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사도행전

사도행전23장,담대하라

호리홀리 2015. 6. 4. 12:42

 

23:1~

 

바울이 공회원들을 주목하며 먼저 자신은 지금 이 순간까지 범사에 양심껏 하나님을 섬겼다고 선언하자  대 제사장 아나니아가 바울의 입을 치라고 한다. 이곳에 나오는 아나니아는 대제사장이다. 아나니아는 네다바유스의 아들로서 헤롯 안티파스 2세에 의해 48년 대제사장이 되어 59년까지 제사장직을 했고, 66년 셀롯당에 의해 친로마정책에 미움을 받아 암살되었다. 그는 성격이 난폭하여 사람을 잘치고 재물을 탈취하였다고 한다.(Jos, Ant, xx.9:2) 그래서 이때에도 바울의 말을 오만하다고 하여 생각하여 입을 치라 한 것이다.

 3절에 이말을 들은 바울은 아나니아를 향해 ‘회칠한 담이여 하나님이 너를 치시리로다’라고 말한다. ‘회칠한’ 이라고 번역한 kekoniamevne:(케코니아메네)는 회칠하다를 뜻하는 koniavw(코니아오)의 완료분사로서 과거로부터 계속 회칠한 상태로 있었다는 의미이다. 마치 시체를 간직하고 있는 무덤처럼 혹은 견고하게 보이나 바람이 불면 넘어지는 벽처럼(겔13:10-12) 외양은 화려하나 더러운 것으로 채워진 것을 상징하여 말하는 것이다. 하얀 회칠로 덮어서 감추는 자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에게 적합한 표현이었다. 

 바울은 이 대제사장을 회칠한 무덤으로 비유하며 담대하게 말한다.  이것은 대제사장에게 적절한 반격이었으며 명예로운 행위로서 명예에 대한 지혜로운 반격을 했던 것이다.   바울이 대제사장에게 회칠한 무덤이라는 말을 한 것을 보고 곁에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제사장을 욕하느냐고 묻는다. 이것은 마치 예수님이 안나스에게 심문받으시면서 대답하실 때 곁에 있던 하속이 윽박지르던 바로 그 모습을 연상시킨다.(요18:22)  유다사회에서 대제사장은 하나님을 섬기는 대표자로서 대단한 권위와 존경을 받고 있었으므로 그 누구도 감히 대제사장의 권위에 맞설 수 없었다.(신17:12) 바울이 그 대제사장에게 맞서는 것은 내용에 관계없이 제사장을 욕되게 하는 행동으로 여겼다. 그러자 바울은 형제들아 알지 못하였노라라는 말로 그 상황에서 말을 한다. 일차적으로 이말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바울이 자신을 치라고 한자 아나니아를 대제사장이라는 사실을 몰랐을까라는 것이다.

몇 가지 해석들이 있다. 첫째 해석은 바울이 예루살렘에 오래있지 않았고, 20년 동안 산발적으로 예루살렘에 올라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둘째는 바울의 안질 때문에 몰라봤다는 추측이 있고, 셋째, 그의 의상과 위치 등으로 알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 말투를 하는 대제사장이 어디 있느냐는 풍자였다는 편과(calvin), 변론에 집중하다 보니 대제사장인줄 몰라봤다는 것이다. 네 번째는, 대제사장인줄 알면서 어떻게 대제사장이 이런 명령을 내릴 수 있냐면서 빈정대어 말했다. 바울은 정말 몰랐을 것이라는 의견이 다수이다.

 

바울이 산헤드린 공회원이 어떤 부류로 구성되어 있는지를 이제 비로소 지각했고 문제해결의 돌파구가 있음을 깨달았다. 대제사장에게 자신의 공격성 발언으로 공정한 판결을 받을 수 없음을 직감하고 공회원들간의 가진 신학적 이견을 충동시킴으로서 위기를 모면한다. 바울은 그들의 분열을 통해서 유대교의 한계에 정면으로 도전한 것이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둘 차이는 바리새인은 육체적 부활을 믿었고, 사두개인은 믿지 않았다. 사두개인은 모세오경만 믿었기 때문이다. 바울의 이 말로 인해 초점이 자신에게서 부활에 관한 두 그룹 사이의 해묵은 논쟁에로 옮겨지게 되었고, 그리하여 공회가 둘로 갈라지게 되었다. 그러나 부활의 언급은 예수의 부활을 염두에 둔 표현이지 위기만을 모면하기 위해서 바울이 농간을 부렸다고 보는 것은 올바른 해석이 아니다. 바울의 발언으로 인해 평소부터 부활, 천사, 영 등의 문제로 대립하여 오던 바리새파와 사두개파 간에 큰 분쟁이 일어남(7-8절) 바리새인은 사두개인이 사후의 삶을 믿지 않기 때문에 내세에서 아무 분깃도 받을 수 없다고 가르쳤다. 분쟁중에 일부 바리새인들이 한 영적 존재가 바울을 통해 말했을 가능성을 언급하며 오히려 바울을 옹호하는 양상을 보이기 시작한다. 갈등의 대립이 심해진것이다.(9절) 천부장이 일단 바울의 신변을 염려하여 영문 안으로 다시 데려갈 것을 명함(10절)

