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요한복음

요한복음13:1-30절,발씻김

호리홀리 2015. 5. 19. 16:29

2:1-12:50절의 표적들의 책은 예수가 공적으로 행하시고 가르치신 것을 기술했다. 표적과 표적들을 설명하는 말씀들을 기술함으로서 청중들의 믿음을 유발시키려 했다.
그래서 12: 37절에 예수께서 많은 표적들을 행했으나 그들이 그를 믿지 않았다는 말로서 첫 책의 결론을 맺었다.

그래서 13-20장은 십자가에 못박힘을 그의 영광 받으심이라고 지칭하는데 이와 같은 역설 - 십자가에 못박힘이 그의 영광 받으심이라는 - 에 기독교 신앙의 중심 진리가 가장 심오하게 가장 분명히 드러나는 것이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힌 자로 하나님의 인류를 향한 구원의 사랑을 계시한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힘으로서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인류를 위해서 내어 주심을 나타낸다. 곧 하나님의 사랑이심이 드러난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힘은 인류를 위한 대속의 죽음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포함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내어 주심은 하나님의 사랑을 계시한다. 이것은 예수가 곧 하나님의 계시자라는 뜻이다. 계시자라는 소리는 예수가 하나님을 계시함으로서 스스로를 나타낸다. 자신이 하나님이심을, 하나님의 사랑이심을 나타낸다. 그가 스스로 하나님과 같기 때문이다. 하나님만이 하나님을 계시하실 수 있다. 그래서 십자가에 달린 예수가 스스로 하나님 됨을 나타내는 사건이다.


13-17장 까지는 긴 예수의 고별사로 되어 있다.

고별사를 시작하기 전 13:1-30절, 하나의 표적으로 시작이 된다. 예수가 제자들의 발을 씻는 Sign행위로 시작이 된다.
καταβασι?, 낮아진 행위, 낮아짐의 극치이다. 예수께서 위에서 내려오신 분인데 내려오심의 극치가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더 이상 내려갈 수 없는 상태, 이제는 올라갈 수 밖에 없다. 그의 아버지께로의 돌아감, 곧 그의 영광 받음, 가장 낮아짐의 상태는 십자가에서 일어난다.




그래서 발 씻김은 내일 다가오는  대속의 죽음에 대한 해설이다. 행위메세지이다.. 이 발을 씻긴 극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구원론적인 의미가 있고 하나는 윤리적, 모범의 범주로 우리에게 제시되어 있다. 너무나 오랬 동안 많은 사람들은 윤리적인 모범의 범주에 집착을 해왔다. 예수의 겸손, 섬김의 도를 보라는 윤리적 모범의 범주로만 해석을 하는데 사실은 이것은 이차적이다. 일차적인 것은 예수가 백성을 죄로 부터 깨끗이 씻어서 하나님의 자녀로 바치는 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그러니까 베드로가 자기는 씻지 않겠다고 할 때 예수께서 씻지 않으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게 된다. 곧 그의 백성이 예수로 부터 죄 씻김을 받아서 그들이 예수의 하나님의 아들 됨에 참여해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가 언제, 어떻게 그의 백성의 죄를 깨끗이 씻기느냐? 십자가의 대속의 죽음에서이다. 그래서 발을 씻김은 내일 다가오는 자기 십자가의 대속의 죽음에 대한 의미를 아주 극적으로 설명을 하는 것이다. 그것이 예수께서 그의 백성을 사랑해서 그들을 씻기는 행위이고 십자가의 죽음은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 그들을 사랑해서 그들을 섬기는 행위이고 그들의 죄를 깨끗이 씻기는 행위 죄를 속하는 행위임을 미리 설명을 해주는 것이다. 그것이  사랑의 행위이다.




십자가의 죽음은 하나님의 아들이 그의 백성을 사랑해서 그들의 죄를 씻어 가지고 속죄해서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과 하나 되게 해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게 해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게 함이다. 그래서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부요함을 상속받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구원이다. 영생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사랑이다. 그것을 예수는 발을 씻기는 행위로 나타낸 것이다.

그러면 예수의 십자가에서 속죄 죽음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백성의 공동체는 어떤 공동체이냐? 새언약의 공동체이다. 하나님의 백성의 공동체이다. 내가 너희의 하나님이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다는 새언약의 공동체이다. 새언약의 공동체 교회에, 언약이 구체적으로 어떤 표현으로 설립이 되느냐면 새계명으로 된다.

옛 시내산 언약은 모세율법으로 표현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예수께서 속죄의 죽음을 통해서 그의 사랑을 통해서 이제 새롭게 창조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의 공동체로서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은 속죄의 죽음이면서 동시에 새언약의 제사이다. 새언약의 공동체에 주어지는 새언약은 무엇으로 표현이 되느냐?면 새계명으로 표현이 된다. 그래서 새계명이 무엇이냐? 서로 사랑하라이다.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사랑에 의해서 그리고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의해서 탄생되는 새언약의 공동체는 온통 사랑으로 특징 지워지는 공동체다. 그래서 이 하나님의 그들을 위한 사랑, 예수 그리스도의 그들을 위한 사랑이 서로 간에 사랑으로 표현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새계명을 준다. 이렇게 해서 발을 씻김의 두 번째 의미 즉 예수 그리스도가 사랑을 보이셨는데 사랑은 서로를 섬기는 것이다는 모범의 범주가 이제 시작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요 13장을 읽을 때 여기만  읽는 데 이것은 사실 보다 근본적인 의미인 구원론적인 의미에서 파생된 두 번째 의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