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사도행전

사도행전11장,이방선교의 부흥

호리홀리 2015. 6. 2. 11:54

11:1-18

베드로의 해명

 예루살렘과 그 인근 교회들에게 이 소식이 즉시 전달되었다. 사도가 예루살렘이 당도하기 전에 유대에 있는 사도들과 형제들이 이방인들도 하나님 말씀을 받는다 함을 들었다(1절). 지금까지는 대화만 하는 것도 불법으로 여김 받았던 바로 그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신앙생활을 하려는 마음이 없는 사람들로 간주하였다. 그러므로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다.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올라가기 전에 고넬료에 관한 소문이 예루살렘까지 퍼졌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교회 내에서 이방인 선교에 관한 논쟁이 매우 심각하게 논의되었음을 반증해 준다. 본절은 이방인 선교에 관한 정당성을 강조하고 설명하기 위하여 시작되는 이야기의 발단이 된다.

 유대인 신자들은 이와 같이 잘못된 편견을 품는 과오를 범하였다.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에 할례자들이 힐난하여 가로되 네가 무슨 할례자의 집에 들어가 함께 먹었다 하니(2,3절). 이방인 선교에 관하여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로서 ‘할례자’들이 언급되는데 유대인을 가리키는 일반적 표현이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할례자들은 개종한 유대 기독교인을 가리킨다. 즉, 무할례에 대하여 상당한 우월 의식을 갖고 있음은 무할례자에 대한 그들의 노골적 편견에서 잘 입증된다. 그런데 당시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 유대인으로서 모두 할례자였다는 점에서 볼 때 여기서는 막연하게 유대 기독교인을 지칭했다기 보다는 특별히 할례를 강조하거나 유대적 전통을 자랑하는 자들로서 바리새파에 속해 있었던 자들(15:5)이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 같다. 이는 초기 기독교에서는 유대교의 우월감이 잔존하여 공동체 안에서 갈등적 요소가 되었음을 보여준다. 또한 이방인 선교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이방인들과 함께 하였던 베드로의 행위에 대해, 할례자들은 단순히 문제점을 제기하는 차원이 아니라 이미 그것을 단죄(斷罪)하여 비난하는 차원으로 들어서고 있다. 이는 단순히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결론을 내리기 위해 집요하게 따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유대의 할례자들은 아직까지도 주께서 말씀하신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는 명령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민족적 독선과 우월감에 빠져 있었다.

 베드로는 자기의 정당성을 입증하며 또 한편으로는 그들의 오해를 풀기에 충분하도록 이 문제에 대한 정당성을 설명하였다(4절). 저희에게 이 일을 차례로 설명하여(4절). 베드로는 기꺼이 그들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또 그는 하나님 안에서 이방인에게도 소망이 있음을 설명하면서 어떻게 하여 이전의 생각을 버렸는지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환상을 통하여 더 이상 의식법을 구별하지 말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는 여기서 우리가 앞서 10:9 이하에서 살펴보았던 그 환상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5,6절). 10장에서는 보자기가 '땅에 드리웠다' 하였는데 여기서는 '내 앞에까지 드리웠다'고 한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모든 자기 계시를 심지어 우리에게까지도 보여주심으로 우리의 믿음에 따라 적용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 보자기가 그의 앞까지 이르자 '이것을 주목하여 보았다'(6절). 베드로는 양심에 걸려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았는데 자기에게 모든 종류의 고기를 구별하지 말고 먹으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말한다(7절). 그러나 유대인들처럼 그도 이방인들과의 교제를 피하려고 생각하였으므로 자기에게 주어진 자유를 거부하였노라고 변명한다.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거나 깨끗지 아니한 물건은 언제든지 내 입에 들어간 일이 없나이다(8절). 하늘로부터 내게 대답하되(9절). 10:15에서 이 표현은 생략되어 있다. 이는 베드로 자신에게 주어진 응답을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며 동시에 그 응답의 근원이 하나님께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이 일에 대하여 그가 세 번이나 하나님의 명령을 들었다는 사실에서 볼 때 그가 단순한 망상에 빠진 것이 아님을 그들에게 확신시켜 주는 것이다(10절). 또한 이것이 하나님의 환상이었음을 그에게 더욱 확신시켜 준 사실은 그것들이 공중으로 사라진 것이 아니라 '하늘로 다시 올라갔다'는 것이다. 베드로는 여기서 어떤 변명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조목조목 분명하게 밝혀 선언하고자 하는 ‘베드로의 의지’가 암시되어 있다