굶주린 이리떼처럼 바울을 삼키려 드는 무리들 중에서 벗어난 바울은 다시금 안토니아 요새에 감금되었다. 예수께서는 그에게 위로자로 나타나셨다. 그의 곁에 서서라는 헬라어 ejpista"(에피스타스)는 어떤 것과 매우 가까움을 나타내는 전치사 헬라어 epi(행5:23, 요21:1), 마 28:19)와 멈추어 서다라는 의미를 지닌 헬라어 hJistemi에서 비롯된 의미이다 과거에도 나타나셨던 주님께서 지금 긴박한 상황에 다시 나타나셔서 곁에 서 계신 것이다. 그를 위로하시고 로마 선교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셨다. 그리고 담대하라고 말씀하신다. 신약에 일곱 번 나타나고 본절 외에는 모두 그리스도께서 직접 사용하신 낱말이다. ‘담대하라’라고 번역된 헬라어 Qavrsei(다르세이)는 용기가 있다. 내적으로 기운차다 란 뜻을 지닌 Qarsewv(다르세오)의 현재 명령법이다. 세상을 이기신 예수님께서 바울에게 담대하라고 말씀하고 계신것이다. 그리고 이 환상의 중요성은 위로와 권면뿐만 아니라(참18:9-10) 로마로 가려는 바울의 계획에 확증을 주었다는 것이다. 증거하여야 하리라! 라는 말은 행19:21의 말씀의 재확신이다. 행1:8이 내용에서 너희에게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신 말씀처럼 점점 땅 끝으로 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리고 필연적으로 로마로 가야함을 말한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글자 그대로 사도 바울에 의해 예루살렘에서 로마로 갔다. 이 환상은 바울에게 주신 네 번째 환상이었다. (참조 9:4-6, 16:9, 18:9-10)


23:12-22

40명의 유대인들은 바울이 성전에 출현하는 것을 경험했던 무리들 가운데서 생긴 사람들이다. 그들은 바울을 더 이상 살려두어서는 안된다는 굳은 종교적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행22:22-23) 그 일을 수행하는 방법으로 열심당의 방법을 채택했다. (열심당원들은 단검의 사람으로서 소란을 틈타서 테러의 대상자들을 단검으로 찔러 죽였다. 그들은 성전 당국자인 사두개파와 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가서 매복했다가 바울을 죽이려하는 자신들의 계획을 알렸다. 여기서 유의할 것은 이 음모에 바울에게 동정적이었던 바리새파가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그들의 계획은 바울의 누이의 아들인 바울의 조카에 의해 무산되고 말았다. 이 음모를 먼저 바울에게 알렸고 다음에 천부장에게 가서 알렸다(16-21) 천부장은 바울의 조카에게 아무에게도 이 사실을 알리지 말라고 당부한 후 상당한 규모의 군대(보병 이백 명, 마병 칠십 명, 창군 이백명)를 동원하여 바울을 총독 벨릭스가 머물고 있는 가이사랴로 편지한통과 함께 우송하도록 지시했다.

 

본문의 당을 지어 Poihvssante" sustrofhvn oJiv Oudaioi(포이에센테스 쉬스트로펜 호이 이우다이오이)라는 말은 공모하다 또는 작당하다 라는 뜻이다(삼하15:31, 왕하10:9, 15:10) 합법적인 재판을 통해서는 바울을 헤치기가 어려워지자 암살단을 구성하고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아니하고 마시지도 않겠다고 맹세를 하였다. 요세푸스는 아나니아를 가리켜 암살을 주저하지 않았다고 기록하는 것으로 보아 이번 암살도 아나니아의 가능성이 클 것이다.

