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요한복음

요한복음12: 12-19,예루살렘 입성

호리홀리 2015. 5. 7. 12:50

12: 12-19절은 예루살렘 입성이다.  나귀새끼를 타고 군중들이 환영하는 가운데 입성하는데 스가랴 9:9절이 직접 인용되었다. 요한복음에서는 구약을 직접 인용하는 경우가  적다. 예수의 수난사에 들어와서 본문을 직접 인용한다. 강조점이 두개이다. 하나는 12:13절에 왕 곧 메시야적인 왕으로서 환영받는 것이다. 이 주제가 예수의 수난사에 줄곧 흐르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왕으로서의 예수, 요18:33-40, 19:1-6, 12-16, 19절 등에 줄곧 흐르는 주제로서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메시야적 왕으로서의 예수이다.




강조점은 제자들이 16절에 당시에는 예수의 메시야적인 왕으로서의 입성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였다. 나중에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예수의 왕 되심, 왕으로서의 입성을 깨달았다. 이것은 요한복음에 있어서 일관된 것이다. 예수가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서 왕이 된다. 죽음이전에는 예수의 왕 되심이 감추어져 있고 모른다.


스가랴 9장 9절을 예루살렘 입성과 결부시켜 나오는 것은 공관복음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스가랴 9장에서 13장 까지 보면 당시 구약과 유대교의 주된 메시야 사상이 전사적인 전쟁영웅, 정복하는 왕 메시야인데 스가랴 9장-13장에서는 평화의 왕으로서의 메시야 사상이다. 이사야에서도 메시야를 평화의 왕이라 그랬지요. 그런데 스가랴에서는 찔림 받는 묵자장으로서의 평화의 왕으로서의 메시야, 이사야에서는 대속의 죽음을 통해서 고난 받는 이스라엘의 종으로서의 평화의 왕 메시야, 이렇게 스가랴서와 이사야서의 메시야 사상이 상통한다. 그런데 사53장도 예수의 수난사에 큰 영향을 미쳤으나 스가랴 9장-13장도 예수의 수난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 스가랴 9:9절에 나오는 평화의 왕으로서 겸손하게 나귀새끼를 타고 입성했다(전사로서가 아니라). 그러니 세상적인 판단에서 그가 왕인 것을 모른다. 제자들 까지도 모른다. 그의 십자가의 죽음, 대속의 죽음을 통해서 하나님과 인류를 화평케 한 뒤에야 그의 왕 되심, 평화의 왕 되심의 정체가 드러난다.




슥 9:9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새끼니라




19절에 바리새인들이 냉소적으로 말한다. “온 세상이 저를 좇는도다 하니라” 바리새인들은 냉소적으로 말하나 사실이다. 사실이 될 것이다.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으로 평화의 왕 되심이 드러날 때에 온 세상이 그를 따를 것이다. 온 세상이 따를 것이라는 바리새인들의 역설의 성취가 벌써 일어나기 시작한다. 




12:20-36절에 헬라인들이 예수를 찾아온 것이다. 여기의 헬라인들이 이방 헬라인들이냐? 헬라 지방에 흩어져 사는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냐?는 주석가들의 논쟁이 있다. 아마 헬라 이방인이 타당한 해석이다. 헬라 이방인들이 빌립에게 와서 예수를 만나겠다. 면담을 신청한다. 거기에 대해서 예수가 23절에서 “때가 이른다. 인자가 영광을 받을 때가 이르렀다. 24절에 밀알이 죽지 않으면 홀로 가만이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우리는 이 말을 일반화해서 한 사람이 희생을 해야 많은 열매를 맺는 것으로 하나의 격언정도로 일반화해서 쓴다. 그러나 원래는 예수가 자기의 십자가의 죽음을 두고 한 말이다. 자기의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 많은 사람들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온 유대인들, 하나는 여기 예수를 찾아온 이방인들의 대표가 되는 온 이방인을 구원에로 인도한다. 그래서 첫째 예수의 죽음이 유대인들 뿐아니라 이방인들의 구원을 의미함을 나타내고 둘째 그를 적대하고 거부하는 유대인들과 그를 추구하는 이방인들과의 대조가 나타난다. 이것은 예수의 십자가에 죽고 부활 후 초대교회의 선교의 역사에서 실제가 될 사건이다. 유대인들은 그들의 메시야 예수를 거부하고 이방인들이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인정하고 추구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여기에는 예수가 유대인들 뿐아니라 이방인의 구원자이심이 드러나지만 또 이방인들과 유대인들의 대조가 나타난다.




12장 37-50절 까지는 예수의 공생애의 결론 부분이다. 예수가 그의 제자들만 데리고 피하는 장면, 그리고 1:10-11절의 패턴에 따라 예수가 공생애의 의미를 결론하고 종합한다. “그가 그의 백성에게 왔으나 그의 백성이 그를 영접하지 않았다. 그것은 그들이 소망을 두는 성경의 예언을 성취한 것이다.” 그런데 예수의 말과 예수를 거절한 행위는 예수가 계시하는 하나님을 거절하는 행위로서 그것은 심판 받음을 의미한다. 그들이 예수가 계시하는 하나님을 거절한 것은 인간들의 칭찬을 더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이런 식으로 공생애의 의미를 요약 결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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