베드로는 고넬료가 보낸 사자를 따라가라는 성령의 특별한 지시를 받았다. 그는 고넬료의 사자들이 그에게 온 시간이 그가 환상을 본 직후였다는 사실을 그들에게 말하며, 또 이것만으로는 불충분 할 것 같아서 성령께서 '아무 의심말고' 그들과 '함께 가라'고 명령했었음을 알린다(11,12절). 그는 주저함 없이 그들을 따라 나서야만 했다.

고넬료 역시 한 환상을 보았다(13절). 그가 우리에게 말하기를 천사가 내 집에 서서 말하되 네가 사람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13절). 베드로는 고넬료가 본 자기에 관한 환상과 자기가 본 고넬료에 관한 환상 이 두 가지로 그 일에 대하여 더욱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여기서는 10장에 나온 천사가 고넬료에게 한 말에 또 다른 내용이 추가되고 있다. 10장에는 '베드로를 청하라'고 되어 있는데 여기서는 '그가 너와 네 온 집의 구원 얻을 말씀을 네게 이르리라'고 되어있다(14절). 천사에 의해 고넬료에게 주어진 내용을 요약하여 보다 강조한 것으로 짐작된다.

더 이상 논란의 여지가 없도록 만든 사건은 청종하는 이방인들에게 성령이 강림하신 일이었다. 이 사실은 명백하고 부정할 수 없는 것이었다. 내가 말을 시작할 때에 성령이 저희에게 임하시기를 처음 우리에게 하신 것과 같이 하는지라(15절). 이같이 하나님께서는 거기서 되어진 사실을 입증하셨고 그것을 시인하셨음을 선포하셨다. 베드로는 이 자리에서 주님이 하셨던 말씀을 상기하였다. 요한은 물로 세례 주었으나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 받으리라(16절). 성령의 은사는 일종의 세례이다. 그때 말씀하신 약속과 지금 내려진 이 은사를 비교함으로써 그는 그 문제가 그리스도 자신이 결정하신 것으로 결론을 내린다. 그런즉 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저희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구관대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17절) 즉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세례 베푸신 자들에게 물로 세례 주는 것을 내가 거절하겠느냐?" 이방인을 기독교인으로 용납하고 세례를 베풀며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한 형제됨을 인정하는 것이 피할 수 없는 하나님의 뜻임을 못박고 있다. 그리고 또한 베드로 자신은 철저히 하나님의 뜻만을 따름을 암시한다(5:29). 이러한 베드로의 선교 자세는 바울과 일치한다(갈 1:10).

그들은 베드로의 설명을 듣고 그 문제에 대한 오해를 풀었다. 저희가 이말을 듣고 잠잠하여(18절). 베드로의 설명이 그들에게도 인정받았다는 간접 묘사이다.  그들은 베드로에게 품었던 화를 풀고 평안을 얻었을 뿐만 아니라 입을 열어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18절). 베드로에게 도전해 왔던 할례자들이 새로운 깨달음의 세계로 들어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표현이다. 그들은 자기들이 기대했던 것 보다 더 큰 자비를 하나님께서 불쌍한 이방인들에게 베풀어주심을 보고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18절)하며 감사하였다. 베드로가 언급했을 것같은 결론적 이야기를 유대주의 기독교인들이 먼저 말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에게 주신 구원의 의미에 대해 극적인 효과를 높이고 있다. 즉 이방인에게도 생명에 이르는 회개의 기회가 주어져 있음이 반대자들이었던 할례자들에 의해 선언됨으로써 초대 교회 안에 있어온 이견들이 통합되어 이방인 선교가 확실한 권위와 보증을 받게 되었다.