맹세한 사람이 한글 개역에서는 사십 여명으로 나온다. 그러나 ‘여 명’이라는 !Pleiovu"(플레이우스)'의 원형 !Pleiovn(플레이온)’은 많은 이란 뜻이 있는 !Poluv"(폴뤼스)’의 비교급이므로 더 많은 이란 뜻이다. 즉 당시 맹세에 참여한 사람은 분명히 40명이 넘었다고 할 수 있다.(KJV)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 사이의 논쟁이 가라앉자, 종교적 지도자들은 다시 바울에게 초점을 맞추었다. 이들은 치밀하게 바울을 죽이기 위해 계획을 세웠다. 즉 일단의 유대인들은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을 찾아가 바울에 대해 더 알아볼 것이 있다는 구실로 산헤드린 공회에 다시 데려오도록 요청하게 하였다. 이렇게 해서 대제사장이 바울과 천부장을 속여 바울이 헤롯 성전의 북쪽에 있는 안토니아 요새(행21:35)에서 성전의 남쪽에 있는 산헤드린 공회로 갈 동안 그 중간의 좁은 거리에서 잠복해 있다가 바울을 죽여 없애기로 계획한 것이다. 더욱이 이런 암살계획은 몇몇의 극렬분자에 의해 저질러졌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기에 로마 당국의 문책이나 제재도 피할 수 있는 이점을 지니고 있었다.

 

 바울에게 출가한 누이와 아울러 누이의 아들이 있었다는 추측을 할 수 있다. 학자들 사이에 두 가지 추측이 있는데 바울집단이 바리새인이었으므로(6절) 바울의 누이는 바리새인과 결혼했을 가능성이 크고, 남편이 예루살렘 사람이면 그들은 당연히 예루살렘에 자리를 잡았을 것이라는 것이다. 또 하나는 누이는 다소에서 살았고 다만 그의 아들을 삼촌이 바울이 공부했던 가말리엘 문하로 보냈을 것이라는 것이다.

바울은 천부장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기에 이것을 긴박한 문제로 해결하도록 백부장에게 청을 할 수 있었다. 한글 개역성경은 등위 접속사 ‘de’를 번역하지 않았다. 그러나 바울이 이 소식을 듣고 청한 것을 볼 때 접속사 ‘de’를 ‘그 때’(KJV)정도로 번역하는 것이 문맥에 부합하다.그렇다면 자신을 죽이려고 한 그 음모를 백부장에게는 알리지 않고 천부장에게 직접 알렸을까? 그것은 바울이 사태의 급박성과 심각성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18절에는 바울을 죄수로 표현하는데 이것은 아직 미결수임에도 불구하고 누가가 죄수라고 한 것은 바울이 어떠한 불법적인 일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불법적으로 감금되었다는 점을 두드러지게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과거 예수께서 그러셨던 것처럼 바울도 무고하게 고난을 겪고 있음을 강조하고자 한 것이다. 19절에서는 천부장이 죄수 바울의 청을 들어(18절) 심부름 온 청년에게 할 말이 무엇인가를 묻는다. 바울에 관계된 중대한 사실을 듣게 되리라고 직감하였고 청년의 손을 잡고 조용한 곳을 갔다(19절) 안도감을 주어 비밀을 완전하게 알려 줄 수 있게끔 하려는 태도로 볼 수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천부장이 바울에 대해서 친절한 감정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을 나타내 주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행24:23 , 27:3)  

천부장은 대제사장 아나니아의 잔인한 성격과(2절) 전날의 유대인들의 소동을 미루어 바울의 생질의 말을 사실 그대로 굳게 신임한 듯하다. 그래서 천부장은 그가 자신엑 고한 사실에 대해 비밀을 지켜달라고 당부한다. 이것은 바울을 보호하기 위한 대책이었다.


