하는 이유는 알 수 없다

가이사랴로의 여행의 목적은 누가가 이곳서 예루살렘 방문을 생각했으리라는 것이다.

18:24-28

에베소의 아볼로

아볼로는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태어난 유대인으로 그의 양친 모두 유대인이었다. 재간이 뛰어난 사람이었고 공적인 봉사 활동을 위하여 매우 적합한 사람이었다. 그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으며, 복음에 대한 상식적인 개념과 기독교의 근본 원리, 즉 “예수는 그리스도이고 이 세상에 오신 선지자이다”는 것에 대하여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요한의 세례만을 알고 있었다. 그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하여 요한의 사역을 통해 그리스도에 대하여 말한 정도밖에는 알지 못했다.

그가 알렉산드리아에서 났다는 출신 배경은 그가 학식이 많다는 것을 설명해 주고 또한 그 학식의 성격을 설명해 준다. 왜냐하면 알렉산드리아는 최소한 두 세기 동안 헬라와 히브리 문학의 주요 접촉지며, 지금은 히브리 학문의 중심지이기 때문이다. 이 학문에는 구약성서를 헬라어로 번역한 것, 후기 유대의 헬라의 문학, 그리고 어느 정도의 헬라철학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성경에 능한 자라”하는 말은 그가 성경을 잘 알고 있었다는 것 뿐만 아니라 논쟁과 주석에도 그것을 응용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아볼로에게 분명 성령을 받지 못하고 요한의 세례까지만 알고 있었기에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통해 하나님의 도를 더 자세히 배운 후에 본격적인 선교 사역에 착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