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신명기

신 16장,절기를 주신 목적

호리홀리 2015. 5. 5. 10:39

신 16장,절기를 주신 목적  

 언약을 지키는 언약백성에게 주신 절기는 하나님과 사람사이의 화목제의 세부법이라 할 수 있다. 그들에게 많은 절기를 주셔서 축제를 하게한 것은 기독교는 축제의 종교인 것을 보여준다. 하나님과 사람사이에 기쁘게 살라는 것이다

. 7일마다 찾아오는 안식일이나 매월 초에 지키는 월삭을 비롯해서, 나팔절 (7월 1일, 레 23:24), 속죄일(7월 10일, 레 23:27-32). 에스더 시대에 시작된 부림절(아달월 14일과 15일, 에 9:20-32)은 중요한 절기였다.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특히 세 가지 절기가 매우 뜻 깊었다: 무교절(유월절), 칠칠절, 초막절. “너의 가운데 모든 남자는 일 년에 세 번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를 뵈옵되 빈손으로 여호와를 뵈옵지 말고”(16:16; 참조. 출 23:17).
  유월절은 아빕월(정월) 14일에 지키며, 15일부터는 무교절이 7일간 계속된다(16:1; 참조. 출 34:18; 레 23:4-8). 칠칠절은 맥추절이라고도 불리고(출 13:16) 맥추의 초실절이라고도 불리는데(출 34:22) 곡식에 낫을 대어 단을 가져온 첫날부터 세어서 칠 안식일의 수효를 채우고 제 칠 안식일 이튿날까지 합 오십일을 계수하여 새 소제를 여호와께 드리는 절기이다(신 16:9; 레 23:15-16,20). 초막절은 수장절이라고도 불리며(출 13:16; 출 34:22) 7월 15일에 지키는데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말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하는 절기이다. 이때 이스라엘 백성은 칠일 동안 초막에 거하는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때에 초막에 거하게 한 줄을 너희 대대로 상기한다(레 23:42-43).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이 이렇게 유월절, 칠칠절, 초막절, 세 가지 절기를 중시한 까닭은 하나님께서 이 절기들을 지키라고 요구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절기를 지킬 것을 강력하게 요구하셨다. 하나님은 절기를 요구하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절기의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절기를 지키라는 하나님의 요구를 살펴보면 거기에는 간과해서는 안 될 귀중한 의미가 들어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1. 하나님을 만남

  절기는 하나님을 만나는 것을 첫째 목적으로 한다. 절기는 하나님을 만나기 위하여 존재한다. 그래서 절기는 신앙적인 의미를 가진다. 이스라엘의 절기는 사회적인 성격이 아니라 신학적인 성격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이 숨어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는 말을 뒤집어 보면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만나고 싶어 하신다는 뜻이 있다. 하나님은 백성을 보고 싶어 하신다. 이 때문에 하나님은 “너의 가운데 모든 남자는 일 년에 세 번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의 얼굴]를 뵈라”(16:16)고 말씀하신다. 여기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말은 “뵈라”는 단어이다. 이 말 속에는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만나라는 뜻이 있다. 상장을 받은 아이가 자랑하고 싶어 들뜨고 흥겨운 마음으로 부모를 만나러 가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이런 사모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예물을 가지고 간다. 하나님은 “빈손으로 여호와를 뵈옵지 말고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드릴지니라(16-17)고 말씀하신다. 특히 칠칠절과 관련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라”(10)고 하신다. 신자는 절기에 하나님을 만나 물질적인 예물 뿐 아니라, 육체의 건강, 영혼의 성장, 가정의 화목, 사업의 번창, 대인관계의 유지, 사회의 안녕 등등의 예물을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신자의 복된 삶을 보기를 원하신다.  
  오늘날에도 신자는 하나님을 만날 때 이런 마음을 가져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으로 주신 것들을 가지고 나아가 하나님을 뵙고 싶은 마음을 가져야 한다. 이것은 마치 부모에게 설빔으로 멋진 옷을 선물 받은 후에 그것을 곱게 차려입고 “나 어때요?”하면서 부모 앞에 나타나고 싶은 마음과 같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많은 복을 주셨다. 우리에게 의롭다 하심을 주셨고, 거룩한 삶을 주셨다. 우리는 이런 것들을 가지고 나아가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 사도 바울이 신자들에게 자신을 의의 병기로 드리라(롬 6:13),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롬 12:1)고 요구했을 때 바로 이런 의미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려야 할 예물은 단순히 물질의 차원을 넘어서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전제되는 성결한 삶, 성숙한 신앙, 화목한 가정, 거룩한 사회생활이다.