23:23-35

가이사랴로 천부장 루시아는

 청년에게 이 소식을 듣고 최소한 세 가지의 전략을 세우고 그 중 하나를 택하려 했을 것이다. 첫 번째, 그가 만일 유대인의 호감을 사고 싶었다면 그의 상관에 아무 눈치도 채이지 않고 그들의 계획대로 내버려 둘 수도 있었을 것이다. 둘째는 유대인들과 겨뤄 볼 생각이 있었다면 병사를 동원하여 공모자들을 죽여 버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마지막 셋째는, 바울을 보호하고 유대인과의 유혈을 피하기 원한다면 그들이 바울을 데리고 내려오도록 요구하러 오기 전에 그를 어디로 보내는 것이었다. 그는 거기서 오늘 본문에 나타나듯이 공의롭고 분별있는 결단을 내렸다고 보여진다. 그가 군대에서 갖은 기술과 인간으로써 참된 인간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천부장 글라우디오 루시아는 백부장 둘을 부른다. 그리고 밤 제 삼시에 오늘날의 시간으로 밤 9시에 은밀히 가이사랴까지 갈 보병 이백 명과 마병 칠십 명과 창군 이백 명을 준비하라고 명령한다. 여기서 동원한 지시한 470명의 병사들은 그의 지휘아래 있는 안토니아 요새 수비대의 거의 절반에 해당하는 숫자였다.  

그리고 천부장은 총독 벨릭스에게 편지를 보내는데 천부장이 보낸 편지는 그 형태와 내용에 있어서 흥미롭다. 형태에 있어서 그 편지는 고대 편지기술의 전형적인 세 가지의 특징을 담고 있다. 여기서 처음으로 독자들은 천부장의 이름이 글라우디오 루시아임을 알게 된다.(26절) 루시아는 단순한 인물이 아니었다. 그는 바울의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직접 관여하여 세 번씩이나 바울을 구출해 주었다(21:31-36, 23:10, 23:23-25)고 적는다. 루시아는 또한 바울에 관해서 좀 더 알기 위한 조사를 직접 지시했었고, 바울에 관한 새로운 정보를 기꺼이 접수했다고 적었으며, 그리고 총독에게 자신을 보다 잘 보이기 위해서 실제로 있었던 사실을 은폐하여 편지를 보낸 것이다. 증거로 루시아는 바울이 로마 시민임을 알고 난 후, 바울을 위해서 그 사건에 개입했다고 하지만, 사실 루시아는 바울을 처음에는 애굽의 혁명가로 알았다.그리하여 그를 결박하여 매질하려는 순간에 비로소 바울이 로마의 시민임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아마도 바울은 처음부터 결박되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천부장 루시아는 자기를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실을 호도했던 것이다. 예루살렘에서 110km나 떨어져 있는 팔레스타인의 행정부의 소재지로 가이사랴(로마의 총독이 머물렀던 곳)까지 바울과 편지는 안전하게 벨릭스에게 도착했다. 벨릭스는 바울이 길리기아 출신이고 그의 관할 아래 있음을 안 후, 바울을 고발한 자들이 도착하는 대로 바울에게 발언의 기회를 줄 것을 약소했다. 그동안 바울은 헤롯의 궁에서 가택연금 상태로 머물게 되었다.

 

천부장이 백부장 두 명을 부름(23절): 백부장 두 명을 불러서 밤9시에 가이사랴까지 갈 보병 이백(200) 마병 칠심(70), 창군 이백(200)을 차출하도록 지시한다. 그는 바울의 안전을 위한 것도 있었지만 그 무엇보다 더 자신의 관할지에서 문제가 발생하여 그것을 수습하지 못하면 상부로부터 문책을 당할 것임을 잘 알고 있었기에 사태가 자신이 처리할 수 없을 정도로 비약되고 있음을 깨닫자 바울을 아예 가이사랴의 로마 총독에게로 이송시키고자 한 것이다. 이로 인해 바울은 예루살렘을 벗어날 수 있었는데 이것역시 하나님의 섭리가 아닐 수 없다. 즉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로마로 보내기로 작정하신 것을 하나하나 진행시키고 계신 것이었다. 여기서 창군은 군대의 이동이나 전투시 대오의 측면을 보호하는 임무를 맡은 일종의 척후병들을 가리킨다. 이들이 주로 사용했던 무기는 짧은 투창과 긴 창이었다.

또 바울을 무사히 호송하기 위해 병마도 준비시킴(24절): "곁에" 또는 "가까이에 두다"의 뜻을 지닌 !parivsthmi(파리스테미)'의 부정과거 명령 부정사어로 천부장이 바울을 태우기 위한 짐승을 신속하게 곁으로 가지고 오라고 명령한 사실을 나타낸다. 본문에 나오는 짐승은 전쟁을 위한 말 즉 전마가 아니라 짐이나 사람을 운송하는 운송용 나귀나 말을 지시한다. 뿐만 아니라 이 단어는 본문에서 복수형으로 사용되었는데 이는 예루살렘에서 가이사랴까지는 약 104km정도 되는 거리였으므로 그 거리를 신속하게 이동하기 위해서, 또한 먼 거리의 여행을 자주 갈아탈 목적으로 천부장이 여러 마리의 짐승을 준비시켰음을 보여준다. 25-30절까지의 본문을 좀 더 관찰해보면 천부장이 가이사랴에게 공문도 발송한것을 먼저 알 수 있다.(25-30절)

