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사도행전

사도행전,4:23-31 일심기도

호리홀리 2015. 6. 1. 12:17

4:23-31

 

베드로와 요한은 석방되었다. 이들의 석방은 잠시일 뿐 곧 다시 투옥된다. (행5장) 그러나 누가는 제자들의 성령 충만함과 투옥, 다시 성령 충만함을 입고 또 다시 투옥되며 능욕 받는 것을 연속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들 예수를 증거하는 삶이란 핍박의 연속이고 그것은 성령 충만함을 통해 극복할 수 있음을 누가는 보여주고 있다. 이 들은 동류들에게 가서 산헤드린 공의회에서 판결된 일을 낱낱이 보고하였다. 이 보고를 들은 다른 사도들도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할 뿐 아니라 두 사도와 한마음이 되어 믿음으로 단결하였다. 저들이 당한 박해가 사도들을 더욱 굳게 뭉치게 하고 믿음을 불 같이 일으키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난국을 앞에 놓고 사도들은 믿음으로 하나가 되었다. 다시 말하면 박해를 능히 극복할 수 있는 강한 마음으로 하나된 것을 가리킨다.

이들은 일심으로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송했다. 이 찬송과 기도에서 그들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언급하고 있다. 그것은

첫째, 창조적 관계에서 그의 권능을 나타내고 있다. (행4:24)

“대주재여 바다와 그 가운데 만유를 지은 이시요”에서 대주재(deopovth") 소유권과 권력을 가진 주인이란 의미이다.

둘째, 역사적 관계에서 하나님의 지혜를 말해주고 있다. (행4:25-28)

지금 사도들의 보고를 통해 전해진 사건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시2:1-2에서 확인한다. 이 시편의 예언도 다윗의 입을 의탁하사 성령으로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거룩한 종 예수(행4:27)에 적대했던 지상의 군왕들  헤롯 안디바나 로마 총독으로 대표되는 관원들에 의한 사건도 모두 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예정하신 것이다. 군왕은 헤롯왕을 뜻하고 관원은 로마총독 빌라도를 뜻한다. 이들은 함께 구주 되시는 그리스도를 대적하였다고 하였다. 이렇게 시편의 예언이 그리스도로 성취되었음을 지적한다. 시편의 예언이 역사적 사실로 성취되었다. 헤롯과 빌라도는 본래 서로 대적관계에 있었으나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자고 하는 데는 합심이 되어 당일에 서로 친구가 되었다고 하였다(눅23:12). 이스라엘과 이방인도 역시 서로 원수 관계에 있었으나 예수를 반대하고 십자가에 못 박는데는 서로 협력하였다. 그러나 저들의 포악한 흉계는 결국 하나님의 예언을 이루게 한 것이다. 예수의 십자가가 정치적, 민족적, 이방인에 이르기까지 미움의 대상이 되고 버림이 되었으나 그러나 믿는 자에게는 능력이 되었다(고전 1:18).

셋째, 경험적 관계에서 그의 은혜를 나타내 주고 있다(4:29-30).

사도들은 하나님의 인도 하에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 닥친 산헤드린 회의의 박해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다만 기도할 것은 성령의 권능으로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했다.

베드로와 요한의 사건은 하나님의 뜻에 대한 순종에 지나지 않았다. 사도들이  제사장들에게 위협을 당하고 핍박받는 일들이 이상한 일이거나 두려워 할 일이 못된다. 하나님의 뜻과 예언에 의한 필연적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님은 진리를 거스리는 저들까지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를 지신 것은 사실이다.

