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회심 사건은 단순한 한 사람의 회심이 아닌 기독교 흐름을 뒤바꾼 사건이 된다. 그도 그럴 것이 최고의 박해자가 최고의 복음 증거자로 변화되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 사건을 통해서 온 교회에 평안이 찾아오게 되고 든든한 모습으로 설 수 있게 된다(행9:31).
우리는 사도행전에서 사울의 첫 모습을 스데반의 순교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성 밖에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행7:58” 사울은 분명 스데반의 순교를 목격한 사람이다. 처참하게 죽어가는 스데반의 모습을 보고 사울은 그의 죽음을 당연한 것(행7:60)으로 받아들였다. 그만큼 기독교와는 거리가 있었다. 죽어가면서 까지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사람들을 저주하지 않고 그들에게 죄가 돌려지지를 않기를 바라는 스데반의 모습에 사울은 너무나 담담하다.
하지만 회심 사건 이후에 사울은 다메섹 유대인들을 굴복시킬 만큼 확신에 찬 복음 전도자가 된다(행9:22). 스데반의 죽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던 그가 이제는 그 죽음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자 한다는 것이다.
베드로의 두 번의 기적사건을 통해서 이제는 이방선교의 문이 열리게 된다. 베드로의 병고침의 사건은 예수님의 병고침의 기적과 조금 차이가 있어보인다. 즉 예수님은 죄 사함을 통해서 병의 치유를 얻게 한 반면, 베드로는 직접적으로 예수님을 등장시킴으로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는 것이다.
9장 1-19a
사울의 회심 사건
다메섹도상(행9:1-9)
사도행전에 나오는 바울의 회심에 대한 세 번의 기록은 서로 약간 다르다(9, 22, 26장).
바울은 대제사장에게 가서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갈 공문을 청했다. 바울은 이 편지를 통해서 자신의 권위를 인정받기를 원했고 각 회당의 완전한 협조 아래 그의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사울은 갑자기 자신에게 다가온 빛(행9:3)이 마치 구약에서 종종 자신의 영광을 보이신 것처럼 하나님의 임재라고 여겼던 것 같다. 그래서 사울은 하나님의 신이나 천사에게 계시를 받을 때처럼 땅에 엎드리는 행동(행9:4)을 보인다.
다메섹 도상에서 살기 등등한 사울은 예수님의 빛과 음성을 경험하게 된다(행9:5). 사울이 예수를 직접적으로 핍박한 일은 없지만 예수를 따르는 자들을 핍박하는 것이 결국 예수를 핍박한 것이 된 것이다(눅10:16).
사울의 눈이 열림(행9:10-19a)
사울이 예수님을 만나는 사건을 통해서 결국 그의 육신의 눈은 잠시 동안이지만 그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게 된다 사울은 이 사건을 통해서 금식하며 자신의 지난 모습을 되돌아 보았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은 제자 아나니아를 환상가운데 부르시고 그를 통해 사울의 눈을 열어주신다. 아나니아는 자신에게 주어진 명령이 무엇인지 알고 불합리한 명령에 주저하게 된다(행9:13-14). 하지만 그의 이름에서도 보여주듯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9장 19b-31
다메섹과 예루살렘에서의 충돌
기독교의 박해자가 이제는 박해를 당하는 자로 선택한 모습. 이런 사울의 모습이 유대인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었을 것이다. 기독교인들을 괴롭히고 그들을 정죄해야 할 사울이 이제는 그가 가지고 있는 모든 지식을 사용해서 예수를 변증하기 시작했다. 유대인의 율법 선생인 사울의 성경적인 변증은 어느 유대인도 쉽게 대항할 수 없었을 것이다. 결국 다메섹의 유대인들은 사울의 예수 변증 앞에 무릎을 꿇고 만다. 하지만 그들은 이런 사울의 모습을 증오한 나머지 그의 생명을 끊어버리고자 하나 그 일도 쉽게 되지 않는다.
다메섹에서 충돌(행9:19b-25)
사울은 그의 사명(행9:2)을 아무에게도 말한 적이 없지만 그에 대해서 다메섹의 유대인들은 훤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회심사건 이후에 사울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이 전혀 다른 모습은 그의 예수 변증의 모습(행9:20-22)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다메섹 회당에 나타난 사울은 유대인들의 기대와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즉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하는 것이다. 이 일에 모든 사람들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서로 말하길 "저 사람은 예루살렘에서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못 살게 굴던 자로서 신도들을 잡아서 대사제들에게 끌어가려고 여기 온 자가 아닌가?"라고 사울의 임무를 되새겨 주었다. 하지만 결국 이들은 사울의 예수 변증에 굴복(행9:22)하고 말았다. 사울은 이미 성경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변증할 수 있었다.
유대인들의 굴복사건 이후에 이들은 사울을 죽이고자 한다(행9:23). 하지만 이들은 사울을 합법적으로 처형하려는 것이 아니라 암살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사울은 그의 제자들의 도움으로 무사할 수 있었다.
예루살렘에서 충돌(행9:26-31)
이후에 사울은 예루살렘으로 향했고 그곳에서도 역시 유대인들의 마음을 격하게 했다. 이러한 모습은 스데반의 모습과 비슷하다. 스데반이 공회 앞에 서서 예수를 증거했던 것처럼 사울 역시 예루살렘에 서서 헬라파 유대인들과 함께 말하며 변론하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사울은 스데반만큼이나 예수 변증과 열정이 탁월했다고 보여진다(행9:29). 결국 사울은 스데반과 같이 그의 삶을 복음 전도에 바친 것이다.
기독교의 가혹한 박해자가 복음 증거자, 예수 증거자로 변화되면서 온 교회에 평안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9장 32-43
베드로를 통해 일어나는 기적
애니아를 고침(9:32-35)
베드로는 두루 돌아다니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 그리고는 룻다의 한 성도에게 갔다가 애니아라고 하는 중풍병자를 만나게 된다(행9:33). 이 만남에서 베드로는 예수님처럼 중풍병자(눅5:17-26)를 고친다. 하지만 예수님은 병고침의 사역에서 “네 죄를 사함 받았다”라고하는 죄사함의 행위가 먼저 등장하는 반면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라는 직접적인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죄사함을 줄 수 없는 베드로의 입장에서는 예수님을 직접적으로 등장시킴으로써 병고침의 기적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기적을 통해서 베드로는 모든 사람들을 회개와 믿음으로 부르고 있다(행9:35).
다비다를 살리심(9:36-43)
애니아의 치유 이후에 베드로는 욥바로 청함을 받는다(행9:38). 이곳에서 베드로는 구제 사업에 적극적이었던 한 유대여인 도르가를 소생시킨다(행9:40-41). 욥바가 룻다와의 거리가 짧았기 때문에 장사)되기 전에 베드로가 올 수 있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의 다락방에 모여서 그녀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었다(행9:39). 베드로가 도르가를 소생시키는 사건을 통해서 다시 한번 예수의 그리스도이심을 확증했으며, 그의 권능을 사람들에게 보여준 것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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