11:19-26

안디옥에서 교회가 세워짐

우리는 여기서 안디옥 교회의 설립과 성장하는 모습을 대하게 된다. 안디옥은 이 당시 시리아의 수도였으며 전 로마 제국의 3대 도시 중 하나로 간주되고 있었다.

제일 처음으로 이곳에 복음을 전한 이들은 스데반의 순교 때에 일어났던 예루살렘의 핍박을 피하여 흩어진 사람들이었다(19절).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도를'전하였다고 한다. 따라서 유대주의자들의 박해가 복음을 전세계로 확산시키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교회가 당한 아픔으로 선한 사업이 이루어졌다. 원수들은 그들을 흩어지게 하여 소멸시키려 했지만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을 흩어지게 하여 쓰시고자 작정하셨다.

1)환난을 인하여 흩어진 자들은 자기들의 사명까지 버린 것은 아니었다. 복음 전파자들을 핍박하던 자들은 이방인 세계에 복음이 들어가는 것을 막기 원했지만 그들의 그러한 노력은 오히려 그 일을 촉진시켜 주는 결과를 낳았다. 이 도시에서 핍박을 받으면 저 도시로 도망을 다녔을망정 그들은 신앙만큼은 가지고 다녔다.

2)그들은 복음 전하는 일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유대와 사마리아와 갈릴리에서 성공적으로 복음을 전한 후 그들은 다시 베니게와 구브로 섬과 수리아까지 더 나아갔다. 비록 그렇게 돌아다니면 다닐수록 적들에게 자신이 노출되지만 그들은 여행을 계속하였다.

3)그들은 각처에 흩어져 있는 유대인에게만 복음을 전했다. 그들은 아직 이방인들이 같은 상속자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으며 그들이 그렇지 않으면 불신자로 그냥 남아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4)그들은 특별히 여기서 헬라파 유대인이라 불리우는 헬라어를 사용하는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여기의 복음 전파자들 중 대부분은 유대와 예루살렘의 출신이었지만 바나바(행 4:36)와 시몬(막 15:21)같은 이들은 구브로와 구레네 태생의 유대인들이었다. 그들은 자기들이 헬라파 유대인이었으므로 자기들과 입장이 같은 그 지역 사람들에게 특별히 관심을 갖고 안디옥 사람들에게 복음 전하기에 전념하였다. 이들은 그들에게 주 예수에 대하여 전했다. 주 예수야말로 그들에게 있어서 전도의 변함없는 주제였다.

5)그들은 복음 전파에 놀라운 성공을 거두었다(21절). 그들의 전파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였다.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21절). 그들은 단지 듣는 이들의 귓전까지만 그 말씀을 전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과 양심에까지 파고들게 하셨다. 이들은 사도가 아닌 평범한 사역자들에 지나지 않지만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니 놀라운 일을 행했다. 이로써 풍성한 선한 열매를 맺었다. 수다한 사람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21절). 그들은 믿게 되었다. 즉 그들은 복음의 진리를 확신하게 된 것이다. 이 믿음의 증거는 주께 돌아온 사실로 들어났다.

 

안디옥에서 시작된 이 선한 사업은 사울과 바나바의 사역을 통해  큰 성과를 거두었다.

1)예루살렘 교회가 안디옥에 바나바를 파송했다.

예루살렘의 교인들은 안디옥에서도 복음이 받아들여졌다는 기쁜 소식을 들었다. 예루살렘 교회가 이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22절). 예루살렘 교회는 그들에게 바나바를 파송한다. 그들은 그를 사절로서 안디옥에 보냈으며, 바나바는 멀리 안디옥까지 가야 한다. 바나바는 이런 사역에 특별한 재능이 있었음에 틀림없다.