2. 하나님을 깨달음/배움

  그러면 절기에 하나님을 만나서 무엇을 하는가? 하나님을 배운다. 이것이 절기의 둘째 목적이다. 절기에 하나님을 뵈면서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깨닫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절기는 신앙학습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이스라엘의 절기는 신앙학습으로서의 절기(feast as catechism)이며, 신앙교육적 절기(catechetical feast)이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절기는 특별강좌이며 집중세미나이다. 절기는 하나님을 깊이 배우고 익히는 기간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절기를 맞이하면 하나님의 행사와 은혜를 기억한다. 절기는 복습으로서의 절기이다. 반복학습기간이다. 그러면 무엇을 복습하는가?

1) 출애굽 구원을 복습

  절기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출애굽 구원을 반복학습하게 만든다. 출애굽 구원은 옛날의 조상들에게 일어났던 사건이다. 유월절: “... 너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이라”(1). “이같이 행하여 너의 평생에 항상 네가 애굽 땅에서 나온 날을 기억할 것이니라”(3). “이는 네가 아빕월에 애굽에서 나왔음이니라”(출 34:18). 칠칠절: “너는 애굽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고 이 규례를 지켜 행할지니라”(12). 초막절: “이는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 던 때에 초막에 거하게 한 줄을 너희 대대로 알게 함이니라”(레 23:43). 이스라엘 백성은 절기를 맞이하면 옛날 하나님께서 조상들에게 베푸셨던 출애굽 구원을 복습한다. 절기를 맞이할 때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이 구원의 하나님이라는 사실과 하나님에 의하여 구원을 받았다는 사실을 마음 속 깊이 새긴다.
  우리에게는 구원의 은혜에 대한 복습이 부족하다. 우리는 하나님이 구원의 하나님이라는 사실과 옛날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악으로부터 구원하셨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산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의 과거를 잊지 않도록 자꾸 말한다.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엡 5:8),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골 1:21). 그리고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음을 자꾸 상기시킨다. 이렇게 하나님의 구원을 복습시킴으로써 구원의 감격을 되살려 계속해서 힘찬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게 한다.

2) 복 주심을 복습

  둘째로 절기를 통해서 신자들은 하나님이 지금도 복을 주신다는 사실을 복습한다. 절기는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다시 깨닫는 것이다. 그래서 절기에 대한 말씀에서 하나님이 주신 복이 강조된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복을 따라”(17). 이것은 특히 칠칠절에서 확실하게 나타난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대로”(10). 하나님의 백성은 절기를 지킴으로써 하나님이 복을 주셨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지금 일어나고 있는 사건이다. 하나님은 지금도 백성의 삶을 세밀하게 인도하신다. 파종하게 하시고 추수하게 하신다. 적절하게 늦은 비와 이른 비를 주신다. 알맞은 햇빛을 주신다. 양떼를 보살피신다. 가정에 화목을 주시고, 사업에 번창을 주신다. 건강을 돌보시고, 영혼을 강건케 하신다.
  하나님은 유월절 때는 그에 맞게, 칠칠절 때도 그에 맞게, 초막절 때도 그에 맞게 은혜를 주신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일년에 세 차례 나오라고 말씀하심으로써 하나님이 연중에 계속해서 은혜를 주신다는 것을 알게 하신다. 하나님의 은혜는 유월절 시기에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어느 한 절기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한 절기에만 은혜를 주시는 야박하고 쩨쩨한 하나님이 아니다. 어느 절기의 때나 하나님의 은혜가 골고루 온다. 하나님은 풍성한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충만한 복을 주신다. 하나님의 백성은 절기를 맞이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지금도 끊임없이 복을 주신다는 사실을 반복학습하는 것이다.
  오늘날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주신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필요를 비껴가지 않는다. 하나님의 은혜는 적절한 시기를 놓치는 법이 없다. 단지 우리가 믿음이 약해서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때가 있을 뿐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항상 적시에 온다. 하나님의 은혜가 이르지도 않고 늦지도 않게 온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 사실을 항상 마음에 새겨야 한다.

3) 미래의 소망에 대한 교훈을 복습

  절기는 미래의 소망을 반복적으로 가르친다. 하나님은 절기를 주시면서 이스라엘 백성이 절기를 대대로 지킬 것을 요구하셨다(칠칠절, 레 23:21; 초막절, 레 23:41,43). 하나님의 백성은 절기를 대대로 지켜야 한다. 그런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대대로 보존시키실 것에 대한 약속을 전제로 한다. 하나님의 언약은 영원한 언약이다. 이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미래에 대한 소망이 있다. 그것은 번영과 번창의 소망이다. 그들은 과거에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것처럼, 지금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며, 지금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것처럼 미래에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것이다. 하나님은 그들의 영원한 왕이 되실 것이다. 미래를 보장하실 것이다. 따라서 절기를 “대대로” 지키라는 명령은 미래의 소망을 교육하는 것이다.
  미래는 인간의 소유가 아니다. 사람은 미래를 좌지우지할 수 없다. 인간은 미래 앞에 설 때 불확실한 존재이다. 미래에 대하여 무능하다. 하나님만이 미래를 소유하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만이 미래를 보장하신다. 하나님이 약속하시는 미래만이 확실하게 보장된다. 하나님이 없는 인생에게는 미래가 없고, 하나님이 있는 인생에게는 미래가 있다. 절기는 바로 이런 사실을 가르친다. 백성은 절기를 지킬 때마다 하나님이 미래를 책임지실 것임을 배운다. 하나님이 대대로 절기를 지키게 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배운다.
  우리는 영원한 유월절 양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고전 5:10), 미래의 소망을 배운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히 13:8)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어제처럼 오늘도, 오늘처럼 내일도 변함없이 임할 것이다(엡 6:24).