이들의 순종은 담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자 했다. “...저들의 위협을 하감하옵시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옵소서”(4:29)  윗 절에서 말한 대로 관원이나 제사장들의 위협은 우연한 일이나 일시적인 일도 아니다. 하나님이 전하신 뜻에 의한 일이다. “하감하옵시고” 안중에 두시고, 눈을 돌리지 마옵시고, 뜻으로 만일 사도들이 하나님의 안목에서 벗어날 때는 양과 같이 약하기 때문에 이리의 밥이 될 수밖에 없는 빈약한 자라는 뜻이다(마10:16). 그런고로 저들이 박해와 위협을 받아도 두려움 없이 하나님 안에 굳게 서서 믿음을 가지고 기적은 나타내면서 계속 하나님이 말씀을 더 힘있게 전할 수 있게 해달라는 간구를 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한 가지 명심할 일은 사도들이 핍박을 멈추게 해 달라거나 피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어떤 핍박에도 더 믿음과 용기를 가지고 전도하기를 원하였다. 그래서 “담대히”란 말로 굴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해달라고 기도한 것이다. 절대 하나님의 뜻에 따르며 순종하는 용맹스러운 신앙태도다. 그러나 이 신앙마저도 하나님의 성령이 없이는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이다.

사도들의 기도는 정직하고도 분명하다.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옵시고 표적과 기사가 ...”(행4:30) 사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명을 다하게 해달라는 간절한 기원이었다.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표적과 기사를 계속 행할 수 있도록 능력을 주옵소서 하는 것이었다. 사도의 명예나 위세를 나타내기 위한 것은 추호도 없었다. 표적과 기적은 하나님의 능력의 현현이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반드시 기적과 표적이 동반한다(막16:20). 이적과 기사(요4:48,20:30,히2:4,막16:20)

사도들의 일심의 기도는 곧 하나님의 임재와 응답을 얻게 된다. 저들의 모인 곳이 진동하게 (행4:31)되는데 구약시대도 땅이 진동한 것을 하나님의 현현의 표징이라 하였다(시114:7,암9:5,욜3:16). 성령이 충만하였다. 누가는 성령의 역사를 중요시했다. 누가복음에서 강조되고 있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성령이다. 세례 때 성령의 충만을 입으신 후, 예수는 성령의 권능으로 갈릴리에 돌아와 성령의 능력으로 메시아 사역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눅1:35;3:22;4:1). 누가가 성령의 역사를 중히 여겼던 결정적 증거는 눅11:13 이다. 여기서 누가는 구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로서 마태의 ‘좋은 것’(마7:11)대신 “성령”을 소개하고 있다. 요컨대 누가에게 있어서 인생들에게 가장 ‘좋은 선물’은 바로 성령이란 뜻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누가복음의 성령에 대한 이런 강조는 후편인 사도행전에서 더욱 확대되어, 복음증거의 실제적 원동력으로 성령께서 활동하는 것으로 소개되고 있다. 누가복음이 “예수를 통한 성령의 사역“이라면 사도행전은 ”교회를 통한 성령의 사역“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누가-행전 사이의 연속성을 발견하게 된다.

한편 사도들의 기도는 승리의 표시라고도 하겠다. 핍박 중에도 죽을 각오를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고 기도할 때도 비장한 기도를 드렸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거절하지 않으셨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복음을 전하는 일은 하나님의 뜻 중에 가장 큰 뜻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같이 하시고 또 그런 자의 기도를 들어주신 것이다. 사도들은 기도에서 굳은 결의를 표명한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데 생명을 내놓았다.

이들의 이러한 믿음은 이어 나오는 32절의 믿는 무리들의 한마음과 한뜻이 되어 공동체를 이루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이들이 소리 높여 기도한 것은 하나님을 찬미하며 감격에 넘쳐서 부르짖어 기도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마음으로 느껴지고 그리고 역경에서 구해 주신 큰 은혜를 경험함으로 느껴질 때 소리 높여 영광 돌리는 찬미와 기도를 드릴 수 있다. 진정한 기도와 찬미는 하나님의 뜻에 의해 성취될 때 드리게 된다(사37:20). 하나님은 만물을 창조하신 기적적인 사실을 두 사도에게도 나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