바나바는 복음이 정착된 것과 자기와 같은 고향 사람들인 구브로 사람들이 복음 전파의 도구로 수고하는 것을 보고 대단히 기뻐하였다. 저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23절). 그는 그들 가운데 임한 하나님의 은혜를 목격했다. 어떠한 일에든지 선한 것이 있으면 우리는 그 일 가운데서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바나바는 믿고 나온 사람들의 믿음을 가능한 한 굳게 다지는 일을 하였다. 그는 그들을 권하였다. 바나바는 '권고의 아들'이라는 자기 이름에 부합하는 일을 하였다. 즉 그는 그런 재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의 이름을 달리 해석하면 '위로의 아들'이 되는 데 그는 거기서 모든 사람에게 굳은 마음으로 주께 붙어 있으라(위로하며) 권하였다. 바나바는 그들 가운데 임한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였으며 그래서 더욱 진지하게 그들과 모든 것을 견디어 나갔다. 주께 붙어 있다는 것은 그를 좇는 일로부터 떨어져 나가지 않는 것이며 그를 따르다가 낙심하거나 기진하지 않는 것이다. 그를 꼭 붙잡아야 할뿐만 아니라 그에게 꼭 붙들려 있어야 한다. 또 전심으로 모든 이해력을 다 발휘하여 굳건하고 신중한 결심으로 붙어 있어야 한다.

여기에 그의 훌륭한 성품이 언급되어 있다.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라(24절). 바나바에 대한 누가의 평가라고 할 수 있는 본문은 바나바가 선언한 23절의 내용을 정당화하고 보증하기 위한 묘사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그는 착한 사람, 즉 구제를 잘하는 사람이었다. 이는 그가 자기의 재산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돈을 나누어 준 사실을 보아 알 수 있다(행 4:37). 그는 성령의 은혜와 은사들을 풍성히 받았다. 그가 만일 성령으로 충만하지 않았다면 아무리 좋은 성품을 타고났다 하여도 이 사역을 감당하기에는 충분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믿음의 은혜가 충만하였고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의 열매가 풍성하였다.

바나바는 교회 내에 있는 사람들을 잘 가르쳐 튼튼하게 함과 동시에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을 교회로 불러들이는 선한 일을 하는 도구로 쓰임을 받았다.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니라(24절). 바나바의 안디옥 방문은 이방인들을 포함한 교회의 확장을 가속화시켰는데, 그 이유가 바나바의 착함과 성령이 충만한 믿음 때문임을 누가는 언급하고 있다. 여기서 사용된 ‘이에’라는 말을 통해 알 수 있다.

2)바나바는 사울을 데려 오려고 다소로 갔다. 바나바는 다소까지 가서 사울을 만나 안디옥에는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려 있으니 그곳으로 가서 자기와 함께 사역하기를 간청했다(25,26). 여기서 바나바가 착한 사람인 것이 두 가지 사실로 잘 나타나고 있다. 첫째, 그는 숨겨진 유능한 사람을 찾아내어 그의 재주를 발휘하도록 하는 데 노고를 아끼지 않았다. 사울을 발굴하여 대중 앞에 끌어 낸 이가 바로 바나바였다. 발 아래 있는 등불을 가져다가 등경위로 올려 멀리까지 골고루 비치게 하는 것도 훌륭한 선행이다. 둘째, 바나바는 사울을 안디옥에 데려와서 설교자(행 14:12)로 삼았다. 이는 그가 돋보이기 때문에 자기의 명성이 떨어질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러나 비록 자기에게 손해가 될지라도 그리스도의 사역을 위하여 기꺼이 사울을 안디옥에 데려왔다.

이어서 안디옥 교회에 주어진 최고의 명예가 등장한다.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26절). 바울이나 바나바와 같은 위대한 사도가 장기간 체류하면서 가르쳤기 때문에 안디옥 교회에는 많은 무리들이 모여들었다. 따라서 그곳의 그리스도 교회는 사람들이 제일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된 것이다. 이렇게 해서 개종 전에 유대인 또는 이방인이라는 명칭 때문에 서로 구별되던 사람들도 개종 후에는 동일한 한 가지 명칭으로 불려지게 되었다. 따라서 이제는 "나는 유대인이었다" 혹은 "나는 이방인이었다" 고 말하지 않고 둘 다 "나는 이제 그리스도인이다"고 동일한 명칭으로 호칭하게 되었다. 또한 그들은 주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하여 노력하였고, 그리스도와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게 되었다. 그들은 그 명칭을 "예수란 이름에서 따오지 않고 그의 직분을 나타내는 그리스도 즉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는 호칭을 취함으로써 그들은 자기들의 호칭을 통하여 "예수는 그리스도"이심을 고백하였다.