25절 천부장은 죄수 바울을 보내면서 편지도 함께 보냈는데 이것은 로마의 하급 관리자가 상급자에게 어떤 사건을 보고할 때, 서면으로 기록된 진술서를 보내도록 규정하고 있는 로마법을 따라 서신도 함께 보내는 것을 볼 수 있다. 

27절 금번에 바울을 송치하게 된 연유를 보고함(27-30절) 이 말에 대해서는 비판이 많다. 사실과는 약간 다른 보고이다. 왜냐하면 루시아가 바울을 보호한 것은 사실이지만, 바울이 유대인들로부터 곤욕당하고 있을 때(행21:27-32) 로마인이라는 것을 알아 구출했다는 것은 거짓말이기 때문이다.  루시아는 자신의 잘못은 은근히 은폐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벨릭스로부터 문책당할 것을 염려하여 진실을 왜곡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루시아가 바울이 로마 시민권자임을 존중해 주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울러 자신의 뛰어난 지적 능력, 곧 사람을 분별할 줄 아는 탁월한 능력으로 인해 로마의 한 시민이 보호되었다는 것을 은연중에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이어서 루시아는 바울을 공회로 데리고 내려가서 유대인들의 송사일을 알기 위해 노력했다는 사실을 밝힘으로 총독에게 로마 시민권을 가진 바울에 대한 자신의 입장이 호의적이었던 것을 강조한다.그리고 루시아는 여기서 바울에 대한 고발내용이 로마 법에 저촉되는 것이 아니며 산헤드린 공회의 청문회에서 드러난 대로, 단지 유대인들의 종교적 문제에 관한 것이라고 기술했다. 루시의 이런 태도는 갈리오의 태도와 유사한 것이다(18:15) 바울을 해하려는 간계(40여명의 단식 맹세자들의 음모를 가리킨다.)가 있다는 소식을 들었고 그래서 송사하는 사람도 함께 보낸다는 내용이다.

32절 헤롯대왕에 의해 건설되었고, 그의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명명했던 도시인 안디바드리는 예루살렘과 가이사랴 중간에 있는 도시로서 군사기지였다. 예루살렘에서 서북쪽으로 약 50km, 가이사랴까지는 약 40km정도 못미친 지점이다. 바울일행이 밤 9시에 출발하여 약 50여km를 아침까지 도착하자면 많이 서둘렀을 것으로 보인다

33절 기병대에 호송되어 가이사랴에 도착한 바울은 벨릭스 총독에게 재판을 받게 된다. 여기서 parevstesan(파레스테산)’이라는 말은 누군가를 재판관 앞에 세운다는 말이다. 천부장 루시아의 서신이 전달된 가운데 바울은 이방인 총독 앞에서 재판을 받게 되고 자신을 변호하게 된다. 이를 계기로 바울이 이방인 고관을 상대로 복음을 전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위기의 때를 도리어 복음 확장의 기회를 만들어 주신 하나님의 섭리다. 이것은 누가가 그리고 프로그램화된 누가복음의 narrative이다. 행 1:8을 기점으로 점점더 하나님의 말씀은 성취되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신적필연이다.

34절 어느 영지 사람이냐? 벨릭스는 일종의 예비 심문을 행하고 있다. 영지에 해당하느냐?  evapceiav"(에프르케이아스)는 지배한다. 통치한다는 뜻의 ajrcw(아르코)에 위에를 뜻하는 전치사 evpi(에피)'에 붙은 말로 통치권이 미치는 곳이란 뜻이다. 지금 그의 출신지를 묻는 이유는 바울의 출신지에 딸라 재판 관할권이 달라질 수 도 있기 때문이다.

35절 너를 송사하는 사람들...헤롯 궁에 그를 지키라 벨릭스가 법대로 하고자 했다면, 중대한 죄로 고소당한 로마 시민을 공판하는 일은 까다롭고 힘든 심문을 요하는 것이었다. 가이사랴에 있는 총독 관저 어느 곳에 송사한 사람들이 올 때까지 갇혀 있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