3. 하나님을 즐거워함

  그러면 절기에 하나님을 만나서 하나님을 배우면 어떤 현상이 벌어지는가? 즐거움이 생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절기를 맞이하면서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하라고 말씀하신다(11, 칠칠절; 15, 초막절). 하나님은 절기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엑 즐거움을 주려고 하신다. 하나님은 신자들에게 즐거움을 주기를 원하신다. 이것은 마치 명절에 찾아온 자녀들에게 부모가 무엇인가를 준비해놓고 있는 것과 같다. 부모는 자녀들에게 명절에 꼭 오라고 당부한다. 부모를 만나기 위해서 먼 길을 가는 것은 사실상 괴로운 일이다. 그러나 부모가 오라고 할 때 무엇인가를 준비해놓고 있다. 자녀들에게 즐거움을 줄 생각을 가진다. 하나님은 신자에게 주실 즐거움을 준비하고 있다.
  하나님에게만 참된 즐거움이 나온다. 인간은 그 자체로 모순적이기 때문에 스스로는 즐거움을 가질 수가 없다. 맛있는 수박을 먹을 때는 즐겁지만 그 쓰레기를 버릴 때는 괴로운 것과 같다. 기름진 음식을 먹으면 비만에 걸리는 것과 같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까지는 즐거운데, 먹고 나서 살찌는 것은 괴롭다. 그래서 인간이 창출한 즐거움에는 반드시 괴로움이 동반된다. 인간의 즐거움은 불안하다. 인간의 즐거움은 일시적이며 부분적이기 때문이다. 코미디를 볼 때 즐겁지만 그 다음에는 바로 괴로움이 찾아온다.  
  인간의 진정한 즐거움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발생한다. 하나님을 만날 때 인간은 참된 즐거움을 얻는다. 그것은 영혼의 즐거움이다. 인생 전체에 영향을 주는 즐거움이다. 삶 전체를 이끌어가는 즐거움이다. 가치관을 바꾼다. 근본적이며 영구적인 즐거움이다. 또한 그것이 완전한 즐거움인 까닭은 하나님을 즐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 외에 어떤 다른 것들, 재물, 인간을 즐기는 것은 일시적이며 불완전하다. 그것들은 영원하지 않고, 가변적이다. 그래서 이런 것들을 즐기는 것은 곧 싫증이 난다. 변하지 않는 것에는 즐거움도 오래간다. 이것은 다이아몬드를 즐기는 이유와 비슷하다.
  하나님은 영원하시며 불변하신다. 영원하시며 불변하시는 하나님을 즐기는 것은 완전한 즐거움이다. 그래서 이것이 인생의 제일목적이 될 때 사람은 가장 복되다. 이 때문에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신자들에게 하나님을 즐기라(enjoy God)고 가르치며, 그것이야말로 인생의 최고의 목적이라고 가르친다 .
  하나님은 절기에 올라오는 백성에게 이런 참된 즐거움을 주시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의 백성은 여호와 앞에서 참된 즐거움을 누린다. 하나님을 즐거워한다. 하나님을 즐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이 즐거움을 7일 동안 충분히 누리게 하신다(3,4, 유월절; 13, 초막절). 게다가 하나님은 절기가 개인의 즐거움이 아니라 사회의 즐거움이 되기를 원하신다. (칠칠절 11, 초막절 14). 이웃들과 함께 하는 절기이다. 개인의 절기 아니라 사회의 절기이다. 이렇게 하여 절기는 사회적인 책임을 강조한다. 절기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더불어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인식시키며, 더불어 사는 사람들에게 대한 배려를 교육한다. 하나님의 백성은 사회를 책임진다.

  이스라엘의 절기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안식일의 주인이며, 유월절의 어린 양이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완성된 절기를 누리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혼인잔치와 같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 우리는 항상 하나님을 만나며, 하나님을 배우며, 하나님을 즐거워한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은 매순간 반복되는 절기적 신앙이다. 우리의 신앙은 잔치와 향연의 신앙이다.셀레브레이트하는 것이다.