11:27-30

안디옥 교회의 헌금

우리 주 예수께서는 승천하시자 사람들에게 은사를 부어 주셨다. 예수는 사도나 전도자에게 뿐만 아니라 선지자들에게도 은사를 내려 주셨다.

 선지자들 중 몇 명이 안디옥을 방문하였다. 그때에 선지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에 이르니(27절). 그들은 예루살렘에서 온 것이다. 예루살렘은 선지자들을 잡아 죽이고 농락함으로 악명이 높았으므로 이제는 이들 선지자들까지도 상실하게 되었다. 이들은 안디옥에 왔다. 바나바는 안디옥 교인들을 가르치기 위하여 왔고 그들이 그 교훈을 잘 받아들이자 '장차 되어질 일을 그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선지자로 보냄 받았다.

이 선지자들 중 하나인 아가보라는 사람이 기근이 다가온다는 특별한 예언을 하였다. 아가보는 이다음에 바울이 옥에 갇힐 일에 대하여 예언하고 있음을 우리는 다시 대하게 될 것이다(행 21:10,11). 성령으로 말하되 천하가 크게 흉년 들리라(28절). 그가 예언한 내용은 무엇이었던가? 천하에 흉년이 크게 들어 많은 가난한 사람들이 먹을 것이 없어서 굶어 죽을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이 흉년은 어떤 특별한 한 나라만으로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온 천하 즉 로마 제국에 걸쳐서 닥칠 것이었다. 그리스도는 일반적으로 기근이 있을 것을 예언하셨으나 아가보는 이제 목전에 임한 특별한 기근에 대하여 예언을 했다. 이 기근의 도래는 어떠했던가. 그 기근은 그의 즉위 2년부터 시작하여 적으로 4년까지 계속되었다. 요세푸스 등 많은 로마의 역사가들이 이 기근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다.

그들은 이 예언을 사용하였다. 그들은 기근이 목전에 임했다는 예언을 들었을 때 자기들의 곡식을 숨기지 않고 오히려 다른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한 자선기금을 위해 내놓았다.

1)그들이 이 일에 대하여 결정한 것은 모든 사람들이 각각 그 힘대로 유대에 있는 형제들에게 부조를 보내기로 한 것이다(29절). 그들이 구제하기로 정한 사람들은 유대에 사는 형제들이었다. 비록 우리가 기회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선행을 해야 하지만 우리는 권속들에 대하여 항상 특별한 배려를 해야 한다. 가난한 사람을 무시해서는 안되지만 특별히 하나님의 백성 중의 가난한 사람은 더욱 잘 보살펴 주어야 한다. 성도의 교제가 이런 일에까지 연장되어서, 안디옥에 있는 교인도 유대에 있는 가난한 교인들을 형제라 불렀으며 그들을 구제하기 위한 구호품들을 준비하였다. 우리는 이 지역의 기독교 개종자들 중 거의 대다수가 가난한 사람들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만일 기근이 온다면 그들은 곤경을 겪게 될 것이며 만일 그들 중에 아사자라도 생기는 날에는 기독교인들에게 큰 욕이 돌아갈 것이다.

2)그들은 자기들이 결정한 대로 실행하였다(30절). 그들이 '이를 실행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들은 그 일에 대하여 논의했을 뿐만 아니라 결정된 사항을 실천에 옮겼다. 이런 유의 많은 선한 사업들이 계획되고 추진되지만 실행되기는 어렵고 따라서 무의로 끝나기 쉽다. 그러나 그들의 연보는 모였고 바나바와 사울을 예루살렘에 보낼 만큼 충분한 양의 물품이 모아졌다. 그들은 그것을 유대의 교회에 있는 장로들에게 보내서 자기들이 힘대로 모았듯이 받는 사람들에게 필요에 따라 나누어주도록 부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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